소소한 일상들

소중하고 행복한

by 바람

2023.09.11. 월요일 [뒤숭숭한 마음]

문법 시간에 중간 테스트 결과를 받았는데 20문제 중에 3개를 틀렸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결과다. 다만 알면서도 덜렁대서 틀린 문제가 있어서 속상하다. 이제 새로운 단원으로 들어간다. '스튜어트'가 문법 설명을 하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알아들었지만 '주의 사항'에서 설명한 몇 가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의 사항'이겠지? 문제는 그런 것들이 시험에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복습해야겠다.

듣기 시간의 주제는 '메뉴판'이다. 이곳의 식당 메뉴판에는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채식주의자도 많고 알러지가 있거나 종교적 이유로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메뉴판을 보면서 다양한 상황에 대한 듣기 활동을 했다. 그런데 교재에 적힌 음식 가격이 지금의 시세와 맞지 않는다. 이 교재를 만들 때보다 지금은 가격이 많이 올랐다. 여기 물가는 한국보다 두 배 정도 높다. 한국에서 1,000원 정도 하는 물이 여기서는 2,000원 정도 한다. 한국에서 15,000원 정도하는 음식이 여기서는 30,000원 정도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대부분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다들 밴쿠버의 비싼 물가에 대해 한마디씩 불평을 했다.

읽기와 쓰기 시간에는 담당교사 '앤'이 휴가를 가서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보강 교사는 칠판에 잔뜩 질문을 쓰고 나서 그룹별로 토론한 후에 작문을 하란다. 주말에 뭐했는지, 기억에 남는 일, 주말에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나 일상적인 주말 활동 등에 대한 것이다. 흥미로운 질문은 주말에 자신이 계획해서 활동을 주도하는지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답변은 다양했다. 자기가 계획을 세워서 주도한다는 사람도 있고, 남들을 따라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하고 나서 변했다는 사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주로 주도하는 편이다. 대체로 모임이나 여행, 행사 등은 내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내 답변을 듣더니 옆 자리의 브라질 학생이 내 주변에 늘 친구들이 많아서 그럴 것 같았단다.

회화 시간에는 2인 1조로 팀을 짜서 교실 안과 밖을 왔다갔다 하는 활동을 했다. 한 명은 밖에 있는 문장을 읽고 와서 교실 안의 팀원에게 문장을 말해주어야 한다. 간단한 문장들이지만 왔다리 갔다리 하니까 헛갈린다. 수업 시작 전에 다들 추욱 쳐져 있었는데 갑자기 활기가 생겼다. 그 다음에는 그룹을 지어서 한 명씩 뒤를 돌아서 앉고 나머지 멤버들이 칠판에 적힌 직업을 말로 설명해서 맞추는 게임을 했다. 이번에도 다들 경쟁이 붙어서 난리가 났다. 우리 친구들은 정말 승부욕들이 강하다. 한바탕 소동같은 게임을 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캐서린'이 내일은 직업에 대한 스몰 테스트를 본다고 하자 몇몇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지난 주말에 수업 자료들을 다 버렸단다. 나는 얼른 사진을 찍으라고 내 것을 쭈욱 펼쳐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도서관으로 가서 숙제를 하고 나서 문법 복습을 했다. 특히 아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의 사항'을 확인했다. '주의 사항'이라는 것은 예외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외를 이렇게 많이 둘 거면 규칙은 왜 있는거니? 직업에 대한 단어들도 쭈욱 훑어 보았다. 암기는 못한다. 나는 못한다. 그냥 눈에 익힐 뿐이다. 익숙해지면 그 중 몇 개는 건질 수 있겠지.

집으로 오면서 한인 마트에 들러 할인행사가 없나 보다가 마침 쌀을 할인하길래 사왔다. 지난번 샀던 쌀이 다 떨어졌다. 2달 반 동안 2kg를 먹었으므로 이번에 산 쌀 2kg로 집에 갈 때까지 먹으면 될 것이다. 그동안은 우리 식구들이랑 나눠먹었지만 앞으로는 나 혼자 먹어야 하므로 자칫하면 남을 수도 있겠다. 반환점을 돌았으므로 정말 이제부터 구입하는 식자재는 남은 기간을 고려하면서 사야한다. 반환점을 돌았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어서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기서 여러가지 더 경험하면서 영어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뭔가 좀 마음이 뒤숭숭하다.


2023.09.12. 화요일 [서양식 농담]

문법 수업에 새로운 학생이 들어 왔다. 일본 사람이다. 나는 수업 시작 전에 그녀에게 지금 진도 나가는 부분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녀는 어제부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많이 긴장하고 있단다. 그래그래. 나도 그랬어.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서로서로 자기도 그랬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다들 친절하게 말하니까 그녀는 매우 안심하는 것 같다. 그래, 이런 분위기 좋다. 다함께 신입생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자.

듣기 수업은 식당에서 일어난 재밌는 이야기 듣기로 시작했다. '윌'은 이 이야기를 듣고 이게 왜 웃긴지 설명하란다. 본문 내용은 이렇다. 어떤 사람 둘이 아주 비싼 식당에 가서 물만 시켜놓고는 각자 자기 도시락을 꺼내서 먹고 있다. 종업원이 보다 못해 여기서 자기 도시락을 먹으면 안된다고 말하자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서로 도시락을 바꾸어 먹는다. 듣기 내용이 끝나자 한 명의 멕시코 학생만 피식하고 웃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냥 멀뚱멀뚱한 반응이다.

'윌'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다시 들려주었다. 두번째 듣고 나니까 그제서야 몇 명이 좀 웃는다. 나도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했는데 두번째 듣고 나니까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왜 웃긴지 설명하라고 하니까 대부분 '그들은 무례하다, 식당에서 그러면 안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윌'은 학생들 반응이 신통치 않자 어깨를 으쓱하며 이건 그냥 재밌는 이야기라고 즐기면 된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은 상황 전체를 파악하는데 집중한 것이고 이 이야기에서 재밌는 지점은 '자기 도시락'을 먹으면 안된다는 말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보통 우리가 서양식 조크에 쉽게 웃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어 원어민이 아닌 사람들은 내용 파악하느라고 웃음 포인트를 놓치게 된다. 웃음 포인트는 대부분 작은 단어나 상황에 있다. 이런 차이를 '윌'에게 설명해주고 싶지만 아직 내 영어실력으로는 무리다. 이런 것도 영어로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주말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시'에게는 이번 주말이 밴쿠버에서의 마지막 주말이다. 우리는 일요일에 함께 '딥코브'로 소풍가기로 했다. 나는 이미 '딥코브'에 갔다왔지만 '루시'가 안가봤다고 하니까 같이 가야지. 우리는 베프니까. 우리의 계획을 듣더니 어떤 친구가 주말 소풍에 주먹밥을 만들거냐고 묻는다. 자기는 주먹밥을 먹기 위해 소풍에 참여하고 싶단다. 그러자 '루시'는 이번 기회에 주먹밥 만드는 방법을 꼭 배워야겠다고 한다. 나는 우리집이 이 근처니까 집에서 직접 주먹밥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결국 이번주 목요일에 '루시'를 비롯한 친구 세 명이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타국에서 쿠킹 클래스를 열게 되었다.

오늘도 학생 라운지에서는 게임을 진행했다. 자원자를 받는데 일본 친구 '젠'의 손에 이끌려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게임은 단어 혹은 단어구를 보고 제스쳐로 설명해서 맞추는 것이다.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설명하는 역할은 골고루 돌아가면서 하도록 했다. 만약 설명하는 학생이 단어를 모르면 다른 단어로 교체해주었다. 게임 자체가 영어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 학원은 정말 좋은 거 같다. 이번에도 우리 팀이 압승했다. 오늘은 상품으로 쿠폰을 준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 이 이벤트가 진행되는데 쿠폰을 많이 모으면 나중에 상품을 준단다. 오, 그래? 승부욕이 몹시 강한 '젠'이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오늘 extra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콜롬비아 학생, 브라질 학생, 그리고 나 뿐이다. 오늘의 주제는 '여행'이다. 여행 경험에 대해서 묻고 답하기를 했는데 재밌는 질문이 나왔다. '말, 코끼리, 낙타, 오토바이 혹은 다른 것을 타본 경험이 있는가?' 다른 학생들은 말, 오토바이를 타 보았단다. 나는 말, 코끼리, 낙타를 타 보았다. 다들 놀란다. '마리아나'가 아주 신기해하면서 어디서 타 보았냐고 물었다. 코끼리는 태국의 관광지에서 탔고, 낙타는 인도에서 사막 야영할 때 타 보았다고 했더니 사막 야영이라는 말에 또 놀란다. 내가 좀 여행을 많이 한 편이지. 사막 야영은 텐트가 없이 담요를 깔고 침낭에서 자는 것인데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면서 잘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다들 신기해한다. 나도 신기해.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지.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나는 목요일 저녁에 내 친구들이 요리를 배우러 우리 집에 방문하게 되는 것에 대해 양해를 부탁하는 메모를 썼다. 여러장 써서 각 방의 문 앞에 붙여 놓았다. 일본 친구가 메모를 보더니 무슨 요리를 할 거냐고 묻는다. 주먹밥이라니까 자기도 같이 배우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이러다가 빅 쿠킹 클래스가 되겠는걸?


2023.09.13. 수요일 [소소한 일상들]

문법 수업은 지난 주에 쉽게 여겼던 명사, 대명사, 정관사, 부정관사에서 디테일의 암초를 만나 좌절을 경험했다. 이번 주에는 형용사와 부사, 비교급을 배우고 있는데 역시 쉬울 것 같았지만 점점 더 어려워진다. 단어의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야만 판단할 수 있는 문법 규칙이 너무 많다.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배울 때 작은 뉘앙스의 차이라든지, 세분화된 느낌 표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영어도 만만치 않다. 결론은 어느 나라말이건 외국말 배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28살에 극장 스낵바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심화 토론 시간을 가졌다. '당신의 인생에서 충분히 성취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나?' 이 질문은 그동안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다. 그러고 보니까 나는 대체로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살아온 것 같다. 운이 좋기도 하고 작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렵게 성취한 것들이 많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어려움들이었다. 여러모로 나는 감사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점심 시간에는 밥을 먹고 나서 친구들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감상했다. 학생 라운지에 피아노가 있는데 가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학생들이 연주를 하기도 한다. '젠'이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해서 다들 그녀에게 연주를 해달라고 했다. 처음에 '젠'은 서투르게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했다. 학생들이 박수를 치니까 그녀는 잠시 빙긋 웃더니 갑자기 '알라딘'의 주제곡을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두 놀랐다가 환호했다. '루시'는 '젠'이 재능이 있는데 일부러 장난친 거라고 했다. '젠'은 정말 대단한 친구로구나.

대만 자매들이 다음 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potluck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싸 와서 같이 나누어 먹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다음 주에 학원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으므로 다함께 이별 파티를 하자는 의미다. 다들 찬성했다. 그래 이별 파티를 해 보자. 나는 뭘 만들까? 주먹밥은 자주 먹었으니까 이번에는 김밥에 도전해볼까?

회화 수업과 extra 수업까지 알차게 듣고 나서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이제는 자주 가서 그런지 아는 얼굴들이 많다.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었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말레이시아에서 온 게임 디자이너다. 게임 디자이너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본다. 게임의 여러 시각적인 요소들을 만들어낸단다. 전문적인 내용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다들 최신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임 이야기라면 나도 빠질 수 없지. 나는 '마인 크래프트', '스타듀밸리', '디아블로'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다들 놀란다. 하긴 이 나이에, 그것도 여자가 이런 게임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

오늘은 4번 자리를 옮겨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자리에서는 대화를 거의 알아듣지 못해서 속상하기도 했다. 쉬운 말은 잘 알아듣지만 조금만 내용이 깊어지면 못 알아듣는다. 어떻게 하면 좀더 나아질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이제는 이곳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소소한 일상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영어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일상들이 반복되면서 영어가 내 안에 스며들겠지?


2023.09.14. 목요일 [쿠킹 클래스]

문법 수업은 형용사와 부사에 대한 작은 시험을 보았다. 늘 그렇듯이 최선을 다했다. 그것에 만족한다. 결과는 뭐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듣기 수업도 단어 시험을 보았다. 나는 객관식으로 나올 줄 알고 스펠링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100% 주관식이었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30문제 중에 4개 틀렸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나는 눈높이가 아주 낮은 사람이다. 이런 걸 안분지족이라 할까?

읽기와 쓰기 수업은 '주간 글쓰기 과제'가 있단다. 매주 글쓰기 과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는 이번 주 초에 시작해서 금요일에 제출해야 하지만 지금 안내가 되므로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제출하란다. 과제는 5가지 중에서 선택하라는데 어차피 이 중에서 4가지를 매주 하나씩 써야 한다. 즉, 순서만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한달 동안 4개의 작문과제라니 너무 하구만.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나니까 게임할 사람을 모집한다. 나는 빠지려 했지만 이번에도 '젠'이 내 팔을 잡아 이끌었다. 이번 게임은 우리나라의 여느 게임처럼 무릎을 두번 치고 손벽을 두번 치면서 숫자를 외치는 것이다. 무릎 두번은 자기 숫자, 손벽 두번은 다른 사람 숫자를 외치면 된단다. 간단하지만 점점 탈락되는 학생들이 있어서 남은 사람 번호를 기억해서 말해야 한다. 나는 이런 게임에 아주아주 약한 편이다. 순발력이 너무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대학 MT에서도 게임할 때면 언제나 도망 다녔는데 이번에는 영어 공부하는 셈치고 도전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는 결승까지 가게 되었다. 마지막에 내 친구 '젠'과 나의 대결이 되었다. 우리 둘만 남으니까 학생들이 둘로 나누어져서 응원하고 난리다. '루시'는 당연히 내 편이다. 게임을 진행하는 직원도 게임의 열기가 뜨거워져서 신났다. 마지막 순간, 아이고! 나는 너무 긴장해서 '젠'의 번호를 까먹었다. 승부와 관계 없이 너무 재밌는 순간이었다. 다들 즐겁게 웃고 즐겼다.

extra 수업에서 재밌는 질문이 나왔다.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나?'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간단하게 재미삼아 점을 본단다. 그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유리구슬, 타로 카드, 손금, 점성술, 숫자점(사주팔자같은 것) 등이다. 나라마다 점보는 방식이 다르지만 다들 재밌어하는 것 같다. 물론 다들 믿지는 않는단다. 그냥 재미로 보는 거란다. 어디나 사람들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친구들과 함께 우리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드디어 쿠킹 클래스가 있는 날이다. 나는 먼저 한국쌀로 냄비밥을 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30분 정도 미리 물에 불린다. 그리고 쎈 불로 끓인다. 김이 나고 부글부글 소리가 나면 불을 아주 약하게 줄이고 5분 정도 둔다. 그 후에는 불을 끄는데 여기가 중요하다. 불을 끄고 냄비뚜껑을 열지 말고 이대로 10분 정도 둔다. 밥에 뜸을 들이는 것이다.

쌀을 물에 불리는 사이에 야채를 다듬었다. 당근, 양파, 파프리카를 다진다. 아주 잘게 다질 필요는 없다. 주먹밥을 뭉쳤을 때 흩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다지면 된다. 나는 '달라라마(우리나라의 다이소같은 곳)'에서 사 온 줄로 당기는 '다지기 도구'를 주로 사용한다. 내가 야채들을 적당한 크기로 썰자 '루시'가 나의 '다지기 도구'로 야채를 다져주었다. '루시'는 이 도구를 본 적은 있는데 직접 사용한 적은 없단다. 줄을 당기는 것을 아주 재밌어 한다.

야채를 모두 다지고 나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넣고 볶는다. 당근처럼 단단한 것부터 단계별로 넣는게 더 좋지만 나는 그냥 다 때려 넣는다. '루시'는 채식주의자이지만 계란은 먹는다고 해서 이번에는 계란도 넣었다. 어떤 채소든지 있는 것을 넣으면 된다. 버섯을 함께 넣어도 좋다. 사실 김치를 다져 넣으면 더 맛있지만 '루시'에게는 생선 알러지가 있다. 김치에 들어가는 액젓 때문에 이번에는 넣지 않았다. 채식 주먹밥이 아니라면 나는 여기에 참치캔, 불고기, 치즈 등을 넣는다. 뭐든 다져서 넣으면 된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볶아서 큰 통에 담아둔다. 밥이 완성되면 야채 볶은 것과 동일한 양의 밥을 넣어 함께 섞는다. 이때 간을 위해 간장을 조금 넣는다. 야채를 볶을 때 소금을 쳤으면 간장을 생략해도 된다. 여기에 치트키로 고추장과 참기름을 약간 넣는다. 친구들은 한국의 고추장과 참기름을 안다면서 자신들의 나라에도 그걸 파는 마트가 있단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잘 섞어서 동그랗게 뭉친다. 이때 나는 두 가지 스타일로 주먹밥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구운 김을 부셔서 섞는 방법, 구운 김으로 주먹밥을 감싸는 방법이 있다. 맛은 같지만 색깔이 다른 주먹밥이 가능하다. 친구들은 박수를 치면서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루시'는 내가 계량을 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넣는 것을 보더니 자기 언니와 비슷한 방식이란다. 자기 언니도 나처럼 계량하지 않고 대충 감을 잡아 음식을 만든단다. 반면 자기는 계량해서 몇 스푼, 몇 컵 등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한단다. 내가 밥을 지을 때 쌀을 냄비에 넣고 나서 내 손등까지 물을 넣는 것을 보고 다들 엄청 신기해했다.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대충대충 감으로 요리를 하는 편이다. '루시'는 브라질에 가서 주먹밥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자기는 야채에다가 버섯을 추가해서 만들어겠단다. 그래, 주먹밥은 원래 냉장고에 남은 것들을 다 때려놓고 만드는 것이라서 들어가는 재료가 아주 자유롭다. 나는 '루시'의 주먹밥을 먹으러 브라질에 가야겠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주먹밥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학원 선생님들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영어 발음 어려운 것, 억양이 독특한 사람들, 영어 필기체 이야기 등을 했다. 특히 영어 필기체는 거의 알아볼 수 없는데 어떤 친구들은 줄기차게 필기체로 사용한다. 그런 사람과 파트너가 되면 아주 곤란하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친구들이 가고 나서 숙제를 부랴부랴 마무리했다. 오늘은 복습은 생략이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대신 내일 두 배로 복습해야 겠다. 내 친구 '루시'가 인스타그램에 오늘 요리 배운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에서 친구들의 반응이 뜨겁다. 역시 한국식 주먹밥이 아주 인기가 많다.


2023.09.15. 금요일 [부끄러워 말고 질문하자]

문법 수업은 어제 본 시험에서 1문제만 틀렸다. 다 맞을 수 있었는데 아깝다. 숙제의 답을 친구들과 함께 확인하는데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스튜어트'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이제는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스튜어트'에게 질문하니까 맥락 때문이란다. 해당 문장이 아니라 앞뒤 문장의 맥락 때문에 예외적인 현상이 생긴 거란다. '스튜어트'의 설명을 듣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앞뒤 문장까지도 파악해야 한다. 갈 길이 멀군.

우리 문법 교실의 학생들 중에서 3명이 오늘까지만 나오고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옮겨 간단다. 요즘 다른 학원과 연계한 새로운 프로그램 홍보가 요란하다. '스튜어트'는 그들에게 옮겨간 후에 그쪽 프로그램이 어떤지 자기에게 가끔씩 피드백을 해달라고 한다. 그는 학원의 중간 관리자급인데 여러 프로그램들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을 점검하는 것 같다.

읽기와 쓰기 수업 시간에 옆자리의 일본 친구가 자기 이름을 한국말로 적어달란다. 내가 써주니까 그걸 쓰는 연습을 한다. 내 이름도 일본말로 적어주길래 연습해 보았다. 우리가 서로 이름을 쓰는 것을 보더니 브라질 친구가 자기 이름도 한국말과 일본말로 써달란다. 이렇게 갑자기 각자 이름을 한국어, 일본어, 브라질어로 쓰게 되었다. 소소한 국제교류다.

오늘 수업은 상반되는 것에 대해 하나를 선택하는 질문을 만들어 서로 질문해보란다. 예를 들면 '여행할 때 투어를 좋아하는가, 단독여행을 좋아하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대답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 이유를 함께 말해야 한단다. 나는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어서 '여행가서 그 지역 음식을 도전하는지, 일반적인 음식을 먹는지'에 대해 질문을 만들었다. 그런데 브라질 친구가 장난스럽게 '세상에 음식이 딱 두 가지라면 뱀을 먹을 것인지, 거미와 같은 곤충을 먹을 것인지'를 묻는다. 왜 그런 질문을? 일본 친구는 '모험을 간다면 남극을 갈지, 북극을 갈지' 선택해 보란다. 역시 젊은이들의 질문이 나보다 신선하다.

점심 시간에 오늘도 게임 이벤트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4명씩 팀을 짜서 앉고 퀴즈를 맞추는 게임을 했다. '캐나다의 가장 큰 도시는?', '갓 태어난 아기의 뼈 갯수는?', '다음 문장 중에서 동사를 모두 고르시오.' 이런 상식 문제들부터 '우리 학원의 교실 갯수는?', '우리 학원에서 가장 오래된 교사는?'과 같은 엉뚱한 질문들도 있다. 다들 한바탕 소란스럽고 재밌게 문제를 풀었다.

회화 수업은 신나게 돌아다니는 활동을 했다. 10여개의 질문이 적힌 종이를 들고 2문제씩 서로 다른 친구들을 인터뷰하란다. '여행 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가', '여행 가기 전에 새 옷을 사는가' 이런 질문들이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했다. 사람들마다 정말 취향은 가지각색이다. 외향적인 사람, 내성적인 사람,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 즉흥적인 사람 등등이다. 분주한 활동 후에 '캐서린'은 우리에게 숙제를 선물(?)로 주었다. 각자 꿈꾸는 휴가에 대해 글을 써와서 다음 주에 발표를 하란다. 이번 주에는 작문 숙제가 2개나 있다. 주말이 아주 분주하겠다.

모든 수업이 끝난 후 집 근처 카페에서 하는 MeetUp의 '영어회화' 모임으로 향했다. 오늘은 지난 주보다 사람이 더 많아져서 카페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야 한다. 줄을 서면서 자연스럽게 홍콩 사람, 일본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일본 사람과 나는 비슷한 시기에 여기에 와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고 홍콩 사람은 일년 전에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지금은 일하고 있단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 공부, 밴쿠버 물가, 취미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이란 사람과 캐나다 사람이 합류했다. 이 두 사람은 수요일의 '한영언어교환'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아직 영어 초급자인 나와 일본 사람을 위해 다들 천천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덕분에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다. 특히 이란 사람은 중년의 아저씨인데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저번 수요일 모임에서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 내가 대화 중에 잘 이해하지 못해도 대충 넘어가려는 것을 간파하고 조언해 준 것이다. 오늘도 그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해주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여기는 영어를 연습하러 오는 곳이니까 더욱 더 많이 요청하란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두 너무 고맙다. 홍콩 사람은 화제가 끊기지 않도록 다양한 질문이 있는 웹사이트를 검색해서 돌아가면서 질문하고 답하도록 유도했다. 중간중간 단어를 몰라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쉬운 단어로 바꾸어 설명해주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 2시간은 훨씬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용기를 내자. 문법 수업 시간에도 이제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다른 수업 시간에도 이제는 교사나 친구들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래. 질문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꾸자꾸 물어보고 도전해보자.


2023.09.16. 토요일 [스쿨 액티비티]

오늘은 학원의 스쿨 액티비티로 인근의 '그라우스 마운틴'에 가는 날이다. 그동안 스쿨 액티비티가 많이 있었지만 extra 수업 혹은 MeetUp 모임과 겹쳐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토요일에 진행되어서 참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라우스 마운틴'의 곤돌라는 정가가 70달러인데 학원 단체 할인가격으로 20달러로 이용할 수 있다. 3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9시에 학원 앞에서 인솔자 '케이'와 친구들을 만났다. '케이'는 2층 데스크를 지키는 직원인데 늘 점심시간 게임을 진행해서 우리와는 친숙해진 사람이다. 이동은 대중교통으로 한다. 1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시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참여자 중에는 친한 친구들도 있고 처음 보는 학생들도 있다. 자연스럽게 서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친해졌다. 1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보니까 곤돌라 탑승장에 도착했다. 곤돌라는 20여명이 탑승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올라가는 목적지의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엄청나게 가파른 구간을 곤돌라로 올라간다.

곤돌라에서 내려서 부엉이를 든 직원의 설명도 듣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그라우스 마운틴'의 명물이라는 쇼도 보았다. 두 명의 출연진이 톱질이나 나무 오르기 같은 것을 겨루는데 관중들이 편을 나누어 응원하는 방식이라 다함께 흥겹게 관람했다.

쇼가 끝나고 나서는 맞은 편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어떤 학생은 도시락을 싸왔고 일부는 식당의 햄버거를 사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까 이번에는 곰을 보러 간단다. 커다란 공간에 울타리를 쳐 놓고 곰을 가두어 두었다. 울타리 안을 어슬렁거리는 곰을 보니까 불쌍하다. 곰의 의사를 물어봤어? 거기서 갇혀서 살고 싶겠니?

나는 '루시'와 함께 갔던 휘슬러 여행에서 야생곰을 본 경험담을 친구들에게 늘어 놓았다. '루시'와 나는 휘슬러 여행 중에 3번의 하이킹을 했는데 그 중 한 곳에서 야생곰을 보았다. 앞서 가던 '루시'가 갑자기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곰이라고 했다. 내가 앞쪽을 보니까 큰 나무등걸이 보여서 곰이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그 뒤로 곰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정말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곰으로부터 50여미터 떨어진 언덕 위에 있어서 곰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루시'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뒷걸음으로 움직이자고 해서 우리는 정말 슬로우모션으로 뒷걸음쳤다. 어느 정도 뒷걸음친 후, 뒤를 돌아 최대한 조용조용 그러나 빠르게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가면서 '루시'가 뭔가 중얼거렸는데 알고보니 휴대폰 메신저로 남자친구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 것이었다. 상황을 설명하면서 혹시 자기와 연락이 끊기면 이 일대를 찾아보라는 내용을 남겼단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오자 '루시'와 나는 서로 손을 맞잡고 이젠 괜챦다고 서로 안심을 시켜주었다. 우리 둘다 손을 엄청 떨고 있었다. 잠시 후 하이킹을 하던 사람을 만나서 우리는 저 앞쪽에 곰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시큰둥하게 '곰은 어디나 있어.'라고 했다. 우리는 그가 이 지역 주민일 거라고 추측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다들 우리가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케이'도 캐나다에서는 1년에 몇 명씩 곰의 습격으로 죽는다면서 너희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더 높은 전망대로 올라갔다. 곤돌라 가격에 리프트 이용료가 다 포함된 것이라니 너무 좋다. 높은 전망대에서는 밴쿠버 시내가 다 내려다 보였다. 딱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케이'가 학생들에게 사진을 찍어줄 테니까 자기에게 휴대폰을 주고 원하는 곳에 가서 원하는 포즈를 취하라고 한다. 그녀는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케이'는 이제 일정이 다 끝났으니까 더 놀다가 오고 싶은 사람은 더 놀고, 내려가고 싶은 사람은 내려가도 된다고 했다. 다들 이 정도 놀았으면 충분하다며 엄마 오리를 따르는 아기 오리들처럼 '케이'의 뒤를 쫄쫄 따라서 내려왔다. 곤돌라에는 사람이 아까 보다 더 많아졌다. 이거 안전하겠니?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서 시내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다들 엄청나게 수다를 떨었다. 나를 처음 본 학생들은 내 나이에 여기 와서 영어 공부하는 것을 신기해한다. 나도 이런 내가 신기해.

여러 학생들과 수다를 떠드느라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케이'의 뒤를 따라서 버스에서 내렸다. 뭔가 낯선 풍경이다. 수상버스(씨버스)를 타는 곳이란다. '케이'가 일부러 새로운 운송수단을 경험하게 해주려고 이쪽으로 안내한 것이다. 야호!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나도 수상버스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 타보지는 못했다. 다른 친구들도 처음이란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려면 바다를 건너가거나 내륙 쪽으로 빙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아까 우리가 버스를 한 시간이나 탔던 것이다. 바다를 건너가는 수상버스가 운영되고 있는데 내 친구 '루시오'가 매일 등하교에 이용했던 것도 이 수상버스다. 대략 15분 정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정말 시내버스와 다름없다. 타보니까 굉장히 큰 페리인데 의자도 어마무시하게 많다. 이 수상버스는 시내의 교통카드로도 이용할 수 있어서 더욱 편리하다. 수상버스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15분 정도)에도 다들 수다를 떨다가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을 서로 연결하고 난리다. 수상버스에서 내리니까 지하철 역으로 연결된다. 지하철 입구에서 다들 작별인사를 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노선이 있다. 사실 여기서 우리집까지 걸어가도 되는데 그냥 친구들과 좀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지하철을 탔다. 나는 몇 정거장 안가서 내렸지만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수다를 떨었다.

집에 와서 간단하게 요리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했다. 오늘 하루 종일 영어로 많이 이야기를 나누어서 유익했고 경치가 좋은 곳을 돌아다녀서 더 좋았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너무 즐거웠다. 앞으로도 시간만 맞으면 스쿨 액티비티에 더 자주 참여해야겠다.


2023.09.17. 일요일 [루시와의 마지막 여행]

오늘은 '루시'와 딥코브로 소풍가는 날이다. '루시' 외에 몇 명이 같이 가려고 했는데 다들 일들이 생겨서 '루시'와 나만 가게 되었다. 우리는 학원 앞에서 만나서 시내버스를 타고 딥코브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이곳의 명물인 허니 도넛을 하나씩 사서 가방에 넣고 트레킹 코스를 따라 산길을 걸었다. 초반에는 계단이 많아서 힘들지만 이후에는 완만한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을 하면 된다. '루시'와 나는 둘 다 사진 찍은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그 타이밍에 사람들이 나타나서 어려움이 많았다. 오늘도 여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멋진 곳에서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덕분에 트레킹 시간이 남들보다 많이 걸렸지만 우리는 만족하면서 걸었다.

목적지인 쿼리락이라는 큰 바위에 도착해서 경치를 보면서 도넛과 도시락을 먹었다. 역시 쿼리락에도 사람들이 많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우리는 사람들을 피해서 간신히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여기서 항구까지 내려가는 방법은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길과 가로질러 내려가는 길이 있다. 가로질러 내려가는 길의 경사도를 보더니 '루시'가 모험하지 말고 아까 왔던 길로 내려가자고 한다. 나는 짧은 코스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히 무릎이 아작날 것 같아서 참았다. 그래! 왔던 길로 가자.

우리는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학원의 멕시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멕시코에서 동생이 놀러온다고 했는데 동생과 함께 이곳에 온 것이다. 이런 우연이 있나.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그들은 이제 올라가는 중이라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밴쿠버에서 갈 곳은 다 거기서 거기라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구나!

항구로 내려와서 공원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루시'는 이제 브라질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아쉬워했다. '네가 가면 나는 어쩌냐'고 했더니 나에게 열심히 공부하란다. 그래. 친구! 열심히 공부할께. 나는 베프를 보내고 나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만난 근본적 이유였으니까. 오늘 여행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라는 점을 우리는 함께 느끼고 있었다. '루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이후의 삶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피곤했는지 둘다 버스 안에서 열심히 졸았다. 졸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내릴 곳이 가까워졌다. 참 신기하게도 내릴 곳이 가까워지면 잠이 깬다. 버스에서 내려서 우리는 시내의 가게 몇 군데를 돌면서 쇼핑을 했다. '루시'는 귀국을 앞두고 친구들, 조카들 등의 선물을 골라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까 나도 한국으로 갈 때 친구들과 가족들의 선물을 생각해두어야겠구나. 쇼핑을 마치고 내일 학원에서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는 씻고 방청소를 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작문 숙제와 문법 복습을 했다. 문법 복습이 끝날 때쯤 거실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았다. 일본 친구 '유카'와 미국 친구 '메기'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메기'는 메이크업을 공부하고 있는데 주말에 자기 브러시들을 씻어야 해서 거실에 좀 늘어놓아야 하니까 양해를 해달란다. '유카'와 내가 호기심으로 브러시들을 구경하니까 '메기'는 브러시들에 대해 뭔가 설명해준다. 말한 내용을 다 알아들은 것은 아니지만 싸고 질좋은 브러시 브랜드, 거기에 사용된 동물의 털들에 대해서는 이해했다. 주로 다람쥐털을 이용한단다. 밍크털이 제일 좋지만 너무 비싸단다. 메이크업 브러시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렇게 이번 주말도 정말 신나게 놀았다. 덕분에 일요일 저녁에 급하게 숙제를 해야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어제는 학원 친구들과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늘은 '루시'와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렇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그리고 영어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고 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인데 또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 뜻깊고 새롭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한 신선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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