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인생사
2023.08.28. 월요일 [쓸쓸한 월요일]
오늘은 문법 시험을 보는 날인데 '스튜어트'가 오지 않았다. 보강교사가 들어와서 대신 level test를 진행했다. 시험문제는 미리 '스튜어트'가 준비해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가 50개인 줄 알았는데 45개다. 지금까지 늘 50문제였는데? 아무래도 실수로 한 장을 놓친 것 아닐까? 어쨌든 시험은 늘 그렇듯이 아는 것은 풀고 모르는 것은 찍으면서 열심히 보았다.
듣기 수업에서는 재밌는 내용이 본문으로 제시되었다. 캐나다에 영어공부하러 온 아들이 2달동안 소식이 없어서 부모가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부모는 아들에게 네가 너무 바쁜 것 같으니까 4지선다형으로 소식을 묻겠다고 한다. 소식이 없는 아들에게 비꼬아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재밌었다. 공부 비용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 화룡점정이었다. 그러게 아들아, 안부인사를 좀 전하지 그랬니? 여기 교재에는 재밌는 내용들이 많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걸까?
읽기와 쓰기 시간에는 오랜만에 게임을 했다. 오늘도 다들 재밌게 문제를 풀면서 게임을 즐겼다. '캔디스'가 내일 있을 시험을 설명하는데 나는 또 당황했다. 내일 쓰기 시험을 보는 줄 알고 잔뜩 준비했는데 읽기 시험이란다. 에휴. 내가 지난 주에 뭔가 잘못 이해했나보다. 오늘 저녁에 읽기 시험 준비를 해야겠다. 단어 품사 공부부터 해야겠군.
점심시간에 드디어 3층 학생라운지가 한가해졌다. 여름의 빅 시즌이 끝난 것이다. 덕분에 여유롭게 라운지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 먹고 나서 '코즈에'와 학원 근처의 성당과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우리 학원은 이곳 밴쿠버 다운타운 외에 '빅토리아'에도 지점이 있단다. 그래서 '코즈에'는 거기서 공부를 좀더 하다가 일자리를 알아볼 것이란다. 나도 그녀처럼 워킹홀리데이로 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이 제한에 걸린다. 아, 20년만 젊었어도 도전해볼텐데 아쉽다. 근데 20년이면 너무 한참 전이구나. '코즈에'는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이라 그녀와 함께 대화할 때는 나도 덩달아 차분해졌는데 벌써 이별이라니 아쉽다. 그녀도 아쉬워하면서 기회가 되면 '빅토리아'에 놀러오란다. '빅토리아'는 여기서 전철 타고 배를 타고 가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여기 학생들이 당일치기로 놀러갔다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밴쿠버보다 올드타운이라서 예쁜 건물들을 볼 수 있단다. 그래. 놀러갈께. 친구도 보고 관광지 구경도 하고 일석이조가 될 것 같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단어 공부를 했다. 어차피 암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예문들을 통해서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Longman 사전과 Oxford 사전에 나온 예시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어떤 단어는 아무리 봐도 친숙해지지가 않는다. 오늘은 영시 번역하기를 못했다. 아무래도 시를 읽고 쓰는 것은 주말에 해야겠다.
집에 와보니까 아무도 없다. 젊은이들은 모두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오늘은 월요일인데 꼭 금요일 저녁같다. 문득 나의 친구 '룰라'가 그리워졌다. 적막하고 쓸쓸한 집에서 단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조용하니까 집중은 잘 되어서 그건 좋다.
2023.08.29. 화요일 [하루 종일 비]
오늘은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린다. 장대비는 아니고 푸슬푸슬 내리는 비다. 그래도 가랑비에 옷젖는다고 우산이 필요한 정도다. 나는 새로 산 판초우비를 장착해 보았다. 가방까지 덮을 수 있어서 당분간 이걸 이용해야겠다.
문법 시간에 어제 본 시험을 채점했다. 45문제 중에서 7문제나 틀렸다. 윽, 생각보다 많이 틀렸다. 내 친구 '루시'는 자랑스럽게도 딱 2문제 틀렸다. '스튜어트'가 역사적으로 높은 점수라며 '루시'에게 다음 달에는 레벨 up을 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아직 3달이 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 점수면 레벨 up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와 '루시'는 시험 점수에 따라 레벨 up이 결정되는 줄 알았는데 3달의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결정되나 보다. 예외적으로 점수가 높은 학생에게 그 전에 레벨 up의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스튜어트'는 아직 우리 클래스에서는 배울 내용이 남아 있으므로 그녀가 원하면 여기에 남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시험 성적이 높으므로 지금 레벨 up하여 새로운 교재로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루시'는 다음 달 중순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옮겨갈 경우 새로운 교실에서 보름 정도 공부하다가 귀국하게 된다. '스튜어트'는 '루시'에게 오늘 생각해보고 내일 결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루시'와 헤어지기는 싫지만 레벨을 올리는게 그녀에게는 더 좋은 경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니까 그녀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단다. 다만 '스튜어트'가 참 좋은 교사이고 베프인 내가 이 교실에 있어서 떠나기가 망설여진단다.
듣기 시간에는 오늘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토론활동을 했다. '아민'이 딱 두 번 내용을 들려주었는데 대화가 아닌 스토리이고 내용이 제법 길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했다. 처음 들었을 때 전체적인 윤곽이 파악되었다. 주인공이 내기에서 이겨서 돈을 땄지만 결국 과속 딱지를 받아서 고스란히 이긴 돈을 벌금으로 낸다는 그런 내용인 것 같다. 다시 듣고 보니 몇 가지 놓친 내용이 있었다. 주인공은 복권을 계속 샀지만 당첨되지 않았는데 오늘 당첨되었다. 그걸 가지고 경마장에 놀러갔다가 잃어버렸다. 여자친구의 비상금으로 경마에 내기를 걸었는데 이겨서 돈을 땄다. 신나서 집에 오다가 과속 딱지를 받아서 딴 돈을 고스란히 벌금으로 날렸다. 이런 내용이었다. 이제 제법 듣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이걸 빈칸 메꾸기로 할 때는 다시 헤매었다. 디테일을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
읽기와 쓰기 시간에는 시험을 보았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아예 모르는 것이면 포기하고 찍을텐데 아는 문제들이라서 포기할 수가 없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서 문제를 겨우겨우 다 풀 수 있었다. 에구구, 너무 집중했더니 머리가 아프다.
점심 시간, '코즈에'가 오늘 홈스테이에서 갑자기 뭔일이 생겨서 도시락을 싸주지 않았단다. 그래서 가까운 카페에 가서 먹을 거리를 사오겠다고 하는데 밖에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나는 마침 샌드위치 도시락을 두 개 만들어 왔다. 하나는 점심에 먹고 하나는 도서관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배가 너무 고파서 꼬로록 소리가 계속 나서 준비해 보았다. 나는 샌드위치를 함께 나눠 먹자고 했다. 비가 오는데 밖에 나갔다가 오려면 너무 번거롭고 시간도 부족하다. 오늘 샌드위치를 두 개 만들어 온 것은 어쩌면 이럴 운명이 아니었을까? 우연의 일치로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회화 수업 시간에 새로운 주제가 시작되었다. 가을이다. '캐서린'은 가을이 싫단다. 밴쿠버는 가을에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단다. 오죽하면 가을 밴쿠버의 별명이 '레이니쿠버'겠는가? 나도 비오는 건 싫다. 가을에 관련된 단어를 고르는데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추수감사절, 추위, 칠면조, 할로윈, 폭풍 등이 제시되었다. 나는 가을에 과일이 많이 나오는 우리나라를 생각해서 과일을 제시했는데 신선한 과일은 여름에 어울리는 단어란다. 주로 베리류가 여름에 많이 나온단다. 그래서 마켓에 베리류가 그렇게 많았던 것이구나. 나라마다 가을에 대한 단어나 표현이 다른 점도 있었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 대체로 가을에는 하늘이 맑고 깨끗해지고 책을 읽기 좋단다. 정말? 가을이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일까? 놀러다니기 좋은 계절이 아니고?
오늘 extra 수업은 취소되었다. '마리아나'가 아프단다. 그래서 어제부터 결근했단다. 내가 좋아하는 '마리아나' 선생님이 아프다니까 슬프다. 그녀가 건강을 회복해서 얼른 돌아왔으면 좋겠다.
도서관으로 가면서 새로 친해진 브라질 학생과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여름 옷만 가져와서 옷을 추가로 사야 한단다. 그래서 내가 메트로타운의 옷가게가 아주 싸다고 소개해주었다. 벌써 2달 넘게 이곳에서 살다보니까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법 많이 알고 있다. 알게 모르게 새로 온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다. 나의 초기에 내 주변의 친절한 친구들이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처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영어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서 더 좋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많이 왔다. 아까 오전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점점 빗줄기가 굵어졌다. 집에 올 때는 폭우가 쏟아졌다. 판초 우비를 입고 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가방이 젖지 않았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니까 하늘도 어둡고 기분도 우울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공부만 하니까 더 우울한 거 같다. 안되겠다. 맥주 한잔으로 기분을 전환해야겠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대는 핑계다. 근데 비가 오니까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면 딱 좋겠다.
2023.08.31. 수요일 [돌고 도는 인생]
문법 수업 시작 전에 '루시'와 주말에 뭐할지 이야기하다가 '휘슬러'로 여행가기로 의기투합했다. '휘슬러'는 밴쿠버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아주 유명한 스키장이자 트래킹 명소이고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셔틀버스로 이동이 가능한 곳이고 거기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산 정상의 다리도 건널 수 있단다. 게다가 이번 주말은 다음 주 월요일 '노동자의 날'까지 이어지는 연휴다. 우리는 신나서 계획을 짜보기로 했다.
마침내 '루시'는 레벨 up을 하기로 했다. 모두들 '루시'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루시'가 떠나고 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내가 슬퍼보였는지 '스튜어트'가 다음 달에는 너도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준다. 위로는 고맙지만 내가 슬픈 것은 레벨 업이 문제가 아니라 베프가 떠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단원 진도를 시작했는데 또 망할 놈의 시제다. 게다가 난이도가 제법 높은 내용들이 쭈욱 펼쳐진다. 그나마 나는 요즘 '스튜어트'의 설명을 제법 따라가고 있어서 내용 파악은 잘 하고 있다. 하지만 교재에서 벗어나 무언가 빠르게 말할 때는 많은 내용이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럴 때는 많이 속상하다. 더 잘 알아듣고 싶다. 연습문제를 풀고 학생들의 답을 확인하는데 어떤 문제에서 '스튜어트'는 나에게 길게 읽도록 시켰다. 주의깊게 듣더니 내가 문장을 끝낼 때 톤을 다운시키지 않고 이어서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단다. 문장의 끝을 알리기 위해 마침표 앞에서 톤을 좀더 다운시켜서 말하란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들의 발음이나 어조에 대해 충고를 해주었다. 실없는 농담을 많이 하지만 역시 '스튜어트'는 좋은 선생님이다.
듣기 수업이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에 학생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학생이 자신이 가수라고 했다. 나이가 좀 있는 브라질 사람인데 변호사이면서 동시에 아마추어 가수로 활동하고 있단다. 자신의 페북과 유튜브를 보여주었는데 정말이다. 여기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고 경력이나 취미도 다양하다. 사람들은 정말 재밌게 살고 있구나.
오늘은 어제 읽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토의를 했다. 어제 읽었던 내용은 어떤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었지만 그 돈을 잃어버렸고 다시 경마를 해서 돈을 땄지만 이번에는 속도위반으로 벌금을 내서 결국 도로아무타불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아민'은 이 사람에게 행운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그룹 토의하도록 시켰다. 운이 없다, 운이 있다, 중간이다의 세 가지로 의견이 나뉘었다. '아민'은 여기서 한 단계 나가서 행운과 노력 중에 어느 것이 우리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단순히 본문을 확인하는 수준이 아니라 좀더 깊게 생각하고 우리 의견을 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어렵지만 재밌다.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노력이 80%, 운이 20%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도 동의한다. 운도 작용하지만 노력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만약 운이 대부분을 좌우한다면 내 노력은 맥이 빠질 것 같다.
쓰기와 읽기 시간에는 어제 본 시험지를 다시 받았다. 이번에는 그룹을 지어서 다함께 다시 문제를 풀어보란다. 서로 답이 다른 문제는 왜 그런지 토론해서 합의를 보란다. 각자 자신의 답을 설명하는 과정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어떤 문제를, 왜 실수했는지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캔디스'는 우리의 시험 점수도 알려주었다. 나는 40문제 중에서 3개를 틀렸다. 이 정도면 예상보다 많이 맞았다.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숙제를 하는데 너무 졸리다. 잠을 자도 자도 졸리고 밥을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공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나보다. 고3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정말 서울대를 가지 않았을까? 졸면서 숙제하고 있는데 '코즈에'가 와서 내일 방과 후에 '반두센 정원'에 가자고 한다. 이번 주에 대만으로 귀국하는 친구가 여기에 꼭 가보고 싶단다. 그녀는 꽃, 나무, 정원을 좋아하는데 특히 이곳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밴쿠버에 오기 전부터 가보고 싶었단다. 다만 여기가 입장료가 있는 공원이라 함께 갈 친구를 찾지 못했고 혼자 방문할 용기도 없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얘기를 듣고 '코즈에'가 나에게 함께 가자고 한 것이다. 나는 당연히 콜이다. 내가 놀러가는 것에 빠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때마침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홍콩 친구도 함께 가기로 했다. 신난다. 또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다.
오늘 회화수업은 합반 수업이다. 매월 마지막 수업의 이벤트 수업인데 빅 게임으로 진행한다. 오늘은 사물이나 동물, 과일 등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의 일부를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맞추는 게임을 했다. 우리 그룹은 일본친구, 대만친구, 나 이렇게 세 명인데 첫 번째 묶음을 제법 잘 맞추었으나 두 번째 묶음부터는 난이도가 높아서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우리의 회화 교사 '캐서린'이 와서 넌지시 힌트를 준다. 역시 우리 '캐서린'은 착하다.
오늘은 '마리아나'가 돌아와서 extra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직도 아파보이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수업을 해 주었다. 미래 시제에 대해 설명해주고 연습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배운 내용을 활용해서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연습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마리아나'에게 아프다고 해서 걱정했다고 말했더니 고맙단다. 진심으로 그녀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extra 수업이 끝난 후 새로 사귄 한국 친구 '은남'과 함께 공부를 했다. 그녀와 나는 오늘 MeetUp의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함께 가기로 했다. 내가 꼬신 것이다. '은남'이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싸와서 고맙게 받아 먹었다. 어제는 내가 만든 샌드위치를 다른 친구에게 주고 오늘은 내가 다른 친구의 샌드위치를 받아 먹는다. 세상만사 돌고 돈다. 이런게 인생이지 않을까?
오늘도 언어교환 모임에 사람이 많이 왔다. 한국 사람도 많고 외국 사람도 많다. 대부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열심히 영어로 대화했다. 하지만 한 그룹에서는 좀 뻘쭘해지기도 했다. 그 그룹에 배정받은 사람들이 약속이 있다고 하나 둘 자리를 떠나서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다행히 옆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들이 합류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매우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참여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다음부터는 그들과 같은 그룹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좋은 그룹에 배정받았다. 좀 빠르게 대화가 진행될 때는 맥락을 놓쳤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알아듣고 있다. 특히 농담을 알아듣고 같은 타이밍에 웃을 수 있었다. 이게 중요하다. 남들 웃을 때 못 웃으면 참 슬프다. 오늘 처음 참석한 '은남'도 어떤 사람들과 대화는 좋았지만 어떤 사람들과의 대화는 별로였단다. 그래. 이런 저런 사람들이 모이니까 다 좋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었단다. 다행이다. 나는 확실히 처음보다 나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런 모임을 좀더 늘려야겠다. MeetUp을 더 검색해봐야겠다.
2023.08.31. 목요일 [과학 전람회와 정원 산책]
요즘 아침 등교길에 '캐나다라디오'라는 어플을 이용해서 뉴스를 듣고 있다. 듣기 교사 '윌'이 뉴스를 매일 듣는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 열심히 실천 중이다. 아침에는 주로 날씨, 교통 정보를 말하기 때문에 계속 듣다보면 단어나 패턴이 익숙해질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소음으로 들리는 수준이다. 아주아주 가끔 지명이나 교통정체 정도만 알아듣는다. 점차 나아지겠지?
문법 수업은 시제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있다. 두 가지 시제의 혼용 문장이라는 절벽이 떡 버티고 있다. '루시'와 나는 여러 문제를 동시에 틀리고 있다. 확실히 난이도가 높아지니까 우리 둘 다 맥을 못춘다. '루시'가 이대로 자신이 레벨 업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면서 한두 시간 들어보고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단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너는 나의 자랑스러운 친구다. 거기서 이겨내.'라고 했더니 알겠단다. '루시'는 승부근성이 있어서 아마 거기서도 잘 해낼 것이다.
듣기 시간에 새로운 방식으로 단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나의 단어에 다양한 표현이 함께 사용되면서 여러 의미로 변형되는 것을 익혔다. 그리고 OZDIC이라는 새로운 사전도 소개받았는데 아주 유용할 것 같다. 이 사전에서는 어떤 단어에 함께 딸려서 사용되는 표현을 쭈욱 보여준다. 가령 decision이라는 말을 검색하면 take a decision, arrive at decision, come to decision 등이 예시문과 함께 제시된다. '아민'은 이 사전이 특히 작문을 할 때 아주 유용하다고 알려주었다. 역시 '아민'은 학생들에게 딱 필요한 정보를 잘 제공해준다.
점심 밥을 먹고 얼른 밖으로 나가서 내일 떠날 친구들의 선물로 작은 공책을 샀다. 그리고 잽싸게 근처의 몰에 가서 겉옷을 하나 샀다. 오늘 이렇게까지 추울 줄 모르고 반팔에 가벼운 겉옷을 입고 왔는데 너무 추워서 안되겠다. 이따가 친구들과 공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오늘 감기에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체력관리에 좀더 신경써야 한다. 여기서 아프면 큰일이다.
회화 수업에 들어가보니까 뭔가 어수선하다. 오늘은 이 근처의 단과대학에서 진행하는 과학 전람회에 가는 야외활동을 한단다. 거기서 각 부스의 실험 시연을 지켜보고 질문하는 활동을 하란다. 질문들이 적힌 종이를 하나씩 받았다. 왜 이 실험을 선택했는지, 어떤 이론 배경을 가진 실험인지, 이 실험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질문하란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어쨌든 다들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교사를 따라 나섰다.
5분 정도 떨어진 건물에 들어가보니 고등학생 혹은 대학교 신입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주로 아시아계)이 과학 실험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여러 개의 실험부스가 있다. 그들로서는 실험에 대해 진행하고 영어로 설명하는 훈련이 되고 우리에게는 영어를 듣고 말하는 훈련이 되어서 함께 협업하는 것인가 보다. 우리 교실 외에도 여러 교실의 학생들이 여기에 와 있다. 실험은 단순한 것들이지만 다들 영어를 겁나 잘한다. 농담도 곁들여가면서 말하는 학생도 있다. 부럽다. 어떤 학생은 좀 서투르고 어떤 학생은 아주 능수능란하다. 여기에도 실력에 차이가 있구나. 실험에 참여도 하고 질문도 했다. 어떤 대답은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떤 대답은 뭔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재밌었다.
야외활동이 끝나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extra 수업까지 알차게 들었다. 오늘은 영화 장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좋아하는 장르, 최근에 본 영화, 좋아하는 배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에는 팀을 나누어서 영화배우 이름 많이 써보기 경쟁도 했다. 우리 팀이 이겼다. 우리 팀에는 영화광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역시 이기는 것은 기분이 좋다.
모든 수업이 끝난 후 학원 앞에서 친구들과 만나 '반두센 정원'으로 향했다. 여기에 함께 오기를 잘 한 것 같다. 대만 친구가 굉장히 행복해한다. 친구가 행복해 하니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 정원은 제법 규모도 크고 연못도 여러 군데 있고 미로정원도 있어서 볼만한 구석이 많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공원이었다. 특히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본 풍경이 정말 근사했다. 우리는 미로 정원도 통과해보고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으면서 신나게 돌아 다녔다.
한참 돌아다니고 나서 저녁도 함께 먹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서 근처의 식당을 찾아갔는데 사실 여기는 유대 음식점이라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음식들이다. 처음 보는 메뉴들이지만 구글맵에 소개된 사진을 활용해서 음식을 주문했다. 다들 매우 만족하면서 먹었다. 빵과 고기도 맛있었고 오이, 토마토 등의 야채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아주 좋았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대만 친구와 일본 친구에게 공책을 선물로 주었다. 내일은 오후 수업이 없어서 아마도 작별 인사를 따로 나누지 못할 것 같았다. 다들 잘 가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집에 와서는 부지런히 내일 있을 아마존 발표 연습을 했다. 발표 자료는 이미 만들어 두었지만 말하기 연습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주말에 발표 자료를 만들 때 생각했던 단어들을 그 사이에 다 까먹었다. 역시 나의 뇌모리는 용량이 부족하다. 내일 어쩌지?
2023.09.01. 금요일 [가지 않은 길]
9월의 첫날이다. 이곳에 온지 벌써 2달이 훌쩍 넘었다.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다는데 내 느낌에는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 같다.
문법 시간에 어제 배운 단원의 리뷰 문제를 풀고 나서 나의 아마존 여행 발표를 했다. 지난 번 불꽃놀이 발표는 영상이 있어서 좀 때울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설명을 많이 해야했다. 여행 과정이나 신기한 동물에 대해 소개를 해야 해서 아는 단어, 모르는 단어를 총 동원했다. 특히 거대 거미, 앵무새, 악어 등에 대해서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는 다들 신기해 하면서 자꾸 질문을 해서 아주 진땀을 뺐다. 질문 좀 하지 말라고. 그런데 내가 손짓과 몸짓까지 동원해서 더듬더듬 말하면 '스튜어트'가 중간중간 문장으로 다듬어 주었다. 덕분에 완성된 문장으로 정리해서 다시 말할 수 있었다. 땡큐! 스튜어트!
이제 '루시'는 레벨 up을 하고 몇 명 학생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문법 수업이 학원 공부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데 앞으로 어떤 분위기가 될지 걱정이다. '스튜어트'는 학원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다음 달에는 자기가 회의가 많아서 아마 보강교사가 자주 들어올거란다. 안돼! 나는 정말 다음 달이 걱정이다.
듣기 수업은 그동안 배운 단어를 총 복습했다. 여러번 반복하게 해서 제법 익숙해진 단어들이 많다. 단어 복습을 하면서 실제 문장에 활용하는 연습도 곁들여했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음 주에는 이 수업의 담당교사인 '윌'이 돌아오기 때문에 '아민'의 마지막 수업이다. 자신은 보강교사로 계속 활동할 것인데 어디에 언제 보강 들어갈지는 모른단다. 기왕이면 '아민'이 '스튜어트'의 수업에 보강교사로 들어오면 좋겠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 배웠던 단어를 좀더 학습하고 나서 새로운 내용을 읽었다. 동물이 등장하는 광고에 대한 내용인데 재밌었다. 수업이 끝나고 '캔디스'는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수료증을 주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한달의 성적표를 주었다. 그리고 레벨 up이 된 학생들은 잊지 말고 새로운 스케쥴을 확인하란다. 나는 당연히 레벨 조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 나는 이번달 쓰기 시험을 안봐서 안될 줄 알았는데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 레벨 up이 되어 있다. 다들 좋겠다고 부러워하는데 나는 좀 얼떨떨하다. '캔디스'에게 물어보니까 시험을 잘 봐서 그렇단다. 쓰기 시험은 안보았다니까 '지난달에도 너는 쓰기 성적이 좋았어.'라고 말한다. 친구들, '캔디스'와 함께 작별 사진을 찍었다. '캔디스'도 이제 이 학원을 떠나고 나도 이 교실을 떠난다. 다들 서로서로 잘 지내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또 새로운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기대해보자.
오늘은 8월의 마지막 금요일이라 오후 수업이 없다. 대신 특별 보충 수업이 있는데 미리 신청해야 한단다. 윽, 내가 그걸 놓쳤구나. 안내문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이다. 다음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도시락을 싸온게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루시'는 내가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 레벨 up을 했다는 소식을 친구들로부터 전해 들었단다.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루시'와 나는 내일부터 2박3일간 휘슬러로 여행을 간다. 우리는 신나게 여행 계획을 점검했다.
친구들은 특별 보충 수업에 들어가고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 배운 내용 복습을 하고 오랜 만에 시를 읽었다. 오늘의 시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고등학교 때 이 시를 번역본으로 읽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그 용기에 반해서 시 구절을 외우고 다니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니까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 나도 굳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있을지, 어떤 만남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즐겁게 그 길을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