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을 돌며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by 바람

나의 베프 '루시'와 함께 9월2일 토요일부터 9월4일 월요일까지 2박3일간 '휘슬러' 여행을 다녀왔다. 스키장이 아니라 스키산맥이라고 할만큼 큰 '휘슬러'의 여러 봉우리를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산 꼭대기에 놓인 아슬아슬한 다리도 건너보고 계곡따라 하이킹도 하고 맛집에도 갔다. 경치도 아름답고 하이킹도 좋았지만 나는 '루시'와의 대화가 가장 좋았다. 우리는 정말 끝없이 수다를 떨었는데 어린시절 얘기부터 사춘기의 반항 사건, 첫사랑, 직장생활, 장래계획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영어로 이렇게까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루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려운 표현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함께 검색했고 문법적으로 이렇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를 의논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동안 함께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행하면서 우리는 정말 죽이 잘 맞았다. 우리는 이 여행의 이름을 '퍼펙트 휘슬러'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행지부터 날씨, 음식, 친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2023.09.05. 화요일 [나의 꿈은?]

공부를 함께 시작했던 친구들이 다 떠나고 이제 나만 홀로 남은 문법 수업. 그러나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오고 또 이들과 친해지고 있다. 인생이란게 이런 거지. 그렇게 계속 흘러가는 것이다. 시간도 흘러가고 친구들도 흘러간다. 나도 흘러간다. '스튜어트'는 이번 달의 수업 진도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분량이 좀 많은데? 몇몇 단원은 문법이라기 보다는 어휘 공부에 가깝단다. 25일에는 레벨 테스트가 있단다. 오예!

듣기 수업 교사 '윌'이 한달 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지난 달의 신입생들은 '윌'을 처음 본다. '윌'은 새로운 학생들의 이름과 국적을 파악했다. 모든 학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후에 자기에게 물어볼 것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란다. 이 말은 '윌'이 늘 수업 시작할 때 하는 말이다. 캐나다 문화나 뭔가 이상한 것, 미친 짓 같은 것, 신기한 것이 있으면 물어 보란다. 다들 조용하길래 나는 '너의 휴가는 어땠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번 휴가는 집안에 상을 당해서 좀 힘들었는데 이번 휴가는 편하고 좋았단다. 뭔가 길게 얘기했는데 내가 알아 들은 것은 이 정도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너의 별장(캐빈)은 아직 무사하냐'고 물었다. 저번에 산불이 크게 나서 '윌'은 자기 별장을 지키러 간 적이 있었다. 아직은 무사하지만 어서 우기가 시작되어야 안전해진단다. 지금도 산불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옐로나이프(오로라를 보는 지역)가 최근 심각하단다. 이번 겨울에 내가 가기 전까지는 나아지겠지?

읽기와 쓰기 수업은 레벨 up을 해서 새로운 교실로 간다. 낯선 교실, 낯선 학생들, 낯선 교사, 모든 것이 낯설다. 교실도 2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서 모든 수업이 3층에서만 이루어졌는데 귀찮게 되었다. 어쨌든 적응해야지. 교사는 새로온 학생들이 있으므로 서로 이름과 국적을 소개하도록 시켰다. 다행히 다른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이 몇 명 있다. 교사 '앤'은 매우 친절해 보이는데 영어가 너무나 빠르다. 영국인이란다.

새롭게 시작하는 읽기 단원은 직업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직업은 무엇인지, 5년 전과 달라진 목표가 있는지 등에 대해 그룹을 지어서 대화하도록 했다. 나는 이 나이에 꿈꾸는 직업을 뭐라고 말하랴 싶어서 그냥 어린 시절 나의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고 그 꿈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럴 때는 나이든 사람인 것이 티가 난다. 하지만 뭐 어때? 사실 지금 나의 꿈은 여행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걸 직업이라고 해야 할지 좀 애매하다. 그냥 여행작가라고 할껄 그랬나? 아니면 나의 꿈은 무협소설을 쓰는 것?

함께 점심을 먹던 친구들이 지난 주에 많이 떠났다. '루시'를 비롯한 '린 캐년 탐험대' 친구들이 몇 명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 친구들 중에서 3명은 나와 같은 빌딩, 같은 층에 산다. 2명은 대만 자매들이고 1명은 한국 학생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몰랐나보다. 기숙사 1층에서 대만 자매들과 마주쳤을 때 그들은 매우 놀라면서 나에게 몇 호실이냐고 묻고는 놀러오겠단다. 그러라고 했다. 그들은 린 캐년에 갔을 때 먹었던 나의 주먹밥이 그립다면서 또 먹고 싶단다. 저번에 학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런 말을 했다. 해줄께라고 했더니 아주 신나서 언제 해줄거냐고 묻는다. 내일 해줄께. 다들 허걱하고 놀란다. 안그래도 나의 베프 '루시'가 떠나기 전에 한번 더 해주고 싶었다. 다들 너무 신나한다. 친구들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다.

회화 수업의 주제는 직업이다. 읽기 수업의 주제와 겹친다. 여기 수업들은 서로 연계성을 가진다. 교육과정을 일부러 그렇게 짠 것 같다. 덕분에 단어들을 여러번 학습해서 익숙해질 수 있다. 파트너와 함께 영어로 아는 직업을 최대한 찾아보란다. 의외로 여러 직업들이 나왔다. 오늘 파트너가 된 학생은 브라질 사람이다.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는데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사업을 하고 있어서 경영학을 공부한단다. 하지만 자기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더 좋단다. 네가 좋아하는 것을 전공하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영어로 표현하기가 좀 어렵다. 어떻게 표현할지 미리 생각해서 다음에 꼭 말해주어야지.

오늘은 extra 수업에 새로운 학생들이 세 명이나 왔다. 지난 주에 친구들 대부분이 떠나서 어쩌면 보충 수업에 나 혼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오늘의 주제는 헤어 스타일이다. 여러 질문이 있는 바구니에서 무작위로 골라서 대답하는 활동을 했다. 내가 첫번째 고른 질문은 '100년 후에는 사람들의 헤어 스타일이 어떻게 변했을까?'이다. 꼭 골라도 어려운 것을 선택하는 똥손이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미래에 사람들이 대머리이고 이상한 슈트를 입고 있으니까 어쩌면 다들 대머리가 아닐까라는 내용으로 횡설수설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미용실에 가냐', '지금 머리가 마음에 드냐' 이런 질문들을 선택했다. 중년의 브라질 학생은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약 30년간 머리 스타일이 똑같단다. 그는 아주아주 짧은 커트(일명 반삭)인데 3주에 한번씩 머리를 깎는단다. 참 개성있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도서관에 가서 숙제를 하고 복습도 했다. 숙제가 많아서 한참 걸렸다. 그리고 문법 복습도 꼼꼼하게 했다. 이번달 레벨 테스트를 잘 봐서 up해야지.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주먹밥 재료를 샀다. '루시'가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채소들만으로 맛을 내야 한다. 이번에는 특별히 꼬들꼬들한 단무지를 쫑쫑 썰어넣기로 했다. 이게 들어가면 은근히 맛있다. 집에 오자마자 냄비 밥부터 하고 재료들을 다듬고 한바탕 요리를 했다. 요리는 늘 즐겁다. 다만 설겆이는 싫다. 뭐든 좋은 부분이 있으면 싫은 부분도 있다. 그게 삶이지.


2023.09.06. 수요일 [맥락과 눈치]

문법 수업에 새로운 일본 학생이 합류했다. 그녀는 빅토리아의 SSLC에서 공부하다가 이쪽으로 옮겨왔단다. 지난 주까지 여기서 공부하다가 빅토리아로 옮겨간 '코즈에'가 생각났다. '코즈에'와는 인스타그램에서 안부를 주고 받고 있다. 문법은 어제에 이어서 명사와 수량표현을 배웠다. 이것이 쉬운 듯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이다. 단어의 의미 외에 여러가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질 때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 경우에는 주변 맥락을 통해 의미를 추측해야 한다. 이래서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눈치가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여기 와서 두 가지 스킬이 늘고 있다. '몸으로 말하기'와 '눈치'다. 영어가 딸리니까 자꾸 손짓,발짓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한두 단어를 통해 전체를 파악하게 된다. 좋은 건가?

듣기 수업은 오늘도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듣기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문제지에 주어진 정보를 활용해서 추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송이 나오기 전에 문제들을 먼저 읽어보고 어떤 내용이 나올지 미리 예측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도 눈치가 필요하다. 오늘은 맥락과 눈치의 날인가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 숙제로 해온 단어의 의미를 함께 확인하고 각자 자신의 문장을 발표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강제로 순서대로 발표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문장을 친구들과 공유해보자는 취지로 진행을 한다. 그러다 보니까 침묵이 흐를 때가 많았다. 역시 어딜 가나 학생들은 발표를 싫어한다. 나는 침묵이 불편해서 본의 아니게 자꾸 먼저 말하게 되었다. 너무 나대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단어를 공부한 후 본문을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하란다. 그런데 나는 어제 단어공부하면서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본문을 다 읽어버렸다. 교사는 내용 확인 후에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아이디어를 짜오란다. 본문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금 28살인 메튜는 아침부터 보드카를 마시려고 한다. 그는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했던 극장의 스낵바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다. 그는 졸업하면서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 대학원은 가기 싫었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접근하기 쉽고 일하기 쉬운, 이 아르바이트에 안주해버렸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서 패배감에 쩔어있다. 그런데 3달 뒤에 고등학교 동창회가 있다. 그가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동창회에 갈 수 있을까? 이런 내용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한담?. 뭔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주먹밥을 나눠 먹었다. 처음 본 한국 친구들도 합류했는데 한국의 집밥이 그리웠다면서 좋아한다. 타지에 나와서 집밥이 그리웠다니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데 정작 주먹밥을 먹고 싶어 하던 대만 자매들은 오늘 어디론가 가고 없다. 어쩔 수 없지. '루시'가 너무 좋아하면서 아무래도 자기는 이 요리의 레시피를 배워야겠단다. 그러기 위해 나의 집에 방문하겠단다. 나는 친구가 원한다면 언제든 좋다. 일본 친구는 주먹밥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도 되냐고 묻는다. 지난번 린 캐년에서는 함께 간 브라질 친구의 유튜브에 주먹밥 영상이 올라갔다. 은근히 자부심이 느껴진다. 역시 음식도 K-food가 대세다.

오늘 extra 수업은 우연하게도 명사와 수량표현이다. 지금 문법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이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마리아나'의 배려일까?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특히 내가 그동안 혼동했던 것도 자세히 확인했다. 역시 이 수업은 너무 유익하고 '마리아나'는 너무 좋다.

오늘은 '밴쿠버 한영언어교환' 모임이 있는 날이다. 모임이 있는 카페에 가보니까 여전히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익숙해진 사람들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학원 친구를 만났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오늘 여기 처음 온단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인상적인 사람은 캐나다 사람인데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나(우리)의 마음을 잘 파악해서 말할 기회도 주고 들을 기회도 주었다. 이 사람과 같은 그룹이 자주 되면 좋겠다. 내가 잘 모르는 내용으로 대화가 한참 이어질 때도 있었는데 엄청 신경을 곤두 세워서 들어야했다. 대화의 소재는 무엇인지 알겠지만 각자의 세부적인 의견은 파악하지 못했다. 나의 눈칫빨이 가지는 한계다. 오늘도 순식간에 2시간이 지나고 에너지가 바닥을 보였다. 에고고. 힘들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2023.09.07. 목요일 [반환점을 돌며]

문법 시간에는 늘 틀리던 문제 유형에서 계속 틀리고 있다. 뭐가 문제지? 잘못된 표현을 찾아서 고치는 문제인데 어디가 잘못된 부분인지를 못찾고 있다. 이 문제를 풀려면 문단 전체의 이해는 물론 세부적인 문법 특성까지 파악해야 한다. 특히 이번 단원은 슈퍼 디테일이 필요한 내용이라서 더더욱 어렵다. 새로 파트너가 된 일본 학생과 함께 풀어보는데 둘다 엄청 헤매었다. '스튜어트'가 불러주는 답을 받아적으면서 한숨이 푹푹 나온다. 나처럼 덜렁대는 사람에게는 디테일을 확인하는 것이 참 힘들다.

듣기 수업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방송을 듣고 나서 우리가 직접 문제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내가 예전에 수업할 때 즐겨쓰던 방법이다.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만들어보는 것은 아주 좋은 읽기 수업 방식이다.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듣기 수업인데? 보통 방송을 한두번만 들려주는데 이번에는 5번이나 들려주었다. 디테일까지 파악하라는 것이다. 오늘은 디테일의 날인가 보다. 내용은 주말에 potluck party(참여자들이 각자 음식을 만들어 오는 모임)가 있는 친구에게 메뉴와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이다. 레시피를 듣다 보니까 배가 고프다. 요즘 내 뱃속에는 거지가 들어앉아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많았지만 영어가 짧아서 문제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파트너와 함께 신중을 기해서 레시피의 순서, 양념 몇 스푼 문제를 만들었다. 좋게 말하면 디테일한 문제이고 나쁘게 말하면 엄청 쪼잔한 문제다. 세심함과 쪼잔함은 한끝 차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본문 이어쓰기를 위한 아이디어 토의가 있었다. 과연 28살의, 정체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메튜는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달이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서로 이야기 나눈 후에 각자 자신의 이어쓰기 내용을 써서 제출하란다. 교사가 분석해서 내일 상을 주겠단다. 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문장이 되는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나는 이 대책없는 젊은이 메튜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마지막에 영화 기자가 된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재밌게 쓰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영어 실력은 그다지 좋지가 않다. 그냥 막장 드라마로 몰고 갈 걸 그랬나? 알고 보니 출생의 비밀 이런거?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것저것 수다를 떨고 있는데 두 명의 직원이 와서 즉석 이벤트로 퀴즈를 진행했다. 초콜렉 박스를 상품으로 걸었다.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 따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고 커다란 화이트 보드에 그림을 그려서 그룹별로 맞추도록 했다. 그림을 그리는 학생은 서로 돌아가면서 하도록 했다. 만약 그 학생이 단어를 모르면 다른 단어로 교체했다. 단어는 비교적 간단했지만 서로 문화가 다르다보니까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달라서 재밌었다. 제일 재밌던 그림은 어떤 학생이 너무 당황해서 말을 그린다는게 다리를 다섯개 이상 그린 것이었다. 다들 재밌게 한바탕 즐기면서 게임이 진행되었다. 우리 팀이 이겨서 함께 초콜렛을 나누어 먹었다. 앞으로 한동안 점심시간에 이런 이벤트가 진행된단다. 여름의 빅시즌이 끝나고 나서 학원에서 제공하는 가을 이벤트란다. '루시'를 비롯한 우리 친구들은 내일도 게임에서 이기겠다고 다짐을 한다. 다들 적극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친구들이다. 앞으로 점심시간이 제법 기대된다.

오늘 extra 수업 주제는 coffee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보충수업에 합류한 초기의 주제와 겹친다. 아무래도 오래 다니다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이곳에 다닌지 10주가 되어간다. 그 말은 20주의 전체 일정 중에서 절반을 지났다는 얘기다. 이번 어학연수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이제 절반 밖에 안 남았다고?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생긴다. 아직 영어실력은 갈 길이 멀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지 좀 고민해봐야겠다.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고 나서 읽기 수업의 단어 공부를 했다. 아무리 해도 친숙해지지 않는 단어는 작문을 하면서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쉽지는 않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서 계절의 변화를 다시 한번 느꼈다. 해가 일찍 지기 시작했다. 여기 처음 왔을 때는 해가 저녁 10시쯤 졌는데 이제는 8시가 지나면 어두워진다. 앞으로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시내 한복판은 해가 져도 비교적 안전하다지만 그래도 어두워지면 좀 무서울 것 같다. 어제 언어교환 모임에서 만난 캐나다 사람이 말했다. 우기가 시작되면 우울해지는 밴쿠버 생활을 위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날씨가 좋으면 당연히 야외활동을 하고 비가 오면 실내에서 놀거리를 찾아야 한단다. 새로운 활력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모임? 새로운 게임? 실내 놀거리를 더 찾아보자.


2023.09.08. 금요일 [등잔 밑이 어둡다.]

문법 시간에 그동안 배운 내용에 대한 리뷰 테스트를 간단히 보았다. 간단히? 아니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시험은 그냥 시험이다. 세상에 쉬운 시험은 없다. 영어 원어민에게는 익숙해서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같은 외국어 사용자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많이 읽고 쓰고 말하고 들어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면서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정관사, 부정관사는 간단한 것 같은데 자꾸 헛갈린다.

듣기 수업은 '윌'이 깜짝 테스트가 있다고 교재를 덮으라고 한다. 다들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제 이 수업의 살아있는 화석(가장 오래된 학생)이 된 나는 짐작이 된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이번에도 팝송을 들으면서 빈칸 메꾸기 활동을 하겠구나. 역시 예상대로다. 오늘 들은 팝송은 Maroon 5라는 그룹의 Sugar라는 노래다. 어디선가 한번 쯤은 들어본 노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친구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즐겁게 빈칸 메꾸기를 한다. 오늘도 신나게 노래를 듣고 빈칸 메꾸고 다시 노래를 들으며 즐겁게 수업이 끝났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 우리가 제출한 이어쓰기에 대한 피드백을 빨간펜으로 메모해서 돌려주었다. 대체로 자잘한 실수들을 많이 했다. '앤'은 쓰기에 대해 꼼꼼하게 피드백을 해주는 것 같다. 아주 마음에 든다. 학생들의 이야기 중에 상을 받은 것은 메튜가 유튜버가 되어 영화관과 영화이야기를 올려서 성공한다는 이야기였다. 역시 요즘 젊은이다운 발상이다. 오늘은 단어 게임도 했는데 학생들이 직접 단어 카드를 만들어서 그걸 게임에 활용하였다. 그런데 유명인을 쓰는 단어카드에 자기 나라 연예인을 쓴 학생들이 많았다. 이럴 때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을 써야하지 않겠니? 결국 '앤'은 유명인 단어카드를 빼고 진행했다.

오늘도 학생 라운지에서는 점심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레고 게임이다. 팀별로 레고를 가지고 최대한 그림에 나온 집처럼 만들란다. 그런데 레고 박스에 들어있는 레고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까 나는 낯선 학생들과 한 팀이 되어 참여했다. 우리는 1층, 2층, 3층까지 만들어서 나름 잘 표현했다. 지지대를 만들어서 층을 올리고 거실이나 부엌 등을 표현했다. 나중에 보니까 다른 팀들은 층을 올리지 않고 그냥 평면에 늘어 놓았다. 에이, 그러면 재미가 없지. 그런데 정작 점수를 주는 심판은 가구의 디테일을 살린 다른 팀의 손을 들어 주었다. 게임을 진행한 다른 직원조차도 우리 팀의 구조를 보라면서 결과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게 다 심판 마음이다. 어차피 재미삼아 하는 거니까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초면에 한 팀이 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회화 수업에서는 직업에 대한 단어를 또 복습했다. 이제는 모르는 단어가 없을 것 같았는데 문장에서는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역시 단어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단어 공부 후에는 주사위를 던져서 걸린 칸의 질문을 하는 게임을 했다. 재밌는 질문이 나왔는데 '취업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직업을 선택했냐'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일본 학생은 '여기서 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냐'는 질문이 실제로 많이 나온단다. 그런데 대만 학생은 '연봉 얼마를 원하냐'는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온단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밖에 결혼할 거냐, 결혼하면 애를 가질거냐도 물어본단다. 그런 것을 물어본다고? 하긴 요즘 우리나라도 결혼, 육아 등에 대해 아예 대놓고 물어보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이러니 점점 출산율이 낮아지지. 이런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가보다. 결혼, 출산, 육아 등이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고 그로 인해 불이익이 없어야 하는데 사회는 점점 거꾸로 가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도서관으로 가서 숙제와 복습을 했다. 문법 복습을 하고 나서 시를 한편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콧물이 계속 나더니 기침도 난다. 요며칠 날씨가 춥고 거기에다가 학원에서는 에어컨을 너무 쎄게 틀어서 오돌오돌 떨었다. 여름이 지났어도 덥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학원은 항상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다. 아무래도 감기 초기 증상인 듯해서 집에 가서 쉬기로 했다. 열이 있거나 몸살 증상은 없으니까 집에 가서 쉬면 괜찮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이 있으니까 선제적으로 약을 먹고 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학원 친구들을 만났다. 대만 자매들이다. 그들은 기숙사 근처의 카페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뭐하냐고 물었더니 여기 카페에서 MeetUp의 영어회화 모임이 있는데 처음 참석하는 거라서 망설이고 있단다. 뭐? 우리집 바로 근처에서 영어회화 모임이 있다고? 얼른 어플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까 정말 있다. 캐나다 사람이 주최하는 영어회화 모임이다. 이런 황금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몸 상태가 안좋지만 집 근처에서 하는 영어회화 모임을 놓칠 수는 없다. 나도 신청할께. 같이 가자. 그 자리에서 바로 신청하고 친구들과 함께 들어갔다.

카페에 들어가 보니까 사람들이 우선 줄을 서서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를 받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중년의 캐나다 사람이 처음 왔냐고 묻는다. 자신은 이 모임을 주최하는 '마이클'이라고 소개했다. 여기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고 혹시 누군가 너를 불편하게 하면 즉시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처음 와보는 모임이라 긴장했는데 아주 점잖고 여유로운 '마이클'의 안내에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 테이블이나 앉아도 된다고 해서 커다란 테이블을 찾아가 앉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한국 사람들은 거의 안보이는 것 같다. 나는 캐나다 사람, 일본 사람, 인도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캐나다 사람은 중국에서 이민 와서 10여년째 여기서 살고 있으며 이 모임 주최자 중 한 사람란다. 인도 사람은 캐나다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단다. 일본 사람은 나처럼 영어 공부 중인 학생이다. 그런데 캐나다 사람과 인도 사람의 영어가 너무 빠르다. 나는 허걱하고 있는데 일본 학생이 좀 천전히 얘기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너무 빠른 영어다. 주최자가 가급적 천천히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쉽나? 대화가 신나게 흘러가면 점점 빨라진다. 머리가 띵해진다.

점점 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리 테이블의 사람들은 몇 개의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내 옆의 일본 학생은 지금 시내의 한인마트 푸트코트에서 일하고 있단다. 내가 거의 매일 간다니까 놀러오란다. 여기서 1년째 살고 있다는 대만 학생은 여기 세금이 높다면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할 경우의 세금에 대해 주변 친구들에게 알려준다. 터키 사람은 예전에 식당의 주방에서 일했는데 채식주의 메뉴가 제일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왜 채식을 하는지, 환경 문제가 어쩌고,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어쩌고 떠들었다. 나는 처음에는 화제를 따라잡느라 열심히 듣기만 했는데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토론에 참여했다. 물론 내 영어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의도는 전달되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떠들다보니까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카페에서 나갈 시간이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좀 들었다. 정말 폭풍같은 2시간이었다. 영어의 폭풍! 그러나 뿌듯한 폭풍이었다. 대화할 때는 몰랐는데 집으로 오니까 삭신이 쑤신다. 집에 오자마자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약을 먹고 전기장판을 켜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추위에 약해서 한국에서부터 전기장판을 챙겨왔다. 정말 잘 챙겨간 아이템 중 하나다. 오늘 비록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영어회화 모임은 정말 잘 참여한 것 같다. 집 근처에서 하는 모임인데 왜 여태 몰랐지? 정말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맞다. 앞으로 수요일 한영언어교환 모임, 금요일 영어회화 모임. 이렇게 두 모임은 정기적으로 참여해야겠다. 토요일 보드게임은 주최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서 고민 중이다. 월요일에 모임이 하나 더 있으면 딱 좋을 것 같다. 너무 욕심인가?


2023.09.09. 토요일 [인연]

오늘은 오후까지 집에서 뒹굴뒹굴했다. 어제의 감기 기운이 계속 되고 있다. 밥을 챙겨먹고 약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잤다. 내가 낮잠을 자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아픈게 확실하다. 자다가 깨서 또 밥을 챙겨먹고 약을 먹었다. 잘 먹고 잘 자면 괜찮을거다. 사실 오늘은 우리 식구들(기숙사의 한국 친구들)이랑 벼르고 벼른 외식이 있는 날이다. 저녁에 기숙사 근처의 바에서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로컬 맛집으로 소개받은 곳이다. 따라서 그 시간까지 컨디션이 좋아져야 한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밥도 먹고 약도 먹고 잠도 잤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열심히 먹고 자고 먹고 잔 덕분에 오후 늦은 시간에는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했다. 그 와중에 게임도 했다. '스타듀밸리'는 못참지.

저녁에 우리 식구들과 집 근처의 바에 갔다. 맛있는 나쵸, 스테이크 등을 시켜서 먹었다. 그러면서 맥주도 한잔 했다. 감기약을 먹었지만 그래도 이 타이밍에 맥주는 진리다. 우리 식구들은 이제 2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하루 일과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는 이 친구들이 있어서 여기가 집이라고 느꼈는데 앞으로는 허전해서 어쩌나 걱정이다.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학연수지로 밴쿠버를 선택했고 그 중에서도 이 기숙사를 선택했다. 이 기숙사의 수많은 방 중에 여기에 배정을 받았고 이곳에 한국 학생들이 있었다. 소중한 인연이다. 첫날 여기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나는 쏟아지는 영어 설명에 너무 정신없고 무서웠는데 한국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그동안 같이 외식도 하고 소풍도 갔다. 저녁식사 시간이 맞으면 함께 밥도 먹었다. 같이 나눠먹을 수 있어서 장을 볼 때 마음이 편했다. 안 그랬으면 혼자 먹자고 이것저것 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머나먼 타지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 식구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친구들을 통해서 학원들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널리 알려진 대형 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거기는 지금 내가 다니는 학원과 시스템이 많이 다르다. 영역별 수업이 아니라 통합 수업이고 대부분 팀 프로젝트 수업이란다. 팀별로 경쟁도 있고 팀장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그 책임감이 무척 무겁단다. 대형 어학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워킹홀리데이나 장기 어학연수를 위해 오고 대학까지 연계된 경우가 많아서 공부가 빡쎄단다. 나는 지금 내가 다니는 학원이 나에게 딱 맞는 학원임을 이들을 통해서 깨달았다.

여기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 친구가 된 사람도 있고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해서 한끝 차이로 엇갈릴 수도 있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서로 인사만 나누는 사이가 될 수도 있고 좀더 친해져서 함께 놀러다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기회와 선택, 엇갈림과 부딪힘 속에서 지금의 인연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중한 인연을 마음 깊이 간직하자.


2023.09.10. 일요일 [기숙사에 잘 왔다.]

오늘도 컨디션 조절을 위해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거리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점검했다. 이제 반환점을 돌고 있는 영어공부. 나의 목표는 어디까지일까? 어디 가서도 영어로 두려움 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처음 여기 왔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학원 선생님들 말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해서 이제는 어려운 내용이 아니면 대체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기숙사 옆방의 미국 친구 '매기'가 말하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최소한 '매기'와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다.

방에서 뒹굴거리다가 거실로 나가보니까 마침 '매기'가 식탁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 그래서 슬쩍 말을 걸어 보았다. 이 친구의 말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보았다. 나는 저번에 산 보드게임을 보여주면서 지금 한가하면 같이 해보자고 했다. 좋단다. 내가 이해한 룰로 게임을 한 판 해보았다. 나는 여러가지 게임 룰이 있는데 설명서로는 잘 이해가 안된다고 했더니 '매기'가 설명서를 한참 들여다 본다. 그리고는 규칙을 설명해 주었다.

게임 박스에는 검은 색 카드가 10장이 들어 있고 그밖에 파랑, 빨강, 오렌지, 분홍 카드가 20장씩 들어 있다. 저번에 '루시'가 설명했을 때 각 칼라를 이어서 놓으면 이기는 게임이라고 했지만 왜 검정 카드가 10장인지는 '루시'도 몰랐다. 그런데 '매기'가 알려주었다. 게임의 시작은 검정카드로 하는데 한 판을 이기면 그 플레이어가 검정 카드를 획득해서 1점을 딴 것이다. 즉, 전체적인 게임의 승패를 확인하는 카드란다. '매기'의 빠른 영어가 완벽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놀자고 했더니 '매기'도 좋단다. 저번에 '매기'가 나의 스케치북에 자신의 예쁜 스티커를 붙여 주었는데 나도 보답을 해야지. 내일은 예쁜 스티커를 찾아봐야겠다.

보드게임을 하고 나서 밥 먹고 약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몸이 한결 개운해졌다. 이번에는 주방에서 미국 친구 '매기'와 일본 친구 '유카'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길래 또 슬쩍 끼어서 대화를 나누었다. '매기'의 말이 좀더 잘 들리는 것 같다. '매기'가 '유카'와 나를 위해 천천히 쉬운 말로 설명해주려고 노력하는 점도 있고 내가 '매기'의 말투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점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유카'가 한국치킨을 좋아한다고 해서 근처의 BBQ를 알려줬더니 이미 지난 주에 갔었단다. 게다가 거기서 소맥도 마셔봤는데 너무 좋단다. '유카'는 한달 후에 귀국한다. 그래서 그녀가 귀국하기 전에 다같이 한번 치킨과 소맥을 먹으러 놀러나가기로 약속했다. 다만 '매기'는 18살이라 술은 마실 수 없다. 그래도 같이 놀러가고 싶단다. 그러면 너는 가서 주스 마시라고 했더니 자기는 탄산음료를 매우 좋아한단다. 우리는 신나서 같이 놀러갈 날짜를 맞추어 보았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 사는 친구들이랑 친해져서 같이 놀러다니는 거 너무 좋다. 기숙사 친구들과 더 자주 모여서 놀아야겠다. 나는 이 기숙사에 정말 잘 들어온 것 같다.

생각해보니까 금요일의 영어회화 모임이 집 근처에 있었고 기숙사 친구들과의 수다도 바로 집에서 이루어졌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맞다. 내가 찾던 새로운 활력소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변에 있는 것이었다. 그걸 내가 찾느냐 못찾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눈을 크게 뜨고 가까운 곳에서 또 놓친 것은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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