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단순하지 않아.

하루 하루 전진

by 바람

2023.10.09. 월요일 [추수 감사절의 유래]

캐나다의 추수 감사절은 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이다. 여기는 기념일을 어느 달의 몇째 주 무슨 요일로 정해서 구체적인 날짜는 항상 변한다. 참고로 미국의 추수 감사절은 11월 셋째주 목요일이란다. 추수 감사절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있는 독특한 명절이다. 회화 수업 시간에 추수 감사절과 유사한 명절을 가진 나라가 있는지 질문하니까 한국과 중국학생들만 손을 들었다. 한국에는 추석이 있고 중국에는 중추절이 있다. 멕시코, 브라질, 일본 등에는 없단다.

추수 감사절과 추석은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가을의 수확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고 가족끼리 모여서 다함께 명절 음식을 즐기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추수 감사절은 이들의 이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지금의 캐나다와 미국 북부에 와서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이민 온 첫 해 겨울을 아주 혹독하게 겪었다. 정착민 중에 상당수가 겨울 추위와 기아에 허덕이다가 죽었다. 그 다음 해에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가을에는 겨울에 대비해서 많은 준비를 했다. 이들은 가을이 되자 작년에 죽어간 동료들을 기리기도 하고 겨울에 굶어죽기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추수 감사절의 유래란다.

오늘은 비가 온다. 게다가 빗줄기가 제법 굵게 내린다. 예상했던 대로다. 그래서 어제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닌 것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기로 마음 먹었다. 오전에는 밀린 일기를 썼다. 그리고 아점을 먹었다. 마침 '메기'와 '카나'가 식사 중이어서 함께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카나'가 양배추를 먹길래 나의 양배추 다이어트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메기'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이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엄마의 레시피란다. 나중에 완성되면 맛보게 해주겠단다.

모처럼 집에 있는 한가한 시간이다. 내일의 문법 시험을 대비해서 복습을 한바탕했다. 몇 시간 공부했더니 머리가 찌끈거린다. 안되겠다. 게임으로 힐링하자. 스타듀밸리와 마인크래프트는 역시 나의 힐링 게임이다. 게임하다가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메기'의 요리가 완성되었다. 맛을 보니까 아주 독특하다. 고기가 잔뜩 들어갔고 양파, 당근 등의 야채와 치즈도 들어간 요리다. 거기에 쌀도 섞었는데 죽과 스프의 중간쯤 되는 요리라고 할까? 고기가 들어갔으므로 당연히 맛있다. 다시 게임에 매진하다가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집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않아서 심심할 것 같았는데 뭔가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내일부터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부디 즐겁고 행복한 한 주가 되길 기원해본다.


2023.10.10. 화요일 [문법 수업 고민]

문법 시간에 작은 시험을 보았다. '마사'는 아주 쉬울 거라고 하면서 시험지를 나눠 주었지만 우리에게는 쉽지가 않다. 낑낑대면서 겨우겨우 풀었다. 몇 명 학생들은 빨리 풀고 교사에게 제출한다. '마사'는 바로 채점을 시작했다. 나는 늘 그렇듯이 최선을 다했지만 너무 어렵다. 학생들이 대부분 제출한 것 같아서 나도 시험지를 제출했다. 그런데 교사가 채점을 하는 중간에 왜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틀리냐고 놀란다. 아주 잘 본 학생은 3명 정도 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25문제 중에서 16개 이하로 맞았단다. 그 순간 교사에게 말하고 싶었다. 네가 많은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그렇쟎아.

정말 이 수업을 계속 들을지 고민이 된다. 몇 명의 학생은 아주 잘하는 것 같고 나머지는 잘 못하는 것 같은데 교사의 눈높이는 잘하는 학생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내가 열나게 예습과 복습을 해서 겨우 따라가고 있지만 계속 이렇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 '스튜어트'의 문법 수업을 들을 때에도 초기에는 따로 예습과 복습해서 겨우 따라갔다. 그러다가 점차 안정되어서 예습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이라 나에게 적응기간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교사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혹은 둘 다 일까? 이번 주에 판단해보자.

읽기와 쓰기 수업은 드디어 우리의 교사 '아민'이 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전에 만났던 것을 기억하고 반가워한다. 나도 그가 무척 반갑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고 우리에게도 자기 소개를 하도록 안내했다. 어느 정도 학생들 파악이 된 후 수업 진도를 확인한다. 그는 역시 잘 가르친다. 단어를 공부하기에 앞서 품사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문제를 풀기에 앞서 빈칸에 들어가야 할 품사가 무엇일지 유추하게 유도한다. 그리고 나서 단어를 찾아 품사를 고려해서 빈칸을 메꾸란다. 확실히 체계적이다. 앞으로의 수업이 더욱 기대가 된다.

점심 시간에는 밥을 먹고 나서 '제니스'와 함께 문법 수업 시험지를 다시 풀어보면서 확인했다. 그녀와 내가 동시에 헛갈리는 것이 있어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도 어려워하지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낫다. 몇 가지는 주변의 힌트, 시간표현을 놓쳐서 틀렸다. 좀더 세밀하게 확인하면서 풀었으면 몇 문제는 더 맞추었을 것 같다.

회화 수업은 주말에 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사교' 모임에서 주최한 추수 감사절 저녁식사 모임에 갔었다고 얘기했다. '안젤라'가 아주 흥미로워하면서 자세히 얘기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이벤트는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만든 것이라는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안젤라'는 한 일본 학생에게 이런 모임에 갔어야지라고 말한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학생은 홈스테이를 하는데 그 집에서 추수 감사절 저녁을 먹으면서 그를 제외시켰단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자기 방에서 혼자 쓸쓸하게 지냈단다. 저런, 불쌍하다. '안젤라'는 학교 밖의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라고 권하는 이유가 이런 데에 있다면서 나에게 어떻게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지 설명해주라고 한다. 나는 MeetUp 어플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맞는 모임을 찾는 방법과 신청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전에 도서관에서 발견했던 시민회관의 영어회화 모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내년 여름에도 하니까 그때까지 있을 사람은 꼭 참여하라고 말해주었다. 도서관의 게시판에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붙어있다고도 알려주었다.

주말 이야기를 쭈욱 듣고 나서 지난 금요일에 결석했던 학생들의 발표를 들었다. 나의 파트너인 '안토'도 발표를 했다. 그녀는 프리젠테이션을 블로그 형태로 꾸며서 나를 소개해주었다. 블로그 형태로 꾸민 이유는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서란다. 나의 여행, 가족 등에 대해 잘 소개해주었다. 내가 보기에 오늘 발표 중에 '안토'가 제일 잘한 것 같다. 물론 극히 주관적인 평가다.

오늘도 extra 수업에 참여했다. 오늘의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 색깔, 음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트너와 짝을 지어서 대화를 나누다가 중간부터는 다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그 이유를 말해야 해서 이것저것 아는 단어를 총동원했다. 다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눈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친구, 음악, 차, 사람 등 좋아하는 것들과 그 이유를 말하다보니까 그것들의 소중함을 더 확실히 느끼게 된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숙제와 문법 복습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어느 집 앞에서 느닷없이 커다란 거미가 내려와서 깜짝 놀랬다. 보니까 그 집은 할로윈을 위해 집앞을 꾸미고 집앞의 나무에 줄을 매달아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 거미 인형을 쓰윽 떨어뜨리고 있다. 정말 너네들은 할로윈에 진심이구나. 정성이 대단하다.


2023.10.11. 수요일 [삶은 단순하지 않아.]

영문법의 시제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가 연속으로 아침마다 질문을 해서 그런걸까? '마사'가 그나마 오늘은 설명을 좀 많이 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높이는 영어를 잘하는 3명의 학생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연습문제를 풀 때 시간을 조금만 더 주었으면 좋겠는데 한번 슬쩍 다 풀었냐고 묻고는 바로 풀이에 들어간다. 그리고 잘하는 학생 3명이 큰소리로 답을 하면 그래, 잘했어, 하고는 그냥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나는 답을 따라 적기도 바쁜데. 한숨만 나온다.

듣기 수업은 단어가 참 어렵다. 처음 뵙는 분들이 많다. 단어와 단어 설명을 매칭시키는 것은 그나마 눈치껏 연결시키겠는데 빈칸 메꾸기는 영 감을 못잡겠다. 파트너와 의논하면서 하라는데 우리는 둘 다 어질어질해하고 있다. 최대한 주변의 정보들을 이용해서 답을 추리해보았다. 형태와 주변 단어로 추측해서 문제를 풀고 남은 것은 찍었다. 누가 그랬던가? 찍기도 실력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의 교사 '아민'은 역시 체계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인터넷 사용에 대한 문장을 주고 그에 대한 찬반토론을 해보란다. 4인그룹에서 2인씩 찬성 의견과 반대의견을 정해주었다. 그리고 첫번째 활동으로 5분간 토론해보란다. 그 후에는 두번째 활동으로 찬성과 반대 의견을 서로 바꾸게 해서 5분간 토론해보란다. 다들 처음 토론할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떠들었는데 두번째 활동을 제시하니까 당황했다. 의견을 바꾸라고? 그래, 이런 것이 진정한 토론 연습이지. '아민'은 근처 대학의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다가 왔다고 하던데 역시 잘 가르친다.

점심 시간에 오늘도 '제니스'와 함께 열나게 문법 복습을 했다. 쉬어야 하는 시간에 죽어라고 복습을 하니까 너무 힘들다. 결국 지치고 눈이 뻘개져서 회화 수업 교실로 들어갔다. 한 일본 친구가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나는 열심히 문법 복습을 했다고 하니까 혹시 '마사'의 수업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그 친구는 매우 분개하면서 자신이 '마사'의 수업을 듣다가 너무 힘들어서 학교 측에도 건의하고 그녀에게도 말했단다. '마사'에게 다른 교사의 수업으로 바꿔 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면서 레벨 다운을 하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자신은 그 말에 매우 상처를 받았고 결국 레벨을 다운해서 다른 교실로 옮겼다고 한다. 우리 얘기를 듣던 한국 친구가 자신의 친구도 '마사'의 수업을 바꿔달라고 학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듣는다고 했다. 다들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구나. 그들은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교실을 바꿔달라고 한 적이 없으므로 학교 측에 요청해보란다. 그래 볼까? 한국인 상담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화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뭔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나의 문법 수업 때문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우리 교실의 한국 학생 한 명이 울면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그녀의 엄마와 통화하는 듯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안젤라'는 나를 지목하면서 네가 교사였으므로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나? 무슨 일? '안젤라'는 울고 있는 한국 학생에게 잠시 동안 한국말로 상황을 설명하라고 시켰다.

대략 요약하자면 이 학생은 20대의 대학생인데 성인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그녀의 엄마는 외국에 나간 딸이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통제도 하고 싶어서 지인의 홈스테이에 맡긴 듯하다. 그러나 그 홈스테이가 학원에서 너무 멀고 교통도 불편한데다가 주변 시세보다 비싸서 그녀는 옮기고 싶단다. 그 말을 하는 과정에서 홈스테이 주인과 엄마, 딸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이 학생은 엄마의 여러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아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나는 망설여졌다. 내가 교사일 때 우리반 학생들과 상담을 하면서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말이 뭔가 도움이 되려면 먼저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학생과는 서로 잘 모르는데 뭐라고 도움말을 줄 수 있을까? 게다가 그걸 영어로? 나는 더듬더듬 영어로 엄마는 네가 해외 생활을 하는 거라 걱정도 되고 통제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홈스테이의 가격문제나 통학 거리 문제는 엄마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엄마는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너에게 화가 나서 그런 상처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옆자리 학생이 그녀에게 그냥 홈스테이에서 나오라고 말했다. 너는 이미 성인이니까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다, 너는 여기서 파트타임을 구할 수 있다, 일하면서 학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순간 '안젤라'와 나는 눈이 마주쳤는데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조언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나이든 사람들의 틀에 박힌 생각일 수도 있으나 그녀에게 좀더 다양한 관점의 조언이 필요해 보였다.

'안젤라'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이러한 사적인 내용이 수업의 주제가 되어도 되는지 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다들 내용을 알고 있고 이런 갈등은 인생사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인생 공부 삼아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취지인 것 같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부모와 갈등을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각자 나라는 다르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어려움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어떤 학생은 부모가 귀가 시간을 통제하는 것으로 인한 갈등을, 어떤 학생은 부모의 이혼 후에 겪었던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한 일본 학생이 자신의 부모는 대체로 강압적이지는 않았지만 대학 진로를 결정할 때는 자신의 생각과 달랐단다. 그때 그냥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부모의 의견을 따랐단다. 왜? '안젤라'와 내가 동시에 물었다. 그 학생은 좀 생각해보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의 의견이 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아, 과연 그럴까 싶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젤라'도 자신의 부모가 매우 엄격한 사람들이라서 힘들었던 이야기, 대학 때 해외로 도망갔던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솔직히 부모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말에 대한 나의 반응 뿐이다.' 맞는 말이다. 사실 부모뿐 아니라 어느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 차이를 어떻게 줄여 나갈지, 가능한 해결책을 어떻게 찾아갈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업이 끝나자 '안젤라'는 그 학생에게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물었다. 그녀는 감사하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안젤라'는 눈짓으로 나에게 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녀와 잠시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섣부른 조언은 조심스럽지만 여러 관점을 그냥 들어보고 판단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조금은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쩌면 해답은 그녀와 그녀의 엄마 마음 속에 다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해답을 꺼내놓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부디 그 과정에서 서로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고 그 해답을 찾기를 바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extra 수업에 늦게 들어갔다. 불이 꺼져 있어서 좀 놀랐는데 보니까 영상을 보면서 과거시제의 규칙 동사 발음을 연습하고 있다. 나도 합류해서 동사 변화의 규칙도 익히고 발음도 연습했다.

수업을 마치고 '은남'과 함께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모임 장소로 가면서 '은남'이 아까 extra 수업 시간에 내가 늦으니까 '마리아나'가 매우 안타깝게 기다렸다면서 다음 달에 내가 학원을 그만두면 '마리아나'가 몹시 슬퍼할 것 같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마리아나'와는 각별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별이 너무 마음 아플 것 같다. 이제 나는 떠날 것을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한영언어교환' 모임에서는 오늘도 열심히 떠들었다. 어떤 한국 학생이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생활 속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모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오는 길에 한인 마트에 들러서 김밥 재료를 샀다. 오랜만에 김밥이나 만들어 먹자. 신나게 김밥 재료를 사가지고 집으로 왔는데 집에 도착한 순간 깨달았다. 김을 깜빡하고 안 샀다. 덜렁이! 집에 들어와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다시 갔다오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일 싸지 말고 모레 쌀까? 아니다. 내일은 또 다른 저녁 일정이 있어서 바쁘다. 그렇다면 내가 계란을 이용해서 김밥을 쌀 수 있을까? 혹은 누드김밥? 일단 노력해보기로 했다. 결국 늦은 시간까지 김을 대신할 수 있도록 계란 지단을 얇게 부쳤다. 그리고 다른 재료들을 손질해서 준비했다. 내일은 한시간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쌀 것이다. 나는 뭔가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기어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안좋은 성격이다. 내 신상을 내가 볶는다.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니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다. 문법 수업은 어떻게 할까? 교실을 바꾸겠다고 해볼까? 회화 수업의 그녀는 엄마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마리아나'와의 이별은 어떻게 하지? 내일 계란김밥 만들기는 성공할까? 세상에 역시 쉬운 일은 없구나. 에휴. 삶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2023.10.12. 목요일 [기숙사의 할로윈 파티]

아침 일찍 일어나 계란 김밥을 말았다. 김밥이라고 해야할지 계란말이밥이라고 해야할지 정체성은 좀 모호하다. 어쨌든 절반은 성공했다. 첫번째 계란 김밥은 잘 말렸다. 흐트러지지 않고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것은 '메기'의 몫이다. 그녀가 자주 자신의 요리를 주었기 때문에 나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오늘의 계란 김밥은 밀가루가 들어간 것을 완전하게 배제한 것이다. 그녀는 나의 계란 김밥을 받고는 아주 좋아한다. 학원에 가져가서 점심으로 먹겠단다. 김이 없어서 계란으로 말았다는 설명을 하고 싶었는데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관두었다. 그런데 두번째 김밥부터는 잘 말리지가 않는다. 일단 모양을 갖추어 성공한 것들은 도시락에 담고 흐트러진 것들로는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회용 장갑을 챙겼다. 김밥이 흐트러지므로 장갑을 끼고 먹는게 낫다. 젓가락으로는 집을 수가 없다. 이게 뭔 난리니?

문법 수업은 '마사'가 교사 회의에 가야해서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보강 교사가 들어온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이어진 듣기 수업은 새로운 단원으로 들어갔다. 주제는 약을 먹을 때 잘못 먹거나 많이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단어와 구문을 보니까 이번에도 처음 뵙는 분들이 많다. 듣기 방송을 듣고 문제를 푸는데 딱 두번만 들려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문제를 그럭저럭 푼다. 물론 반타작이지만 그래도 아예 안 들리는 것은 아니다. 듣기 실력이 좀 나아진 듯하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글의 구성 방법에 대해 배웠다. 잘 된 글의 샘플을 보고 나서 우리가 써 온 글을 이것에 따라 다시 고쳐서 내일까지 써오란다. 뭐? 내일은 매주 제출하는 작문 과제도 있잖아. 다들 아우성이다. '아민'은 그러면 방금 낸 숙제는 내일까지 제출하고 매주 제출하는 작문 과제는 다음주 월요일에 제출하란다. 이 수업은 잘 가르쳐서 좋은데 숙제가 너무 많다. 역시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계란 김밥을 나누어 먹었다. 내가 김을 까먹어서 이 모양이 되었다고 설명하니까 다들 웃는다. 그리고 김없이 김밥을 싼 것을 신기해 한다. 밥을 먹으면서 나는 친구들에게 문법 수업에 대한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한국인 상담 교사에게 상담요청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이따가 그녀에게 가서 다른 교실로의 교체를 요청해볼까 한다고 했더니 내 얘기를 듣던 '제니스'가 넌즈시 조언을 한다. 그렇게 하지 말고 먼저 '마사'에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수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학교측에서는 '마사'에게 그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데 그러면 '마사'가 기분나빠할 것이다. 교실을 바꾸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만약 이 수업에 남아 있게 되면 '마사'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겠냐는 것이 '제니스'의 의견이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마사'와 먼저 얘기해서 혹시 그녀가 나의 고민을 이해하고 교실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혹시 교실 교체가 되지 않는다 해도 그녀에게 나의 힘듦을 알리고 수업 방식을 좀 개선할 수 있다면 최소한 손해는 아닐 것이다. 물론 '마사'가 화내면 그때는 망하는 거다. 어떻게 말하면 그녀가 기분나쁘지 않게, 하지만 명료하게 나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영어로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회화 수업도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안젤라'가 교사 회의에 갔단다. 그러고 보니까 '마사'도 교사 회의에 갔다. 오늘 대대적으로 교사 회의가 있나보다. 오늘은 해외에서 살게 되면 어떤지를 주제로 그룹 대화를 나누었다. '캐나다 생활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나?', '밴쿠버는 구체적으로 어떤가?' 우리는 대부분 영어공부를 하러 여기에 왔기 때문에 가장 기대한 것은 영어실력이 나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은 대부분 처음이다.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어서 그런지 서로 많이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의 나라에 대해 그리워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 다들 봇물터지듯이 가족, 친구, 음식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다들 집이 그립구나.

extra 수업 시간에 누군가가 오늘 '마리아나'가 결근을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오늘 extra 수업이 진행될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내가 이 수업에 가장 오래 참석한 학생이라서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2층 데스크에 가서 extra 수업이 진행될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데스크의 직원이 확인해보고 알려주겠다면서 교실에 가서 기다리란다. 5분 정도 있으니까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그는 처음 보는 교사인데 보아하니까 갑자기 섭외되어 들어왔나 보다. 우리에게 이름과 국적을 물어보고는 보통 어떻게 수업이 진행되었는지 묻는다. 또 다들 나만 쳐다본다. 본의 아니게 이 수업의 반장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는 교사가 주제를 말해주고 질문지를 주면 그룹으로 대화를 나누고 나서 전체 대화를 나누었다고 설명했다.

보강 교사가 그러면 오늘은 왜 영어 공부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한다. 그리고 칠판에 '단단히 결심한'이라고 적는다. 여기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와서 영어 공부를 하는 목적,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는 목적을 이루려면 단단히 결심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영어 공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교사의 질문을 알아들어서 이것저것 대답을 하다보니까 다른 학생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대답을 자제했다. 내가 입을 다무니까 교사는 다른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조금씩 조금씩 다른 학생들도 대답을 했다. 여기는 extra 수업의 초급 레벨이라 지금은 내가 이들 중에서 레벨이 높은 축에 속한다. 앞으로는 다른 학생들도 대답할 수 있도록 눈치껏 처신해야겠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서 집으로 왔다. 오늘은 우리 기숙사의 할로윈파티가 있는 날이다. 물론 할로윈은 이번달 말이지만 기숙사에서는 오늘 2층 커뮤니티룸에서 파티를 한다고 했다. 나는 '카나'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메기'도 함께 갔으면 했지만 그녀는 알러지 때문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카나'와 나는 들뜬 마음으로 2층에 내려갔다. 가보니까 벌써 몇 명이 모여있다. 기숙사 측의 진행자가 서로 자기 소개를 하도록 안내했다. 일본, 대만, 브라질, 멕시코, 터키 등등 많은 나라에서 왔다.

진행자는 피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로윈 게임을 하자고 한다. 그녀는 포스트잇에 할로윈 캐릭터를 쓰고 그것을 한 사람에게 주면서 그 사람에게는 내용을 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들고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들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스, 노 질문을 하란다. 가령 나는 사람인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예스, 노로 대답해준다. 우리나라의 스무고개 퀴즈와 비슷하다. 나는 여자인가? 나는 키가 큰가? 나는 하얀색인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고 추리해서 어떤 캐릭터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Ghost(유령), Zombie(좀비), Witch(마녀), Joker(조커), Clown(광대), Skeleton(해골) 등등 아는 재밌는 캐릭터들이 나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는데 나는 포스트잇을 받아드는 순간, 살짝 비친 첫글자를 보았다. F로 시작한다. 순간 떠오른 단어는 Frankenstein(프랑켄슈타인)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으려면 내가 이걸 모르고 있어야 한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사람인가? 죽었나? 여자인가? 빨간색인가? 이런 것을 물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 캐릭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힌트를 주려고 난리다. 사람은 아니지만 움직인다. 매우 크고 힘이 세다. 초록색이다. 남자다. 묻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설명해준다.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오뚱하면서 초록색? 키가 크다고? 그러면 슈렉인가? 했더니 다들 뒤집어진다. 슈렉은 할로윈 캐릭터가 아니란다. 그러면 아, 헐크? 다들 너무 재밌어한다. 헐크도 할로윈 캐릭터가 아니란다. 너무 오래 끌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맞춰주었다. 프랑켄슈타인? 내가 맞추니까 다들 좋아한다. 니들이 좋아하니까 나도 즐겁다.

이런 게임을 하고 있는데 피자가 도착했다. 다들 신나서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는 사이에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합류했다. 사람이 많아지니까 진행자가 게임 종류를 바꾸자고 한다. '몸으로 말해요.' 즉 제스쳐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임을 하잖다. 그래. 좋은 아이디어다. 나는 한국에서는 이런 게임을 정말 못했는데 여기 와서는 몸으로 말하기 실력이 아주 많이 향상되었다.

한 명이 처음에 자원해서 자신이 부여받은 캐릭터를 몸으로 표현했다. 좀비. 좀비는 표현하기가 쉬운 편이다. 나와 함께 간 '유카'가 아주 난감한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그녀는 자꾸 하늘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어색한 걸음으로 걷는다. 뭐지? 우리가 너무 못 맞추니까 진행자가 space(우주)라는 단어로 힌트를 준다. 응? 혹시 alien(외계인)? 맞단다. 나에게 부여된 캐릭터는 Clown(광대)다. 응? 광대를 어떻게 표현하지? 나는 광대의 모자를 손으로 표현하고는 스마일 웃는 특징을 표현했다. 그랬더니 누군가 맞추었다. 이런 식으로 다들 한번씩 나가서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각 나라의 특징이 다 달라서 재밌었다.

파티에 합류한 사람 중에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과 엄마가 있었다. 딸내미가 처음에는 나가서 표현하는 것을 안하겠다고 빼더니 다들 재밌게 즐기는 걸 보고 나서 자신도 한번 해보겠단다. 브라보! 진행자가 그녀에게는 표현이 쉬운 인어공주를 주었다. 그건 표현하기 쉽지. 그런데 인어공주가 할로윈 캐릭터인가? 에라, 모르겠다. 그게 뭐 중요하겠니? 다들 즐거우면 되었지.

두 시간 정도 재밌게 놀았다. 진행자는 2층 커뮤니티 센터에서 가끔 모여서 노니까 언제든지 방문해서 즐기라고 한다. 그래. 알았다. 시간이 되면 놀러올께. 앞으로 커뮤니티 센터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영어 연습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카나'와 나는 오늘 재밌었다면서 서로 동행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기숙사에 있으니까 이런 경험도 하는구나. 역시 우리 기숙사가 최고야.


2023.10.13. 금요일 [쭈욱 힘차게 전진]

아침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문법 교실로 향했다. '제니스'의 말대로 '마사'와 먼저 이야기를 나눈 후에 수업을 옮길지 말지 결정하는게 좋을 것 같다. 이 대화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몰라서 조심스럽고 어렵다. 한국어로 말해도 이런 대화는 어려운 것인데 이걸 영어로 해야 한다.

어제 보강교사가 수업을 했기 때문에 '마사'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보강교사가 남긴 메모를 확인하느라 바빠 보인다. 수업이 끝난 후에 나의 고민을 이야기해야겠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그녀가 좀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부터 미래시제를 나가는데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천천히 설명을 한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이해를 했는지 자주 묻는다. 문법 설명 후 연습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전에는 시간을 짧게 주고는 다 풀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답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학생들 사이를 다니면서 어느 정도 풀었는지 확인한다. 게다가 문제의 답도 또박또박 불러준다. 심지어 중간중간 아직 답을 다 못 적은 학생이 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지 묻는다. 확실히 오늘 '마사'의 수업 방식은 전과는 달랐다. 어제의 교사 회의에서 수업 방법이나 학생들 상태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게 아닐까?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마사'에게 나의 고민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느린 학생이라 너의 수업에서 많은 부분을 놓친다. 나에게는 이 수업이 좀 어렵다.' 이런 말로 시작하는데 그녀의 반응이 놀라웠다. '아니야. 너는 결코 느리지 않아. 나는 네가 아주 잘 따라오고 있어서 자랑스러워. 물론 너에게 시간이 좀더 필요할꺼야. 하지만 너는 이 학급에서 결코 뒤쳐지지 않아. 아주 잘하고 있어.'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 달라서 당황했다. 전에 불만을 표현했던 친구의 말대로라면 '마사'의 반응은 '따라오기 어려우면 레벨 조절을 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 당황했다. 나는 '하지만 나는 너의 설명이 빨라서 따라가지 못해. 나에게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해.'라고 말했더니 '마사'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고 모르는 부분은 언제든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너는 이 교실에서 못하는 학생이 아니야. 나는 너를 지켜보고 있어서 알아.'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그래. 알았어. 고마워'라고 말하고 교실에서 나왔다.

'제니스'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함께 나왔다. 복도에서 '제니스'는 이 수업이 힘들지만 그래도 공부가 많이 되고, 모르는 것은 언제든지 '마사'에게 물어보면 그녀는 잘 설명해준다고 했다. 수업을 옮기는 것보다는 여기서 더 노력하는게 나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다. 오늘 정도의 수업이라면 나도 계속 들을 생각이 있다. 그래. 수업을 옮기지 말고 여기서 잘해보자.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전진하자.

읽기와 쓰기 수업은 자연스럽게 고정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우리 그룹은 일본 학생 1명, 브라질 학생 2명 그리고 나까지 4명이다. 다들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학생들인데 이들은 수업시간에 자꾸 딴짓을 한다. 수다를 떨기도 하고 휴대폰도 자주 본다. 그러나 딴짓하다가도 교사가 문제를 내면 곧잘 맞춘다. 내가 지켜본 바로 이들은 수다도 떨고 딴짓도 하지만 교사의 말은 잘 듣고 있다. 멀티가 가능한 친구들이다. 교사 '아민'이 '혹독한', '엄격한'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자신은 평소에는 엄격한 교사는 아니지만 수업시간 중에 휴대폰을 보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에게는 혹독해질 수 있다고 슬쩍 경고를 날린다. 우리 친구들이 움찔하면서 서로 눈짓을 주고 받는다. 다들 너무 귀엽다.

회화 수업 시간에는 분위기가 들떠있다. 뭔가 했더니 이번달 마지막 날인 할로윈데이에 회화 수업 교실은 다들 할로윈 게임을 준비한단다. 한시간은 2층 교실 학생들이 3층 교실을 순회하면서 게임을 즐기고, 한시간은 3층 학생들이 2층으로 내려가서 게임을 즐긴단다. 마지막에는 어느 교실의 게임이 베스트인지도 뽑는단다. 그래서 각 교실은 지금 어떤 게임을 준비할지 아이디어를 짜고 있다. 인간 슬롯머신, 미스테리 상자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안젤라'는 좀더 극적인 것을 원한다. 그녀의 큰 눈이 더 커지면서 뭔가 더 신나는 것을 생각해보자고 한다. '안젤라'는 정말 장난꾸러기다. 어떤 때는 학생들보다 더 하다.

'안토'가 칠레에서 친구들이랑 하던 게임이라면서 설명을 하는데 영어로 표현이 어려우니까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안젤라'는 그러지 말고 어떻게든 영어로 설명하란다. 보아하니까 촛불 열 개를 일렬로 세우고 불어서 꺼트리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단순하다. 그런데 각 촛불들 양쪽 옆에 두 개의 상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꺼진 촛불의 양쪽 옆에 있는 상자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 결정한다. 두 상자 중에 하나는 좋은 것이 들어 있고 하나는 흉칙한 것이 들어 있다. 처음에는 그래그래 시큰둥하던 '안젤라'가 마지막 대목에서 눈을 번뜩이면서 좋아한다. 그래? 어느 상자를 고르는가가 재밌는 대목인거지?

촛불은 5개만 세우기로 하고 상자에 들어갈 것은 뭘로 할지 의논했다. 좋은 것은 할로윈 캔디부터 시작해서 연필, 열쇠고리 등이 제시되었다. 다음으로 흉칙한 것은? '안젤라'가 두 손을 비비면서 눈을 번뜩인다. 뭐가 좋을까? 상자 안에 손을 넣었을 때 촉감이 끔찍한 것. 슬라임? 차가운 스파게티?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지면 싫겠다. 그밖에 바나나 껍질, 껍질을 깐 포도 등 참으로 희한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은남'과 함께 집으로 갔다. 그녀가 용기를 내서 금요일의 '영어회화' 모임에도 함께 참여해보기로 했다. 내가 또 꼬셨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우리집에 가서 공부하다가 가기로 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 앞집에 사는 대만 자매들을 만났다.

마침 나는 이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대만 자매들은 어제 할로윈 파티에 왔었는데 중간에 나갔다. 왜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그냥 갔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내 앞자리에 앉았던 브라질 사람이 자신들과 함께 사는 학생인데 그녀와 대판 싸웠단다. 그 브라질 사람이 늦은 밤에 거실에서 너무 큰 소리로 자신의 가족들과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서 듣는 바람에 자신들이 잠을 잘 못잔단다. 그래서 참다못해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화를 내더란다. 그리고 영어로 뭐라뭐라 화를 내는데 대만 자매들은 영어가 딸려서 잘 싸우지 못했단다. 저런! 정말 무례한 사람이구나. 안그래도 대만 자매들이 자주 하소연했었다. 자신들의 집에 사는 어떤 사람은 너무 시끄럽고 어떤 사람은 싱크대와 냉장고를 너무 더럽히고 치우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지? 기숙사 측에 말해야 하나?

집에 와서 '은남'과 각자 숙제를 하다가 잠시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밀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도저히 우리 둘 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몇 가지 서로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랑 지금까지 두달 정도 함께 공부했는데 나의 영어 실력이 최근 몇주동안 확 올라간 것 같다고 한다. 정말? 며칠 전에 어떤 한국 분도 나에게 같은 말을 했다. 그런가? 나는 영어공부의 정체기가 온 것 같아서 답답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좀 실력이 나아진 것일까? 나는 못느끼고 있지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시간이 되어 '영어회화' 모임에 갔다. 역시 '마이클'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는 나에게 주말에 하이킹을 다녀왔냐고 묻는다. 나는 아주 신나게 '웬디'와 함께 두 개의 공원에 갔었고 거기서 seal(바다표범)도 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나의 문장에서 a가 빠졌다고 a seal로 수정해준다. 그래서 내가 three seals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가 아주 흡족해 한다. 내가 '은남'을 소개하면서 여기에 처음 참여한다고 했더니 그녀에게 이곳의 규칙을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역시 그는 언제나 젠틀하다.

우리는 어디 앉을까 하다가 제일 커다란 테이블에 앉았다.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로 자기 이름과 국적을 소개했다. 일본, 대만, 멕시코 등 다양하다. 여기서 뭐하는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그 사이에 사이프러스 친구 '에디'가 왔다. 내가 반갑게 인사하니까 주말에 하이킹 잘 다녀왔냐고 묻는다. 나는 신나서 바다표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도 주말에 사진들을 정리했다면서 그의 멋진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몇 명은 자리를 떠나고 새로 온 사람들이 합류했다. 그 중에는 이 '영어회화' 모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캐나다 사람이 있었다. 이 모임은 10년 정도 된 모임인데 자신은 이 모임의 초창기부터 참석했었단다. 한동안 다른 도시로 이동해서 나오지 못했다가 최근에 다시 밴쿠버로 돌아와서 나온 거란다. 그러면서 이런 모임의 의미로 화제가 옮겨갔다. '에디'는 자기 직업은 주로 온라인으로 일하는 것이라 여기서 친구를 만들 기회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 모임이 친구를 만드는 유일한 통로란다. 그렇겠다.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모임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도 MeetUp의 모임들은 중요하다. 영어 연습에도 유익하고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 소중하다. 남은 기간동안 더욱더 열심히 이 모임들에 다녀야겠다.

두 시간 정도 신나게 떠들고 나서 모임이 끝났다. 비가 약간씩 내리기 시작해서 서둘러 집으로 왔다. 나는 오늘도 보람차게 하루를 보냈다. 문법 수업의 고민은 접고 무조건 전진할 것이다. MeetUp 모임도 쭈욱 직진이다. 오늘은 즐거운 불금! 맥주 한 캔으로 마무리하자. 아니, 두 캔으로, 아니 맥주도 직진하자!


2023.10.14. 토요일 [K 드라마의 위력]

즐거운 토요일. 모처럼 느즈막히 일어나 밀린 일기를 쓰고 나서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나갔다. 익숙해진 친구들과 그룹이 되어 즐겁게 떠들었다. 어떤 외국 친구가 자신의 생각을 한국 문장으로 길게 표현하고 싶어하길래 그의 생각을 영어로 듣고 그것을 한국말로 정리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한영 언어교환이지.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필리핀 친구와 또 같은 그룹이 되었다. 화제가 한국 드라마였는데 '커피 프린스', '응답하라 시리즈', '스카이 캐슬', '나의 아저씨' 등 많은 드라마가 언급되어서 놀랐다. 외국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 K 드라마의 위력이 엄청나구나. 정말 신기하다.

다음 그룹에서 필리핀 친구를 또 만났다. 이런 저런 취미 이야기도 나누고 영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녀는 내가 다음 달에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나에게 밴쿠버의 겨울은 추우니까 내년에 날씨 좋은 여름에 여기에 또 오란다. 정말 그럴까? 다시 여기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 모임에 꼭 와서 너희들을 만날께. 어느새 나는 떠날 날이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모임이 끝난 후 '제니스'와 만나서 함께 집으로 왔다. 우리가 들어오는데 마침 '메기'가 요리를 하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 문법 공부를 시작했다. '제니스'가 제안해서 우리는 전에 공부했던 문법 교재에서 시제 부분을 함께 복습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기초가 흔들리니까 더 어려운 것 같다. 마침 집에 '메기'가 있으므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제 '메기'는 우리의 과외 선생님이다.

오늘은 6시에 영어 수다 모임이 있는데 앞집의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 자신들이 못오는데 혹시 내일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메기'에게 물어보니까 내일도 별일 없어서 집에 있을 거니까 가능한단다. 내일 가능하다고 답을 보냈다. 이렇게 조율은 했지만 솔직히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메기'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보겠냐고 해서 좋다고 했다. '제니스'와 나에게 각각 한그릇씩 떠 주어서 먹어 보니 맛있다. 감자를 주 재료로 한 일종의 스프다. 당근, 오이 등을 넣었는데 국물이 아주 맛있다. 무언가 독특한 향이 나는데 이게 뭐지 하니까 '메기'가 8가지나 되는 자신의 향신료들을 보여준다. 이러니까 야채만 넣었는데도 아주 독특한 맛이 나는구나. 우리는 많은 향신료에 감탄했다.

공부를 마친 후 '제니스'가 지금 보드게임 모임에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묻는다. 나는 밀린 일기도 써야 하고 숙제도 해야한다. 게다가 오늘 영어 모임까지 다녀와서 너무 피곤하다. 나의 나이도 좀 생각해줘. '제니스'가 가고 나서 나는 '메기'에게 아까 사온 몇 가지 간식들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 알러지 반응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고르라고 했다. 마침 커다란 젤리를 그녀가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선물로 주었다.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2023.10.15. 일요일 [팬픽부터 유투브까지]

새벽에 깨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그냥 일어나서 쿠바 여행 검색을 했다. 이제 6주가 남았다. 슬슬 예약에 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이런 저런 검색과 예약을 하고 나니 시간이 후딱 갔다. 청소를 한바탕 하고는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도서관은 일요일에는 11시에 문을 연다. 10시 50분쯤 도착하니까 입구에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여기 도서관은 늘 사람이 많다. 시간이 되어 도서관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꼭대기 9층으로 올라갔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옥상 정원이 있는데 전망이 근사하다. 이 도서관에 다니면서 항상 2층이나 3층에서만 공부했는데 오늘은 고위층이 되어 보련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나서 7층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장을 보고 있는데 '제니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집에 와서 같이 문법 복습을 하다가 영어 수다 모임을 이어서 하자고 한다. 그러자고 했다. 집에 와서 장을 본 것을 정리하고 나니까 '제니스'가 왔다. 우리는 문법 기초를 훑어보다가 서로 숙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우리 인기척에 '메기'가 자기 방에서 나왔다. 그녀에게 낮잠을 잤냐고 물었더니 휴대폰으로 소설을 읽다가 잠들었단다.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를 이야기 나누면서부터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Fan Fiction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거쳐 유튜브의 영어 리딩 채널까지 대화가 다채롭게 이어졌다.

국적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화는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 생각에 서로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여주는 마음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다들 너무 좋은 친구들이다. 나도 열심히 그들의 관심 분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메모도 했다. 결국 문법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어두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문법 공부는 나중에 도서관에서 해도 된다. 지금은 친구들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메기'는 우리가 영어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것을 열심히 말해주었다. 우리가 수다를 떠는 중간에 앞집의 친구들도 합류했다. 그렇게 해서 두시간 넘게 영어로 떠들었더니 다들 지쳤다.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준비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를 또 열심히 달려보자. 부디 문법 설명은 실시간으로 따라잡을 수 있고, 쓰기 수업은 숙제가 좀 적어지기를 기원해본다. '마리아나' 선생님이 빨리 복귀하기를 바라고,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더 잘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다. 한 순간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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