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대피와 응급 처치

다양한 경험들

by 바람

2023.10.23. 월요일 [To hit the books]

문법 시간에 보강교사가 들어와서 시험을 진행했다. 문제가 어렵다. 아직 배우지 않은 곳까지 시험범위이기 때문에 더 어렵다. 알고 있는 문제라도 잘 풀어야지 마음 먹었지만 역시 시제는 너무 어렵다. 늘 그렇듯이 최선을 다했다. 내일 아마도 채점을 하겠지? 과연 몇 문제나 맞을지 궁금하다.

듣기 수업에서는 오늘도 숙어를 배웠다.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이것을 외우려고 하기 보다는 친숙해지려고 노력하라고 한다. 알지. 엄청 많은 단어나 숙어를 어떻게 다 외우겠는가? 시험용으로는 잠시 머리 속에 구겨넣을 수는 있겠지만 내것이 되려면 사용해서 친숙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자꾸 말할 기회를 만들고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늘 쓰던 단어만 자꾸 사용하려는 습관을 버리자.

읽기와 쓰기 수업에는 보강 교사가 들어왔는데 바로 extra 수업의 보강 교사 '루이스'다. 그는 앞으로 일주일간 이 수업에 들어올 거란다. 쉬는 시간에 우리 그룹의 친구들이 각국의 말로 자기 소개하는 문장을 알려주었었다. 멕시코 말, 일본 말, 한국 말로 각자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것을 연습하면서 재밌어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루이스'는 멕시코 말, 일본 말, 한국 말 금지라고 말한다. 영어를 배우러 여기 왔는데 자기 나라 말을 하면 그 순간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자기 나라 말을 가르쳐주지 말란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지만 쉬는 시간에 외국 친구들과 사귀면서 인사말을 서로 공유하는 것조차 안된다고 하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수업만 봐와서 이렇게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 사람은 오래 겪어 봐야 아는 거구나.

점심 시간이지만 나는 오늘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제니스'가 어제 밤에 문자를 보내서 혹시 월요일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내 도시락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전에 보쌈도 해오고 카레도 주어서 너무 고맙기 때문이란다. 호의를 거절하면 안될 것 같아서 받기로 했다. 그녀가 준비한 도시락은 고기와 야채 볶음 그리고 빵이다. 내가 좋아하는 야채도 있고 간도 적당해서 맛나게 잘 먹었다. '제니스'에게 고맙다고 하고 간식으로 싸온 과일을 함께 나눠 먹었다.

우리는 오늘 문법 복습할 것이 없다. 그러나 내일은 읽기와 쓰기 시험이다. 각자 열나게 시험 공부를 했다. 중간 중간 서로 모르는 단어나 표현을 묻기도 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제니스'가 나에게 MeetUp의 다른 회화 모임이나 보드게임 모임에 나가자고 한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의 모임들 외에 다른 요일에 진행되는 모임들을 보여주면서 생각해보란다. 나랑 함께 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나는 이제 떠날 때가 다가와서 더 이상 모임을 늘리고 싶지 않는데 어쩌지? 아니면 정말 마지막까지 하얗게 불태워 볼까?

'제니스'는 내가 학원을 그만두는 날짜, 쿠바 여행 가는 날짜와 돌아오는 날짜, 한국으로 떠나는 날짜를 여러 차례 묻고는 자신의 달력에 저장했다. 벌써 헤어질 것이 걱정이다. 나도 그녀도 서로 의지했는데 이제 내가 가고 나면 그녀가 많이 허전해할 것 같다. 그녀는 다음 주부터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아마도 우리가 문법 복습을 함께 하는 것은 이번 주로 끝일 듯하다. 하지만 같이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도 계속 같이 다니자고 한다. MeetUp 모임도 함께 가고 토요일에도 우리 집에 와서 함께 공부하겠다고 한다. 그래그래.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함께 열심히 공부해보자.

회화 시간에도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모든 수업이 보강교사다. 교사들이 죄다 회의에 투입되었나 보다. 새 교육과정 때문에 난리인 듯하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룹을 지어서 남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에 대한 리스트 순위를 정했다. 가령 같은 취미가 좋은지 다른 취미가 좋은지, 같은 문화가 좋은지 다른 문화가 좋은지와 같은 것이다. 어린 친구들과 그룹이 되었는데 그들은 취미는 같은게 좋지만 문화는 조금 다른 것도 재밌을 것 같단다. 대신 너무 많이 다른 문화권은 힘들 것 같단다. 나라별로 세대별로 생각이 조금씩 다른 점도 있고 비슷한 점도 있어서 재밌는 토론이었다.

관용표현 extra 수업을 들었다. 지난 주에 배운 내용을 복습한 후에 새로운 표현을 배웠다. 오늘도 재밌는 내용이 많다. 이미 아는 것들도 있고 처음 보는 것도 있다. 'To hit the book 열심히 공부하다'는 의미란다. 나야 뭐 늘 hit the book하고 있지. 근데 지난번에 To hit the sack은 '잠을 자러 가다'는 의미였는데 이번에 To hit the book은 '열심히 공부하다'는 의미다. 뭘 자꾸 때리냐?

집에 오는데 날씨가 너무 쌀쌀하다. 아니 쌀쌀한 정도를 지나서 춥다. 이번 주부터 최저기온이 1~5도로 떨어진단다. 정말 지난 주와는 확연히 공기의 싸늘함이 다르다. 이럴 때 병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제니스'와 나는 이제 정말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자고 서로 걱정해주었다. 정말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2023.10.24. 화요일 [화재 대피]

문법 수업 시간에 '마사'가 어제 본 시험지의 점수를 불러주었다. 나는 64점이다. 역대급으로 낮은 점수다. 그런데 '마사'는 틀린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은 안해주려는 것 같다. 이미 학생들에게서 '마사'가 레벨 테스트를 보고 나서 리뷰를 해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와 '제니스'는 오늘 작정하고 테스트 리뷰를 요청하기로 했다. 내가 '마사'에게 시험 문제 설명은 안해주냐고 물으니까 '마사'는 오늘 extra 수업이 있는데 그때 오면 설명해주겠단다. 나는 그 시간에 다른 수업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그러자 '제니스'가 시험 문제 설명을 듣고 싶다면서 이따가 extra 시간에 자신은 다른 프로그램 설명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마사'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러면 잠시 후에 문제 풀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진도 나가던 연습 문제를 마무리 하고는 우리에게 시험지와 우리의 답안지를 나눠준다. 그리고는 한 문제씩 빠르게 답을 확인하고 넘어간다. 중간에 내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어서 손을 들어서 질문하니까 그제서야 여기까지 다 이해했는지 물으면서 진행을 한다. 영어 원어민에게는 이게 문제냐 싶겠지만은 우리같은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제니스'와 내가 제일 많이 질문을 했다. 우리가 질문을 시작하니까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씩 질문을 했다. 그래. 이래야 우리가 공부를 하고 넘어가지. 시험은 점수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해한 것에 대한 확인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니스'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이 생각한 답도 맞는 문장인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마사'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다가 잠깐만 하더니 그 답도 문장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틀린 문장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답이 두 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마사'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학생의 시험지를 다시 확인해서 점수를 고치겠다고 한다. 나는 '제니스'에게 엄지척을 해주었다.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도 읽기 레벨 테스트를 보았다. 문제는 그다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채점을 해봐야 안다. 내일은 쓰기 테스트란다. 쓰기 테스트의 주제는 3가지 인데 그 중 하나를 골라서 쓰면 된단다. 미리 준비해서 잘 봐야지. 사실 나에게 레벨 업은 의미가 없는데도 나는 뭐든 시험이라면 무조건 열심히 한다.

점심 시간에 학생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한쪽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홍보를 한다. 우리 학원과 협력 관계에 있는 전문 대학에서 만든 '디지털 마케팅 교육' 프로그램이다. 내 친구들 중에 몇 명은 이 과정으로 옮겨 가려고 시험을 보았단다. 나에게도 같이 옮겨 가자고 하는데 나는 한달만 남은 상황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하기가 귀찮아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홍보 내용을 들어보니까 재밌을 것 같다.

'제니스'가 이 과정으로 옮기지 않더라도 시험을 보는 것은 좋은 경험일 것 같다고 한다. 그렇지. 공짜로 보는 시험인데 좋은 공부 기회가 될 것 같다. 나도 일단 시험은 보기로 하고 2층 데스크에 가서 신청을 했다. 이메일로 온라인 시험 링크가 보내졌고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집에 가서 볼 예정이다. 떨어질 것을 예상하지만 재밌는 도전을 해보자. 무모한 도전은 나의 특기가 아니던가?

회화 시간에는 '안젤라'가 학생들에게 내일부터 자신과 1대1 인터뷰를 할 것인데 시험이라고 한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대화하듯이 하면 된단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그게 시험이라는 말을 들은 이상, 평소의 대화가 될 수는 없다. 인터뷰 질문 리스트를 나눠주고는 그룹별로 연습하란다. 한명씩 말하기를 하는데 1분~1분30초 동안 말하기를 하란다. 팀원들이 시간을 재어주고 말이 멈추거나 머뭇거리면 질문도 하고 용기도 주란다.

막 대화를 시작하려는 순간,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 전에도 한번 그냥 울리다가 그친 적이 있어서 다들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문 가까운 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서 밖을 확인해보았다. 그때 2층에서 직원들이 올라와서 다들 대피하란다. 모두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직원들은 화장실에 있는 학생들까지 찾아서 나가라고 지시하고 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까 교사들이 자신 교실의 학생들을 불러 모은다. 학생들의 안전은 교사의 몫이므로 안전하게 대피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사이 우리 교실의 재빠른 학생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왔다. 이 건물의 7층 사무실에서 불이 났단다. 뭐? 정말?

곧이어 소방차가 도착했다. 우리 교실 학생들은, 아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뭔가 신났다. 소방차도 신기하고 이런 상황도 신기해 한다. 구급차가 오지 않는 걸보니 누가 다친 것은 아닌 듯하다. 또한 밖에서 화재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걸보니 큰 불은 아닌가 보다. 그 와중에 우리 교사 '안젤라'와 발랄한 학생들 몇 명은 소방관들이 잘생겼다면서 사진을 찍고 난리다. 우리가 잘생긴 소방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자신을 찍는 줄 알고 폼을 잡고 서 있다. 다들 비키라고 소리치자 교장은 머쓱해 하면서 비켜섰다. 너무 웃긴 상황이다. 근데 소방관들이 정말 잘생기긴 했다. '안젤라'는 어느 지역이나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잘생겼다면서 너무 즐거워 한다. 학생들도 그말에 동조하면서 다들 정말 신났다.

잠시 후 화재가 정리되었다면서 모두 교실로 돌아가란다. 의외로 빠르게 상황 정리가 되고 금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을 되찾는다. 또다시 우리의 재빠른 학생들이 알아온 바로는 7층 사무실의 전자렌지에서 누전으로 연기가 났는데 다행히 큰 불로 번지지 않고 마무리 되었단다.

우리 회화 수업도 교실로 돌아와서 그룹 활동을 마저 했다. 그런데 '안젤라'가 갑자기 다들 주목하란다.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소식이 있단다. 그녀는 우리 교실의 학생들을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한 멕시코 학생이 아주 중요한 경험을 했단다. 바로 첫 키스를 했단다. 뭐라고? 다들 놀라면서 축하해준다. '안젤라'가 디테일을 말하라고 한다. 어디서, 언제 등등. 그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약간 신난 것 같다. 2주일 전에 잉베(잉글리쉬 베이 비치)에서 학원 친구들과 파티를 했단다. 춤도 추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그녀와 키스를 했단다. '안젤라'는 그래서 너의 감정은 어땠는지, 그녀와 다시 또 만났는지, 부모님에게 말했는지 등을 묻는다. 그리고는 이 행복한 기억을 잘 간직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이런 것까지 공유한다는 사실이, 이제 이 교실에서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칠레 친구의 가족사, 한국 친구의 엄마와의 갈등도 모두 다같이 공유했다. 정말 가족같구나. 그래서 분위기가 서로서로 걱정해주고 서로서로 격려해준다. 우리 회화 교실은 보강 교사들이 서로 들어오려고 한다고 들었다. 학생들이 발랄하고 수업 분위기가 긍정적이라서 그렇단다. 얘기 들어 보니까 어떤 교실은 학생들이 아무도 말을 하지 않거나 좀 불량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도 한단다. 내가 그런 교실에 속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extra 수업까지 듣고 도서관에서 '제니스'와 함께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화재 대피도 하고 친구의 첫키스 경험도 듣고 재밌는 하루였다. 불이 크게 나지 않고 다친 사람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어린 친구의 첫 키스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런 소중한 기억이 하나씩 쌓이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2023.10.25. 수요일 [자본주의의 병폐]

갑자기 확 추워졌다. 오늘 아침 기온은 3도 정도되는데 거의 겨울이다. 아직 롱패딩을 입을 시기는 아니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추워지면 드디어 롱패딩을 개시해야 할 것 같다.

문법 수업은 어제에 이어서 동명사와 부정사를 배웠다. '마사'가 나눠준 리스트를 참고하면서 푸니까 그런대로 풀만하다. 다만 그 리스트가 없으면 굉장히 어렵다. 어떻게든 문장을 자주 봐서 익숙해져야 한다. 오늘 '마사'는 학생들을 잘 살피고 골고루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우리가 연습문제를 푸는 사이에 어제 결석한 학생에게 따로 동명사와 부정사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나는 그녀의 변화가 무척 반갑다. 교사로서 이제 그녀도 한층 성장한 것 같다.

연습문제 풀기를 마치고는 지난번처럼 온라인 퀴즈를 풀자고 한다. 다들 좋아라 한다. 나를 비롯한 나이든 학생들은 의자를 앞쪽으로 가지고 나와서 앉았다. 나는 첫번째 게임은 초반에 잘 따라가다가 후반에 많이 틀렸다. 뒤로 갈수록 어려워졌다. 시간이 좀 남으니까 '마사'는 두번째 게임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게 엄청 어렵고 헛갈리는 내용이다. 문제 2개를 풀 때까지 모든 학생이 전멸해서 전원 0점을 기록했다. '마사'가 놀라면서 너무 어려운 것을 골랐나보다 하고 다른 것으로 바꿀까 하는데 학생들이 그냥 계속하자고 했다. 다들 승부근성이 불타올랐다. 결국 세번째 문제부터 1명, 2명 맞추기 시작해서 겨우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점수 중에서 가장 낮은 점수로 게임 종료되었지만 다들 재밌게 참여했다.

듣기 수업은 문제를 풀었는데 망했다. 방송을 듣고 주어진 문장이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를 판단하는 문제였다. 나는 주어진 문장의 앞부분만 보고 판단해서 엄청 많이 틀렸다. 듣기 내용도 무척 어려웠지만 더 큰 문제는 덜렁댐이다. 제발 문장을 끝까지 듣고 읽자.

읽기와 쓰기 수업은 쓰기 시험을 보았다. 나는 어제 주제 하나를 선택해서 미리 내용을 구상해 두었다. 다만 이것을 내 힘으로 영작하려니까 무척 어렵다. 결국 스펠링은 엉망진창, 문법은 오류투성이의 글을 작성했다. 그런데 엉터리 영어인데도 할말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했다. 이건 무슨 현상이지? 아는 단어도 별로 없고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쓰기도 어려운데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결국 시간을 꽉 채워서 겨우겨우 제출했다.

점심 시간은 학생 라운지가 많이 한산해졌다. 많은 학생들이 떠나서 학원이 붐비지 않는다. 덕분에 여유롭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전에는 자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빈자리를 찾아다녀야 했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 뭔가 시끌벅적 재밌었는데 지금은 썰렁한 느낌이다. 내 마음이 그런걸까?

회화 수업은 어제에 이어서 '안젤라'가 나눠준 인터뷰 질문들을 그룹별로 연습했다. 내일은 이 질문들 중에 몇 가지를 교사와 단독으로 인터뷰해야 한다. 나는 쪼가리 문장으로, 한정된 단어로 표현해야 해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래도 요즘은 몸짓으로 말하기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내일 인터뷰를 잘하고 싶다.

extra 수업은 문법 공부를 했다. '루이스'는 단순과거, 과거진행, 단순현재, 현재진행을 설명해 주었다. 대충 아는 내용들이라서 여유있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extra 수업이 끝나고 나서 2층 데스크로 가서 '마리아나'가 왜 계속 안오는지 물었다. 직원은 그녀가 휴가를 갔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 오는지 물었더니 왜 질문하냐고 되묻는다. 왜냐하면 extra 수업에 오는 모든 학생들이 나에게 '마리아나'가 왜 안오는지 물어보기 때문이다. 직원은 자기도 교사 스케쥴을 정확히 모르는데 내일 다시 오면 알아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지금 보강 교사 '루이스'가 나쁘지는 않지만 다들 '마리아나'를 그리워한다. 나도 그녀가 그립다.

학원을 마치고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익숙해진 친구들과는 농담도 하면서 재밌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그룹에서는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들과 함께 앉아서 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먹다, 먹이, 먹기, 먹는 것의 발음과 의미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제법 난이도가 있는 내용인데 열심히 공부하는 외국인들이라서 잘 이해한다. 그들은 한국말로 질문하고 나와 한국 친구가 영어로 설명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언어교환이다.

오늘도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서 좋았다. BC(밴쿠버가 속한 주)의 산업 순위에 대해 들었는데 1위가 농장, 2위가 영화, 3위가 마리화나, 4위가 관광이란다. 마리화나 사업이 3위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것을 합법화한 것에 대해 많은 캐나다 사람들이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엄청난 수입원이기 때문에 BC주에서 이 정책을 바꾸지 않는 것이란다. 결국은 돈이 문제인 것이다.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 캐나다가 다문화 국가로 개방적이라서 좋지만 결국 여기도 자본주의의 병폐를 앓고 있는 곳이다. 돈 없이 살기 어렵지만 돈 때문에 인간이 망가지는 것은 나쁘다.


2023.10.26. 목요일 [어려운 결정]

문법 수업은 사역 동사와 준사역 동사에 대해 배웠다. 유투브 영상의 문법 설명을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대충 아는 내용들이기도 하거니와 영상 속 교사의 발음과 속도가 적당했기 때문이다. '마사'도 가급적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게 느껴지지만 중간부터는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어렵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마사'의 말에 조금은 귀가 트이는 것 같다.

듣기 수업에서 단어들을 주어진 그림과 매칭시키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림 매칭 활동에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단어보다 그림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끔은 교사도 해당 단어의 그림이 어디 있냐고 물을 정도다. 어떤 그림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출제자가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림을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 내가 요청한대로 화요일 레벨 테스트에 대한 리뷰를 했다. 각자 자기 답안지와 시험지를 받고 그룹별로 토론도 하고 교사에게 질문도 했다. 어떤 문제는 품사 때문에 헛갈린 것도 있고 어떤 문제는 문장 구조가 아주 복잡해서 해석을 잘못한 것도 있다. 그래도 이 수업은 84점으로 나쁜 성적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문법이 제일 점수가 낮다.

밥을 먹고 '제니스'와 함께 문법 복습을 했다. 우리 학원은 1교시 문법, 2교시 듣기, 3교시 읽기와 쓰기, 점심 시간, 4교시 발음, 5교시 회화 수업으로 진행된다. 5시간 수업을 풀 타임으로 듣는 학생도 있고 4시간 수업만 듣는 학생도 있다. 나는 발음 수업을 제외하고 4시간 수업만 듣는다. 그래서 점심시간 후에는 여유롭게 숙제를 하고 나서 5교시 회화 수업에 들어간다. '제니스'도 나와 같은 스케쥴이다.

그런데 오늘 어떤 학생들이 발음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자기네 나라 말로 떠들고 놀다가 교사에게 크게 혼났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음악을 크게 틀어서 교실 수업을 방해한 것, 수업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교사가 꾸짖었다. 한바탕 혼난 학생들이 쭈빗쭈빗 교실로 끌려 들어갔다. 아주 흔한 학교의 풍경이다.

회화 수업은 인터뷰 시험이 있다. '안젤라'는 시험을 보지 않는 나머지 학생들에게 게임을 하라고 했다. 우리는 원카드 게임을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게임을 했으나 점점 열기가 달아올라서 난리가 났다. 아니, 원카드 게임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한두 명의 학생에게 카드가 왕창 몰리기도 하고 서로 우승을 방해하려고 견제하고 난리다. 우리가 너무 신나게 노니까 '안젤라'도 원카드 게임을 이렇게 즐겁게 하는 학생들은 처음 봤다고 했다. 우리 친구들은 다들 귀엽고 발랄하고 흥이 넘쳐서 게임도 재밌게 한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어 '안젤라' 앞에 앉았다. 질문은 이미 다 아는 것들이다. 캐나다와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 말하란다. 우선은 가볍게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아침을 안 먹는데 여기서는 먹는다. 나는 항상 배가 고프다. 영어를 배우고 말하는 것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또 다른 점은 나의 원래 성격은 수줍음이 많고 남들에게 말을 안하는 성격인데 여기 와서는 낯선 사람과도 열심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MeetUp 모임에 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한참 떠들어댄다. 신기한 일이다.

'안젤라'는 해외 생활이 너의 원래 성격이 나오도록 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다들 내가 해외 여행도 많이 다니고 친구도 워낙 많아서 내 성격이 외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아니다. 나는 극히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직업과 상황이 나의 성격을 조금씩 바꾸어 왔다. 게다가 지금 여기에 와서는 완전히 나대는 성격이 되어 버렸다. 어린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게임에도 참여하고 같이 놀러다니고 있다. 정말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안젤라'는 나의 말에서 습관적으로 뒤바꾸어 말하는 문법과 자주 틀리는 발음을 교정해주었다. 주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틀리는 내용이란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주 유창하게 잘 말하고 시제도 제법 정확하게 사용했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게임에 참여해서 신나게 놀았다.

오늘 extra 수업에는 나와 한국 학생 '은남' 뿐이다. 다들 '마리아나'가 오지 않아서 실망했나 보다. 덕분에 거의 개인 과외 받듯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관용어구는 낯선 것이 많아서 좀 어려웠지만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즐거웠다.

오늘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집으로 바로 왔다. 이유는 '디지털 마케팅' 프로그램의 인터뷰 일정 때문이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 '디지털 마케팅' 과정에 대한 홍보가 있어서 호기심으로 시험을 신청했었다. 어제 1차로 온라인 시험을 봤는데 문법, 읽기 등의 구성된 시험이었다. 내가 듣는 ESL과정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라서 솔직히 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본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메일을 확인해보니까 1차 시험에 통과를 했다고 2차 인터뷰를 보란다. 헉! 뭐라고? 갑자기 뭔가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디지털 마케팅' 과정은 원래 코업이라고 해서 취업에 연결된 장기 프로그램이다. 다만 이 과정은 모듈 형식으로 해서 한달만 들을 수도 있단다. 이 과정을 들을 생각은? 새로운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 어떨까 생각도 들지만 이 과정이 내 영어 공부의 목적에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일단 집에 와서 노트북으로 메일의 링크를 확인해 보았다. 온라인 인터뷰를 신청해야 하는데 시간 약속을 잡아야 한단다. 그런데 이번 주는 시간이 모두 찼다. 나는 아무래도 너무 늦게 시험을 봐서 그런지 일정이 맞지 않는다. 일단 메일로 인터뷰 가능 날짜가 맞지 않는 상황을 알렸다. 어차피 인터뷰 날짜도 맞지 않으니까 그냥 관두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이 과정에 도전하지 않으려는 것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은 아닌지. 그런 점도 조금은 있다. 레벨 업을 해서 한달이 지나면서 겨우 안정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면 또다시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디지털 마케팅'은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 분야다. 취업할 것도 아닌데 이쪽 공부가 필요할까? 이것은 코업 과정이라 취업과 연결지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여기서 더 오래 생활할 수도 있다. 즉, 비자를 갈아타는 것이다. 그건 매력적이다. 하지만 일을 다시 시작한다고? 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데? 아휴! 이것저것 너무 많이 생각했더니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프로그램을 옮겨가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취업이 아니다. 일단 지금 과정을 잘 마무리하고 훗날 내가 또 해외 생활을 하고 싶을 때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집중하고 지금 나가고 있는 모임에서 더 열심히 활동하자. 남은 기간 동안 마무리를 잘 짓기로 결심했다.


2023.10.27. 금요일 [응급 처치]

문법 수업은 동명사와 부정사, 사역동사와 준사역동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습문제를 풀었다. 안그래도 어려운 두 분야를 합쳐 놓으니까 더욱더 어렵다. 하지만 너무 겁먹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문제를 풀었다. 옆 짝꿍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문제를 푸니까 그럭저럭 답을 적을 수 있었다. 역시 함께 공부하는게 중요하다. 몇 문제는 교사의 설명을 들어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표시해두었다가 나중에 따로 복습하거나 질문해야겠다.

듣기 수업은 게임을 했다. 할로윈에 관련된 소리를 듣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 맞추는 게임인데 재밌다. 오래된 문을 여는 삐끄덕 거리는 소리, 무거운 발걸음 소리, 박쥐 소리, 까마귀 소리 등이 제시되었다. 다음은 할로윈 코스튬을 찾는 게임을 했다. 제일 늦게 찾은 학생들은 벌칙으로 복도에서 좀비가 되어 걷기로 했다. 결국 두 명의 학생이 걸려서 벌칙을 수행했다. 벌칙을 수행하는 학생들도, 그것을 지켜보는 학생들도 다들 즐거워했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이번 달의 공식적인 마지막 수업이라서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나눠주었다. 우리 그룹의 귀여운 학생들이 두 명이나 졸업이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이번달의 성적표도 받았다. 나는 역시 문법은 말아먹었고 나머지는 그래도 선방했다.

읽기와 쓰기 수업이 끝나고 나서 떠나는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포옹도 나눈 후에 겨우 교실을 빠져 나왔다. 서둘러서 2층의 데스크로 갔다. 왜냐하면 어제 이메일을 받았는데 내가 '이달의 학생'으로 추천받았으므로 상을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어머나 이게 웬일?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상을 외국에 나와서 받게 되다니 놀랍다. 조금 늦게 갔더니 벌써 몇 명의 학생들이 상을 받고 사진을 찍으려던 참이다. 나를 알아본 친구가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총 8명의 학생이 상을 받았다. 교사들이 추천해서 상을 받는 거란다. 누가 나를? 가문의 영광이다. 지나가던 친구들이 나를 보고는 달려와서 축하해주었다.

'제니스'와 밥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파트타임 일을 하느라 학원을 떠난 '젠'이 잠깐 학원에 들렀다. 오늘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뭔가 고치느라고 늦게 오라고 했단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최근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젠'은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지만 지금은 여기서 좀더 오래 일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궁리 중이란다. 그녀는 이곳이 생활비가 비싸지만 대신 레스토랑에서 버는 돈이 꽤 많아서 여기서 몇 년 더 일하면서 영어를 좀더 확실하게 익히고 싶단다. '제니스'도 비슷한 생각이라서 그녀들은 한참 자신의 미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응원해주었다.

오늘 오후에는 신청자에 한해서 특별 보충수업을 한다. 보통은 회화 수업을 두 가지 레벨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오늘은 좀더 특별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바로 새로운 교재로 진행하는 시범수업이다. 나의 문법 교사 '마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나의 회화 교사 '안젤라'가 보조한다. 시작할 때는 교재 개발자들과 학원 이사진들도 참관을 하다가 나갔다. '안젤라'는 나에게 눈을 찡끗하면서 잘 왔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와서 살짝 귓속말로 이따가 의견을 많이 말해달란다. 내 짧은 영어로 잘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마.

새로운 교재 중에서 중간 레벨의 단원을 선택해서 수업을 시작했다. 교재의 구성은 단어, 문법, 회화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가 영화에 대한 것이라서 단어는 비교적 쉬웠다. 다만 참여한 학생들 중에 우리 문법 교실의 잘하는 학생 둘이 있는데 그들이 너무 많이 대답을 하는 바람에 나머지 학생들은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마사'는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대화의 주도권을 그 둘이 가져가는 바람에 다른 학생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단어의 의미를 배운 후에는 학생들은 휴대폰으로 교재 어플을 다운 받아서 연습 문제를 풀었다.

다음은 문법 부분을 학습할 순서가 되었는데 '마사'와 '안젤라'가 잠시 멈추고 의논을 한다. 문법 내용은 현재 완료 진행인데 여기 학생들 중에 이 내용을 아직 배우지 않은 학생들이 있단다. 그래서 짧게 시제에 대해 정리해서 알려준 후에 교재의 내용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빠른 속도로 시제에 대해 설명을 한 후에 다시 시범 수업이 시작되었다. '마사'가 교재에 따라 문법을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그리고 다같이 화면을 보면서 연습문제를 함께 풀었다. 이번에도 잘하는 학생 둘이 주도적으로 대답을 했다. '마사'는 안되겠다 싶은지 그들에게 잠시 자제하도록 하고는 다른 학생들에게 답을 하도록 유도했다. 이번 기회에 '마사'가 우리 문법 수업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것 같다.

문법 연습문제 풀기가 끝난 후에는 회화 연습을 잠깐 했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어서 회화 연습은 맛만 보고 말았다. 10분 정도 남기고는 학생들에게 이 교재에 대한 소감을 들었다. 학생들 의견을 다양했다. 휴대폰으로 문제를 풀어서 재밌다는 의견, 화면이 작아서 불편했다는 의견, 단어와 문법을 함께 배워서 흥미로웠다는 의견, 문법이 어려워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안젤라'가 나에게 의견을 구했다. 나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 휴대폰이나 화면을 보면서 문제를 풀다보니까 학생들 간의 토의하는 활동이 없었다. 우리는 그룹이나 파트너와 토의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았는데 오늘 수업에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둘째, 교재에 나온 문법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간단하고 연습문제도 너무 적어서 확실하게 문법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아까 설명을 들어서 이해했지만 그런 공부가 없었다면 이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나쁜 점만 얘기하지는 않았다. 토픽이 흥미로웠고 단어와 연결된 여러 활동이 이어져서 그런 점은 재미있었다는 칭찬도 해주었다.

수업이 끝난 후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저번에 '조프리 레이크'에 함께 갔던 친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길래 그 자리에 합류했다. 그 자리에 처음 온 한국 학생이 있었는데 영화를 전공했단다. 다들 신나게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선호하는 영화 장르부터 제일 인상깊었던 영화, 영화 음악, 영화 산업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2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신나게 떠들었다.

영어 회화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와서 복습을 좀 하고 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메기'가 급히 나를 불렀다. 나가보니까 그녀가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다. 야채를 써는 도구를 이용해서 감자를 썰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많이 심각한 것은 아니고 손가락 끝 부분에 살점이 약간 떨어져 나가서 피가 나고 있었다. 피를 보고 많이 놀랐는지 가엾게도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선 '메기'를 식탁에 앉히고 나의 구급 상자를 찾아서 연고와 밴드를 가져와서 응급 처치를 했다. 그리고 피를 멈추게 하려고 꾸욱 눌러 지압을 했다. 그러면서 걱정하지마, 피가 금방 멈출거야하면서 안심시켜 주었다. 두어번 밴드를 갈면서 지압을 계속했다. '메기'도 자신의 구급상자에서 연고와 밴드를 꺼냈다. 아무래도 사용하던 익숙한 것들이 그녀에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것들로 바꾸어서 계속 지압을 했다.

지압을 하는 동안 나는 일부러 신경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오늘 학원에서 상을 받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메기'는 매우 기뻐하면서 축하해주었다. '메기'에게 너는 오늘 학원에서 뭐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오늘 학원에서 실습한 메이크업 사진을 보여주면서 각 세대별로 다른 스타일의 메이크업에 대해 설명을 했다. 확실히 자신의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신나 보인다. 한참 수다를 떨면서 손을 잡고 지압을 하고 나니까 서서히 피가 멈추었다.

그 사이 '메기'의 엄마가 전화를 했고 그들은 스피커폰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략적으로 알아들은 바로는 메신저로 다쳤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어서 내가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직접 목소리를 들으려고 전화한 것이다. '메기'는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다. '메기'의 엄마는 지금은 어떤지 묻고는 나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잠시 더 메이크업에 대한 수다를 떨고는 밴드를 바꾸어 주고는 내일 아침에 한번 더 밴드를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메기'에게 이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게 좋으니까 오늘은 요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저녁을 아직 먹지 않아서 내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메기'는 나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서 잠시 뭘 먹을까 고민을 하더니 오트밀을 만드는 것이 가장 간단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오트밀을 먹고 나는 전에 사둔 빵을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에게 혹시 밤에 손이 아프거나 열이 나는 것 같으면 바로 내 방을 노크하라고 말해 주었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별일은 없는 듯하다. 오늘도 참으로 다양한 일을 경험했구나. 학원에서 상을 받았고, 새로운 교재의 시범 수업에 참여했고, 영어회화 모임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났고, 옆방 친구가 다쳐서 도와주었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 와서는 하루하루 매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23.10.28. 토요일 [불면증]

늦잠을 자고 슬슬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메기'도 일어났다. 어제 다친 손가락은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괜챦단다. 밴드를 떼어서 보니까 살점이 조금 파였지만 피는 멈추었고 이제 덧나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나는 절대로 물에 닿지 않게 하라고 했다. '메기'는 다시 명랑한 소녀로 돌아와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다행이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서 아마존 쇼핑을 했다. 이곳에서의 공부 후에 이어질 쿠바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주문했다. 그리고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이 모임에서는 번호가 적힌 스틱을 뽑아서 해당 번호가 적힌 테이블에 가서 20분 정도 수다를 떤다. 그리고 다시 스틱을 뽑아서 다른 테이블에 가서 수다를 떤다. 이런 식으로 5번 정도 테이블을 돌면 2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오늘의 스틱은 칼라풀하다. 집행부에서 예쁘게 만들었단다.

오늘도 영어공부에 대한 이야기부터 영화, 한국 드라마 등을 이야기했다. 어떤 테이블에서는 멕시코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자신이 즐기는 사무라이 게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멕시코 사람은 사무라이에 대해 아주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일본 사람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은 오히려 사무라이에 대해 잘 모른다. 가끔은 그렇다.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면 외국 사람보다 더 모를 수 있다. 어떤 테이블에서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인도 사람이 나에게 한국 드라마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나 내가 잘 몰라서 한국 드라마 매니아인 필리핀 친구가 대신 답을 해주었다.

'제니스'도 이 모임에 와서 여러 테이블을 다니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 그래. 우리는 열심히 영어 훈련을 해야 한다. 특히 '제니스'는 여기서 대학에 다니면서 유치원교사 과정을 들어야 하므로 더더욱 실전 훈련이 중요하다. 2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나서 우리는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메기'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 어쩌다 보니까 미술 이야기가 나왔는데 '메기'가 painter와 drawer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불면증 이야기도 나왔는데 '메기'는 가끔 불면증으로 새벽까지 잠을 못잘 때도 있단다. 그럴 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팬픽 소설을 읽거나 유투브를 본단다. 반면 자신의 아빠와 동생은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지 잘 잔단다.

내일 우리 기숙사 친구들이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니까 '제니스'가 자신도 함께 하고 싶단다.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음식을 포장해와서 집에서 먹으려고 한다니까 '제니스'가 자신이 배달시키는 앱을 깔았는데 첫번째 주문은 배달비가 무료라면서 그것을 이용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함께 맛집에 대해 열심히 검색했다. 무슨 시험공부하듯이 다들 꼼꼼히 리뷰를 확인하면서 맛집을 찾았다.

'제니스'가 가고 나서 '메기'는 어제 손가락까지 다쳐가면서 준비한 감자요리를 시작했다. '메기'의 감자요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감자를 참기름에 볶다가 소금과 매운고추기름을 넣고 좀더 볶고 나서 거기에 치즈소스를 넣고 졸이면 끝이다. 여기서 치트키는 매운고추기름이다. 그것이 없다면 느끼할 것이다. '메기'가 맛보라고 해서 먹어봤는데 넘넘 맛있다. 딱 맥주 안주다. 나는 나대로 냉장고를 정리할 겸 남은 것을 때려넣고 볶아서 식사를 준비했다. '메기'에게 맛보게 하고 싶었으나 중간에 고추장과 된장을 넣었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요리를 먹으면서 조금 더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녀에게 카모마일티가 불면증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카모마일티에다가 설탕을 타서 먹어봐야겠단다. '메기'는 단 것을 좋아한다. 그래. 아마 그래도 될 거야. 내일 마켓에 가서 카모마일티를 사와야겠다.


2023.10.29. 일요일 [친구들과의 점심]

오늘 일정은 친구들과 점심 먹는 것뿐이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쿠바 여행 일정을 짰다. 쿠바의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해서 시외버스표와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그 출력물을 가지고 갈 예정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 계획은 즐겁다. 신나게 검색하고 또 검색하면서 벌써 마음은 쿠바에 가 있다.

'은남'이 카톡으로 오늘 잠깐 들러서 김치를 주고 가겠단다. 그녀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귀한 젓갈과 재료들로 김치를 만들었는데 나에게 좀 나눠주겠단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이 친구는 저번에도 맛있는 깍두기를 주었다.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망설였지만 이곳에서 집에서 담근 김치를 먹는 것은 아주 귀한 일이므로 넙죽 받았다. 그러고 보니까 초기에도 또다른 한국 친구가 담근 김치를 주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김치를 받아서 올라오는데 벌써 침이 고인다. 들어오자마자 김치를 썰어서 소분했다. '제니스'가 한국음식을 매우 좋아해서 나눠줄 몫을 조금 덜어두었다.

점심에 친구들과의 만찬을 위해 쌀국수볶음, 해산물볶음밥, 닭과 야채 볶음을 시켰다. 국물 요리는 '제니스'가 닭고기 스프를 만들어오기로 해서 우리의 선택에서 제외시켰다. 모든 음식들을 식탁 위에 펼쳐 놓으니까 아주 근사하다. 보기에만 근사한 것이 아니라 맛도 근사했다. 미국, 일본, 대만, 한국 사람이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풍경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음식 이야기부터 각자 공부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카나'는 어제 다녀온 '조프리 레이크' 여행 사진을 보여주었다. '메기'는 아마존에서 많은 것을 주문하는데 학생 회원으로 가입해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물건을 산다는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다들 아마존 어플을 열고 어떻게 자신도 학생 회원으로 바꿀지 찾아보기도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학교 혹은 학원의 어떤 서류가 필요한가보다. '제니스'가 내일 학원에 가서 알아보겠단다. 그녀는 여기서 장기간 살아야 하므로 학생 회원으로 바꾸면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거의 두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면서 밥을 먹고 나서 '카나'는 볼일을 보러 나가고 '메기'는 낮잠을 자러 방에 들어갔다. '제니스'는 우리집에서 좀더 공부하다가 가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쿠바 여행의 예약을 마무리짓고 필요한 예약 확인증을 다운받아 정리했다. '제니스'가 지금 공부하는 것은 IELTS라는 시험인데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업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딱 보기에도 꽤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제니스'는 이곳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고 싶어 하므로 이 시험을 봐야만 한단다. 아직은 도전하기에 어렵지만 학원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나면 가능하지 않을까?

'제니스'에게 한국친구가 준 김치를 조금 나누어 주었다. 그녀가 너무 좋아한다. 그녀는 한국의 알싸한 매운 맛이 좋단다. 게다가 이 김치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더 좋아라 한다. 친구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 '제니스'가 가고 난 후 내일 학원에 가서 공부할 내용을 좀 들여다보았다. 내일부터는 다들 새로운 단원을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떠나는 그 주가 11월달의 마지막 주간이다. 떠나기 전까지 시험을 보고 마지막 날에는 성적표를 받아들겠구나. 그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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