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랑 베프 되기
2023.10.30. 월요일 [신나는 이벤트들]
오늘은 새로운 클래스가 시작되는 날이다. 친구들 중 일부가 레벨 업이 되어 나의 문법 수업 교실로 왔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사'는 11월 7일에 중간 퀴즈, 11월 20일에 레벨 테스트가 있다고 일정을 알려주었다. 내가 떠나는 그 주가 테스트 주간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시험을 보고 떠난다.
오늘은 구동사를 배웠다. 엄청나게 많은 구동사가 있는데 그 중에서 100개를 추려서 공부하라고 나눠주었다. '마사'는 이걸 다 외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신들도 그냥 직감으로 알 뿐, 무슨 규칙이 있거나 암기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란다. 그냥 많이 읽고 듣고 하면서 익히란다. 그리고는 100개의 구동사의 의미를 내일까지 찾아오란다. 숙제란다. 허걱! 100개나 되는데?
듣기 수업도 새로운 클래스가 시작되어 신입생들이 몇 명 들어왔다. 서로 이름과 국적을 말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새로운 단원을 시작했는데 주제는 학교다. ‘안드레아‘는 각 나라마다 학교를 몇 년씩 다니는지 물었다. 대부분 초등학교는 6년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3년씩 나누어진 나라도 있고 그냥 쭈욱 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6년을 다니는 나라도 있단다. 공통점은 모두 합치면 12년 과정이라는 것이다. 학교 제도가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라 비슷비슷하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교실과 교사가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민'이 다른 코스를 맡게 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교실을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교사 '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하는 것도 웅얼거리고 가르치는 것도 너무 어설프다. 학생들이 다들 싫어하는 눈치다. 그동안 나는 운이 좋아서 잘 가르치는 교사들을 만났던 것 같다. 에휴. 막판에 그 운빨이 떨어졌나보다.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제니스'와 함께 밴브릿지의 사무실로 향했다. '제니스'가 요며칠 계속해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다. '제니스'의 대만 유학원은 질문을 하면 그냥 간단한 답만 줄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제니스'는 이곳에 올 때도 숙소부터 시작해서 은행계좌까지 전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했다면서 자신의 유학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나의 유학원을 신뢰하냐고 물었다. 나는 100% 신뢰하지. 내가 밴브릿지에서 기숙사를 잡아준 것부터 은행계좌, 캐나다전화개통까지 모두 해주었다고 자랑하니까 '제니스'가 엄청 부러워하면서 혹시 자신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 글쎄. 가능할까 싶어서 테드님에게 대만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지 카톡으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도와줄 수 있다면서 상담해줄테니까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제니스'를 테드님에게 소개해주고 나서 회화수업을 들으러 학원으로 돌아왔다. 부디 '제니스'가 유익한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회화 수업에도 새로운 학생들이 합류했다. 우리는 내일 있을 할로윈 게임을 함께 준비했다. 전에 의논한대로 촛불을 불어서 끄고 마지막 촛불의 위치에 있는 두 개의 상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게임을 준비했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개의 상자 중에 하나는 좋은 선물이, 하나는 나쁜 선물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 룰을 안내하는 팀, 상자(종이봉투)를 꾸미는 팀, 선물을 포장하는 팀 등으로 역할분담을 했다. 나는 상자를 꾸미는 역할을 맡았는데 거기에 할로윈의 대표적 상징물인 잭 오 랜턴(호박 랜턴)을 그렸다. 호박 랜턴을 다양한 모습으로 그렸는데 그림 그리기는 늘 재밌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어느 정도 간격으로 놓아야 할지 실험해 보았다. 우리는 적당하게 어려운 간격을 찾느라고 아주 신중을 기했다. 다들 신나게 준비를 했다. '안젤라'는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장담을 한다. 가장 재밌는 게임을 만든 교실은 피자를 받는단다. 다들 승부욕에 불타오른다. 역시 우리 회화수업 학생들과 교사는 승부욕이 강하다.
수업이 끝나고 보통 때라면 extra 수업을 듣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할로윈 이벤트 중 하나인 호박 조각(잭 오 랜턴 만들기)에 참여했다. 4명이 팀을 이루어 신청할 수 있는데 우리는 한국 친구들과 대만 친구가 한팀을 이루었다. 우리의 팀명은 TaKo 타코. 뜻은 Taiwan 대만의 Ta, Korea 한국의 Ko를 합친 것이다. 다들 이 이름을 좋아했다.
호박 조각의 사진들을 검색해서 하나를 선택하고는 조각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컨셉은 호박 부엉이다. 호박이 생각보다 크고 두꺼워서 조각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재밌었다. 뭔가 이것저것 꾸미는 것도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의 호박 부엉이에게 귀도 만들어주고 손과 발도 만들어 주었다. 나름 무척 귀엽게 꾸몄다. 다들 제각각 재밌는 호박 조각을 만들었다. 우리처럼 귀여운 것도 있고 할로윈답게 무시무시한 것들도 있다. 내일 12시에 2층에서 각 조각에 대해 투표를 해서 순위를 정한단다. 내일 점심시간에 2층은 난리가 나겠군.
한바탕 호박 조각을 한 후에 '제니스'와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제니스'는 밴브릿지에서 많은 정보와 조언을 해주어서 너무 행복하단다. 그동안 알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었단다. 그러면서 밴브릿지처럼 좋은 유학원이 있어서 한국 학생들은 너무 좋겠단다.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니까 나도 행복하고 또 뭔가 되게 뿌듯하다. 밴브릿지의 테드님은 역시 짱이다.
도서관에서 우리는 문법 숙제인 100개의 구동사의 의미를 열심히 찾았다. 처음에는 영어로 그 의미와 예시문을 쓰는 작업을 했는데 너무 많아서 결국 그 방식은 포기했다. 그냥 간단하게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단어만 메모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밴쿠버 미스테리 어드벤처 게임'에 참가할 것이다. 마침 그 게임의 모임 장소가 도서관 옆 건물이라서 그들과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게임은 밴쿠버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단서를 찾아서 퀴즈나 수수께끼를 푸는 게임이다. 특히 할로윈에 맞추어서 미스테리 귀신을 찾는 내용으로 진행된단다. 이런 종류의 게임은 처음 참여해본다. 정말 이곳에 와서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까 총 4팀이 참가했다. 대부분 서양사람들이고 동양인은 우리 그룹뿐이다. 진행자가 각 그룹에게 힌트가 되거나 문제를 풀 때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 있는 가방과 지도, 수수께끼 노트를 준다. 수수께끼를 풀고 2시간 내에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한단다. 지도를 보고 첫번째 장소에 가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다. 영어로 되어 있는 수수께끼라 우리에게는 더 어렵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엽서의 힌트와 주변 지형지물에 대한 수수께끼를 맞추어서 두 개를 합쳐서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한다. 한참 헤매었지만 결국은 답을 찾아냈다. 보아하니까 다른 팀들도 우리처럼 첫 문제는 우왕좌왕했다.
조금은 요령을 터득해서 다음 장소로 가면서 미리 수수께끼 노트의 힌트들을 살펴보았다. 근처의 오래된 시계탑을 찾아서 그 앞의 안내문에서 답을 찾아내었다. 그밖에 시내의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면서 문제를 풀었다. 숫자를 조합해서 주소지를 찾아서 건물 이름을 찾기도 하고 건물의 외벽에 있는 그림와 일치하지 않는 카드를 찾는 것도 있었다. 어떤 것은 살짝 트릭으로 이미 제공된 가방 안에 있는 물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익숙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푸니까 뭔가 더 재밌는 것 같다.
두 시간이 후딱 가서 서둘러서 처음의 모임 장소로 갔다. 우리는 영어를 번역하면서 수수께끼를 풀어야해서 다른 팀보다 더 어려웠다. 결국 우승은 영어를 잘하는 그룹이 차지했다. 우승팀에게는 시내 도보 투어 상품권을 주었다. 우리는 참가상으로 초콜릿을 받았다. 솔직히 나는 우승팀의 시내 도보 투어 상품권보다는 초콜릿이 더 좋다. 이미 이곳 지리를 빠삭하게 아는 나에게 시내 도보 투어는 별로다.
집에 돌아오니 꽤 늦은 시간이다. 숙제도 해야 하고 일기도 써야한다. 오늘도 참 다양하고 재밌는 일들이 많았구나. 처음으로 호박 조각도 해보았고, 시내 어드벤처 게임도 했다. 게다가 내일은 할로윈 게임도 하고 저녁에는 할로윈 파티에도 간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계속 신날 것 같다.
2023.10.31. 화요일 [할로윈 파티]
오늘은 할로윈날이다. 그러나 사실은 10월29일부터 내 마음은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국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어서 일어난 10.29참사. 기능해야 할 당연한 시스템이 그 기능을 상실하면 이런 어이없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더 더욱 화가 난다. 너무 많은 생명이 희생을 당한 시기라서 여기서 내가 할로윈을 이렇게 즐겨도 되는지 요 며칠동안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과 작년의 대참사를 마음 한켠에 두고, 지금 여기서는 여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려고 한다. 이 마음의 빚은 언제가 갚을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문법 수업에는 보강 교사로 '루이스'가 들어왔다. 그는 열심히 가르치긴 하는데 다소 경직되어 있는 사람이다. 오늘도 한 학생의 행동을 제지하였다. 그 학생은 우리 문법 수업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두 명 중 한 명이다. 칠레 학생인데 자신의 모국어로 글을 쓰고 있었나 보다. '루이스'가 그 행동을 중지시키고 여기는 영어학교니까 영어만 사용하란다. 그 학생은 아직 수업 전이고 자신은 말하기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노트에 글을 적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교사는 학교의 규율은 영어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혹시 모국의 학교 숙제가 있다면 집에서 하라고 한다. 그 학생은 화가 나서 교실 한쪽에 붙어 있는 학교 규율 게시물을 꼼꼼히 훑어본다. 쓰기와 말하기를 딱히 구별한 규율이 아니라서 더 이상 항의하기에는 애매한가 보다. 그 학생은 입이 대빨 나온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교사의 제재가 너무 과하다. 지난 번에 쉬는 시간에 브라질 학생, 일본 학생과 내가 각자 자신의 나라 말로 인사하는 것을 서로 가르쳐주었더니 그때도 오직 영어만 사용하라고 제지했었다. 그는 여기가 영어를 공부하는 현장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외국사람들이 만나고 사귀고 성장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걸 영어로 충고해주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듬더듬해서라도 알려주고 싶다.
듣기 수업의 교실은 할로윈 분위기로 멋지게 꾸며져 있다. 학생들은 서로서로 할로윈 초콜릿을 나누어주면서 인사를 했다. 각양각색의 초콜릿이다. 여기 와서 내 인생에서 그동안 먹었던 초콜릿의 총량을 넘어서는 초콜릿을 먹고 있다. 이러다가 당뇨가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뒤돌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듣기 방송을 듣지 않고 단어와 관용표현의 의미를 배우고 매칭시키는 활동을 했다. 어제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를 틀리고 있다. 나의 영어실력이 후진 중인 것 같다. 안돼!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 읽은 내용을 확인하면서 빈칸 메꾸기를 했는데 엉망진창이다. 정말 내 영어 실력이 퇴보하고 있는 것인가? 영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되겠다. 정신 바짝 차려야해. 내용 확인 후에 이번 주의 주간과제 쓰기 연습을 했다. 나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는데 이 과제의 전제가 재밌다. '전세계가 이상기후와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전세계의 정부는 내일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실제 음식이 아닌 대체식을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 마지막으로 실제 식사를 딱 한번 할 수 있다. 당신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이런 내용이다.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주제는 재밌고 쉽다. 나는 음식 세 가지를 정해서 작문의 틀을 잡았다. 구체적 내용은 내일 작성하기로 했다.
점심 시간에 2층으로 가서 어제의 호박 조각에 대한 투표를 했다. 한팀당 한표씩 행사할 수 있다. 팀원이 모여서 의논해서 자신의 팀을 제외한 팀의 넘버를 적으란다. 우리 팀은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한 팀을 골라서 번호를 써서 제출했다. 그런데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팀이 다 여기에 모인 것이 아니다. 결국 여기에 온 팀들만 투표권을 행사했다. 진행교사가 하나씩 투표번호를 공개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신의 팀 번호를 쓴 그룹이 있다. 웃긴 상황이다.
우리 팀을 포함한 4팀 정도가 표를 하나씩 받았다. 딱 한 팀이 2표를 받았다. 그런데 그 팀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고 없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재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오라니까 왔다가 그냥 간 학생도 있고 투표만 하고 떠난 학생도 있다. 진행자는 당황하더니 지금 남아있는 3팀만으로 투표를 다시 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고 투표 용지를 가지러 간 사이에 또 한 팀이 그냥 가버렸다. 완전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래저래 한 표 차이로 다른 팀이 상을 받았다. 우리팀은 2등 정도 된다. 난 그거라도 만족이다.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시 학생 라운지로 올라와서 밥을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할로윈 코스튬 페스티벌을 한단다. 처음에는 무서운 캐릭터로 분장한 학생들 중에 베스트를 박수로 뽑았다. 그 다음은 독특한 아이디어에 대한 상을 뽑았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정신없이 점심 시간이 지나고 나서 회화 수업 교실로 왔다. 오늘 오후 수업은 할로윈 이벤트로 각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2층으로 내려갔다. 참고로 2층은 영어를 좀 잘하는 학생들이 공부한다.
첫번째 교실은 미스테리 추리교실이다. 교실은 살해 현장이란다. 자신의 책상에 엎드린채 죽어있는 교사의 주변을 둘러보고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용의자들을 인터뷰해서 살인범인을 찾으란다. 영어를 겁나 잘하는 학생들이라 인터뷰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다. 나의 직감으로는 교사의 목 테두리에 목졸린 흔적이 있어서 용의자들의 신발끈을 살펴보았는데 다 정상이다. 그때 '안토'가 어느 용의자의 후드티 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빙고! 그 사람이 범인이었다. 내가 보기에 인터뷰 내용 중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냥 직감으로 맞출 수도 있지 뭐.
두번째 교실은 귀신의 집이다. 5명씩 그룹을 지어서 눈을 가리고 들어간다. 앞서 들어간 학생 그룹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다. 밖에서 기다리는 학생들은 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드디어 우리 그룹 순서가 되었다. 들어가니까 정말 사방이 깜깜하다. 어떻게 이렇게 깜깜하지? 중간중간 스텝들이 뒤에서 밀기도 하고 무섭게 소리도 낸다. 그 와중에 누군가 수수께끼를 내서 우리 그룹 중 한 명이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이끌려 가서 또 다른 퀴즈를 푸고 드디어 풀려났다. 시각이 마비되니까 시간 개념도 흐트러지고 방향감각도 사라진다. 좁은 교실인데 어딘가 엄청 돌아다닌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밖에 몇 개의 교실을 돌고 나서 원래의 우리 교실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 교실의 게임을 준비할 차례다. 책상을 붙이고 촛불을 일렬로 놓고 준비한 선물 가방을 양쪽으로 놓았다. 우리 교실에 놀러온 아래층 교실의 학생들에게 규칙을 설명했다. 다들 촛불 끄기라는 말에는 흥미가 없다가 선물 상자 중 하나는 나쁜 아이템이고 하나는 좋은 것이라니까 그제서야 흥미를 보인다. 그런데 게임이 진행될 때에는 다들 몇 개의 촛불을 끄는가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촛불이 두 개까지는 일반적으로 꺼지는데 이상하게도 세 개째부터는 꺼질듯 하면서도 안꺼진다. 세 번째 촛불은 정말 이상한 촛불이었다. 우리도 의아할 정도다. 그 와중에 네 개를 모두 끈 학생이 있어서 다들 박수를 쳐주었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준비한 베스트 선물은 딱 두 개였는데 네 개를 끈 학생이 딱 두 명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게임을 마치고 나서 교실을 치우고 자리에 앉았다. '안젤라'는 2층에서 경험한 게임 중에 뭐가 좋았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이 게임을 더 발전시킬 아이디어는 없는지 등을 물었다. 서로 몇 가지 의견을 나누고 나서 다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extra 수업을 들으러 갔다. 오늘은 할로윈이라 보충수업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루이스'가 들어왔다. 오늘도 학생은 한국친구 E와 나뿐이다. 거의 개별 강습 받듯이 영어 말하기 연습을 했다. 개별적으로 발음도 교정받고 말투나 끊어 읽기에 대해 교정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교정받으면서 개별 훈련을 할 수 있어서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급한 숙제부터 했다. 저녁에는 할로윈 파티에 갈 것이라 숙제할 시간이 부족하다. '한영언어교환' 모임에서 주최하는 파티다. 약속 장소로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모임의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같은 파티에 가는 길이라 더욱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갔다. 장소는 아주 큰 펍, 맥주집이었다. 음료나 알콜, 음식은 각자 주문하고 그 자리에서 결재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다양한 복장과 분장을 하고 왔다. 나처럼 간단한 머리띠를 한 사람부터 근사한 옷차림, 별난 옷차림 등 다양하다.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에게 쿠바로 언제 출발하냐고 묻는다. 나는 여기에 온 사람 중 절반 정도의 사람들과 알고 지내고 있고 그들 대부분이 내가 쿠바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만큼 여기에 많이 나왔고 그만큼 내가 떠벌리고 다녔다는 얘기다.
밴쿠버 생활에서 학원 다음으로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이 모임이다. 영어도 연습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시내의 길거리에서도 이들과 가끔 마주치게 되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아까 버스에서 만난 것처럼. 정말 내가 이 지역 주민이 된 것 같다. 어떤 외국인 친구가 시내에서 나를 종종 봤단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학원 근처인 것 같다. 이렇게 이들 사이에서 주민처럼 살다가 떠나면 허전할 것 같다.
오늘 내 옆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한국 사람은 여기서 10년 정도 살았단다. 자신은 늘 여기에 있는데 너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왔다가 다시 떠나갔단다. 그래서 그 관계 맺음이 참 허무하고 어렵게 느껴진단다. 완전 공감이다. 나도 학원에서 짧게 짧게 사귄 친구들과의 이별이 늘 마음 한 켠을 텅 비게 만든다. 그게 반복되면 많이 힘들 것 같다.
할로윈 파티는 즐겁고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것이 좋은데 나는 또 왜 깊은 사색에 빠지려는 것일까? 고개를 한번 털고 파티를 즐겼다. 운영진이 사람들 등뒤나 어깨에 카드를 붙여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이마에 붙였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자 휘슬을 불고는 자신의 카드가 붙어있는 테이블로 이동하란다. 자리를 이동해서 좀 더 놀다가 시간이 늦어서 집에 갔다. 숙제를 아직 다 못했다. 일기도 써야한다. 하지만 졸리다. 과연 나는 일기와 숙제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2023.11.01. 수요일 [언제쯤 친해질까?]
문법 수업은 오늘도 구동사를 배웠다. 동사와 전치사 사이에 목적어가 들어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연습 문제를 풀었는데 넘나 어렵다. 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익숙해지라고 하니까 더 난감하다. 아직 영어랑 그만큼 친하지 않다. 언제쯤 영어와 친해질 수 있을까? 과연 친해질 수는 있는 걸까?
연습 문제를 몇 개 풀고 나서 게임을 했다. 게임은 'Things~'라는 것인데 카드를 뒤집어서 거기에 적힌 '~것'에 대해 자신의 답을 종이에 적는 것이다. 질문이 재밌는 것이므로 답도 재밌는 것으로 적으라고 했다. 가령 '버스 안에서 하면 안되는 것'이라면 노래부르기, 걷기 등의 답이 가능한데 좀더 재밌는 답으로 수영하기, 샤워하기 등을 적을 수 있다. '실험하면 안되는 것'에 대해 나는 '새로운 레시피 개발'이라고 썼다. 다들 격하게 공감한다. 정말? 난 농담으로 쓴 건데.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는 어제에 이어서 작문을 완성했다. 나는 마지막 식사라는 주제로 한국 음식 세 가지를 선택했다. 삼겹살, 냉면, 김치찌게. 이건 뭐 거의 외식 코스의 국룰 아닌가? 각 음식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되는 것이라 작문하기가 아주 쉽다.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하여튼간 나는 쓰기 쉬운 주제 찾아내는 것은 참 잘한다.
점심을 먹고 오늘도 '제니스'와 함께 문법 복습에 매진했다. 하나의 구동사가 여러 의미를 가진 경우가 많아서 정리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제니스'는 나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어제도 밴브릿지에 가서 설명을 더 들었고 몇 군데의 학교를 추천받았단다. 게다가 테드님이 해당 학교의 직원과 만날 수 있게 해주어서 추가 설명도 들었단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유치원 교사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에 대해 이제 정확히 이해했단다. 그동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엄청 답답해 했는데 이 친구의 밝고 자신있는 표정을 보니까 내 기분이 너무 좋다. 나는 테드님에게 카톡으로 내 친구를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보냈다.
회화 수업은 오늘부터 새로운 단원을 나간다. 우리는 그룹을 지어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주제는 발명하기다. 실제로 물건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상상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아이디어를 기발하게 내어보란다. 본격적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전에 오늘은 예열하는 활동을 했다. 여러 발명품들이 적힌 리스트를 보고 오래된 것부터 최신 것까지 순서를 의논해서 정해보란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의논했는데 '안젤라'가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토의가 다 끝나고 '안젤라'는 자신이 아주 흥미롭게 지켜본 이유를 말해주었다. 두 그룹의 접근법이 너무 달라서였단다. 우리 그룹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을 떠올리면서 순서를 찾았고 다른 그룹은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하면서 순서를 찾았다. 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구나. 정말 재밌네. 몇 가지 발명품의 순서는 우리의 예상과 달라서 좀 놀랐다. 달력은 예상보다 늦게 발명되었고 컴퓨터는 생각보다 일찍 발명되었단다. 이래저래 또 상식이 많이 생겼다. 이곳에 다니면서 정말 상식이 아주 많아지고 있다. 정말 알쓸신잡이다.
오늘은 문법 extra 수업이 있는 날인데 학생들의 요청에 의해 전치사에 대해 배웠다. 시간이나 장소를 표현할 때 큰 범위는 주로 in, 중간 범위는 주로 on, 작은 범위는 주로 at을 사용한단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쉬웠는데 그밖에도 장소나 움직임에 사용되는 전치사까지 배우니까 은근 많은 단어들이 사용되어서 복잡해졌다. 대체로 아는 단어들이지만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내 문장에 사용하려면 좀더 친해져야 한다. 정말 영어와는 언제쯤 친해지겠니? 보통 5개월 정도 사귀면 엄청 친해져야 하는거 아닌가?
수업이 끝나고 '한영언어교환' 모임 장소로 향했다. 도서관에 들르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모임 장소인 카페에 일찌감치 가서 공부하려고 갔다. 그런데 모임의 주최자가 벌써 와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도 오늘 공부하려고 일찍 왔단다. 그는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다. 우리는 각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우리가 공부하는 사이에 다른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늘 이 모임에 처음 온다는 터키 사람이 합류했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가 너무 좋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 모임에 와본 거란다. 아주 잘 찾아왔다고 말해주었다. 한국의 글자가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진 것 같다고 해서 자음과 모음, 글자의 조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지금은 그냥 즐기면서 단어를 많이 수집하고 나서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런데 터키말과 한국말의 어순이 같아서 자기는 배우기 쉬울 것 같단다. 정말? 그러면 비교적 배우기 쉽지.
오늘도 2시간동안 열심히 듣고 말했다. 한국말을 배우는 중인 외국친구와 한국단어 게임을 했다. 예를 들면 '이'로 시작하는 단어 이어서 쓰기를 했다. 이사, 이직, 이성 등등. 그러면서 그 친구는 한국단어를 배우고 나는 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익혔다. 상부상조다.
마지막 그룹에서는 게임과 스토리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의 토픽 중에 제일 재밌었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내가 최근에는 소설을 전혀 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자각되었다. 그러네. 보통은 뭔가 끄적끄적거리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영어 공부와 일기 쓰기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작업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번달 어학연수가 끝나고 쿠바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또다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신난다.
2023.11.02. 목요일 [절을 배우자.]
오늘은 문법 수업에서 구, 절, 문장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서 절의 종류를 배웠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들었던 형용사절이나 명사절 이런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 방식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영문법에 근간을 두고 있어서 서양의 영문법과는 설명 방법에서 좀 차이가 있다. 그나저나 역시 절은 많이 어렵다. 평소 잘하던 학생들도 이 내용은 어려워했다. '마사'는 학생들에게 활동을 시키고는 한명씩 찾아다니면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개별지도를 해주었다. 나에게도 이해했는지 물었는데 이해는 했지만 글 속에서 찾는 것은 어렵다고 대답했다.
듣기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새로 합류한 일본 고등학생들이 '안드레아'에게 내일의 프리젠테이션에 대해 물어본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긴장이 많이 되나보다. '안드레아'가 종이나 휴대폰에 발표 내용을 써와서 보면서 읽어도 된다니까 너무너무 좋아한다. 귀여운 학생들이다.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던 나를 비롯한 어른 학생들은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연습문제를 풀었다. '짐'은 학생들에게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답을 말하도록 시켰다. 그런데 '짐'은 학생을 지명할 때 손으로 가리킨다. 가끔은 교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으면 나를 시키는줄 모를 때도 있다. 답답하다. 다른 교사들은 대부분 학생들 이름을 익히느라 애를 쓴다. 도저히 외울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이름표를 만들어서 앞에 놓도록 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짐은 아예 이름을 부를 생각을 하지도 않고 이름표도 만들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조만간에 이름표라도 만들자고 제안해야겠다. 어리버리한 부분은 참겠지만 노력하지 않는 부분은 못참겠다.
점심 시간에 학생 라운지에서는 에니메이션 '코코'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밥을 먹으면서 즐겁게 감상했다. 알고보니 멕시코 고유의 명절인 '망자의 날'이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인데 멕시코 학생들을 위해서 이 에니메이션을 보여준 것이다. '코코'는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데 아쉽게도 다들 수업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서 교사가 중지시키고 나서 이따가 정규수업이 다 끝나면 다시 틀어주겠단다. '제니스'가 이따가 extra 수업에 들어가지 말고 이것을 이어서 보자고 하는데 나는 거절했다. 에니메이션은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 extra 수업은 다시 반복할 수가 없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모범생이었던가? 대학 때는 매일 땡땡이쳤는데. 세상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회화 수업은 발명의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토론을 했다. 역사적인 발명품 중에 인류에게 도움이 된 것들과 반대로 인류에게 해로운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 그 이유를 설명하란다. 우리 그룹은 좋은 발명품은 인터넷, 백신, 카메라, 비행기를 선택했고 나쁜 발명품은 무기, 플라스틱 포장, 마약을 선택했다. 재밌는 것은 이번에도 그룹별로 접근 방식이 달랐다는 점이다. 다른 그룹은 불, 종이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발명품 중에서 선택했다. 서로 다른 관점, 다른 접근법이 신기하다.
개인활동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꾼 발명품에 대해서도 발표했는데 나는 컴퓨터 게임을 선택했다. 어떤 친구는 곱슬머리를 위한 자동 헤어드라이어를, 어떤 친구는 컵라면을, 어떤 친구는 구독서비스 제도를 선택했다. 여기서도 아주 다양한 성향들이 잘 드러난다. 다양한 학생들이 섞여 있어서 더 재밌다.
오늘 extra 수업은 아파트와 주택 등의 사는 장소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첫 대화가 아주 재밌었다. 부자동네에 불이 나서 30채의 집이 불에 탔다는 뉴스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안타깝네.', '왜?', '그들이 집을 잃었으니까. 너는 안타깝지 않아?', '응. 나는 부자들에 대해서는 안타깝지 않아.', '너는 부자들을 몇 명이나 알아?', '하나도 몰라.' 나와 교사는 내용을 읽고 키득거리면서 웃었는데 다른 학생들은 웃지 않는다. 이게 서양식 조크인데 내가 그 사이 서양식 조크에 익숙해졌나 보다.
오늘도 참 유익한 내용을 많이 배웠다. apartment는 미국식 표현이고 여기는 condo(minium)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협소주택처럼 좁은 공간에 2층 혹은 3층으로 지은 집은 townhouse라고 한단다. 집을 살 때 20percent down이라고 하면 그것은 현금으로 줄 돈이고 나머지는 mortgage payment to the bank 즉 은행 융자로 내는 것이란다. 가령 집값이 100만달러라면 20만 달러는 현찰로 주고 80만 달러는 은행 융자로 다달이 갚는 방식이란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나?
오늘은 '제니스'가 약속이 있어서 나는 혼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이번 주에는 월, 화, 수에 모두 일이 있어서 저녁 시간에 공부를 못했더니만 공부거리가 밀렸다. 한참 공부를 하고 나서 TooGoodToGo로 커다란 저녁식사 박스를 사 왔다. 이제는 해가 지면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정말 많이 추워졌다. 내가 떠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2023.11.03. 금요일 [수학은 싫어.]
오늘은 문법 시간에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그는 어제 배운 부사절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고 나서 연습문제를 풀도록 했다. 연습문제 중에서 일부는 의미 파악이 명확하게 되지 않아서 푸는데 애를 먹었다. 교사가 뭔가 설명을 하긴 했는데 말이 너무 빨라서 오히려 더 헛갈렸다. 이런 것을 설명할 때는 왜 다들 말이 빨라지지? 자신은 알고 상대는 모를 때는 말을 더 느리게 해야 하지 않나?
문법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멕시코 친구 한 명이 일본 친구와 나를 부른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문법 교사 '마사'가 설명을 많이 안해주고 특히 몇 명만 좋아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학원의 교장에게 이 문제를 말했는데 교장이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느끼는지 알아야겠다고 했단다. 우리에게 각자 자신의 나라 상담교사에게 '마사'의 문제점을 말해달란다. 나는 최근에 좀 나아졌다고 느꼈지만 다른 학생들은 여전히 '마사'에게 불만이 많은 듯하다. 새로 합류한 친구들에게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니까 '마사'가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 버겁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많이 불친절한 것 같아서 질문하기 어렵단다. 아무래도 한국 선생님과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듣기 수업은 프리젠테이션의 날이다. 이번 주의 토픽은 AI로 인해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이 중요해질지 혹은 미래의 유망 직업은 무엇인지, 그 이유를 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래의 직업 세 가지를 소개했다. 빅 데이터 기술자, 로봇 기술자, 컴퓨터 시각 기술자. 각각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소개하고 왜 이 직업들이 중요하게 될 것인지 이유를 간략하게 말했다. 이 발표 준비는 '한영언어교환' 모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이 분야를 잘 몰라서 우리 모임의 게임 디자이너, 컴퓨터 개발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이 몇 가지 직업을 추천해주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이해한 것을 세 가지 선택한 것이다. 다만 내용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그 와중에 농담 포인트도 넣었다. 'AI는 빅데이터에 기반한다. 그래서 수학은 학교에서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나는 이들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수학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이랬더니 다들 웃으면서 여기저기서 나두나두 수학이 싫어라는 반응이 나왔다. 왜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싫어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시작하자마자 주간 과제를 제출하란다. 그리고 우리는 내용 확인 연습문제를 풀란고 한다. '짐'은 우리가 문제를 푸는 동안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달아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각자 자신의 과제를 돌려받았다. 예전에는 과제를 돌려받으면 많은 부분이 빨간펜으로 수정되었는데 이번에는 일부만 수정되었다. 주제가 쉬운 음식 이야기라서 그런 듯하다.
밥을 먹고 나서 2층에 가서 한국 선생님를 만나서 문법 교사 '마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초기에 느낀 '마사'의 문제점과 그 후 나아진 모습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일부 학생을 편애하는 것과 설명이 부족한 것은 여전하다. 나는 겁내지 않고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모든 학생이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가 최근 노력하고 있는 것이 나의 눈에는 보이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쭈욱 듣더니 이 내용을 이메일로 써서 보내주면 자신이 번역해서 회의에서 공유해보겠단다. 멕시코 학생이 교장에게 갔으므로 이 문제를 회의에서 다룰 것 같다. 이따가 집에서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마음이 좀 무겁다. 이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회화 수업은 보강 교사가 들어와서 함께 게임을 했다. 그룹을 지어서 함께 퀴즈 게임을 했는데 몇 가지 문제는 여행을 많이 다닌 나에게 유리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우리 그룹에 영어 능력자들이 있어서 일방적으로 우리 그룹이 앞서 나갔다. 게임 중반에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다들 즐겁게 게임을 했다. 누가 이기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고 문제 맞추기를 즐겼다. 이래서 나는 이 수업의 학생들이 참 좋다.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교실을 떠나지 못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친구가 있어서다. 깃발에 작별인사도 써주고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끝내 '안토'가 울음을 터뜨렸다. 고등학생인 '안토'에게는 이런 이별이 참 힘들 것 같다. 다들 울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인스타그램으로 화상통화도 할 수 있고 친구의 나라에 놀러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외국 친구들과 다시 재회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만나고 헤어지고 이게 인생이다. 하지만 그걸 사랑스러운 '안토'에게 말해주고 싶지는 않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영어회화' 모임 장소로 향했다. 오늘도 카페가 가득가득찼다. 나는 1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커피 주문하는 줄이 길어서 밖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가야했다. 친구들이 모여앉은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한국 사람, 일본 사람, 사이프러스 사람, 캐나다 사람, 대만 사람 등이 함께 했다. 아는 친구들이 많아서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하도 왔다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나에게 영어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던 이란 아저씨 '캐빈'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내가 영어와 아직 친해지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했더니 그는 이미 너는 영어와 친해졌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영어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고 싶다고 농담을 했더니 '캐빈'은 영어와는 클로저 프렌트(가까운 친구)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내 농담을 받아쳤다. 그리고 '캐빈'은 내가 언제 떠나는지 물어보고는 이별이 다가옴을 아쉬워했다. 정말 나도 많이 아쉽다. 여기 친구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곧 '메기'와 '카나'가 귀가해서 함께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나'는 내가 떠나기 전에 집에서 파티를 하면 어떨까 제안했다. 그러면서 내가 부르고 싶은 친구를 초대하란다. 그럴까? 내가 떠나기 전 일요일 점심에 파티를 하기로 했다. 파티라고 해도 가볍게 식사를 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재밌을 것 같다. 이런 제안을 해준 '카나'가 너무 고맙다. 안그래도 기숙사측에서 이메일로 채크아웃 하기 전에 내 방을 한번 점검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정말 이곳을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이제 딱 3주가 남았다.
2023.11.04. 토요일 [나초 치즈 차우더]
한가로운 토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방 청소를 했다. 방 청소를 하는 김에 거실과 주방, 화장실을 밀대로 한바퀴 닦아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저번에는 '카나'가 청소기로 공용공간을 청소했고 이번 주에는 내가 밀대로 닦았다. 공용 공간은 매주 목요일에 한번씩 하우스키퍼들이 청소를 해준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으로는 아무래도 청결을 유지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내가 주말에 밀대나 청소기로 청소를 하는데 '카나'도 비슷한 주기로 청소를 한다. 아무래도 10대 학생들보다는 나이든 우리가 좀더 청소에 신경을 쓰는 편인 듯하다.
어제 사온 재료들로 국적불명의 요리를 만들었다. 그동안 '메기'가 하는 요리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간단하게 재밌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해 보았다. 베이스는 크램차우더(캔)이다. 여기에 버섯(캔), 브로컬리 스프(가루)도 넣었다. 그리고 양파와 각종 야채, 물을 추가해서 끓였다. 그리고 치트키로 나초치즈를 넣었다. 나초치즈는 주로 나초과자을 찍어먹는 용도인데 이것을 요리에 추가하면 기가 막힌 맛이 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국적불명의 요리. 나는 이것의 이름을 '나초 치즈 차우더'라고 부르겠다. 스튜와 스프의 중간쯤 되는 것 같다. 빵을 찍어 먹으니까 기가 막히게 맛있다. 다만, 건강에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재미난 요리 놀이를 하고 나서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나갔다. 매번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으니까 색다른 느낌이 든다. 어느 길 모퉁이에 오래된 집들이 몇 채 있는 것을 보았다. 빌딩 숲 사이의 오래된 집이 있으니까 눈에 확 띈다. 뭔가 했더니 1900년대 초반 이 일대의 노동자 계층의 집을 보존해둔 것이다. 이 동네를 많이 싸돌아 다녔지만 이 집들은 처음 본다. 남은 기간동안 심심하면 동네 골목 투어를 해봐야겠다. 물론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지만.
모임 장소에 가서 또 2시간동안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도 역시 영어 능력자들이 많이 와서 나는 듣기 연습을 아주 많이 했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알아듣는 편이다. 약 80%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영어 원어민들의 빠른 말은 간간히 놓치지만 그래도 대충의 맥락은 파악이 된다. 그래도 조금 더 잘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영어랑 베프가 되고 싶단 말이다. 대충 친한 사이가 아닌 베프가 되고 싶다. 그게 가능할까?
오늘 만난 사람 중에 칠레 사람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안토'가 그러는데 칠레는 점심을 제대로 차려 먹고 저녁은 가볍게 먹는다는데 정말인가? 맞단다. 점심에는 빵과 고기, 샐러드를 곁들여서 정찬을 먹고 저녁은 아주 가볍게 먹는단다. 그렇구나. 그래서 '안토'가 여기 홈스테이에서 주는 가벼운 샌드위치는 점심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로군.
집에 와서 '메기', '카나'와 함께 2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제니스'가 약속이 있어서 합류하지 못했다. '메기'가 다음 주에 자신의 엄마가 자기를 보러 밴쿠버에 오는데 우리의 수다 모임에 함께 참여해도 되냐고 묻는다. 당연히 가능하지. 환영한다고 말해주었다. 와! 다음 주에는 미국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쩌냐, 나는 지금도 '메기'의 말 중에 40% 정도 밖에는 못알아듣는데. 그나마 40%도 문장 단위가 아니라 단어를 듣고 유추하는 수준이다. 뭐, 이해해주겠지. 우리는 오늘 하루 뭐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내일 계획, 요리 재료, 쇼핑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3.11.05. 일요일 [주방을 정리하자.]
일요일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방 안의 시계를 보니 8시다. 슬슬 일어나서 씻고 노트북을 켜는데 뭔가 이상하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알고보니 써머타임이 종료되어 휴대폰과 노트북은 자동으로 한시간이 당겨졌는데 아날로그 시계는 내가 고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지금은 8시가 아니라 7시다. 오랜만에 써머타임의 영향을 받아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행하지 않는, 이 제도는 처음 해외여행갈 때 경험하면서 아주 희한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주 불편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굳이 전국적으로 시계를 고쳐야 하는 일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휴대폰과 노트북에 자동으로 적용되어서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깜빡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날씨의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으면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 레이니쿠버의 국룰이다. 나는 Deer lake park라는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제법 큰 규모의 호수 공원인데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2시간 가량 걷고 나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제니스'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 집에 와서 함께 공부해도 되냐고 묻는다. 나는 지금 공원 산책 중이고 오후 4시쯤 집에 도착할 것 같다고 답을 보냈다. 그러자 4시쯤 우리 집에 와도 되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기집보다 우리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라고 했다.
나는 공원 산책 후 월마트에 가서 작은 선반을 하나 샀다. 기숙사를 떠나기 전, 기숙사 친구들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다. 커다란 접시와 작은 그릇들을 겹쳐 놓아서 항상 큰 접시를 꺼내기 위해 작은 그릇들을 들어내야했다. 선반이 있으면 편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접시보다는 밀폐용기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이 부분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친구 두 명이 동시에 요리를 하는데 아주 불편하게 그릇들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간이 선반을 사야겠다 싶은데 '달라라마(다이소)'에서는 팔지 않는다. 결국 메트로타운의 월마트에 나올 필요가 있었다. 오늘 Deer lake park를 선택한 것은 메트로타운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일석이조의 동선이다. 나의 잔머리!
집에 와서 간이 선반을 설치하고 그릇들을 정리했다. 양념 선반도 샀는데 이것도 설치하고 양념류도 정리했다. '메기'가 양념 선반을 아마존에서 주문해서 설치했는데 그것이 예상보다 너무 작아서 그녀의 많은 시즈닝들과 오일 등을 다 담을 수가 없다. 내가 추가로 사온 것을 설치하고 나서 싹다 정리하고 나니까 뿌듯하다. 이제 3주 후면 여기를 떠나는데 왜 자꾸 나는 뭔가 손을 대는 걸까?
주방 정리를 다 마치고 난 후 때마침 '메기'가 방에서 나왔다. 내가 정리한 것을 보더니 좋아한다. 그리고는 바로 요리를 준비한다. 그 사이 '제니스'가 도착했다. '제니스'는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면서 감자와 파프리카를 꺼내 놓았다. '메기'가 즉석에서 파프리카 요리를 해주었다. 자신의 볶음밥을 파프리카에 넣고 오븐에 구운 파프리카 컵밥이다. '메기'는 뚝딱뚝딱 잘도 만든다.
'제니스'와 나는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문법 복습을 했다. 구동사 중에서 중요한 것들만 한번씩 읽고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우리가 문장을 만들면 '메기'가 맞는 문장인지 확인해주었다. 역시 직접 문장을 만들면서 익히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 외워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중에서 몇 개는 친해질 수 있겠지.
우리는 문법 공부를 마치고 '메기'와 수다를 떨었다. '메기'는 자신의 고양이 사진도 보여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도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메신저도 알려주었다. Snapchat라는 것인데 기존의 메신저와 비슷하지만 사진을 찍거나 영상통화를 할 때 각종 필터를 이용해서 재밌는 캐릭터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놀이를 하면서 채팅을 한단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밤이 늦어서 '제니스'가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도 뜻밖의 영어 수다 모임을 했다. 아무래도 '제니스'는 자신의 집보다 우리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집에 자주 오는 것이 미안해서 그런지 계속해서 뭔가 먹을 것을 사온다. 내일은 '제니스'에게 뭘 사오지 말고 그냥 편하게 우리집에 오라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