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들
2023.11.05. 월요일 [성격을 바꾸어 주는 사탕]
오늘 문법 수업은 부사절에 대해 연습문제를 푸는 것으로 시작했다. 몇 가지 예문 만들기를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문단에서 틀린 부분 찾기도 곧잘 찾았다. '마사'가 아주 만족해 한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주말에 이 부분 예습을 했다. 그래서 따라갈 수 있었다. 역시 예습과 복습만이 살길이다. 그런데 내가 예습하지 않은 연습문제 진도를 나간다. 부사절을 6번 사용해서 짧은 글을 써보란다. 어려울 것 같은데? '마사'는 연습문제에 나온 예문만 잘 활용해도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래. 시도해보자. 이곳에 와서 만난 친구와의 공부 이야기로 짧은 글을 썼다. '마사'는 학생들이 글을 완성하면 가서 개별지도를 해주었다. 나는 아주 잘 썼다고 칭찬을 받았다. 시제와 단어 등에서 틀린 부분이 없단다. 오예!
듣기 수업에서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에 가기 싫은 7살 동생이 항상 아빠가 차에 태워서 학교에 가려고만 하면 울면서 아프다고 한다. 그는 아플 준비를 한단다. 그날도 학교로 출발하려는데 울기 시작해서 아빠가 물었다. 어디가 아프니? 동생의 대답은 학교. 많이 웃긴 것은 아니지만 귀엽게 웃긴 이야기다. 근데 동생이 학교 가기 싫은 이유가 혹시 괴롭히는 친구가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읽기와 쓰기 시간에 '짐'이 또 다시 학생들을 지명할 때 손으로 가리키길래 나는 제안을 했다. 각자 이름을 쓴 종이를 앞에 세워두면 이름을 불러가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학생들이 이름 카드를 가지고 있다. 다른 수업에서도 이미 사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니까 다들 주섬주섬 이름 카드를 꺼내서 자신의 앞에 세워 놓았다. 그런데 사람의 습관이란 것이 바뀌기 어려운가 보다. '짐'은 이름 카드를 두고도 여전히 손으로 지명을 한다. 이름 카드를 읽을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짐'은 오늘도 교재의 연습문제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풀고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재에 나온 활동들 중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은 건너뛰고 다른 재밌는 활동이나 게임을 통해 내용을 익히도록 하는데 '짐'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문법 교사 '마사'보다 이 교사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 너무나 노력하지 않는다.
식사 후 내일의 문법 퀴즈시험에 대비해서 최근 2주간 배운 부분을 쭈욱 훑어 보았다. 공부하다가 잠시 쉴 때, '제니스'에게 앞으로 우리 집에 올 때 무얼 사오지 말라고 했다. 너는 그냥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언제나 환영이라고 말해주었다. 늘 내가 도움을 많이 받으니까 이제는 그냥 오라고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나에게 더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진정한 베프다.
회화 수업에서 '안젤라'가 영상을 몇 가지 보여주었다. 어떤 물건을 재밌게 소개하면서 판매하는 유튜버의 영상, 학생들이 자신들이 만든 가상의 발명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다. 학생들이 만든 가상의 발명품도 기발하고 그것을 소개하는 방식도 아주 신박하다. 우리도 이런 종류의 발표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발표의 관건은 재미다.
드디어 발명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그룹을 정했다. '안젤라'가 무언가 찾는 동안 어떤 학생들이 우리끼리 그룹하자고 손짓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제비뽑기를 해서 그룹을 정하겠다고 하니까 그들이 당황했다. 그 중 한 학생이 그룹을 우리가 정하면 안되냐고 묻는다. 이번에는 '안젤라'가 당황했다. 나는 교사의 그 마음을 안다. 그룹을 정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마음 맞는 친구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소외되는 학생이 있다. 그걸 아이들은 잘 모른다. 그냥 친구랑 같이 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안젤라'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안젤라'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면서 너는 누구와 그룹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 아까 싸인을 주고 받은 학생들이 그룹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안젤라'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하고 묻는다. 나머지 학생들이 대답을 주저하니까 '안젤라'는 가끔 자기는 그룹을 학생들에게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는 서로 잘 모르고 새로 온 학생도 있고 성격도 다 다르다, 이번에는 제비뽑기를 하는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결국 학생들은 수긍을 하고 제비뽑기를 해서 그룹을 정했다. 역시 '안젤라'는 지혜로운 교사다.
제비뽑기 결과가 참 재밌게 되었다. 그룹은 총 3팀인데 우리 팀은 직장인들끼리 모였다. 나머지 팀들은 어린 학생들이 그룹이 되었다. 저쪽은 벌써부터 시끌벅적 야단법썩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 그룹 중에 영어 능력자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친구가 자신이 영상 편집을 할 줄 안단다. 너무 잘 되었다. 우리는 한 친구의 제안으로 '성격을 바꾸어주는 사탕'을 발명품으로 선택했다. 예를 들어 수줍음이 많아서 파티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이 사탕을 먹으면 파티의 인싸가 될 수 있다. 이런 황당한 발명품이 어디 있냐고? 이번 프리젠테이션은 재밌고 웃긴 발명품을, 재밌고 웃기게 발표하는 게 관건이다. 다른 팀들의 내용도 기대가 된다. 오늘은 아이디어만 짰다. 내일부터 시나리오도 쓰고 역할 분담도 해야 한다. 벌써부터 재밌다.
관용표현에 대한 extra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의 교사는 말을 아주 또박또박하게 해서 알아듣기가 쉽다. 오늘도 재밌는 관용표현을 배웠다. 예시 영상 중에 '프렌즈(미국의 드라마)' 영상이 자주 사용되었는데 교사가 프렌즈의 등장 인물 중 '첸들러 빙'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얼마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교사는 자신은 프렌즈와 함께 성장했다면서 슬퍼했다. 프렌즈는 나도 영어 공부를 위해서 열심히 시청한 드라마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재밌는 내용이다. 첸들러 역의 배우가 죽었다니까 마음이 슬프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한인 마트에 가서 카레용 고기를 사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카레를 할 것이다. 이게 여기서 만드는 마지막 카레가 될 것이다. 카레 재료를 준비해 놓고 잠시 숙제를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제니스'와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만나서 빛의 공연인 '뤼미에르 밴쿠버'를 보기로 했다. 예술회관 앞에 가보니까 여러가지 설치물들이 빛을 내고 있다. 어떤 작품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문 안의 장면이 바뀌는 것도 있어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늉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어떤 작품은 화려한 치마같은 혹은 문어다리같은 것도 있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연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작품은 불을 내뿜는 용이다. 체험형으로 사람들이 조작해서 직접 불을 내뿜게 할 수도 있다. 역시 사람들은 불놀이를 좋아한다. 밤에 오줌쌀라 조심해라.
'제니스'와 함께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다가 헤어져 집으로 왔다. 고기를 듬뿍 넣은 카레를 만들었다. 문득 고추가루를 넣어서 맵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요며칠 느끼한 '나초 치즈 차우더'를 먹은 후유증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고추가루를 넣었다. 역시 고추가루를 넣으니까 매운 맛 카레가 되었다. 매운 카레를 먹으면서 느끼함을 달래야겠다. 남은 쌀로 밥도 했다. 이것이 이곳에서 하는 마지막 냄비밥이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은 식재료를 사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이제 정말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2023.11.07. 화요일 [공부 총량의 법칙]
문법 시간에는 퀴즈(중간 시험)을 보았다. 그동안 열심히 복습해서 그럭저럭 잘 보았다. '마사'는 학생들에게 다 풀면 바로 제출하도록 하고 그 자리에서 채점을 해서 바로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돌려주었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라는데 나의 경우 틀린 문제는 모두 단어의 뜻을 몰라서 틀린 것이라 질문할 것이 없다. 시험 후에는 문법 설명 영상을 보고 나서 교재의 본문을 읽고 연습문제를 풀었다. 그런데 '마사'가 학생들 중에서 내일 수업시간에 오늘 배운 내용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시범 교사역할을 할 지원자가 없는지 묻는다. 어렵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나는 손을 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참았다. 나대지 말자. 손을 들고 나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제니스'가 자원했다. '제니스' 파이팅!
듣기 수업은 어제의 숙제를 확인했다. 솔직히 배웠던 단어와 구절들인데 숙제하면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사전을 찾아봐야했다. 새로운 단원을 나갔는데 이번에도 첫번째 파트는 전멸이다. 디테일하게 들어야 해서 너무 어렵다. 이 어려움을 넘어서야만 한다. 그래야만 원어민의 영어가 세세하게 들릴 것이다. 듣기가 한 단계 올라서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있는데 한 일본 친구가 곧 이 학원을 떠날 거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달까지 여기에 다니고 곧 영화 대학에 갈 예정이란다. 그 대학은 우리집의 '메기'가 다니는 바로 그곳이다. 반가운 마음에 어떤 전공이냐고 물었다. 사운드란다. 영화나 게임에 들어가는 음향에 대해 배운단다. 이 일본 친구는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IELTS 점수를 받았단다. '제니스'가 그를 무척 부러워한다. 그녀는 최근 그 시험 점수가 충분하지 못해서 대학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이 과정을 더 들어서 영어 실력을 높여야 한단다. 안타깝다. 그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살짝 고개를 드는데 얼른 내쫓았다. 그러지 말자. 내 신상을 내가 들들 볶지 말자.
회화 수업은 어제에 이어서 그룹별로 모여서 발표 영상 준비를 했다. 우리 그룹은 차근차근 역할을 나누고 각 상황별로 스크립트를 의논해 나갔다. 그런데 다른 두 그룹은 벌써 나가서 촬영을 시작했다. 너무 빠른데? 우리가 놀라니까 '안젤라'가 그들은 스크립트를 짜지 않고 즉흥적으로 찍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아마도 촬영하고 나서 스크립트를 쓸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접근 방식의 차이를 실감했다. 세대 차이가 이런 데서 드러나는군.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차근차근 스크립트를 만들고 디테일을 준비해나갔다. 우리는 내일 촬영을 할 것이다.
오늘 extra 수업 시간에는 새로 멕시코 친구들이 합류했다. 흥겨운 친구들이다. 조용하던 수업이 조금 시끌벅적해졌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집, 이사, 수리 등에 대한 회화를 배웠다. 서로 파트너를 정해서 번갈아가면서 읽고 모르는 단어는 교사에게 질문했다. 나는 모르는 단어는 별로 없지만 유창하게 말하기가 잘 안되어서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연습을 했다. 그래도 긴 주소와 전화번호를 말하는 부분에서 비교적 끊김없이 말해서 칭찬을 받았다. 칭찬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날씨가 너무 우중충하고 추워서 도서관에 가지 않고 그냥 집으로 왔다. 이런 날은 뜨끈한 국물에 소주나 한잔! 그래. 난 술꾼이 맞다. 하지만 소주는 안되고 숙제나 하자. 내일부터 연달아 영어 모임에 나가야 하므로 쓰기 과제와 듣기 발표, 회화 발표 숙제를 오늘 한꺼번에 해두어야 한다. 나는 이곳에서 학창시절보다 더 충실하게 공부하고 있다. 학창시절 놀았던 것을 지금 보충하는 것 같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평생동안 떨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공부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나보다. 평생 해야 할 공부의 총량도 정해져있는게 아닐까?
2023.11.08. 수요일 [무례한 사람들]
문법 시간에 교장이 참관하러 들어왔다. 아무래도 '마사'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전달된 모양이다. 교장은 수업 후반까지 듣다가 나갔다. 그런데 오늘 수업 초반은 '제니스'가 시범교사가 되어 어제 배운 내용을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설마 교장이 들어와서 '마사'가 일부러 학생을 시범교사로 세운 것은 아니겠지? 쓸데없는 의심은 하지 말자. 나는 '제니스'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지 궁금했는데 '마사'가 유투브 영상을 이용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니스'도 유투브 영상을 이용했다. 머리를 잘 썼다.
'제니스'의 수업 시연 후에는 '마사'가 미리 준비한 문제지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문제를 풀면서 내용을 더 익혔다. 나는 처음 문제는 잘 따라갔는데 역시 두번째 문제부터 좀 헤매었다. '마사'는 학생들이 문제를 풀 때 각각 제대로 이해하는지 확인했으나 문제의 답을 확인할 때는 또다시 답을 빨리 말하고 넘어갔다. 어떤 문제는 질문했으나 어떤 문제는 도저히 질문할 짬이 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질문해야겠다.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 '짐'은 어제 우리가 작성한 글쓰기 개요에 대해 개별지도를 해주었다. 이때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로마자의 숫자를 영어로 바꾸는 연습을 시켰다. 나름 복잡한 숫자들도 있어서 바꾸는 활동이 제법 재밌었다. 우리가 이 로마자 놀이를 하는 사이에 '짐'은 학생들의 글쓰기 개요를 개별지도해 주었다는 점에서 나름 머리를 잘 썼다.
점심 시간에는 다소 나이가 있어 보이는 일본 사람이 합류했다. 그녀는 지난 주 토요일에 밴쿠버에 도착했고 이번 주 월요일에 처음 학원에 나왔단다. 나의 첫주가 생각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영어 수업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했다. 특히 나이 들어 공부하는게 역시 쉬운게 아니라는 점에서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회화 수업 시간에는 '안젤라'가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이 학원의 이사장은 굉장히 강압적이고 직원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많이 하는 사람인가보다. 요즘 학원의 교육과정 개편 때문에 교사들이 많이 반발하고 회의도 여러번 하게 되었다. 그 회의 과정에서 이사장이 또다시 교직원들을 무시하는 말을 시작했단다. '안젤라'가 빡쳐서 (내가 지금까지 파악하기로 '안젤라'의 성질도 만만치 않음) 이사장에게 직설적으로 당신은 무례하고 강압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단다. 그 후로 자신과 이사장이 엄청 오래 말다툼을 했는데 솔직히 정신줄을 놓아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문득 교장과 대놓고 싸우던 나의 젊은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한때 유명한 싸움꾼이었지.
그렇게 회의가 아주 썰렁하게 끝난 후, 자신이 어떤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게 집에 갔단다. 집에 도착할 때쯤 학원의 매니저(우리나라의 교감)에게 문자가 왔는데 많은 직원들이 속시원하게 생각하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단다. 그리고 이사장이 매니저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자신이 정말 그런 강압적인 사람이냐고 물었단다. 헐! 어쨌든 오늘 '안젤라'는 가급적 2층(임원진들이 있는 오피스 공간)에 가지 않았단다. 자신은 이사장과 마주치고 싶지 않단다. 나는 이런 얘기를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하는 것도 신기하고, 여기에 맞장구치면서 신나게 듣는 학생들도 신기하고, 또 이런 그녀의 모험담을 감정이입해서 듣는 나도 신기하다.
'안젤라'의 무용담을 듣고나서 발표 영상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안토'가 뭐라뭐라 말한다. 내용이 심상치 않다. 들어보니까 '안토'의 홈스테이에서 어제 소동이 있었단다. '안토'가 어제 아침에 늦게 출발해서 서둘러 뛰어서 버스를 타러 가다가 뭔가(아마도 도시락통?)를 떨어뜨려서 잃어버렸나보다. 귀가 후에 그것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없어졌단다. 그랬더니 홈스테이의 가족 중에 아버지와 아들이 '안토'를 비난하면서 거짓말장이라고 욕을 했단다. 그녀가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자 입닥치라고 했단다. 뭐라고? 이런 무례한 것들이 있나. '안토'가 울먹하는 것을 보고 '안젤라'가 화가 나서 홈스테이 가족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나도 '안토'에게 학원에 이 상황을 설명하라고 했다. 그러나 '안토'는 남은 기간동안 홈스테이를 옮기지 못할 텐데 일이 더 커질까봐 걱정을 했다. 그래.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홈스테이를 옮겨주지 않는다. 자칫하면 '안토'의 입장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난다. '안젤라'는 네가 학원을 떠날 때 그 가족의 이름을 자신에게 꼭 말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이런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학생들이 다치지 않게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안토'에게 너는 아주 좋은 사람이란 것을 우리가 알고 있으므로 그따위 사람들의 말은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네가 떠난 후에 우리가 복수해줄거라고 말했다. '안젤라'와 내가 번갈아 가면서 그들에게 복수를 어떻게 할지, 전화를 할지, 메일을 보낼지 이야기를 나누니까 다른 학생들도 가세해서 그들에게 똑같이 입닥치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조금 엉뚱하지만 이런저런 복수 방식을 이야기 하니까 '안토'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다행이다. 당장 무얼 어떻게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이 어린 학생이 머나먼 타국에서 더 이상 서러운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다보니까 오늘은 강압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회화 수업 시간의 대부분이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영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내일이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은 대부분 영상 촬영이 끝났다. 우리 그룹은 지금까지 신중하게 의논하여 만든 스크립트를 들고 드디어 촬영을 시작했다. 우리가 발명한 성격을 바꾸어주는 사탕은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각 기능대로 세 가지 상황극을 촬영했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설명과 판매 파트도 촬영했다. 편집을 맡기로 한 학생이 밤에 편집해서 우리에게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회화 수업의 영상촬영을 하느라 extra 수업에 늦게 들어갔다. '루이스'가 아주 반가워하면서 이 수업에는 내가 빠지면 절대 안된단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반겨주니 고맙다. 오늘은 시제에 대해 몇 가지 비교하면서 배웠다. 나는 이미 아는 내용이지만 많은 예시문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복습을 했다. '루이스'는 가급적 많은 예시문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어떤 학생이 '루이스'에게 그동안 많이 헛갈렸던 시제를 알게 되어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루이스'의 표정이 아주아주 행복해보인다. 그래. 이런 즐거움에 교사노릇을 하는거지.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오늘도 여러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그런지 사람 숫자가 조금 줄었다. 나는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요즘 무얼 하면서 지내는지, 주말 계획은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그룹에서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새로 합류해서 한국어 단어 게임을 했다. 특히 마지막 그룹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죽이 잘 맞아서 한참 이것저것 떠들어댔다. 외국어 배우기, 맛집, 요리 등의 화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 중 한 사람은 나와 비슷한 지역에 살고 있어서 우리는 집으로 오면서도 수다를 떨었다. 거의 3시간 정도 영어로 떠들었다. 오늘도 보람차다.
2023.11.09. 목요일 [기막힌 발명품들]
문법 시간에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마사'는 결강하게 되면 미리 이야기를 해주는데 오늘은 갑작스럽다. 무슨 일일까? 오늘 만난 보강 교사는 한국에서 한동안 살았던 연극배우 출신의 교사다. 그녀의 발음이 아주 명확하고 수업도 재밌게 해서 나는 아주 만족했던 교사다. 그녀도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어제의 숙제를 파트너와 서로 비교해보고 나서 정답을 확인을 했다. 교사가 차분하게 설명해주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교사가 우리 문법 교사라면 참 좋겠다. 혹은 '마사'가 조금만 더 차분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다.
듣기 수업은 다음 주 월요일 공휴일인 리멤버 데이에 대한 유투브 영상을 보았다. 세계 1차 대전에서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고 한 영국 장교가 시를 썼는데 그 모티브가 된 것이 Poppy(양귀비)라는 꽃이란다. 죽어간 전우들을 기리는 시에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 양귀비꽃은 죽어간 병사들을 기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단다. 그리고 1918년 11월 11일 11시에 1차대전의 휴전 협정이 맺어져서 이 날을 추모의 날로 정하였단다. 대략적인 내용은 파악이 되었는데 세세한 질문에 대한 답을 쓰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나는 스펠링에는 완전 꽝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데 한숨이 나왔다. 에잇, 이놈의 듣기를 어떻게 하지?
읽기와 쓰기 수업은 내일 제출할 쓰기 과제를 쓸 시간을 10여분 주더니 이어서 갑자기 퀴즈 시험을 본다. 예고도 없이? 이 교사는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뭐라고 했으나 '짐'은 그냥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듣지 않는 거겠지? 이 교사에 대해 데스크에 항의를 할지 고민 중이다.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학원에 새로 나타난 일본 고등학생들이 내 주변에 앉아 있다가 슬쩍 나에게 와서 어디서 왔는지, 지금 먹는 것은 카레인지, 직접 만든 것인지 등을 묻는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는 마음에 드는지 등도 묻는다. 영어로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희한하게 외국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은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자기들 말을 잘 받아줄 것 같아서 그런가보다. 다들 보는 눈은 있군. 그래. 예전에 나의 제자들이 말했었다. 내가 자기들 말을 잘 들어준다고. 그래서 말하기 편하다고 그랬다. 음, 내가 아이들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지. 그런데 아이들 말 듣기는 잘 되는데 왜 영어 듣기는 잘 안되는 걸까? 나는 요즘 듣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다.
회화 수업은 우리가 그동안 만든 발명품 소개 영상을 발표하는 날이다. 우리 발명품도 기발하지만 역시 젊은이들의 작품도 기똥차다. 한 그룹의 발명품은 치팅 안경이다. 시험장에서 답을 보여주는 안경이란다. 안경만 쓰면 수학문제도 영어문제도 다 풀 수 있단다. 와우. 정말 이런게 발명되면 대박이겠다. 다른 그룹의 발명품은 텔레파시 귀걸이다. 대판 싸우고 난 친구에게 사과의 말을 직접하기 쑥스러우면 이 귀걸이를 하고 말하면 텔레파시가 전달된단다.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다쳐서 못걷게 되면 텔레파시로 도움도 청할 수 있단다. 영상도 다들 재밌게 잘 만들었다.
'안젤라'는 다들 너무 잘했다면서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우리 팀은 계획을 잘 세우고 스크립트도 잘 준비했고 특히 연기를 아주 잘했단다. 나의 연기력이 아주 돋보였단다. 내가 이 나이에 연기력이 뛰어나단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참에 제2의 인생을 배우에 도전해볼까나? 사실 그건 아니다. 국어교사였던 나는 수업할 때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 수업을 많이 했고 내가 시범을 보여야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극이 익숙할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실 아무도 안 믿겠지만) 나는 매우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다른 팀들은 영상 편집이 수준급이고 타 학급의 친구들을 동원해서 즉흥적인 상황극을 해서 칭찬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팀들의 작품을 칭찬해주었다. 그밖에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영어로 말하는게 제일 어려웠다. 다른 어려움이 있겠는가? 항상 영어가 문제지. '안젤라'는 이 영상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감상해보란다. 아마 오늘의 추억이 아주 잘 느껴질 거란다. 그래. 그럴 것 같다. 정말 즐거운 추억들. 여기서의 생활을 몇 년 후에 돌이켜 보면 마음이 어떨까? 이 일기를 몇 년 후에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나는 가슴이 뭉클할 것 같다. 다시 못할 귀한 경험들이다.
오늘 extra 수업에서는 식당에 대한 회화를 배웠다. 식당에서 주문하는 상황, 전화로 예약하는 상황 등에 대한 대화를 번갈아 가면서 읽었다. 모르는 단어도 배우고 주문할 때 유의점이나 계산할 때 팁 등에 대해서도 배웠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익한 내용들이다. 다음 번에는 메뉴판과 요리에 대해 공부할 거란다. 그것도 재밌겠다.
오늘은 원래 '한영언어교환' 모임의 목요일 모임에 나가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빗줄기가 굵어지고 추워져서 포기했다. 괜시리 무리했다가 감기 걸리면 곤란하다. 그냥 집으로 왔다. 이제 앞으로 2주가 남았는데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 한다. 요즘 좀 지치는 느낌이 들어서 고기를 구워 먹고 힘을 내서 숙제를 했다. 그리고 요즘 엄청 해메고 있는 듣기 교재의 단어 공부를 했다. 듣기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는데 조급하게 짜증만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평소에 영어 듣기를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이제부터 한국에 가서 어떻게 영어를 유지할지 고민하면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곳을 떠날 준비 중 하나이다.
2023.11.10. 금요일 [꼰대는 어디나 있다.]
문법 수업은 오늘도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형용사절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예문도 많이 들어주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연습문제를 풀면서 좀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 보강교사는 수시로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아주 많이 헤매지는 않고 어느 정도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 '마사'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보강교사가 우리 문법 교사였으면 참 좋겠다.
듣기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안드레아'와 담소를 나누었는데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니까 그녀는 자신도 글쓰기를 무척 좋아한단다. 내가 여기에서의 생활을 일기로 쓴다니까 영어로 쓰냐고 묻는다. 헉! 영어로 일기를 쓰기는 너무 어려워서 한국어로 쓴다고 했다. 가끔 마지막 문장만 영어로 써본다고 했다. '안드레아'는 만약 영어로 일기를 쓰려고 한다면 처음부터 문법을 고려하면 어려우니까 처음에는 그냥 문법을 신경쓰지 말고 쓰란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수정하면서 문법을 확인하는게 더 낫다고 한다. 그래. 참고해야겠다. 이 일기들을 영어 버전으로 다시 쓰기를 할까?
오늘은 학생들이 발표하는 날이다. 이번 주의 주제는 '3일간 여행지 추천'이다. 장소, 할 일, 음식, 경비 등을 포함하라고 했다. 나는 대한민국의 '서울'을 여행지로 소개했다. 익숙한 곳이라 지명을 따로 외우지 않아도 되고 따로 조사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선택했다. 나름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첫째날은 경복궁과 같은 왕궁 방문하기, 둘째날은 북한산에 올라가기, 셋째날은 명동에서 쇼핑하기를 일정으로 선택했고 그밖에 음식도 소개했다. 나는 이 내용들을 거의 스크립트를 보지 않고 발표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학생들이 발표한 여행지가 다 제각각인 점이 신기하다. 태국, 일본, 터키, 필리핀 등등이 소개되었다. 어떤 곳은 내가 갔던 곳인데 확실히 아는 곳에 대한 소개는 더 잘 들린다. 역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듣기가 잘 된다. 잡다한 지식이라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게 낫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주간 쓰기 과제를 걷어갔다. 그리고 어제 우리가 풀었던 깜짝 퀴즈에 대한 채점이 되어 있어서 각자 찾아가서 틀린 문제를 확인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틀리지는 않았다. 찍었는데 맞춘 문제도 있다. 여기 와서 늘어난 스킬들 중 하나는 제스쳐(몸으로 말해요)이고 또 하나는 찍기 실력이다. '짐'은 또다시 우리에게 퀴즈를 풀 종이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퀴즈를 푸는 동안 주간 쓰기 과제에 대해 피드백을 달았다. 결국 수업이 끝나기 전에 모든 학생의 쓰기 과제에 대해 피드백을 다 완료해서 돌려주었다. 오! 대단한 걸. '짐'에게도 장점은 있다. 쓰기 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해준다.
회화 수업은 '안젤라'가 교사 회의에 가야해서 보강교사가 들어온다고 들었다. 그런데 보강교사가 학생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벤'이란다. 내가 보기에는 '벤'은 꼰대 기질이 있다. 지난번에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토의를 할 때 '벤'은 아주아주 강력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것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강력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다소 논쟁거리가 될만한 토픽이 나오면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이래서 우리 회화 수업 학생들은 대부분 그를 싫어한다. 아까 점심시간에 '안토'가 와서 자기는 오늘 회화수업을 땡땡이 칠거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벤'이 보강 들어오기 때문에 수업을 듣지 않을 거라고 했다. 결국 오늘 수업은 나, 일본친구 1명, 멕시코 친구 1명 이렇게 세 명의 학생만 출석했다.
오늘은 재밌는 질문들이 적힌 종이에서 각자 대화를 나누고 싶은 질문을 세 가지씩 찾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를 들면 '만약 동물이 된다면 어떤 동물이 되고 싶으냐'와 같은 질문이다. 나는 콘도르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고양이가 되어서 인간의 시중을 받고 싶단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니까 재미가 있다. 오늘은 논쟁거리가 될만한 대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곧바로 집으로 와서 짐정리를 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한국에 가져갈 것들과 가져가지 않을 것들을 분류했다. 가져가지 않을 것들 중에서 쓸만한 것들은 다음 주에 학원에 가져가서 필요한 친구들이 있으면 나눠주려 한다. 한번만 사용했던 소풍용 의자, 작은 히터 등은 유용한 것들이다.
시간이 되서 '영어회화' 모임에 갔다. 일찍 가서 커피를 주문해서 받아들고 나니까 그 사이 사람들이 많이 와서 줄을 밖에까지 서 있다. 자칫하면 나도 밖에 서 있을 뻔했다. 날씨도 추운데 밖에 줄을 선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일찌감치 오기를 잘했다. 큰 테이블에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에디'가 와서 그 친구의 테이블에 합류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음달에 옐로나이프라는 곳에 가서 오로라를 볼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으로 오로라를 찍기가 아주 어렵다고 들었다. 마침 사이프러스 친구는 사진찍기가 취미인데 아주 수준급이다. 게다가 그의 전공이 천문학이란다. 전에 이 친구가 찍은 은하수 사진을 보았는데 정말 멋진 사진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이폰으로 오로라 찍는 방법을 물어봤다. 아이폰은 수동설정이 없어서 아마도 어플을 다운받아야 할 것이란다. 얼른 검색을 해서 적당한 어플을 찾아내서 다운받았다. 그 다음은 야간 촬영에 적당한 설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영어도 어려운데 전문 용어라서 더 어렵다. 내가 어려워하니까 그냥 간단하게 노출시간을 조절하는 것만 해보란다. 일단 밤에 이것저것 노출시간을 조절해서 찍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다음 주에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다음 단계를 배워야지. 앞으로 이 모임에 참여할 기회는 단 두 번뿐이다. 그 사이 알차게 배워야겠다.
'에디'가 나에게 언제 떠나는지 묻는다. 앞으로 2주 후라니까 여행 가는 것이 아주 즐겁겠다고 한다. 나는 여행 떠나는 것은 기대가 되지만 여기서 떠나는 것은 슬프다고 했다. 여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별이 슬프다고 했더니 이 친구가 하는 말, 여행 후에 다시 와서 여행에서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란다. 엄청 긍정적인 태도다. 그래. 언젠가 여기에 와서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 모임에서는 종교에 관심이 많은, 그런데 어딘가 좀 무례해 보이는 사람도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곳 캐나다 사람이란다. 그는 이 앞을 지나가다가 여기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호기심에 들어와봤단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우크라이나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니까 다짜고짜 거기 전쟁이 어쩌고 젤렌스키가 어쩌고 한다. 우크라이나 사람은 캐나다 사람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을 조금 하더니 커피를 더 주문해야겠다면서 자리를 떴다. 그리고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내 느낌에 이 무례한 캐나다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테이블로 간 것 같다.
이 캐나다 사람은 다음 타겟으로 나에게 대뜸 종교가 뭐냐고 묻는다. 내가 건성으로 대답하니까 성경이 어쩌고 하면서 꼬치꼬치 묻는다. 대충 단어로 유추해보건데 기독교인인 듯한데 나는 종교, 특히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매우 싫다. 게다가 영어로 뭐라 하는지 너무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내 반응이 신통치 않자 그는 다른 테이블로 옮기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내심 그가 떠나서 기뻤다. 그런데 그는 자리를 옮기려다가 내 옆에 앉아있는 '에디'에게 말을 건다. 마침 그 옆에는 또다른 우크라이나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도 똑같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뭐라뭐라 한다. 그리고는 종교가 뭔지 이들 두 사람에게 묻는다. 그리고 또 한참을 뭐라고 떠드는데 단어로 짐작하건데 무슬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한참 떠들다가 다른 테이블로 떠나자 '에디'와 우크라이나 사람이 한숨을 쉬고는 불편한 대화, 무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런 무례한 사람들이 어디나 있지. 일종의 종교 꼰대라고나 할까?
집에 돌아와보니까 '메기'의 엄마가 와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메기'의 엄마는 나에게 항상 '메기'를 돌봐주어서 고맙단다. 나는 오히려 '메기'가 나를 도와주는 편이라고 답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 '메기'와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메기'의 엄마가 묵는 호텔에 가는 것 같다. 내일 저녁 6시에 하는 수다 모임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일의 모임이 더욱 기대가 된다.
2023.11.11. 토요일 [행복한 가족]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쿠바 여행지에 대해 검색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노닥거렸다. 느긋한 아침이다. 냉장고를 점검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식재료는 감자 세 개, 참치캔 2개, 파프리카와 야채들이다. '메기'의 마요네즈를 좀 사용하기로 하고 감자 샐러드를 만들었다. 감자를 삶고 있는 재료를 몽땅 썰어 넣고 섞었다. 여기에다가 얼마 전에 샀던 부스러지는 빵까지 넣었다. 부스러지는 빵은 간식으로 먹으려고 산 것인데 너무 잘 부스러져서 먹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이참에 이것을 아예 부스러뜨려서 샐러드에 넣었다. 즉, 빵조각을 품은 감자 샐러드다. 여기 와서 정체 불명의 음식을 많이 만들게 된다. 어쨌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모두 소진하는데 성공했다.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최근에 이사온 멕시코 친구도 나와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녀가 레시피 같은 것을 보면서 만들고 있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일주일치 요리 재료와 레시피를 배달해주는 웹 사이트를 알려준다. 재료들을 알맞은 용량대로 손질해서 배달해주고 거기 적힌 대로 요리만 하면 된단다. 일종의 밀키트다. 사이트에 들어가보니까 온갖 종류의 요리들이 있어서 선택의 폭이 다양한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아주 유용했을 것 같다.
요리를 마치고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사람들로 꽉 차있다.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친구들은 다가올 스키 시즌을 기대하고 있다. 나에게 스키를 탈 줄 아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내 팔과 다리는 오직 걷는 용도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나는 운동신경이라고는 단 1도 없다. 예전에 스키 강습을 두 시간 받아봤는데 함께 간 친구들은 모두 탈 수 있었는데 나만 일어서는데 실패했다. 결국 포기했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1년이나 수영 강습을 받았으나 나는 여전히 물에 뜨지 못한다. 공으로 하는 운동은 더욱 못한다. 공은 항상 나를 때리기만 한다. 그냥 내 신체는 걷는 것만 잘한다. 그래도 나는 나의 신체에 만족한다. 잘 걸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음식 이야기도 나왔는데 여기의 물가가 워낙 비싸니까 대부분 요리를 만들어 먹는단다. 다들 주로 무엇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샌드위치, 볶음밥, 야채볶음, 빵과 계란, 구운 고기 등 다양하다. 그 와중에 김치찌개 이야기가 나오니까 다들 신나서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고 난리다. 외국 친구들이 더 김치찌개에 열광한다. 그러고 보니까 나에게는 김치가 조금 남아있다. 저번에 한국 친구가 만들어준 김치다. 그래. 다음 주에는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제니스'가 모임에 합류해서 함께 열심히 떠들다가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문법 복습을 했다. 요즘 진도를 나가고 있는 절에 대해 이런저런 예문을 분석하면서 익혔다. 저녁 6시가 되자 '메기'와 그녀의 엄마가 집에 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뭐했는지, 쇼핑에 대한 얘기, '메기'가 그린 엄마의 초상화, 엄마의 취미인 뜨개질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기'의 엄마는 우리의 영어 수준을 고려해서 아주 쉬운 말로 천천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덕분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메기' 가족의 특별한 이야기도 들었다. '메기'에게는 쌍둥이 남동생이 있단다. 아무래도 쌍둥이를 키우는 것은 힘들었을 것 같다. '제니스'가 혹시 가끔 쌍둥이 아기들이 헛갈려서 한번 우유를 준 아기에게 또다시 우유를 준 적이 없는지 묻는다. 다소 엉뚱한 질문이지만 재밌는 질문이다. '메기'의 엄마는 그런 적은 없지만 처음에는 둘의 구분이 좀 어려웠단다. 하지만 이들은 남자와 여자로 금방 구분이 되어서 둘이 헛갈리지는 않았단다. 그리고 '메기'에게는 2살 터울의 여동생도 있단다. 쌍둥이를 키울 때와 여동생을 키울 때 많이 달랐을 것 같다고 했더니 정말 달랐단다.
그런데 달랐다는 말의 의미가 내가 생각한 의미가 아니다. '메기'의 여동생은 애초에 남자 아이로 태어났는데 성장하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자로 결정해서 지금은 여자 아이가 되었단다. 놀라운 얘기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메기'의 엄마는 자신에게는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쌍둥이 남매도 특별하고 성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한 아이도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공감했다. 아이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는 성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아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이러한 아이들을 각각의 존재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엄마가 더 대단한 것 같다. 정말 특별하고 행복한 가족이다. 나는 이 가족의 행복은 서로 존중해주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유쾌한 모녀와 함께 한 즐거운 대화였다. 이 모녀는 살짝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수시로 서로 사랑한다고 애정표현도 하였다. 참으로 친근한 모녀관계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일어나면서 '메기'의 엄마는 다시 한번 '메기'를 잘 대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제니스'와 나는 오히려 '메기'가 우리를 돌봐주고 있어서 더 고맙다고 인사했다.
오늘 '메기'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어서 아주 좋은 대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기숙사에 와서 멕시코 배우 '깔라'와 만난 것이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메기'와 만난 것이 더 큰 행운인 것 같다. 나는 역시 행운아다. 이렇게 특별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