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을 준비하며
2023년 11월 12일 일요일부터 11월 13일 월요일까지 나는 '빅토리아'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나의 친구 '코즈에'가 살고 있다. '코즈에'는 같은 학원에서 공부하다가 '빅토리아'로 옮겨와 일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일본 친구다. 밴쿠버에서는 보통 '빅토리아'를 당일치기로 여행다녀오지만 나는 '코즈에'와 만나기 위해 1박을 했다. 덕분에 아름다운 야경도 보고 올드타운의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코즈에'와 실컷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일하면서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 생각이란다. 나는 그녀의 도전을 응원해 주었다.
2023.11.14. 화요일 [인사 문화의 차이]
원래의 문법 교사인 '마사'가 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살피면서 설명하고 문제를 풀도록 하고 나서 정답을 불러줄 때는 빨라졌다. 요즘 배우는 부사절, 형용사절은 어려운 것이라 연습 문제를 풀 때 많이 헛갈렸다.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서 형용사절을 많이 품은 문장을 만드는 문제가 있었는데 우리 그룹은 겨우겨우 형용사절 3개를 품은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어느 그룹에서는 6개까지 갖다 붙였다. 우와! 대단하다.
오늘 듣기 수업의 시작은 좋았다. 어쩐 일로 문제를 모두 맞추었다. 객관식인데다가 듣기 방송의 문장이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의 빈칸 메꾸기는 망했다. 아주 시소를 타는구만. 이어진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는 새로운 단원을 진도 나갈 순서인데 아직도 시작하지 않고 있다. 다음 주가 레벨 테스트인데 시험 범위의 절반을 차지하는 새로운 단원을 시작하지 않으면 어쩌라는 거지?
오늘도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는데 앞에 일본 학생이 와서 앉았다. 보기에는 고등학생 같아 보였는데 의외로 직장인이란다. 되게 어려보인다고 했더니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단다. 지난 일요일에 캐나다에 도착했고 오늘이 학원의 첫날이란다. 그런데 그녀는 문법 레벨이 4, 다른 클래스는 모두 레벨 3란다. 시작하는 레벨이 높다. 그녀는 워킹 홀레데이 비자로 와서 여기서 조금 공부하다가 일을 할거란다. 요즘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일하는 친구들이 부럽다. 나는 나이 제한에 걸려서 할 수가 없다. 솔직히 일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파트타임이라면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일하는 것이 영어 실력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이럴 때는 늙은 것이 서럽다.
밥을 먹고 나니 이번에는 일본 고등학생이 옆에 와서 앉는다. 지난번에 나에게 말을 걸었던 학생들 중 한 명인 '노마'다. 대뜸 주말에 뭐 했냐고 묻는다. 영어 연습을 하려는 것이다. 주말에 빅토리아라는 섬에 갔다고 말했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뭐했냐고 물으니까 밴쿠버 북쪽에 갔단다. 그래서 그라우스마운틴이나 린 캐년에 갔냐고 물으니까 모른단다. 자신이 어디 갔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냥 북쪽으로 갔단다. 참 재밌는 친구다.
회화 수업은 새로운 단원으로 넘어갔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개별 프리젠테이션이 있으니까 준비하란다. 그룹을 지어서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째 질문은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여기로 가져오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이다. 전에도 비슷한 대화를 나누어서 별로 어렵지 않다. 나는 우리나라의 배달 시스템을 가져오고 싶다고 했다. 여기도 배달 시스템이 있지만 우리나라만큼 편리하지는 않다.
다음 질문은 자신의 나라에서 흥미로운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 친구가 새해 명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길래 나는 우리의 추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칠레 친구 '안토'는 자신들의 파티 문화에 대해, 일본 친구는 온천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일본의 온천에 대해 '안토'가 이해하지 못해서 다들 아는 영어를 총 동원에서 이야기 해주다가 결국 구글로 검색해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이해를 한다.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것을 상상해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음 질문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났을 때 놀란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토'가 자신의 나라에서는 누구나 만나면, 처음 만났더라도 허그를 하고 뺨에 키스를 하는 인사를 나눈단다. 그런데 여기 와서 동양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다들 멀리서 손을 들어서 '하이'하고 인사를 해서 놀랐단다. 그래서 저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단다. 나중에 문화의 차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반대로 일본 친구는 여기 와서 서양, 특히 남미의 학생들이 서로 끌어안고 뺨에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저들이 특별한 관계인가 오해를 했단다. 여기 와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문화의 차이를 알게 되었단다. 정말 그렇다. 나도 말로만 듣던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여기에 와서 생활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extra 수업은 식당 메뉴에 대해 공부하면서 요리에 대한 단어, 식재료에 대한 단어를 배웠다. 다들 요리 얘기를 하니까 배가 고프다. 이게 아주 유익한 공부이긴 한데 고통스러운 공부이기도 하다. 해산물, 고기, 서양식, 동양식 메뉴 등을 배우고 나서 우리에게 각자 식당 주인이 되어 메뉴를 만들어보란다. 자기 나라 요리를 이용해도 좋단다. 기왕이면 밴쿠버에서 장사가 잘 될 것 같은 메뉴를 만들란다. 여기에는 한국, 일본, 베트남, 스페인 등 다양한 나라의 식당들이 많다. 여기서 무엇을 팔아야 잘 팔릴까? 다음 시간까지 식당 메뉴를 만들어오기로 했다. 재밌겠다.
학원이 끝나고 환전소에 가서 쿠바에서 쓸 미국 달러를 좀 바꾸었다. 환전 후에 집에 와서 어제 못한 빨래를 돌리고 숙제와 공부를 했다. 다음 주 시험이 마지막이다. 물론 나에게 시험은 의미가 없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2023.11.15. 수요일 [나는 인싸?]
문법 수업은 새로운 단원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동사다. 이것 역시 레벨 3에서 배웠던 것들인데 좀더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하는 연습을 했다. '마사'가 조동사의 다양한 사용에 대해 정리해 주었을 때는 쉽다고 생각했는데 연습문제에서는 마구마구 헛갈렸다. 역시 이론으로 정리한 것보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이 훠얼씬 어렵다.
듣기 수업에서 굉장히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모든 학생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아무도 웃지를 못했다. 세 번을 듣고서야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 들른 주인공. 화장실에서 본 낯선 사람이 '안녕? 잘 지내?'하고 인사하더란다. 자신은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무례하게 굴기 싫어서 '잘 지내'라고 인사했단다. 그랬더니 '지금 어디가는 중이야?'하더란다. 몹시 당황했지만 이번에도 '시애틀에 가는 중이야.'하고 정중하게 대답했단다. 그랬더니 상대방의 말. '잠깐 이따가 다시 전화할께. 이상한 놈이 말을 걸어서.' 상황이 파악이 되나? 상대방은 전화 중이었던 것이다. 모두 이해하고 나서 엄청 웃었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단다. 하긴 나도 그렇다. 교무실에서 옆자리 선생님이 통화하는 말을 나한테 하는 말인 줄 알고 대꾸했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요즘은 아이팟 같은 것을 귀에 걸고 통화를 해서 그게 전화 통화인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재밌는 이야기였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이번에도 일본 학생 '노마'가 와서 말을 걸었다. 요 며칠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친구다. 여기 와서 어디어디 가봤는지, 여기서 공부하는게 좋은지 등을 물었다. 뭔가 한 마디라도 영어로 물어보려는 것이 너무 귀엽다. 그때 나와 함께 듣기 수업을 듣는 일본 고등학생과 그 친구들이 우루루 와서 인사를 했다. 이들은 요 며칠 나에게 자기 이름을 가르쳐주면서 한국말로도 인사를 건네고 있다. 한바탕 요란스럽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갔다. 그랬더니 '노마'가 나에게 이 학원에서 몇 명의 친구를 알고 있냐고 묻는다. 글쎄. 엄청 많을껄 하고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는 친구가 무척 많을 것 같단다. 맞아. 나 친구 많아. 그러고 보니까 나는 요즘 말로 인싸인가?
회화 수업에서 오늘도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그룹 토의를 했다. 어쩌다 보니까 지난 금요일의 그룹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보니까 대화를 좀더 깊게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멕시코에서 온 19살 학생은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한다. 오늘 질문 중에 누군가를 위해 건축물을 만든다면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것이 있었다. 이 멕시코 학생은 미래의 자기 여자친구를 위해 해변가에 멋진 집을 짓고 싶다면서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해변가 별장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단다. 와, 낭만적이다. 이 친구가 지난번에 첫 키스를 했다는 그 친구다. 나는 네가 언젠가 이런 집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응원해주었다.
오늘은 문법 extra 수업이 있는 날이다. 내가 요청해서 오늘은 조건문에 대해 배웠다. 영어에는 4가지 조건문이 있는데 항상 헛갈린다. '루이스'가 전체를 정리해가면서 설명해주어서 덕분에 어느 부분에서 왜 헛갈렸는지 파악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열심히 extra 수업까지 듣고 나서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오늘도 신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주 밴쿠버에 도착해서 오늘 처음 이 모임에 나온 친구들이 합류했다. 나의 첫번째 날이 생각났다. 바로 이 카페에서 처음 참여했는데 그때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너무너무 유익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악착같이 매주 수요일에 이 모임에 나왔다. 그리고 차츰 익숙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지금은 거의 나의 홈그라운드라는 느낌이 든다. 운영진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어떤 친구는 곧 내가 떠날 것을 알고 혹시 공항갈 때 짐이 많으면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떠나기 전에 꼭 같이 밥을 먹자고 한다. 다들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이다. 결국 다음주 토요일 마지막 모임 후에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종의 작별 파티다.
카페를 나서면서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수요일 모임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아무래도 이것저것 정리할게 많아서 여기까지 오지 못할 것 같아서다. 이 카페와도 작별이구나. 그 사이 친숙해진 주인과도 작별이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오게 될까? 갑자기 우울해진다. 이별은 역시 힘든 것이다.
집에 와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메기'가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에서 그녀의 요리를 구경하고 나서 시식을 해 보았다. 감자 으깬 것과 콩을 함께 넣고 끓인 스프다. 여러가지 향신료를 넣어서 아주 재밌는 맛이 난다. 그녀와 잠시 음식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식 스테이크부터 한국식 육회까지 고기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역시 요리는 어디가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다. 외국에서 생활하려면 요리에 대한 상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23.11.16. 목요일 [불에 탄 냄비]
문법 수업은 조동사에 대한 연습문제를 풀고 나서 바로 새로운 단원으로 넘어간다. 조동사도 어려운데 그것에 대한 확장판이란다. '마사'가 몇 가지 복합적인 조동사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나에게는 그놈이 그놈같다. 나를 헛갈리게 하므로 죄다 나쁜 놈들이다. 본문도 읽고 문제도 풀어보았으나 그다지 구분이 잘 가지는 않는다. 이따가 다시 복습하면서 차분히 살펴봐야겠다.
듣기 수업은 방송을 듣고 받아쓰기를 했다. 오늘의 핵심은 주로 대문자로 쓰는 지점, 문장 부호가 들어가야 할 곳을 짚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손이 너무 아프다. 나는 직업병으로 오른손이 아프다. 그래서 평소에도 마우스를 왼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글씨는 오른손으로 쓸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받아쓰기를 하면 거의 손이 마비되는 것 같다. 빈칸 메꾸기까지는 어찌어찌 써보겠지만 전체 받아쓰기는 너무 힘들다. 제발 받아쓰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에 내가 수업할 때 받아쓰기를 과도하게 시키지 않았나 반성해보았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드디어 오늘 새로운 본문을 읽었다. 다음주 화요일이 시험인데 이제서야 새 본문을 배우다니 너무 느리다. 미리 읽어보고 단어도 좀 찾아두었기에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한참 어려웠을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 문법 숙제와 복습을 했다. 이번에도 일본의 여학생들이 우루루 와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한다. 듣기 수업의 내 옆자리 짝꿍인 '나나'와 그 친구들이다. 내가 '나나'의 친구는 모두 나의 친구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나만 보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서 인사를 한다. 나도 그 학생들 이름을 외워서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무척 좋아한다. 학생들 이름을 외워야 직성이 풀리는 교사였던 티가 난다. 이 나이 때의 여학생들은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는데 정말 이 학생들이 그렇다. 그저 복도에서 마주쳤을 뿐인데 좋다고 내 손을 잡고 팔딱팔딱 뛴다. 내가 같이 뛰어주니까 더 즐거워한다. 그래. 울상으로 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밝은 것이 좋지. '제니스'는 이렇게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내가 신기하단다.
회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일본 학생과 한국 학생이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일본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부모가 특히 엄마가 결정해주는 대로 살아와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단다. 한국 학생이 안타까워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여기서 얼마나 공부할 예정인지 물었다. 앞으로 10개월 정도 더 공부할 거란다. 그 정도면 되었다. 너는 이제 겨우 여기 온지 2달이 되었다. 아직은 너 자신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10개월이면 충분히 너는 너 자신을 찾을 것이다. 지금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많이 경험하고 도전하면서 즐겨라. 그러면서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 자신을 살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실제로 학생들 중에 이런 경우가 아주아주 많다. 자신이 무엇을 결정해본 경험이 적은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부모가 이런 점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자꾸 스스로 도전하게 해야 한다. 물론 때로는 실패도 하고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 나갈 힘이 생긴다.
다음 주 화요일에 해야 하는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학급 친구들이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단다. 같은 나라의 학생들은 서로 겹치지 않도록 의논해보란다. 서로 협조해도 좋다. 가령 우리의 명절 추석을 소개한다면 한 명은 음식을, 한 명은 행사를, 한 명은 놀이를 맡아서 해도 될 것이다. 지난번에 멕시코 친구들이 그렇게 했단다. 우리는 한국 학생이 3명이라서 서로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고 조율을 했다. 나는 전통 놀이를 소개하거나 명절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한 친구는 음식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나머지 한 친구는 아직 고민 중이다. 만약 그 친구가 놀이를 소개한다면 나는 명절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각 나라별로 의논한 후에는 그룹 토론을 했다. 오늘은 무례한 경우나 좋지 않는 상황에 대한 토론을 했다. 가령 친구가 지갑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해서 점심을 내가 샀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반복된다. 그럴 때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비교적 단호했다. 그 친구가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므로 그와 관계를 단절하겠다. 다들 이런 점에서는 칼같다. 그밖에 옷을 잘못 입고 온 경우, 소개팅을 하는데 폭탄을 만난 경우, 식당 종업원이 무례한 경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식당 종업원의 무례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양 학생들이 차별을 당한 경험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학생은 아예 대놓고 종업원이 '너는 영어를 못하지? 너는 일본 사람이지? 내가 하는 말 못알아듣지?' 이렇게 무례하게 말했단다. 그래서 이 학생은 화가 나서 구글맵의 후기 쓰기를 이용해서 무례함에 대해 항의했단다. 그랬더니 식당의 매니저가 사과의 답글을 썼다고 한다. '안젤라'가 그 말을 듣고 또 흥분해서 어디냐고, 누구냐고 난리다. '안젤라'는 종업원이 무례하게 굴면 이름을 물어본단다. 혹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름을 물어보란다. 대부분 이름표를 달고 있거나 자신을 소개하고 주문을 받는다. 이름을 물어보면 아무래도 긴장을 하게 되겠지. 좋은 방법이다. 나도 기억해두어야겠다. 다행스럽게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무례한 경우를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다문화 사회라고 해도 여기에도 은근히 인종차별은 있구나. 하긴 어디에나 꼰대가 있듯이 어디에나 그릇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겠지. 이런 차별을 당하면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겠다.
오늘 extra 시간에는 우리가 각자 식당을 차린다고 가정을 하고 한 사람씩 자신의 식당을 소개하는 활동을 했다. '루이스'는 우리에게 식당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틀어주겠단다. 팝송, 클래식 등의 음악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식당을 소개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 레스토랑을 차렸다. 밴쿠버는 바닷가에 있어서 해산물이 풍부하다. 식전 메뉴, 본 메뉴, 후식 등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어떤 학생은 중국요리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북경식 요리와 사천 요리 등의 이름과 설명을 들으니 재미있다. 식당 주인이 되는 역할극을 하고 나서 주문과 예약에 대한 회화를 함께 읽었다. 아주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수업을 끝내고 나서 한국에 가져갈 선물들을 몇 가지 사가지고 집으로 왔다. 슬슬 가방을 꾸릴 때가 되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니까 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리고 솥이 새까맣게 되어 있다. 뭔일인가 했더니 '메기'가 나와서 이메일을 확인해 보란다. 기숙사측에서 보낸 이메일을 보니까 오후에 기숙사에 난리가 났었나보다. 누군가 불을 끄지 않고 나가서 냄비가 타고 화재 경고가 발동했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할 뻔했던 것이다. 어휴. 큰일날뻔했네. 이메일에서는 이 심각한 상황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불을 끄지 않았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주방도구에 대한 손해배상과 냄새가 심각할 경우 냄새를 빼는 비용까지 청구할 기세다. 심각한 상황이다.
나는 오늘 요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침에 나갈 때 몇 명의 친구들이 주방에 있는 것을 보고 나왔다. 불에 탄 냄비는 '메기'의 스프란다. 하지만 자신은 분명히 아침에 불을 끄고 나갔고 냄비의 위치도 옮겼단다. 그리고 자신이 나갈 때 학생들 두 명 정도가 요리 중이었단다. 일단 이따가 그들이 들어오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단다. 아마도 누군가가 급하게 나가면서 불을 끄지 않고 나갔지만 그걸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이런 일이 있어도 '메기'는 즐겁게 요리를 했다. 이번에는 주키니 브레드 즉 호박 빵이란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호박을 채써는 기계로 가늘게 채썰고 밀가루와 이스트, 약간의 향신료, 물을 섞어서 오븐에 굽는다. 물론 여기에 사용된 밀가루는 밀 알러지가 있는 '메기'를 위한 특수 밀가루다.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빵의 일부를 나에게 맛보라고 준다. 호박 빵은 처음 먹어보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호박이 간간히 씹히는 것이 제법 맛있다. 한국에 가면 나도 시도해봐야겠다. '메기'에게서 요리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나중에 한국에서 이 요리들을 해서 사진을 찍어 왓츠앱으로 '메기'에게 보내주어야겠다.
2023.11.17. 금요일 [맛있는 꼬막 비빔밥]
어제 밤 늦은 시간에 귀가한 여러 친구들과 불에 탄 냄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다들 자신은 아니라고 한다. 그럴 것 같았다. 알고 그랬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쨌든 일단 여기 학생들은 모두 안 그랬다고 하므로 각자 답장을 보내고 나서 기숙사 측에서 뭐라고 할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문법 수업에서 '마사'는 내가 예습한 문제는 모두 건너뛰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 진도를 나간다. 게다가 어마무시한 속도로 연습문제를 풀더니 다음 단원으로 또 건너뛴다. 진도가 겁나 빠르다. 아마도 다음 주 월요일에 레벨 테스트가 있어서 더 빨리 서두르는 것 같다. 조동사가 쉽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는 바이다. 조동사도 어렵다.
듣기 수업은 어제 전체 받아쓰기로 힘들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빈칸 메꾸기를 한다. 이 정도는 그나마 쓸 만하다. 딱 두번만 들려주는 것에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처음에 잡아내야 할 것과 두번째 들을 때 확인할 것들을 염두에 두고 방송을 듣는다. 아직 스펠링까지 신경쓸 수준은 아니라서 일단 들리는데로 써본다. 그런데 가끔은 들리는데로 쓴 것이 맞을 때도 있다. 좋은 거겠지?
읽기와 쓰기 수업은 금요일이라 그동안 작성한 주간 과제물을 제출했다. 우리가 연습문제를 잔뜩 푸는 동안 '짐'은 열나게 학생들의 과제물에다가 피드백을 해서 주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수들이 있다. 전치사와 관사를 가장 많이 빼먹었거나 틀렸다. 우리 말에는 없는 개념인 전치사와 관사는 소소하게 신경쓰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기숙사로 열나게 걸어 왔다. 다음 주 채크아웃을 하기 전에 기숙사 측에서 방을 점검하러 나오기 때문이다. 파손된 것이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쭈욱 둘러보고는 이상 없음에 대해 확인하는 싸인을 했다. 다음주 금요일에 여기서 나갈 때 열쇠를 입구의 상자에 넣으라는 말을 들었다. 이미 떠나는 친구들을 배웅하면서 보아서 알고 있다.
아, 감회가 새롭다. 이 기숙사에 처음 들어오던 날이 생각난다. 영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아서 당황하면서 안내를 받았고 어리버리한 상태에서 우리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그때의 두려움과 걱정은 어마무시했다. 벌써 5개월이 흘렀구나. 외국에서 처음 살아보는 경험. 나는 그것을 해냈구나.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회화 수업에 참여했다. 다음 주 화요일의 개인 발표 준비를 했다. 우선 각 나라의 학생들끼리 모여서 서로 발표 주제가 겹치지 않도록 의논을 했다. 나는 우리 한국 친구들과 의논해서 각자 주제를 확정했다. 나는 한국의 공예를, 다른 친구들은 한국의 음식, 한국의 놀이를 각각 선택했다. 주말동안 잘 준비해야지. 이게 마지막 발표일테니까.
각 나라별로 논의한 후에 이번에는 각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 전형적인 인식에 대해 토의했다. 한국사람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은 어떨까? 부지런하다. 일을 많이 한다. 교육열이 높다. 성형미인이 많다 등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밖에 일본, 남미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젤라'는 이곳에 와서 아마도 친구들을 만나면서 국제적으로 서로 이해를 잘 하게 되었을 거라고 했다. 맞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외국인들에 대한 인식 중에 틀린 것도 있고 맞는 것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특성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개성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런 사실을 잊고 묶음으로 인식해서 편견을 갖기도 한다. '안젤라'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말하기 실력이 엄청 늘었다면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서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라고 했다. 그래. 수고들했다. 그리고 고맙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워터프론트역으로 향했다. 컴퍼스카드(교통카드)를 해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정말 잘 사용했다. 하지만 다음주에 떠나야하고 그 사이 사용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해지하고 보증금과 잔액을 돌려받으려 한다. 공항까지 가는 전철이나 잠깐 이용하게 될 버스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드로 이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굳이 컴퍼스카드를 만들었는가? 이게 장기적으로 이용하면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터프론트 역에 있는 컴퍼스카드 사무실에 가서 환불하러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충전할 때의 영수증이 있냐고 묻는다. 허걱. 충전할 때의 영수증을 내가 가지고 있을리가 없지. 그랬더니 충전했던 카드를 보여달란다. 그리고 메모를 하더니 잠시 기다리란다. 생각해보니까 뭐든 환불을 받으려면 해당 영수증을 지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그 생각은 못했다. 잠시 후에 직원이 부른다. 보니까 전산으로 검색해서 나의 영수증을 찾았다고 보여준다. 다행이다. 무사히 환불을 받았다.
남은 금액은 내가 보여준 그 카드에 입금시켜 주었다. 그것은 이곳 캐나다의 은행 계좌에 연결된 카드다. 캐나다 은행 계좌도 닫아야 하는데 은행 계좌를 닫기 전에 컴퍼스 카드를 먼저 해지하는게 순서일 것 같아서 여기부터 왔는데 그러길 잘했다. 은행계좌를 먼저 닫았으면 복잡해질뻔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은행 계좌를 닫으러 가야겠다. 또 그밖에 여기서 생활하면서 벌여놓은 것들 점검해서 잘 마무리하자.
컴퍼스 카드를 해지하고 나서 슬슬 걸어서 집으로 왔다. 가방을 내려 놓고 '영어회화' 모임에 갔다. 커다란 테이블에서 낯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학생들, 중국계 캐나다 사람, 한국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계 캐나다 사람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를 할 줄 안단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하는 편이란다. 특히 그는 한국과 일본의 뉴스를 매일 읽고 본단다. 외국의 뉴스를 본다는 것은 꽤 수준이 높은 편이다. 다들 감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왜, 어떻게 다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 글자는 한자어를 분해해서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었고 한국 글자는 한글을 창조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각국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에디'가 와서 자리를 이동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운 테이블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온 사람이 합류했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일하는 것의 장단점, 해외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해외 생활에서 가장 그리운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사람은 가족이 가장 그립단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일하다가 힘들어도 가족과 함께 있으면 다 잊을 수 있단다. '에디'는 잘 모르겠단다. 물론 가족은 그립지만 내년에 가서 만날 예정이라서 아주 많이 보고 싶은 것은 아니란다. 나는 가족도 그립지만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 컴퓨터가 가장 그립다고 했다. 정말 게임을 제대로 하고 싶다. 나의 말에 다들 엄청 웃었다. 왜? 이게 웃긴 이야기인가?
그리고 나는 '에디'에게 오로라 사진을 찍을 때의 유의점을 물어보았다. 그는 일단 휴대폰의 일반 기능으로 사진을 찍어본 다음에 이것저것 세밀하게 조절하면서 찍어보라고 했다. 어플에서 노출시간을 조절하면 나머지는 그 노출시간에 맞게 자동으로 세팅되니까 노출시간만 조절하란다. 내가 오로라 사진을 찍으면 인스타에 올릴 테니까 잘 보라고 했다.
베네수엘라 사람이 시간이 되어서 자리를 떠났다. 이제 슬슬 다들 일어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에디'가 불쑥 자신은 여자친구와 얼마전에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차인 것이란다. 허걱. 괜챦냐고 물으니까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몇 가지 어려웠던 점들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니까 그녀는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에디'에게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아주 근사한 여자친구를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내가 오로라를 보고 소원을 빌 때 너에게 근사한 여자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겠다고 말해주었다. 고맙단다. 이 친구는 다음주 금요일에 자신은 볼일이 있어서 이 모임에 나오지 않는단다. 어? 그러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일 것 같다. 서로 아쉬워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는데 이 모임에서 친해진 한국 친구들, 일본 친구들, 대만 친구 등 몇 명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에디'도 같이 가겠단다. 잘 되었다. 한국 친구들이 할인받을 수 있는 한국 식당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좀 멀어서 걸어가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다들 열심히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수다도 엄청나게 떨었다. 거리 곳곳의 유명한 식당 품평부터 밴쿠버의 교통체계까지 다양한 화제가 이어졌다.
드디어 식당에 도착. 결론은 아주 대만족이었다. 포차 즉 술집이지만 일본 친구들이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냥 밥만 먹었다. 식당에는 좀 미안했다. 그런데 음식이 너무 맛있다. 여러 명이 가니까 골고루 시켜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볼 때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꼬막 비빔밥이다. 양념을 제대로 해서 너무 맛있다. 두번째는 짬뽕이다. 완전 불맛을 제대로 낸 해물 짬뽕이었다. 그밖에 치킨(엄밀히 말하면 치킨이 아니라 깐풍기)도 맛있었다. 다만 짜장은 좀 별로였다. 한 일본 친구가 완전 흥분해서 한국 음식 최고, 한국 친구 최고라는 말을 100번쯤 했다. 나중에는 다른 친구들이 그 말을 그만 하라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에디'도 평소에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자주 먹어보았다면서 이 집에서는 특히 꼬막 비빔밥과 치킨이 아주 맛있다고 했다. 모두 만족한 식사였다.
한국 친구들이 커뮤니티에 음식 사진과 품평을 올리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절반으로 할인을 받았다. 함께 나누어서 음식값을 내는데 각자 12,000원 정도 냈다. 다들 너무나 저렴한 비용에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보기에도 이 물가 높은 밴쿠버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이 가격에 먹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한국 친구들의 눈썰미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걸어오다가 '에디'가 먼저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인사를 했다. 문득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커다란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도 쑥스러워하고 나도 쑥스러워했다. 게다가 나의 영어 실력이 많이 낮아서 이야기 하는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대화 중에 사이프러스와 한국이 모두 분단 국가라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내성적이라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렵다며 여기에 나오는 것은 자신의 도전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이제 그는 이 도전을 훌륭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오늘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서 나는 좀 놀랐다. 나와 많이 친해져서 그런 이야기도 한 것 같다. 진심으로 그에게 마음 따뜻한 여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와 한국 친구들, 일본 친구들은 꽤 오래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 친구는 혹시 공항까지 갈 때 짐이 많으면 자신이 데려다 주겠단다. 정말 마음 따뜻한 제안이다. 고맙지만 나는 배낭 하나만 매고 가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한영언어교환' 모임에서는 캐나다 친구가 짐이 많으면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여기에 와서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다들 너무 고마운 말을 해준다. 친구들과 작별하고 집으로 왔다. 모처럼 외식을 해서 기분이 좋다. 게다가 좋은 친구들과 한바탕 웃으면서 식사를 즐겨서 더 좋다. 나의 친구들. 모두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2023.11.18. 토요일 [끈을 찾아서]
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방 청소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짐을 싸기 위해 가방들을 늘어놓았다. 방의 한쪽에 한국에 가져갈 커다란 트렁크, 쿠바 여행에 가져갈 작은 트렁크, 옐로나이프에 가져갈 가방 이렇게 세 가지를 펼쳐 놓았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일정을 잡았다고 후회하는 중이다. 엄청 더운 나라인 쿠바에 가져갈 여름 옷과 엄청 추운 옐로나이프에 가져갈 옷이 확연히 다르다. 나는 정말 바보다.
짐 정리 후에는 다시 공부 모드. 다음 주 월요일의 문법 복습도 해야하고 화요일의 회화 발표도 준비해야 한다. 왜 나는 이렇게 늘 바쁘게 사는 것일까? 가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래도 찝찝하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했다. 회화 수업의 발표는 우리 나라의 전통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단순히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참여하여 체험도 할 수 있어야 한단다. 나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를 소개하기로 했다. 뭔가 학생들이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을 고려하다보니까 딱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전통 매듭이다. 여러 나라에 각각 전통 매듭들이 있으나 특징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전통 매듭이 꽤나 우아하고 아름답다. 열심히 검색해보니까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팔찌가 있다. 유투브에 영상으로도 잘 설명되어 있어서 함께 보면서 만들면 되겠다. 그래서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문제는 적당한 끈을 찾아서 실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믿을 곳은 달라라마 뿐이다. 집을 나서서 달라라마에 갔다. 평소에 가던 곳에서는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큰 달라라마를 찾아갔다. 역시 큰 곳이라 종류가 더 다양하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다. 적당한 굵기와 예쁜 색깔의 끈이다. 게다가 이 달라라마 근처가 '한영언어교환' 모임 장소 근처다. 아주 좋은 동선이다.
모임에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주 토요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니까 친구들이 아쉬워한다. 나도 그렇다. 몇 명은 다음 주 토요일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부터 공부 이야기, 워킹홀리데이와 다른 비자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밴쿠버의 겨울을 어떻게 지내는 것이 현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여기서 겨울을 보낼 것도 아니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마치 여기서 계속 살 것처럼.
'제니스'도 모임에 합류했다. 그녀는 이제 몇 번 참여해서 이 모임의 일원이 되어 간다. 모임이 끝난 후에 우리는 함께 집으로 향했다. '제니스'가 오늘 모임에서 어떤 그룹에서는 대화가 끊어져서 어색한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주제를 몇 가지 생각해두는게 좋다고 조언해주었다. 음식, 여행, 영어공부 등이 이야기 나누기 좋은 주제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서 대화하기 좋은 주제를 알려주는 사이트도 알려주었다. 전에 홍콩 친구가 알려주었던 것이다.
'제니스'는 나에게 이 모임을 소개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연습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도움이 된단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어서 고맙단다. 내가 더 고맙지. 항상 나를 챙겨주려고 하는 마음이 항상 고맙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 이곳에 남게 되는 그녀가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녀는 나보다 영어를 잘하니까 괜찮을 것이다.
우리가 집에 도착해서 공부하는 사이에 '메기'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나왔다. 역시 친절한 '메기'는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자신이 만든 호박 빵을 슬쩍 내민다. 간식으로 먹으라는 것이다. 가끔은 입시 공부하는 아이들 챙기는 엄마같은 느낌이다. 빵을 먹으면서 문법 공부의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메기'와 요리 이야기, 문화의 차이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제니스'가 가려니까 '메기'가 그 사이 요리한 음식을 싸주었다. 우리 '메기'는 정말 너무 착하다.
나는 달라라마에서 사가지고 온 실을 가지고 매듭을 만드는 연습을 해 보았다. 그런데 내 손이 똥손이라 쉽지가 않다. 역시 나는 손으로 뭔가 정교하게 하는 작업에는 영 소질이 없다. 괜히 이걸 선택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차라리 탈춤을 소개하고 가면그리기를 할껄 그랬다. 하지만 한번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한 후에 소개하는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역시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지막 발표니까 더 열심히 준비했다.
2023.11.19.일요일 [작별 점심과 편지]
아침부터 나는 또 분주하다. 어제 짐을 정리하면서 버리기로 작정한 것들을 내다 버리고 내친 김에 근처 마트에 가서 화장실 휴지를 사왔다. 우리 집 화장실의 휴지가 떨어져가는데 아무도 채워넣지를 않는다. 남은 일주일동안 내가 불편할 것 같아서 휴지를 사와서 채워 넣었다. 내가 가고 나면 누군가가 신경써야 할텐데. 뭐, 누군가는 하겠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발표 자료를 다듬고 영어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통매듭 만들기 연습을 더 했다. 근데 뭔가 좀 아쉽다. 너무 간단한 팔찌라서 이게 한국적인 것이라고 하기 좀 애매하다. 유투브에서 '동심결'이라는 것을 찾았는데 굉장히 멋지다. 하지만 어려울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이런저런 검색을 하는 사이에 벌써 12시. 오늘 점심은 나의 송별 파티다. 기숙사의 '메기', '카나' 그리고 학원 친구들 '제니스', 대만 자매, 한국 친구들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기'가 집 근처의 식당을 추천해서 함께 그곳으로 갔다. 베트남 음식점인데 다양한 국수 요리와 샌드위치 등이 있다. 음식은 맛있었고 친구들과의 대화도 즐거웠다. 우리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면서 아쉬워했다. 친구들은 향후 나의 일정을 듣고는 혀를 내두른다. 그들은 내가 이미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번 일정은 너무 힘들 것 같단다. 건강하게 잘 여행 다녀오고 한국에 잘 들어가란다. 나는 내가 떠난 후 '제니스'와 '메기'가 외로울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토요일에 모여서 하는 수다 모임을 계속 하라고 했다. 다들 계속하는게 좋겠다고 한다. '메기'가 '제니스'의 기숙사 출입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다.
식사 후에 약속이 있는 친구들은 제갈길을 가고 나머지 일행은 집으로 왔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카나'가 무척 아쉬워하며 나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여행 중간에 잠깐 밴쿠버에 들를 때 볼 수 있으면 한번 보자고 한다. 일정이 좀 빡빡하지만 일단 인스타로 연락을 나누기로 했다. 앞집 친구들은 우리 집에 들러서 '메기'의 호박 빵을 하나씩 받아들고 자기 집으로 갔다. '메기'가 아주 흐뭇해한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extra 수업 교사였던 '마리아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한달쯤 전에 갑자기 학원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뭔가 좀 안좋은 일인지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중후한 음성으로 천천히 말해주었던 '마리아나'가 무척 그립다. 나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해주었고 이런저런 것을 가르쳐주면서 우리가 잘 해내면 무척 기뻐해주었던 선생님이다. 나는 그녀에게 직접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서 내심 이번 주에는 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결국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마리아나'에게 편지를 써서 데스크에 맡겨야겠다. 그리고 나의 문법 교사였던 '스튜어트'를 비롯한 몇 명의 각별한 교사들에게는 떠나는 날 꽃을 한 송이씩 선물하려고 한다.
편지를 다 쓴 후 다시 발표 준비에 돌입했다. '동심결'이라는 것을 내가 만들 수 있는지 영상을 따라서 연습해 보았다. 한번 성공을 하긴 했는데 이래서야 학생들과 함께 실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몇 번 더 도전해보고 안되면 그냥 단순한 팔찌를 만들어야지. 이럴 때는 손재주가 많은 친구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