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

by 바람

2023.10.02. 월요일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공휴일이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다. 집에서 뒹굴거리기 딱 좋은 날이다. 어제까지 빡쎄게 돌아다녔고 오늘은 집에서 쉬기로 했다. 아침에는 좀 느즈막히 일어났다. 느긋한 오전을 즐기면서 그동안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문득 내가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멋진 경치 앞에서 스케치를 몇 가지 해두었지만 완성하지는 못한 그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오랜만에 스케치북을 꺼내서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니까 '메기'가 휴대폰으로 유투브를 보고 있다. 그녀가 즐겨보는 유투브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팬픽(유명인의 팬들이 만들어낸 허구)을 기반으로 한 글이나 영상을 즐겨본단다. 이것저것 자기가 즐겨보는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잘 모르는 내용들이다. 역시 젊은이들의 문화는 나에게는 좀 어렵다.

짧은 수다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12월에 하게 될 쿠바 여행 정보도 검색하고 게임도 했다. 게임을 신나게 즐기다가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서 거실로 나왔다. 일본 친구 '유카'가 이번 연휴 기간에 미국 LA에 놀러갔다가 지금 막 돌아왔다. 그녀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이사온 일본 친구 '쿠지'가 나와서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까 '메기'도 방에서 나와서 합류했다. '쿠지'는 여기서 대학에 다니고 있단다. 그녀는 나와 '유카'가 SSLC에 다닌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면서 자기도 작년에 SSLC에 다녔단다. 오! 우리 선배네. 교사들 몇 명을 이야기 하니까 다 알고 있다. '유카'에게 LA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니까 신나서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버킷 리스트가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소원성취했단다. 그러면서 거기 줄을 서는 것이 일본의 디즈니랜드보다 더 짧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거의 2시간 줄을 서야 하지만 LA에서는 한시간 정도 줄을 섰단다. 그나마 비교적 짧은 것인가? 덕분에 비교급으로 이야기하는 연습을 많이 하였다. 그밖에 학원의 시간표 얘기, 누가 기숙사에서 제일 먼저 출발하는지, 주방은 누가 몇 시에 주로 사용하는지 등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다 보니까 밤 12시가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대화를 종료했다. 덕분에 오늘의 영어 연습을 아주아주 많이 했다.

모처럼 집에서 하루 종일 있으니까 몸은 편하지만 좀이 쑤신다. 나는 역시 싸돌아다녀야해.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한달! 새로운 클래스! 새로운 교사! 새로운 친구들! 부디 영어공부가 잘 되기를, 또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2023.10.03. 화요일 [과제 종합선물세트]
오늘부터 문법 수업과 듣기 수업은 기존에 듣던 건물인 A동이 아닌 그 옆 건물인 B동의 2층에서 듣는다. 그리고 나서 A동으로 이동해서 나머지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는다. 그나마 1번만 이동해서 다행이다. 왔다갔다하는 거였으면 바꿔달라고 할 뻔했다.

문법은 드디어 문법 레벨4 수업을 들었다. 교사 '마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발음은 비교적 또박또박하다. 말의 속도는 빠를 때도 있고 알아들을만할 때도 있다. 그녀는 우선 이번 달의 시험 일정부터 안내했다. 10일, 16일에 작은 퀴즈. 23일에 레벨 테스트란다. 처음 배울 단원은 그동안 배웠던 시제들에 대해 좀더 깊이 들어가보는 내용이다. 오늘은 복습이라서 내가 대체로 아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연습문제로 들어가서 점차 문장 구조가 복잡해지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니까 중간부터 헛갈린다. 학생들 중에는 익숙한 친구들이 몇 명 보인다. 반갑다. 하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서로 낯설어하는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거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나마 대만 친구 '제니스'가 같은 교실이라서 참 다행이다. 그녀는 이따가 점심 때 문법 복습을 같이 하자고 한다. 나도 바라는 것이다.

듣기 수업은 레벨 3으로 업했다. 교사 '아드레나'도 초면이다. 그녀의 말도 대체로는 알아듣겠지만 중간중간 놓치는 부분이 있다. 금요일에는 2분짜리 발표를 해야 한다고 안내해준다. 주제는 이번 단원 토픽인 교통수단에 대한 것이다. 2분 정도는 가볍게 발표해주지. 교재에서 듣기 활동을 하는데 최소한 주제가 뭐고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는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정보는 단어가 어려워서 놓친다. '아드레나'는 이번 주는 3번씩 들려줄 것이지만 다음주부터는 2번씩만 들려줄 거란다. 이제는 레벨 업을 했으니까 그 정도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단다.

작문 수업은 레벨은 그대로 3이지만 교사가 바뀌었다. '아민'은 전에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보강교사였다. 그래서 무척 기대하고 있었는데 첫날부터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아민'은 대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그곳과의 스케쥴 조절이 안되었나보다. 이번 주 내내 보강교사가 들어온단다. 보강교사는 새로운 단원을 시작하면서 주간 과제부터 안내를 해주었다. 5가지 주제 중에서 하나씩 선택해서 매주 금요일에 제출하란다. 한달 동안 4번 제출하게 된다. 이미 해본 시스템이라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업은 좋은 자리 확보가 어렵다. 앞 수업을 B동에서 듣기 때문에 부랴부랴 건물을 건너서 오면 자리가 안좋은 곳만 남는다. 교실 구조가 독특해서 교사를 등지고 앉아야 하는 자리가 발생하게 되는데 내가 도착하면 그런 자리만 남게 된다. 책상 위치를 바꾸어달라고 요청해볼까도 싶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서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제니스'와 함께 문법 복습을 했다. 그녀는 한문장, 한문장 짚으면서 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나는 아는 것은 대강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녀는 아주아주 꼼꼼한 성격이다. 덕분에 단어도 더 익히고 복습도 확실하게 되어서 좋다. 그녀는 잘 모르는 단어를 영영 사전에서 찾아서 발음도 확인하고 영어 설명도 들려주었다. '제니스'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구나. 잘 되었다. 레벨 업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이 친구 덕분에 복습하면서 잘 적응할 수 있겠다.

회화 수업도 레벨 3으로 업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많은 친구들이 극찬하던 교사 '안젤라'와 드디어 만났다. 그녀는 나의 extra 교사 '마리아나'와 절친이란다. 유유상종이라고 했지? 좋은 사람들끼리는 서로 친하다. 그녀는 듣던대로 아주 유쾌하고 친절한 교사다. 오늘은 첫날이라 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이번 주에 우리가 할 활동은 친구 소개란다. 이제부터 그룹을 지어줄 것인데 그룹 내에서 친구를 한 명 정해서 그 친구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친구 소개 프리젠테이션을 금요일에 하란다. 듣기 수업과 회화 수업이 모두 금요일 프리젠테이션이 있다. 작문 수업을 금요일에 과제를 제출한다. 에헤라디여, 바쁘겠구나.

내가 소개할 학생은 칠레 학생 '안토'다. 그런데 아주 대단한 친구다. 나이는 16살인데 세계적인 글쓰기 플랫폼인 'Wattpad'에 소설을 올려서 이미 인기를 많이 끌고 있단다. 물론 스페인어로 쓴 글이다. 이미 소설 3편을 올린 베테랑이란다. 그리고 시를 쓰는 것도 좋아한단다. 와! 나와 취미가 비슷한 친구를 잘 만났다. 아주 명랑쾌활하면서도 자분자분하게 말하는데 아주 흥미로운 친구다. 앞으로 이 친구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해봐야겠다.

모든 수업이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수업이 있다. 바로 extra 수업이다. '마리아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오늘 주제가 추수감사절인데 한국의 추석이라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나에게 한국의 추석이 어떤지 친구들에게 소개해달란다. 나는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이고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차례를 지내는 것은 설명하기 힘들다.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특별한 음식을 놓고 절하는 행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보름달을 보고 소원도 빈다고 했다. '마리아나'는 각국의 학생들에게 추수감사절과 같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의외로 브라질, 멕시코, 모로코, 일본 학생들 모두 그런 명절이 없단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명절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다. 한국 친구 '은남'이 집에서 담근 깍두기와 깻잎 반찬을 주었기 때문이다. '은남'은 한국에서 보내준, 귀한 고춧가루와 액젓 등으로 만든 반찬을 자취생인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정말 너무너무 고맙다. 나는 신나게 집으로 와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맛있는 냄새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완전 꿀맛이다.

맛나게 밥을 먹고 그 힘으로 또 신나게 공부를 했다. 야호! 숙제가 한 가득이다. 무슨 종합선물세트같다. 1개의 쓰기 과제, 2개의 발표 과제, 그리고 내일까지 풀어야 하는 연습문제 숙제, 복습해야 할 수많은 것들이 있다. 급한 숙제부터 하고 나서 복습을 했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하는 첫날이 끝났다. 많이 긴장했던 것에 비하면 하루를 아주 잘 지냈다. 그 사이 친구들도 많아졌고 교사의 말도 이제는 어느 정도 들리니까 수월하게 적응했다. 오후에 복도에서 '스튜어트'와 마주쳤는데 그는 나에게 레벨 4에서 잘 지내냐고 물었다. 나는 엄지척을 하면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응원해주었다. 그래. 더욱 힘내서 내일은 더욱 즐겁게 수업을 들어보자.



2023.10.04. 수요일 [영어단어를 확장하자.]
문법 시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어제 복습하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을 '마사'에게 질문했다. 예를 들면 non-action 동사라고 해서 무조건 다 진행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다. 맥락에 따라서는 가능하단다. 3레벨에서는 규정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적용했다면 4레벨에서는 맥락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문법을 사용하는 연습을 한다. 그래서 기존에 알고 있던 규칙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어렵다.

연습문제를 풀고 나서 '마사'는 게임을 하자면서 화면의 사이트에 휴대폰으로 접속하란다. QR코드를 읽어서 접속하고 이름을 입력해서 합류했는데, 두 가지 문제 때문에 나는 게임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나는 퀴즈 내용의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간에 게임하는 화면을 사진으로 찍는 사이에 휴대폰이 게임 사이트에서 튕겨 나갔는데 어떻게 재진입하는지 몰라서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화면을 좀 크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다음에 할 때는 중간에 사진을 찍지 말아야겠다.

듣기 수업은 어제 들었던 내용의 받아쓰기를 했다. 2레벨에서는 중간중간 빈칸이 있어서 그것을 메꾸는 형태였는데 3레벨에서는 완전 빈 종이에 처음부터 끝까지 받아써야 한다. 손에 쥐가 나도록 열나게 받아썼다. 아이고. 절로 곡소리가 난다.

점심 시간에는 오늘도 '제니스'와 함께 열나게 복습을 했다. 우리는 수업 시간 중에 의문이 들었던 것들을 서로 이야기해서 해결했다. 복습을 함께 하니까 확실히 개념이나 맥락이 좀더 명료해진다. 다만 복습하고 나서 회화수업을 들으러 갈 때 이미 지쳐서 수업에 들어간다는 점이 문제다. 쉬는 시간 없이 수업을 연속해서 몇 개 더 듣고 수업에 다시 들어가는 느낌이다.

회화 시간에는 어제에 이어서 인터뷰를 마저 했다. '안토'는 자신의 시를 보여주기도 하고 가족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을 위해서 자신의 가족 사진을 인스타로 보내주겠단다. 이 친구의 부모님은 이혼하고 각각 재혼했는데 서로 축복해주었고 다함께 친하게 지내고 있단다. 교사 '안젤라'와 나는 '안토'의 이야기를 듣고는 멋진 가족이라고 감탄했다. '안토'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프리젠테이션에서 발표해도 된단다. 굉장히 여린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강한 친구다.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가 든든하게 그녀를 뒷받침해주는 것 같다.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프리젠테이션의 틀을 구상해 보았다. 이 멋진 친구를 소개하려면 좀더 특별한 구성이어야 할 것 같아서 엄청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소개할까?

extra 수업까지 끝나고 나서 한국 친구 '은남'과 함께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또 열나게 2시간 동안 영어로 떠들었다. 이번에도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정말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다. 제법 친해진 외국 친구들과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내용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 가만 보니까 모르는 단어가 중심어가 되면 나는 아예 감을 잡지 못한다. 이제는 단어 공부에 시동을 걸어보자. 사용하는 단어의 범위를 좀더 확장할 때가 되었다.



2023.10.05. 목요일 [너무나 바쁜 하루]

문법 수업은 벌써 2단원이 시작되었다. 새로 배우게 되는 내용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마사'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되지만 문제로 나오면 모르겠다. 특히 연습문제를 풀 때는 '마사'가 답을 너무 빨리 말하고 넘어가서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예습과 복습이 절실히 필요하다.

듣기 수업은 어제의 숙제를 확인하고 나서 새로운 듣기 활동을 했다. 방심했다가 반타작도 못했다. 슬쩍 상식에 의존해서 풀었다가 틀린 내용도 있고 비슷한 단어에 현혹되어 틀린 문제도 있다. 역시 영어 듣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리고 또 새로운 숙제가 있다. 와, 매일매일 숙제가 있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본문의 내용을 확인하는 작문 숙제를 다 함께 확인했다. 내용은 단순한데 영어로 요약하려니까 그게 쉽지 않다.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 동사구을 배웠다.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었으나 의미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제는 그 어느 것도 쉽다고 얕보지 않는다. 쉬운 것들이 모이면 더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나는 내일 비빔밥을 만들어오기로 했다. 한국친구들의 홈스테이에서 싸준 점심은 오로지 소시지 하나만 들어가 있는 롤빵이다. 소스도 없고 야채도 없다. 그들이 내가 싸온 카레라이스를 너무 부러워하길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내일 비빔밥을 많이 만들어 오겠다고 했다. 마침 카레는 다 먹었다. 내가 관찰해보니까 여기 홈스테이들 중에 90%는 도시락이 너무 별로다. 무성의한 샌드위치나 빵, 때로는 과일이나 야채 몇 개가 전부다. 오직 10% 정도만 제대로 된 도시락이었다. 아침이나 저녁은 내가 보지 못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점심은 너무 부실한 것이 확실하다. 머나먼 타지에서 공부하느라 힘든데 밥이라도 잘 먹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다.

회화 시간은 금요일의 발표 준비를 '안젤라'가 점검해주었다. 나는 아직 초안도 준비되지 않아서 별로 보여줄게 없었다. '안토'에게 몇 가지 보충 질문을 하고 전체적인 틀을 구성했다. 그녀도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좋아하는 색깔이나 음식, 장소 등에 대해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어제 밤에 내가 보내준 사진들에 대해 좀더 보충설명도 해주었다.

회화 수업이 끝나자 '안토'는 '안젤라'에게 가서 허그를 하고 나간다. 그러고 보니까 이 친구는 늘 나갈 때 '안젤라'와 허그를 한다. 아직 어린 친구가 엄마와 떨어져서 이 머나먼 곳에 있으려니까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녀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엄마같은 교사다. 어린 친구들뿐 아니라 '안젤라'는 너무 좋은 교사라서 많은 학생들이 좋아한다. 나는 회화수업을 이 교실로 배정받은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도 만나고 좋은 교사도 만났다.

extra 수업까지 듣고 나서 오늘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 한인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바로 집으로 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비빔밥 재료도 만들어야 하고 프리젠테이션도 2개나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작문 숙제는 화요일에 미리 해두어서 다행이다. '안토'를 멋지게 소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내용을 구성하고 사진과 내용을 배치했다. 그리고 스크립트를 짰다. 발표 제목은 '별처럼 빛나는 친구'다. 내 느낌 그대로다. 이 친구는 반짝반짝 빛난다. 친구를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꿈, 가족, 사랑, 그리고 미래를 테마로 해서 내용을 구성하였다. 다만 스크립트를 다 외울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교사에게 발표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면서 스크립트를 출력해달라고 요청했다.

프리젠테이션 하나를 준비하는데 무려 4시간이 걸렸다. 너무 심혈을 쏟아부었나보다.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그때 미국 친구 '메기'가 보낸 인스타 메시지를 보았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큰 것을 샀는데 냉동실 자리가 없어서 녹고 있다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겠냐는 내용이다. 그래. 좋아. 그녀의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면서 나는 프리젠테이션 두 개 중에 하나를 마쳤다고 했다. 우리가 주방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일본 친구 '쿠지'가 나왔다. 그녀에게도 아이스크림을 권해서 셋이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small talk를 했다. 이메일로 이곳 기숙사에서 다음주 목요일에 할로윈 파티를 연다는 내용을 받았다. 희망자는 신청하라고 하는데 너희는 어때? '쿠지'는 이미 신청했다면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혼자 가면 좀 그렇지? 그래. 같이 가자. 거기에는 할로윈 복장을 하고 오라는데 '쿠지'는 작년에 산 토끼 머리띠가 있단다. 나는 '달라라마'에 가서 간단한 망토나 하나 사야겠다. '메기'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녀는 복장이 마땅치 않아서 생각해보겠단다. 아, 그녀는 거기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

짧은 휴식 후에 이번에는 듣기 수업의 2분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다. 대중교통의 장단점을 토픽으로 선택해서 장점 2개, 단점 2개를 준비했다. 이것은 간단하게 끝냈다. 그밖에 문제 풀기 숙제도 하고 나니 이미 한밤중이다. 그러나 내일 비빔밥 재료를 만들어야 한다. 지쳤지만 우리 한국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 당근과 불고기를 볶고, 시금치를 데쳤다. 그밖에 야채들 모음을 사둔 것이 있어서 그것도 볶았다. 나름 그럴듯한 비빔밥이 될 것 같다.



2023.10.06. 금요일 [별처럼 빛나는 친구]

문법 수업에서 헉헉대고 있다. 연습문제의 답을 확인할 때 '마사'가 너무 빠르게 말하고 넘어가서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다. 이 교실에는 아주 잘하는 3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마사'는 그들의 답을 듣고 맞다고 말하고 바로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그래서 나와 내 주변의 학생들은 종종 교사의 진도를 놓친다. 옆 자리 친구가 어느 문제를 나에게 물어보는데 이미 교사는 다음으로 나가고 있어서 나중에 확인하자고 했다. 진도를 쭈욱 뽑고 나서 몇 명 학생들이 질문을 하니까 그것에 대답을 해준다. 음. 교사의 눈높이가 상급 학생들에게만 맞추어진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따라가기에는 여기 레벨이 너무 높은 것일까?

듣기 수업에서 오늘은 발표가 있다. 누가 먼저 하겠냐고 하길래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빨리 하고 나머지 학생들 발표를 마음 편히 들어야지. 내가 외우지는 못해서 스크립트를 좀 보면서 하겠다고 하니까 교사 A가 그러라고 한다. 어차피 자신의 목적은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대중교통의 장단점을 간단한 예를 들어서 설명했다. 교사는 내 발표를 듣더니 한국에서 차를 운전하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여기서도 운전할 수 있을 거란다. 그렇겠지만 굳이 그럴 생각은 없다.

다른 학생들도 하나씩 발표를 했다. 발표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나름 외워 와서 최선을 다해 외운 내용을 말하려고 노력한 학생들도 있고 어떤 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읽었다. 각 나라의 대중교통에 대해서도 좀 알게 되었다. 멕시코는 여자가 혼자 버스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단다. 그래서 주로 자차를 이용한단다. 일본의 도시간 이동은 기차가 더 좋단다. 교사는 중간중간 질문도 하고 자신의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재밌는 발표시간이었다.

작문 수업이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에 브라질 친구가 허겁지겁 와서 자리에 앉더니 숙제를 열나게 했다. 그녀는 숙제를 깜빡했단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작문을 써서 제출했다. 브라보!! 동사구문으로 작문하는 연습을 좀더 하고 나서 빈칸 메꾸기를 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 브라질 친구가 한국말로 메모를 해서 이게 맞냐고 묻는다. 그리고 몇 가지 한국 문장을 더 써서 읽어본다. 그녀는 한국에서 2달간 한국어 공부를 했단다. 신기하다. 이 브라질 친구는 19살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미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는 것 같다. 영어도 잘 하고 장난도 잘 친다. 재밌는 친구다.

점심 시간이 되어 전자레인지에 비빔밥을 데우고 있는데 학생들이 무료 호박파이를 나눠준다면서 우루루 안내데스크 쪽으로 간다. 나도 달려가서 받아왔다. 호박파이는 추수감사절의 대표 음식으로 칠면조 요리와 함께 먹는 디저트다. 친구들과 함께 호박파이를 받아들고 와서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다른 친구들도 자신의 음식을 함께 먹자고 해서 다양한 것들을 나누어 먹었다. 그래도 역시 비빔밥이 최고다. 나는 곁들여 먹을 깍두기도 가져왔다. 전에 '은남'이 만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깍두기를 대만 자매들이 한번 먹어보더니 아예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한국 친구들은 겨우 한 개씩 맛보았는데 대만 자매들이 다 먹어버렸다. 한국 친구들에게 집밥의 맛을 느끼게 해주려고 가져온 것인데, 나는 속상했다. 제법 매운데도 대만 친구들이 아주 잘들 먹는다. 그래도 한국 친구들이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따뜻해진다.

밥 먹고 나서 '제니스'가 일요일에 뭐할거냐면서 함께 MeetUp모임을 찾아보자고 한다. 일요일에 비가 오지 않는다니까 참여할만한 영어 모임을 찾아보자. 우리는 몇 가지 후보를 찾아 보았지만 딱 마음에 드는 모임은 없어서 좀더 찾아보기로 했다. 오늘은 문법 복습을 끝내지 못했다. '제니스'는 내일 우리집에서 하는 영어 수다 모임에 함께 하기로 했는데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와서 문법 복습을 함께 하기로 했다.

회화 수업은 친구 소개를 발표하는 날인데 나는 오늘 오전에 칠레 친구 '안토'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는 오늘 결석할 것이란다. 자신은 다음주 화요일에 발표하게 되는데 나도 화요일에 발표하면 좋겠단다. 내가 그러자고 답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까 별일은 아니란다.

수업에 들어가보니까 '안젤라'는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다. 그녀는 '안토'가 아무래도 발표에 대해 너무 많이 긴장한 것 같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들도 너무 긴장된다고 말한다. 교사는 자기도 어린 시절에 발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단다. 그래서 발표를 앞두고는 늘 아팠단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 학생이었고 발표는 더군다나 아예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안젤라'는 아주 반가워하면서 자신도 그랬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나도 학생들과 함께 할 때면 마음이 편하고 오히려 교사들 앞에서 말할 때는 불편하다고 했다. 우리가 신나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까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발표의 두려움을 극복했냐고 묻는다. '안젤라'는 이것을 발표라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도 옆에서 거들면서 우리는 다들 친구들이니까 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말하듯이 하면 된다고 말했다. '안젤라'는 학생들이 발표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도록 하려고 일부러 이런 대화를 이끌어낸 것 같다. 참 좋은 교사다.

'안젤라'는 다음 주에 '안토'와 오늘 결석한 친구들 3명이 함께 발표하게 될 것이라면서 오늘 여기 있는 학생들은 시간이 되는 한, 모두 발표하자고 했다. 누가 먼저할래 하는데 나는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만약 발표시간이 부족하면 나는 다음 주에 발표해도 된다. 하지만 발표시간이 남으면 나도 발표를 해야지. 오늘 발표를 끝내지 않으면 나는 주말 내내 이것을 붙들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과 다음 주에 '안토'가 있을 때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결국 여러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서 마지막에 나도 발표를 했다. 나의 발표 제목은 '별처럼 빛나는 친구'다. '안토'의 꿈, 가족, 사랑, 미래를 테마로 해서 이야기를 전개했다. 마지막 미래에서는 그녀가 자신의 꿈인 세계 여행을 하면서 이곳 밴쿠버에 와서 '안젤라'와 재회할 것이라는 상상, 그녀가 한국에 오면 제주도를 보여주겠다는 상상 등을 곁들여서 발표를 마쳤다.

학생들 발표를 듣고 나서 '안젤라'는 다들 너무 잘했다면서 한 명씩 인상깊었던 부분을 말하면서 칭찬해주었다. 막연한 칭찬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다. 역시 그녀는 좋은 교사다. 나에게는 친구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중간중간 농담을 적절하게 곁들여서 인상적이었다고 칭찬해주었다. 내가 알기로는 서양사람들은 발표를 할 때 대체로 농담을 곁들인다.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좋게 유도하면서 하는 발표가 더 좋은 발표란다. 내가 농담에는 소질이 없지만 일부러 몇 군데 웃음 포인트를 두었다.

폭풍 칭찬 후에 '안젤라'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문법 실수를 짚어 주었다. 역시 주어가 3인칭 단수일 때 동사를 제대로 바꾸지 못했다. 그게 가장 많이, 모든 학생들이 한 실수란다. 하지만 과거, 현재 진행, 미래 등 시제를 골고루 사용했단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나도 모르게 시제를 적절하게 사용한 것 같다.

수업이 끝난 후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주최자 '마이클'과 카페 입구에서 마주쳤는데 주말에 하이킹을 잘했냐고 묻는다. 나는 그가 추천해준 곳에 갔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했다. 차를 주문해서 받아서 처음에는 커다란 테이블에 가서 앉았는데 거기 사람들과는 서먹서먹해서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마침 건너편 작은 테이블에 저번에 같이 대화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이 몇 명 보이길래 테이블을 옮겼다. 그들은 반가워하면서 주말 하이킹을 잘 했냐고 묻는다. 다들 내가 하이킹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무지개 사진을 보여주었다. 친구들이 어디냐고 묻길래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주말에 뭐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이프러스 친구 '에디'는 주말에 사진을 편집할거란다. 그는 자신이 작업한 사진을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선명한 사진이 아니라 일부러 흐리게 처리한 사진들이 많다. 화가 '모네'를 얘기하면서 자기는 그런 종류의 사진을 찍는단다. 내가 사진 예술가라고 칭찬하니까 아직은 아니란다.

나는 토요일에는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갈 것이고 일요일은 또 어디론가 하이킹을 갈거라고 했다. '조프리 레이크'에 가고 싶지만 셔틀버스가 종료되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홍콩 친구 '웬디'가 어디로 하이킹을 갈거냐고 묻고 자기도 같이 가면 안되냐고 묻는다. 그녀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여기서 일했는데 다음달에 귀국을 앞두고 지금은 일을 그만두었단다. 그동안 일하느라 놀러다니지 못해서 이제부터 열심히 놀러다녀야 한단다. 내가 여기저기 많이 다닌 것을 알고는 같이 가고 싶단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마이클'이 우리 테이블에 합류했다. '웬디'가 이런 모임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하니까 '마이클'은 자기가 처음 만든게 아니라고 했다. 자신도 여기 참여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모임을 만든 친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서 자기가 이어서 하고 있단다. '마이클'은 캐나다의 다른 지역에 살다가 여기로 이사왔는데 처음에는 친구도 없고 쓸쓸해서 이 모임에 참여했단다. 그러면서 여기는 외국에서 공부하러 온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다들 외롭고 쓸쓸하니까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서로 친구가 되고 의지가 되는 것이 좋단다. 너무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나도 밴쿠버에 온 목적이 영어공부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목적은 친구 사귀기가 되어간다고 이야기했다. 다들 공감했다.

'마이클'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 중이었냐고 해서 하이킹 장소를 찾고 있다고 하니까 새로운 장소를 소개해주었다. 그 중에서 나와 '웬디'가 딱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서 일요일에 우리는 함께 그곳에 가기로 했다. 시내에서 버스를 한 번만 타고 가면 되는 곳인데 한 번에 두 군데를 들를 수 있다. 버스로 접근하기 좋은 곳이고 지금 계절이 좋으니까 가보면 좋을 거란다. 나는 '웬디'와 인스타그램을 연결하고는 일요일 아침 8실에 시청역앞에서 보기로 했다. 이렇게 일요일 놀러갈 계획이 생겼다. 신난다. 나는 정말 잘 논다.



2023.10.07. 토요일 [연합 기숙사의 친구]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문법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수다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일본 친구 '유카'가 귀국하는 날이다. 혹시 작별인사를 못할까봐 어제 선물을 미리 주었다. 아침에 공항으로 출발한다고 했는데 지금 출발하나 싶어서 얼른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 반가운 얼굴이 있다. 여기서 처음 문법 수업을 함께 들었던 일본 친구 '아유미'가 '유카'의 귀국을 도우려고 온 것이다. 나와 '아유미'는 너무 반가워서 서로 얼싸안고 요란을 떨었다. 누가 보면 6.25 때 헤어진 가족 만난 줄 알겠다. 우리는 '스튜어트'의 수업을 들으면서 멕시코 친구 '루시오', 브라질 친구 '루시'와 함께 많이 친해진 사이다. 그 사이 '아유미'가 학원을 그만두었다고 들어서 일자리를 구했나 짐작했었다.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녀는 여기서 정착하기 위해 영어 능력 시험을 보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집중적으로 시험공부를 하려고 잠시 학원을 중단했던 것이고 이번달 말에 다시 학원으로 복귀할거란다.

그녀는 나의 레벨 업 소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내가 새 문법 교사가 너무 빨리 진도를 나가서 나는 못 따라 간다고 하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그러면 그것을 학원 운영진에게 알리란다. 우리가 듣는 코스는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이니까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항의해서 바꾸게 해야 한단다. 우리가 좋아하는 교사들 '스튜어트', '마리아나', '안젤라'는 모두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가르쳐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항의하거나 교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해야 한단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내가 일주일만 더 들어보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요청하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 실력이 부족해서 못따라 가는 점도 있는 것 같고, 좀 어려운 내용을 쫓아가야 내 실력이 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일단 한 주 더 들어보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반을 바꿔달라고 해봐야겠다.

우리가 수다를 떠는 사이에 '유카'가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이제 짐 정리가 다 되었단다. 커다란 트렁크가 두 개이고 어깨에 매는 가방도 있다. 그래서 친구 '아유미'가 도와주러 온거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을 채크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그녀는 떠났다. 이로써 이 기숙사에 내가 처음 왔을 때부터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떠났다. 지금 친구들은 모두 새롭게 이사온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7주 후에 떠나간다. 연합 기숙사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대학 기숙사는 이렇게까지 사람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여기는 학원 연합 기숙사라서 끝없이 사람이 들고 난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경험! 내 생전에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랴 싶다. 여기서의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자.

문법 공부를 하과 나서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나갔다. 오늘도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말을 좀 할 줄 아는 캐나다 사람, 여기 온지 2주 된 한국 학생, 1년간 토론토에서 일하다가 얼마전에 밴쿠버로 이사온 한국 사람, 그냥 무작정 이곳으로 와서 일하면서 영주권을 기다리는 브라질 사람,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여기에 와서 식당에서 일하는 일본 학생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세상은 넓고도 넓으며 사람들은 다양하고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의 영어는 어떤 때는 잘 작동되는 것 같지만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과 섞였을 때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맥락을 한 번 놓치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언제쯤 이 정도의 대화는 그냥 스르륵 이해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7주동안 가능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보니까 좀 지쳤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모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텐션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후반에는 주로 남의 수다를 듣기만 했다. 그것도 나름 재밌다. 한영언어교환 모임답게 한국말을 가르쳐주는 이야기, 한국의 공기놀이(주최하는 친구가 공기를 사옴), 한국 음식 이야기, 추석에 대한 이야기 등 대체로 한국을 소재로 한 대화였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왔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도 영어 수다 모임이 있다. 앞집의 친구들과 '제니스'가 함께할 것이다. 모임 시작 전에 '제니스'가 먼저 와서 우리는 식탁에 앉아 문법 복습을 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메기'가 방에서 나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문법 공부를 했다. 그 사이 '메기'가 간식을 챙겨와서 우리 앞에 앉는다. 그리고 슬쩍 우리에게 간식을 권한다. 너무 착한 '메기'. 마침 '제니스'와 나는 한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서로 버벅거리고 있었다. '제니스'가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을 '메기'에게 물어보았다. '메기'도 고개를 갸오뚱한다. 아무래도 답이 틀렸나보다. 내가 봐도 이건 문장이 말이 안된다. 우리는 교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 사이 앞집 친구들이 왔다. 이들은 모두 나보다 영어를 잘한다. 역시 이들이 오니까 미국친구 '메기'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는 내심 '메기'가 우리의 목적이 원어민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연습이라는 것을 이해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녀는 확실하게 우리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었고 도와주려고 했다. '메기'는 공책을 가져와서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발음은 스펠링을 써주기도 하면서 말을 천천히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노력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메기'가 만들었던 치킨 요리, 영어 문법의 어려움, 미국식 표현 등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시간 정도 수다를 떨고 모임을 끝냈다. 우리는 '메기'에게 함께 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했고 '메기'도 너무 즐겁고 재밌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집에서 첫 영어 수다 모임이 이루어졌다. 너무 신난다. 나는 영어 연습을 할 수 있어서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메기'와 친해지는 것이다. '메기'와 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아침 준비를 하고 비슷한 시간에 집에 머무른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방에 있기 보다는 거실에 나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 친구와 더 가까워지고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연합 기숙사이지만 나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어서 좋다. 이미 여러번 생각했지만 정말 기숙사에 오길 참 잘한 것 같다.


2023.10.08. 일요일 [두 개의 공원과 칠면조 요리]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밋업 모임에서 새로 사귄 홍콩 친구 '웬디'와 함께 하이킹을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 다른 친구들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었는데 다들 하이킹은 싫단다. 그래서 '웬디'와 나만 길을 나섰다. 우리는 밴쿠버 시청역 앞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작은 섬이 있는 공원으로 갔다. 물때가 맞아서 섬까지 걸어서 들어갔다. 거기서 스쿠버다이버도 구경하고 바다표범도 구경했다. 가는 길에 해안 절벽을 따라 지어진 집들을 보았는데 딱 봐도 잘 사는 집들인 것 같다. 여기는 밴쿠버의 북쪽 지역인데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서 집값이 비싸고 부자들이 많이 산단다.

공원과 섬을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여기도 밴쿠버 북쪽 지역의 공원인데 등대로 유명한 곳이다. 180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등대는 직접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등대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보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금요일의 '영어회화' 모임에서 자주 만나던 일본 친구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과 이곳에 놀러온 것이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이렇게 모임 친구들을 우연히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해안 절벽을 따라 다양한 길들이 있어서 우리는 신나게 하이킹을 했다. '웬디'와 나는 성향이 비슷하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 보다는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걷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멋진 뷰 포인트들을 몇 군데 찍고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우리는 다음 번에 '조프리 레이크'에도 같이 가자고 했다. 이곳에서 또 한 명의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다.

나는 집으로 와서 씻고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저녁에는 '제니스'와 함께 MeetUp의 '사교' 모임에서 주최하는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저번부터 '제니스'가 '사교' 모임에 참석하고 싶은데 혼자 가기는 싫다고 같이 가자고 졸랐던 모임이다. 추수감사절의 전통 음식인 칠면조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오늘 가기로 했다. 때마침 모임 장소는 우리 집 근처의 레스토랑이다. 정말 우리 집의 위치는 너무 짱이다.

'제니스'가 모임에 가기 전에 문법 시험 대비해서 한번 더 복습하자고 해서 우리집에 오라고 했다. 우리집에는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수 있는 '메기'가 있다. 우리가 식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으려니까 '메기'가 나와서 간식을 권한다. '제니스'가 올 때 과일을 사와서 다함께 나눠 먹었다. 우리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왜 이것이 답인지 서로 설명했다. 어떤 문제는 단어가 막혀서 사전을 찾고 있는데 '메기'가 슬쩍 일어나서 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덕분에 쉽고 재밌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그렇게 열공을 하고 나서 신나게 모임 장소로 갔다. 장소는 이 모임이 자주 이용하는 레스토랑이란다. 메뉴판을 살펴보니까 칠면조 요리는 추수감사절용 특별요리가 아니라 이 레스토랑의 주메뉴 중 하나이다. 크린베리 소스와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이고 데운 야채들과 으깬 감자를 함께 먹는 전통식이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모임에는 10 여명이 참석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참여한 MeetUp 모임 중에 가장 작은 규모다. 그런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영어회화' 모임에서 여러번 함께 이야기를 나눈 캐나다 사람 '윌리'가 나타났다. 그는 중국어를 제법 말할 줄 알고 한국어도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대뜸 한국말로 '밥 먹었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 먹으러 왔어'라고 대답했다.

이 모임은 캐나다 국적의 서양인이 절반이었고 나처럼 영어공부 중이거나 여기 대학에 다니는 동양인이 절반이었다. 주최자는 사람들이 다 오자 일어나서 이 모임의 취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 모임은 모든 가족이 모이는 추수감사절에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모여서 따뜻한 저녁을 먹자는 취지의 모임이라고 했다. 물론 추수감사절은 내일이지만 주최자들도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 이 사교모임은 명절에는 이런 모임을 갖고 평소에는 음악, 문학, 미술 등 다양한 취미를 나누는 모임이란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이번주 혹은 최근에 감사할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서, 시험에 통과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최근에 모형 만들기를 배웠는데 그게 너무 즐거워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말 너무 감사하지. 비록 영어는 잘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서 나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

칠면조 요리는 솔직히 그저 그랬다. 나에게는 모두 너무 짜다. 칠면조는 크린베리 소스를 곁들여서 먹으니까 그나마 좀 중화되었지만 나머지는 짜다. 그래도 전통방식으로 칠면조 요리를 먹었고 대화가 즐거워서 짠 음식을 용서할 수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 단연코 화제는 영어 공부에 대한 것이었다. '제니스'가 아주 적극적으로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해 물어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1년째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일본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많이 들려주었다. 그는 일본에서 영어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왔지만 여기 와서는 자기도 어려웠단다. 그는 일부러 어학원에는 다니지 않고 영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단다. 대신 무조건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무조건 영어 전공 서적을 읽고 대학 강의를 듣고 했단다. 그냥 24시간 영어만 해야 살 수 있으니까 저절로 영어가 늘었다고 한다. 아마 나도 저렇게 살면 1년도 안되서 영어를 잘하게 되겠지?

한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한 후 각자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섰다. '제니스'는 우리 집과 반대방향이라 작별인사를 하고 마침 우리집 방향의 전철역으로 가는 캐나다 친구 '윌리'와 함께 걸었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길이 갈라져서 작별했다. '윌리'는 나에게 이런저런 모임에 나오는 것은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영어가 처음 나를 봤을 때보다 확실히 많이 늘었다면서 계속 용감하게 도전하라고 말해주었다. 이란 아저씨 '캐빈'도 그렇고 '윌리'도 그렇고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어서 너무 고맙다. 다음 주 금요일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오늘 하루도 정말 다이나믹하게 보냈구나. 두 군데의 공원을 걸었고 문법 복습을 했고 칠면조 요리를 먹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영어로 또 열심히 떠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주는 새롭게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 나는 너무나 잘 적응했고 너무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7주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지내온 날보다 앞으로 지나갈 날짜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어떻하지? 이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다. 지금 너무 재밌는걸. 학원도 재밌고 모임들도 재밌고 기숙사도 너무 재밌다. 나는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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