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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07. 2023

드디어 밴쿠버 입성

2023.06.24.토요일

이 글의 제목을 붙이고 나니 내가  매우 올드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알겠다.

무사히 밴쿠버에 도착했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곳은 앞으로 5개월동안 나의 집이 되어 줄 기숙사이다.

우선 여기오기까지의 과정을 좀 정리해볼까 한다.

앞서 밝힌대로 현지 유학원(밴브릿지)를 통해 기숙사, 어학원 등록을 마치고 관련서류를 모두 받았다. 비자와 유심도 유학원을 통해 해결하였다. 그밖에 현지 은행 계좌개설과 카드 발급 등도 여기를 통해서 해결할 예정이다. 유심도 그렇고 계좌도 그렇고 발급부터 추후 해지 등의 뒷마무리까지 해주신다니 너무 좋다.


지금 밴브릿지 칭찬을 좀 대놓고 해야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타이밍에 딱 맞는다.

해일리님이 비자와 유심을 맡아주셨고 월요일에 있을 오리엔테이션도 진행한단다. 비자와 유심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리저리 따라했으면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덕분에 손하나 까딱 안하고 마음 편하게 받았다.

에드윈님이 공항으로 픽업와 주셨는데 사전에 픽업 위치도 상세히 설명해주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릴 때 다시 한번 또 안내해주셨다. 그리고 기숙사 채크인에 돌발변수가 생기자 바로 대처해주셨다. 아니었으면 채크인 과정에서 나는 땀 한바가지과 눈물 한바가지를 흘릴 뻔 했다.

테드님이 기숙사 앞까지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사실 아직 실감도 나지 않고 뭐부터 해야 할지 어리버리한 상태에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확실히 정리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 청할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놓인다.


이제부터는 오늘의 일기다.


비행기를 타고 9시간 넘게 오면서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앞자리에 아가들이 타고 있어서 중간중간 깨는 바람에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비몽사몽 상태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 와이파이를 잡아서 픽업하러 온 에드윈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별 생각없이 사람들 가는 대로 따라갔더니 장승처럼 생긴 것들이 서 있는 장소가 나왔다.


밴쿠버 공항 입국장


여기에 입국심사정보를 입력하는 키오스크가 있는데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등록하면 된다. 나는 어라이브캔으로 미리 등록해 두어서 여권만 스캔하니 간단히 절차가 끝났다. 각국 언어가 지원되어 어렵지 않다. 여기서 출력되어 나오는 하얀 종이를 가지고 짐을 찾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짐이 너무 늦게 나와서 거의 30분 이상 기다렸다. 잠은 못 자고 짐은 안 나와서 좀 슬펐다. 겨우겨우 짐을 찾은 후 출구 쪽으로 나가면서 아까 출력된 종이를 제출했다. 따로 입국심사를 하지도 않고 그냥 종이만 내고 나왔다. 너무 쉬워서 당황했다. 왜 왔는지, 어디 묵는지 등을 물어볼까봐 열심히 영어 연습해 왔는데 너무 쉬워서 아쉬울 정도다. 밖으로 나오니 좀 무섭게 생긴 조각상들이 서 있다. 여기서부터 에드윈님이 안내해준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픽업 장소로 갔다.

픽업해주러 온 차량을 타고 편하게 기숙사 앞까지 올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에드윈님으로부터 이런 저런 정보를 들었다. 아직은 방향감각이 없지만 밴쿠버 주변의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나는 산이 좋다. 근처에 하이킹할 곳이 많아서 더 좋다. 밴쿠버. 마음에 든다.


기숙사 앞에 도착해서 이메일에서 안내한대로 입구에서 번호 누르고 채크인하러 왔다고 말하니까 문을 열어주어서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다. 경비원이 없으면 사무실로 오라고 했는데 사무실에도 아무도 없다. 만약 여기 아무도 없다면 한블록 옆에 있는 자기네 다른 사무실로 오라고 되어 있어서 에드윈님과 함께 거기로 갔다. 그런데 웬걸, 그곳 직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에드윈님이 핫스팟을 켜주어서 이메일을 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메일을 보여주니 어디론가 전화하더니 다시 기숙사로 가면 사람이 나올거란다. 다시 기숙사로 가니까 사람이 나와 있다. 불이 꺼져있던 사무실에 불이 켜진 걸보니 아까는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다. 속으로 욕을 한바가지했다.


숙소 건물 전경


만약 나 혼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손짓발짓으로 어떻게든 채크인을 했겠지만 그 과정에서 속으로 열번 울었을 것이다. 직원들이 말하는 영어가 단 한마디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영어 울렁증. 이 상태를 극복하려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야 할까? 기숙사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가는데 정말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겠다. 미리 채크인 동영상을 보고 오길 정말 다행이다. 직원에게 받은 키로 입구 들어오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보안이 철저하다. 숙소 들어가는 키도 있고 그 안에 내 방으로 들어가는 키도 있다. 여기는 아파트처럼 생긴 공간에 방이 4~5개 있고 공용 거실과 주방, 화장실(2개)가 있는 구조다. 직원은 방의 롤스크린이나 전등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벽에 스크래치가 있는 것은 사진을 찍는 등 방의 상태를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방에서 내가 쓸 공간, 화장실 등을 안내해 주었다. 사실 영어로 뭐라뭐라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그냥 대략적으로 공용 공간 사용할 때 깨끗하게 써라, 쓰레기는 분리수거해라, 이런 내용인 것 같다.

그런데 약간의 사고가 발생했다. 직원이 화장실을 안내하는데 바닥이 미끄러워서 살짝 넘어질 뻔했다. 화가 난 직원이 방에 있는 사람들 나오라고 소리치니까 주방에서 요리하던 학생과 방에 있던 학생들이 모였다. 그들에게 뭐라뭐라 하는데 누가 여기를 사용했는지, 샤워하면 화장실에 물기가 없어야 한다, 깨끗하게 써야 한다는 등 얘기인 것 같았다. 거기 있던 학생들은 자기들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보니까 그들의 머리는 젖어있지 않은 걸 보니까 아마 다른 학생이 사용했나보다. 그런데 살짝 한국말이 들린 듯하여 보니까 어느 방에서 나온 2명의 학생이 한국사람이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들에게 나중에 인사하자고 하고 직원이 싸인하라고 내민 서류에 싸인했다. 방 상태 확인하고 공용 공간에 대해 설명 들은 것에 대해 서명하는 것이다. 미리 동영상으로 예습한 덕분에 겨우겨우 숙소 채크인을 마쳤다.


기숙사 내부 모습


영어를 쏟아내던 직원이 가고 나서 일단 옷짐을 풀었다. 방은 작지만 옷장이 있고 옷장 안에는 작은 서랍장도 있고 옷걸이도 과할 정도로 많아서 아주 유용했다. 짐을 쌀 때 의류는 모두 압축팩을 이용해서 부피를 줄일 수 있었다. 장기간 해외 생활은 처음이고 겨울까지 있을 예정이라서 여름부터 겨울까지의 옷을 챙겨와야했다.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라 옷가게가 있겠지만 옷은 한국옷이 더 좋다고 해서 욕심껏 챙겨왔다.


옷정리 중에 밴브릿지의 테드님에게 연락이 와서 내려갔다. 기숙사 바로 옆이 스타벅스다. 야호! 스벅에서 테드님이 사준 커피를 마시면서 유심도 바꾸고 이것저것 안내를 받았다. 유심 사용하면서 용량 확인하는 방법, 주의할 점, 어학원 OT와 유학원 OT에 대한 것, 인근의 생활용품 파는 곳, 식료품 저렴한 곳 등을 설명도 듣고 구글맵에 저장도 하였다. 영어가 너무 들리지 않아서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되었는데 뭐든 물어볼 수 있어서 너무 안심이 되었다. 물론 영어가 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더 많은 일들을 해결해 나가야하겠지만 솔직히 당분간은 도움이 필요하다. 테드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낯선 곳이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므로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테드님이 간 후 다시 올라와 짐 정리 2차전에 돌입. 소중하게 챙겨온 전기장판을 세팅했다. 지금은 필요없겠지만 9월만되어도 여기는 춥다고 들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조금만 추워도 금방 병난다. 그밖에 노트북 등을 꺼내 놓으려니까 문득 이러다가 오늘은 하루 종일 짐정리만 하게 될 것 같아서 멈추고 나왔다. 내 방의 의자가 너무 지저분해서 그 위에 놓을 방석부터 시작해서 당장 필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어서 핑계김에 나와서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기숙사가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점은 이래서 좋다.


우선 목표로 한 곳은 '다이소'. 물론 한국 다이소는 아니고 짝퉁이지만 생활용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판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 근처에 전자제품을 파는 '베스트바이'도 있어서 일타 쌍피를 노리고 걸어갔다. '다이소'까지는 걸어서 15분. 이것저것 소품들이 많아서 구경하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오늘은 목표가 있으므로 침착하게 방석을 찾았다. 하지만 방석이란 놈은 없다. 쿠션이나 쿠션커버가 있지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우연히 집어든 직사각형의 헝겊대기. 지저분한 것들 가리는 소형 커텐인가본데 주름은 없고 길다란 것이 딱 마음에 들어서 사왔다. 어차피 쿠션감 있는 방석보다는 의자 위를 감쌀 것이 필요하다. 세금 포함해서 2.81달러(약 2800원). 가격도 착하다.


그리고 '베스트바이'에서 무선키보드를 구경했다. 노트북을 가져오면서 무선 마우스는 챙겼는데 무선 키보드는 도저히 넣을 공간이 없어서 포기하고 여기서 사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해서 검색해서 비교했더니 '아마존'이 '베스트바이'보다 더 저렴하게 판다. 실례를 무릎쓰고 테드님께 도움 요청. 테드님이 '아마존'의 퀵배송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부탁드렸다.


그리고 향한 곳은 'IGA'. 대형슈퍼마켓인데 식료품이 비교적 저렴하여 이용할만하다고 해서 가보았다. 앞으로 가급적 도시락을 싸갈 예정이어서 채소, 과일, 계란 등을 구입하려고 한다. 'IGA'도 기숙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과일, 채소, 식품, 세재 등 다양한 물건들이 있어서 구경하느라 눈돌아갔지만 최대한 자제했다. 장바구니를 가져오지 않아서 작은 배낭에 넣고 손에 들 수 있는 것들로만 샀다. 장바구니를 일부러 가져왔는데 막상 필요할 때 안 챙겨왔다. 앞으로는 꼭 챙겨야겠다.


무겁지는 않지만 손에 무얼 들고 걷는 것은 나에게는 참 힘든 일이다. 나는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하는 사람이다. 낑낑대면서 기숙사로 돌아와서 일단 냉장고에 넣고(냉장고에도 각자 칸이 정해져있음) 짐도 마저 정리했다. 여행용어댑터를 두 개 가져오길 잘 했다. 책상쪽에 하나, 침대쪽에 하나 설치해서 각각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스스로를 아주 칭찬해주었다. 흐흐. 침대쪽에는 전기장판, 책상쪽에는 노트북이 각각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IGA 과일 코너


아직 정리할 짐들이 남았지만 문득 우리 숙소의 한국 학생들과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서 살짝쿵 문을 두드렸다. 서로 통성명하고 나서 내가 맥주 한잔 사겠다고 했는데 이들은 마침 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씻고 자려는 중이었다. 그래서 다음주에 같이 저녁에 나가기로 약속했다. 잠깐 몇 마디를 나누었지만 딱 봐도 착한 눈망울을 가진 학생들이다. 다음주에 많이 친해져야지.


나는 밖으로 나와서 가까운 펍에 가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밴쿠버에서의 첫날을 축하할까 생각했다. 구글맵으로 펍을 검색하니까 걸어서 5분 거리에 몇 개 나온다. 그 앞까지 걸어가면서 중간에 술상점(리퀴르 스토어)도 확인했다. 캐나다에서는 술을 아무곳에서나 팔지 않는다. 술상점이 따로 있어서 거기서만 구매할 수 있다. 술꾼인 나로서는 적응하기 힘든 시스템이지만 다행히 기숙사에서 3분거리에 술상점이 있다.


펍 몇 군데를 슬쩍 구경하고 나서 아무래도 오늘은 맥주 마시면 바로 뻗을 것 같아서 그냥 왔다. 대신 술상점에서 맥주를 사가지고 왔다. 아주 큰 맥주가 있길래 한번 사 보았다. 스트롱 비어란다. 알콜도수가 8.1라는데 솔직히 그렇게 쎄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아까 사온 계란을 삶고 샐러드, 치즈와 함께 안주로 삼아 먹었다.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에서 준 땅콩도 아주 유용한 안주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나의 밴쿠버 첫날은 술꾼답게 혼술로 마무리하였다.

강력 맥주? 글쎄다...


참, 이번에 연수를 오면서 결심한 것 중 하나가 그림그리기다. 나를 늘 놀라게 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 J샘이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따라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만화를 그려서 나만의 만화책도 완성해 보았지만 그동안 그림에 손을 놓은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서툴더라도 매일 조금씩 그리다보면 실력이 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실력이 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기분이 좋으려고 그리는 것이니까. 나는 무거운 그림도구들을 들고 다닐 자신은 없어서 가장 간단해보이는 색연필 스케치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색연필 세트를 샀다.

여기 오는 비행기 안에서 심심해서 그려본 것이 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의 모습인데 너무너무 설레고 떨리던 것이 생각나서 사진을 보고 그려보았다. 그런데 사진에서 색연필을 쓸 소재가 너무 없다. 사진 선택이 색연필 스케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뭐 내 마음이 떨렸으니까 그게 중요한 거지. 오늘은 떨리는 날이었다.

첫 번째 스케치


이 일기는 55세의 나이에 떠난 밴쿠버 어학연수의 기록입니다. 어쩌면 모든 일정이 끝난 다음에 소설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 일기는 블로그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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