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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08. 2023

아직은 관광객 모드

2023.06.25.일요일

대부분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데 나는 타고난 여행체질이라 그런지 가뿐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인 오전 7시에 딱 눈이 떠졌다. 알람도 없이. 어제의 강력한 맥주 덕분인가? ㅋㅋ

일요일이라 좀 느긋하게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다. 하지만 느긋한 하루를 보내기에는 내 마음을 아직 들떠 있다. 내일부터 어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해야 하니까 오늘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에 놀러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필요한 생활용품도 사야하고 교통카드도 발급받아야 한다. 아, 그리고 어학원도 미리 답사를 다녀와야겠다. 우선 오전에는 놀러다니기 전에 해야할 일부터 하자.

학원 앞까지 걸어가 보았다. 구글맵에서는 도보 17분으로 나온다. 아주 천천히 주변 구경하면서 걸으니까 20분정도 걸렸다. 어학원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그 입구만 확인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여기는 간판이 요란스럽게 붙어있지 않아서 주소를 보고 건물을 확인해야 한다. 아주 작은 깃발 같은 것으로 SSLC라고 써 있긴 했다. 처음에는 그 깃발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가 주소를 보고 다시 돌아왔다.

학원 가는 길과 학원 앞


학원 입구를 확인한 후 교통카드를 사기 위해 근처 전철역으로 향했다. 교통카드 구입에 대해 유학원(밴브릿지)에서 자세히 안내해주어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특히 제일 마지막 단계에서 카드가 나오면 기계에 한번 더 대주어서 확인해야 한다는 유의점을 알려주어서 무사히 발급받을 수 있었다. 많은 블로그에서 밴쿠버 교통카드 발급 방법을 알려주지만 이 마지막 단계를 스킵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 교통카드는 Compass card라고 하는데 전철역의 기계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월정액권, 1일권, 금액충전식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시내에 살고 있어서 그냥 금액충전식을 선택했다. 보통은 시내에서 걸어다닐 수 있지만 근교에 명소들을 찾아다니려면 아무래도 교통카드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라 더 좋다.

교통카드 발급기와 교통카드



혼자 교통카드를 구매한 것을 기특해하면서 다음 목표인 '다이소'로 향했다. 기숙사 주방과 화장실에서 사용할 생활용품을 사야한다. 수세미, 고무장갑 등 생각보다 자잘하게 살 것들이 많다. '다이소'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어제보다는 좀 여유를 가지고 여러 물건들을 구경했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2.50달러(약 2500원) 정도하고 좀 큰 물건들은 10달러(9900원)하는 것도 있었다. 쇼핑을 하고 나니까 짐도 무겁게 느껴지고 한쪽으로 매는 가방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아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가 시내에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숙소에 들러서 옷도 갈아입고 가방도 교체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관광이다. 제일 처음 향한 곳은 '그랜드빌 아일랜드 퍼블릭 마켓'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선착장이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이 마켓은 맛있는 먹거리로 유명한데 어떤 사람은 뉴욕의 첼시마켓과 비교하기도 한다. 선착장에서 바로 손에 닿을 듯이 마켓이 보이고 사람들로 붐비는 것도 보인다. 배값은 왕복 7.5달러(약 7400원)이다. 선착장이 여러 곳에 있는데 장소마다 배값이 좀 다르다. 구글맵으로는 걸어가는 길이 나오지 않는데,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걸어서도 다리를 건너서 갈 수 있단다.

그러나 오늘 나의 목표는 이 마켓이 아니다. 배값도 비싼데 굳이 서둘러 가볼 필요가 없을 듯하다. 게다가 집에(이제 숙소가 집으로 여겨짐) 먹거리가 아직 남아 있어서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한 다음 주쯤 한번 가볼까 한다. 오늘 나의 목표는 선착장에서부터 난 산책로를 따라 '선셋 비치'를 지나 '잉글리쉬 베이 비치'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네 마실 가듯이 관광지를 산책한다. 하하하. 작은 항구도 지나고 다리도 지나고 또다른 선착장도 지난다. 급할 것 없이 어슬렁거리면서 걷는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선셋 비치'가 있다. 여기는 노을이 질 때 특히 예쁘다는데 요즘 해가 너무 늦게 지기 때문에 노을이 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여기는 몇 번 더 오게 될 것 같은데 다음에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 와봐야겠다.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도 있고 연인들이 손잡고 나온 사람들도 있다. 참 여유로운 풍경이다. 그리고 캐나다 구스(기러기)가 유명하다는데 여기는 구스들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선셋비치


'선셋 비치'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해변가에 배들도 많고 바위도 많다. 독특하게 조각된 나무도 보았다. 해변가를 따라 아파트인지, 콘도인지 하여튼 그런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여기가 휴양도시임을 실감한다. 바닷가쪽으로 난 발코니에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걷다보니 독특한 석조물이 있어서 가보았다. 안내문을 읽어보니(구글 번역기 이용.^^) '이누이트' 문화의 고대 상징물인데  랜드마크의 역할도 하고 항해의 보조수단이기도 했단다. '이누이트'는 캐나다 서부, 북부부터 알래스카, 시베리아 등에서 오래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이다.



선셋비치를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잉글리쉬베이비치가 나온다. 여기는 선셋비치보다 조금 더 큰 것 같다. 아까부터 느낀 것인데 해변가에 오래된 나무들이 누워있다. 해변에 나온 사람들은 이 나무들에 기대기도 하고 걸터앉기도 한다. 문득 우리나라의 유명해변들에 자리세를 받기 위해 즐비하게 세워둔 파라솔들이 생각났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참 꼴보기 싫은 모습이었다. 어쨌든 여기 해변은 나무둔치들이 턱턱 놓여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잉글리쉬 베이 비치


해변가 식당의 창가쪽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면서 뭘 좀 먹을까 했는데 자리가 만석이다. 기다리는 줄까지 있다. 하긴 일요일이지. 대신 근처 벤치에서 스케치를 하고 걸어 나와서 거리의 음식점을 탐색하기로 했다. 그림은 대충 그리고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보충할까 생각했다. 해변을 벗어나 시내쪽으로 향했다. 길을 가는데 해산물 레스토랑이 있는데 자리가 모두 실내에 있고 좀 비싸다. 길 건너편에 몇 개의 가게가 나란히 있는데 좀 저렴해보이고 길가쪽으로 자리들이 있다. 건너가서 가게들을 탐색하는데 입간판에 보이는 햄버거와 맥주 세트 가격이 착해보인다. 슬쩍 보고 있으려니까 눈치빠른 직원이 호객행위를 한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까 평은 그저 그렇지만 뭐, 좋다. 시원한 맥주와 햄버거를 먹어보자. 세트를 시키니까 바로 카드단말기를 가지고 온다. 여기도 제법 디지털화되어 있구나. 음식 가격을 확인시켜준다. 오케이를 누르고 나니까 팁을 몇 프로 줄 것인지가 나온다. 보통 15%주면 된다는데 선택지가 18%부터 시작이다. 물론 직접 입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귀찮아서 18%로 선택했다. 솔직히 아직 서비스를 받아보지 않았는데 팁의 프로를 먼저 입력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맥주부터 나왔다. 오, 센스. 맥주 사진을 찍으려는 옆 자리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낀다. 곧 햄버거 아니 치킨버거가 나왔다. 아이고 역시 크다. 얘들은 입고 크고 양도 많다. 먹기 힘들어도 악착같이 다 먹었다. 많이 걸어서 그런지 잘 먹는다. 먹고 나서 맥주를 홀짝이면서 아까 그렸던 그림을 마무리했다.

햄버거와 맥주(feat. 옆자리 손님)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시내를 빙 돌아보려고 한다. 길가에 종종 한국 간판이 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벌써 한국이 그리운 건가? 나라꼴이 엉망인데? 하긴 보기 싫은 것은 조폭같은 독재자와 그 일당들이지, 우리나라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니까... 솔직히 벌써 한국이 그립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다. 마침 근처에 한남마트라는 한인마트가 있다니까 한번 가보자. 밴쿠버에는 H마트와 한남마트가 한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하단다. 한남마트에 들어서니까 계단부터 익숙한 글씨로 전단지들이 붙어있다. 너무 반갑다. 가게에 들어서니까 너무 다양한 것들이 있어서 놀랍다. 김치도 종류별로, 김밥도 종류별로, 그밖에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들이 많이 있다. 와아...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명이절임까지도 있다. 삼겹살에 싸먹으면 끝내주는 명이절임. 크흐.. 한남마트 앞에는 한국음식점이 있다. 나중에 한식이 많이 그리우면 와봐야겠다.

여기저기 많이 걸어다녔더니 다리가 아프다. 벌써 16000보를 걸었다. 집에 가면 20000보가 될 듯하다.  내일 첫 등교를 위해서 이제 좀 쉬어야겠다. 집으로 가는 신나는 발걸음. 내일부터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걱정도 되고 설레이기도 한다.



잉글리쉬 베이 스케치


이 일기는 55세의 나이에 떠난 밴쿠버 어학연수의 기록입니다. 어쩌면 모든 일정이 끝난 다음에 소설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 일기는 블로그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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