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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19. 2023

잠 못 드는 밤

2023.06.27.화요일


어제의 멘붕 때문일까? 밤에 잠을 설쳤다. 잠이 들만하면 화들짝 놀라 깼다.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몸은 지치고 신경은 곤두서는 걸 느꼈다. 잠이 드는 둥 마는 둥했다. 그렇게 밤잠을 설치고 아침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알람이 울릴 시간이었다. 그냥 일어나서 알람을 끄고 학원에 갈 준비를 하였다. 아, 오늘도 어제처럼 힘들면 어쩌지? 왜 이렇게까지 안들릴까? 입은 왜 얼어붙은 걸까? 걱정을 한아름안고 출발했다.


학원에 도착해서 문법수업 강의실로 갔다. 어제 오티를 이 시간에 했기  때문에 오늘이 첫 시간이 된다.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또다시 나는 바보가 될까? 활동을 많이 하는 수업이면 옆자리에 누가 앉는가가 중요한데... 나는 너무 일찍 가서 아무도 없어서 그냥 중간쯤에 앉았다. 학생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Hi', 혹은 'Hello'라고 인사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로 아는 눈치였다. 나는 외토리? 그때 누군가 한국분이냐고 물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눈물날뻔했다. 'U'는 일본친구들과 일본말로 인사를 나누더니 나에게 한국말로 처음 왔냐고 묻고 처음에는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다며 곧 나아진다고 위로해주었다. 'U' 덕분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못알아 들었을 때 물어볼 곳이 있다. 휴우... 다행이다.


시간이 되자 교사가 들어와서 인사하고 출석을 부르는데 new student는 이번에도 나뿐인 것 같다. 아니, 오티에서 본 그 많은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간거니? 그런데 교사가 갑자기 이름을 가린 답안지를 준다. 눈치를 보아하니 어제 Level Test를 한 것 같다. 어제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지금 이름을 가리고 나눠주고 채점하라고 하는 것 같다. 허걱. 학생들에게 채점을 시킨다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학생들은 이미 익숙한 듯이 채점할 준비를 한다. 교사가 불러주는 대로 채점을 하고 몇 개 맞았는지 옆에 표시했다.


교사는 채점한 것을 걷더니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답안지와 지난번에 본 시험지를 함께 준다. 나는 시험을 보지 않았으므로 시험지만 받았다. 받아서 얼른 몇 개만 풀어보았다. 처음 한두 문제는 좀 알 것 같은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학생에게 자신의 답안지에서 무엇이 틀렸는지를 확인하도록 한 후 이해가 안되는 것을 질문하라고 한 것 같다. 순서대로 학생을 지목하니까 학생들이 번호를 하나 혹은 두어개씩 말한다. 교사는 번호를 쭈욱 메모하더니 한 문제씩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질문한 학생에게 이해가 되는지 무엇을 혼동했는지 확인한다. 어떤 문제의 설명은 나도 이해가 되고 어떤 문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채점을 시킨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한 명 한 명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렇게 학생들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확인하더니 문제지와 답안지를 모두 걷어간다. 헉. 나는 문제지에 이것저것 메모하면서 풀기도 하고 공부도 했는데... 교사가 잠시 당황하더니 That`s OK라고 하더니 뭐라뭐라 하고는 문제지를 가져갔다. 이걸 학생이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 같다. 아, 여기는 매월 말에 시험을 봐서 level을 올리거나 남긴다고 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문제지들은 계속 재사용하는 것이어서 메모나 낙서를 하면 안되고 또한 유출되면 안되는 것 같다. 아니, 그런 걸 내가 알고 있겠냐고... 이 사람아...


이번에는 갑자기 책에서 231쪽을 펼치란다.  그리고 뭐라뭐라 한참 이야기 하는데 알아들은 것은 exercise3과 4를 숙제로 해오라는 것 같다. 그리고 234쪽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unit24에 대해서 뭐라고 한참 떠들었는데 그건 못알아들었다. 아마도 새로 나가는 문법 단원인가 보다. Infinifives After Certain Verbs. 이게 뭐냐... 어떤 동사 뒤에... 이게 뭐지? 혼자 잔머리 굴리고 있는데 벌써 수업이 끝났다. 얼른 휴대폰으로 찾아보니 아.. 'to 부정사'. 윽... 어렵다... 내가 아직 못 일어나니까 'U'가 와서 아까 시험지 때문에 놀라지 않았냐고 이번에 처음 왔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카톡으로 필요한 것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카톡을 서로 연결할 때 QR code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새롭게 배웠다. 아, 신기한 것 투성이구나. 친절한 'U'의 응원에 힘입어 다음 교실로 향했다.


Listening 수업이다. 어제밤에 지친 몸을 이끌고 혼신을 다해 숙제였던 69쪽을 풀었다. 이번에도 옆자리 파트너와 답을 맞추어 보란다. 역시 맥락에 따라 사용되는 숙어를 몰라서 몇 문제는 틀렸다. 아마도 어제 교사가 뭐라뭐라 설명한 내용에 있던 것인가보다. 아, 역시 교사말이 들려야 한다. 그래야 한다. 큰일이다.


71쪽으로 넘어가서 box 안의 단어들 중에 어려운 것을 몇 가지 묻고 설명한다. 어떤 단어는 이미 내가 아는 것이지만 모르는 단어도 있고 헛갈리는 단어도 있다. 그런데 교사가 설명하는 내용은 대부분 잘 들리지 않는다. 'stomach cramps'는 '속이 아픈 것' 정도는 알겠는데  'symptoms'는 '심정? 감정?' 아닌가?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증상') 'antibiotics'는 교사가 한참 설명하는데 살짝 알 것도 같다. 어디 다치고 하면 어쩌고 저쩌고 medicine이 어쩌고 한다. 교사의 몸짓과 억양으로 추측해 보니 소염제 이런 것 같다.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항생제')


단어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어가 쏟아져 내려서 벌써 지쳤다. 이번에는 Listening이다. 내용을 들어보니까 대충 환자가 병원에 찾아온 내용인 듯하다. 이번에도 스크립트 종이를 주는데 허걱... 비어 있는 공간이 너무 많다. 이걸 들으면서 쓰라고? 상황 파악을 겨우 했는데 바로 내용을 들려준다. 허겁지겁 스펠링은 엉망이라도 일단 무조건 써 보았다. 그러나 너무 빠르다. 우씨.. 몇 개 겨우 끄적거렸는데 파트너와 확인해보란다. 아... 너무 부끄럽다. 안그래도 글씨도 잘 못쓰는 편인데다가 스펠링은 뭐.... 이번 파트너는 잘하는 편이라 몇 가지 내용은 따라서 써보았다. 한번 더 들려주고는 고쳐보란다. 뭐 나는 고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대부분 비어 있으니까... 교사가 칠판에 비어 있는 부분을 써 준다. 이번에도 허겁지겁 따라 쓰다가 너무 길어서 (나는 글씨를 너무 크게 쓰고 틀린 부분이 많아서 쓸 공간이 없다.) 일단 기다렸다가 다른 학생들이 사진을 찍을 때 나도 얼른 찍었다. 그런데 솔직히 교사의 글씨나 내 글씨나 그게 그거인 듯?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이고 이 본문에 딸려있는 문제는 숙제로 풀어오란다.


눈이 뻑뻑해 오고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영어가 소음처럼 느껴진다. 안돼. 정신차려. 다음 시간은 Reading and Writing 시간이다. 오늘은 level test를 한다고 했다. 월말에 들어온 내 잘못이지. 뭐... 일단 하는데까지 해보자. 책상 위를 깨끗하게 치우고 필기도구만 꺼내놓으란다. 뭔가 되게 길게 말했는데 눈치가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문제지에는 표시하지 말라고 한다. no under line, no writing이다. 문제를 풀어보니 reading test라기 보다는 단어, 문법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다 풀었다. 아예 모르는 문제는 그냥 찍어서 그렇다. 딱 보아하니 내가 이걸 다 알고 풀려면 시간이 엄청 부족할 것 같다. 이번 시간은 이렇게 끝났다.


점심시간이다. 어제의 그 한국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교사들과 수업 교체에 대한 정보를 좀 얻어들었다. Reading and Writing 교사는 원래의 담당교사가 휴가를 가서 임시로 맡은 교사란다. level test를 지난 주에 이미 했는데 또 해서 학생들이 좀 싫어하는 눈치다. 음. 그렇군. Pronunciation 수업을 Communication 수업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오늘 한 번 더 들어보고 결정해야겠다. 그런데 식사를 하면서 들어보니까 이 분들은 대부분 자녀들 방학에 맞추어 휴가를 내서 다음 주부터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히 한 분은 나오신단다. 아... 흑...


짧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Pronunciation 수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paper를 나눠주고 그 중에서 exercise 3을 보라고 한다. 이 수업은 교재가 따로 없고 매시간 무언가를 복사해서 나눠주는 것 같다. 뭐하는 것인지 파악도 못했는데 갑자기 listening이 시작되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또 다시 쏟아지는 영어에 잠시 얼어붙었다가 침착하게 받아쓰기를 했다. 이번에도 빈 칸의 내용을 받아쓰는 것이었다. 나는 옆에 다른 항목들이 있어서 찾아서 메꾸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젠장. 다시 들려주길래 최대한 받아써 보았다. 아, 이번에도 spelling은 그냥 무시다. 들리는 대로 써 보았다. 그나마 아까 listening 시간의 본문보다는 받아쓰기 쉬운 수준의 빈 칸이라 다행이다. 이번에도 파트너와 확인하는데 나보다 더 많이 썼길래 슬쩍 보고 추가해 보았다. 교사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시켜보고는 답을 써 준다. 그리고 옆의 응답들과 연결지어 보란다. 아, 옆의 내용은 서로 대화하는 내용이었어? 으... responeses가 '대답, 응답'이잖아. 질문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대부분 아는 단어인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으니 어쩌냐... 교사가 내용을 한번 쭈욱 설명하는데 제스쳐가 아주 재미있다. 원래 이 교사는 스타일이 손짓 몸짓이 크다고 들었다. 그나마 제스쳐를 통해 겨우 내용을 이해하고 끝났다.  


아무래도 Prounciation 수업을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Communicaiton 수업으로 바꿔야겠다. 교사는 어차피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Prounciation 수업 시간이 Communicaiton 수업보다 짧고, 무언가 내실있게 배우려면 아무래도 Communicaiton 수업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직후에 잠시 정신을 차리고 숙제를 하거나 복습을 하는 시간을 갖고 나서 오후 수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수업을 몰아서 빨리 끝내는 것도 좋겠지만 어차피 나는 모든 수업이 끝난 후에 이루어지는 extra 수업(오후 3시10분~오후4시)을 들을 생각이라 끝나는 시간은 마찬가지이다. 잘 따라가지 못하므로 가급적 보충수업이라도 들어야겠다.


학원에는 각국의 담당 매니저가 있어서 도움을 청할 수 있다. 혹시나 해서 이메일로 수업이 끝날 때쯤 시간 약속을 정하고 갔다. class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한 번 더 확인해보고 내일부터 바꾸어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참 친절한 분이다. 다행이다. 공부는 내가 어떻게든 해야겠지만 이런 실무적인 것은 내 영어실력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수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한데 이 분은 되게 친절해서 얼마든지 도움을 청해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수업을 바꾸고 나서 다시 학생 라운지로 돌아와서 숙제를 했다. 밴브릿지에서 잡아준 은행에 가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딱 약속된 시간에 가야한다니까 일단 그 사이에 숙제나 해야겠다. Grammer 숙제를 좀 하다가 은행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밴브릿지에 들려서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고 은행으로 갔다. BMO라는 은행인데 규모가 큰 은행이란다. 나처럼 짧은 어학연수 학생들에게도 까다롭지 않게 계좌를 개설해준다고 한다. 나의 모든 서류는 이미 밴브릿지에서 보냈으므로 가서 설명만 듣고 채크카드를 받아오면 된다고 했고 한국 직원이 처리해줄 거라고 했다. 가보니까 나와 같은 목적의 한국 학생들이 두 명 더 있다. 그들과 같이 약속시간에 BMO의 한국 직원이 나와서 미팅룸으로 함께 갔다. 이미 계좌개설은 다 되었고 각자 안내서류를 나눠주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은행어플을 깔아야 사용한 내역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어플 설치도 지금 하는 것이 좋겠단다. 어플을 까는 중에 어떤 학생은 휴대폰 조건에 따라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직원분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어플을 깔고 어플 사용을 위한 비번을 설정하고 사용 내역 확인하는 방법, 해외 계좌로 이체와 캐나다 국내 계좌로 이체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신경써 준 직원분에게 너무나 감동받았다. 미팅룸에서 설명이 다 끝나고 나서는 밖으로 나와서 ATM기에서 인출 등을 위한 비번을 설정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두 비번 등록까지 마치니까 이제 다 되었으므로 편하게 사용하란다. 정말 너무 좋은 분이다. 어디 칭찬 게시판 같은 것이 있으면 알리고 싶다.


이렇게 두 번째 날을 보내고 필요한 몇 가지 물품과 도시락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가지고 집으로 갔다. 잠을 제대로 못자고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어서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그냥 쉴 수는 없다. 내일 싸가지고 갈 점심거리를 요리하고 나서 바로 숙제를 시작했다. 어제보다 숙제가 많다. 윽... 수업하면서 못 알아들은 것들 표시해둔 것도 복습해야하는데... 숙제를 하고 나니 한밤 중이다. 복습은 도저히 못하겠다. 숙제를 한 것에 만족해야겠다.


휴우... 지금 자야 한다. 어제 못잤으니까 오늘은 푹 잠들기를 바라며 누워보았다. 그런데 문제다. 어제처럼 잠이 들만 하면 경련이 일어나듯 깜짝 놀라서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 이것저것 하루동안 있던 일도 생각해보고 내일은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하고 있다. 몸은 너무나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흐흑... 나의 신경세포가 온통 영어를 어떻하지라고 떠드는 것 같다. 정말 어떻게 하지?



이 일기는 55세의 나이에 떠난 밴쿠버 어학연수의 기록입니다. 어쩌면 모든 일정이 끝난 다음에 소설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 일기는 블로그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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