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Aug 23. 2023

왜 웃지를 못하니

2023.06.29.목요일

이틀동안 못자서 그런지 어제는 거의 기절 상태였던 것 같다. 알람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깼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용기를 내보자. 참, 오늘은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된다. 점심시간에 만난 한국분들이 오늘 외식을 하기로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그동안 함께 공부하던 분이 이번 주에 한국으로 떠나서 환송 외식을 한단다.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염치 없이 끼었다. 지금 나의 정신줄은 이분들과 'U'에게 의지하고 있다. 일단 좀 살고 보자.


Grammar 수업 교실에 들어가보니 일본 친구들이 몇 명 먼저 와 있다. 그 중에 제일 똑똑해보이는 여학생 옆에 가서 앉아도 되냐고 물었더니 앉으란다. 그런데 그 애들은 약간 당황했고 나도 어느 순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내가 앉는 자리에 늘 앉던 일본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 여학생이 그 친구를 계속 챙겨주고 있던 것 같다. 그게 뒤늦게 생각났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책까지 펼쳤고 이제 와서 옮기는 것도 이상하다. 잠시 후 일본 남학생이 와서 좀 당황하더니 맞은 편의 다른 일본 여학생 옆에 앉는다. 그냥 이번 시간만 좀 참아주라. 내가 내일부터는 그쪽에 앉으마.

시간이 되어 교사가 들어오는데 이번에도 교사가 바뀌었다. 보강 교사가 계속 바뀌는 건가? 그건 별로 좋지 않다. 이번 교사도 자기는 'S'가 진도나가라고 한대로 진행할 거라고 설명한다. 숙제를 파트너와 서로 맞추어 보았다. 일부 문제의 답이 약간 다르다. 우리는 서로 I`m not sure라고 한다. 그래도 그 친구가 나보다는 잘한다. 그건 확실하다. 교사가 답을 불러주면서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불러준 정답 외에도 다른 형태의 문장도 가능하지 않냐고 질문을 한다. 교사가 확인하더니 가능하단다. "Roberto reminded Emilia to go to the happiniess workshop."이라고 할 수 있고 "Roberto reminded Emilia not to forget the happiniess workshop."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둘 다 로베르토가 에밀리아에게 행복 워크숍에 가는 것을 잊지 않도록 환기시켜주었다는 내용이 된다. 역시 공부 선배들은 다르다. 뭔가 질문도 하고 다른 표현도 찾는다. 난 언제쯤 저런 경지에 이를까?

이번 문제는 본문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고치란다. 문장 속에 부정사를 써야 하는 자리에 기본형만 쓰거나 목적어를 빼먹는 등 다양한 형태의 오류가 있다.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아서 제대로 못 찾았다. 나의 파트너는 잘 찾는다. 이번 문제는 문장 구조를 알고 있어야 풀 수 있어서 어렵다. 그런데 교사가 쭈욱 설명하더니 이런 문제는 쉽다면서 한번 쓰윽 읽고 넘어간다. 아니, 나에게는 어렵다고요. 이건 따로 복습해야겠다. 


listening 수업은 숙제가 없어서 몇 페이지를 미리 예습해 왔다. 그런데 내가 예습한 페이지는 그냥 지나가 버리고 77쪽을 펼치란다. 윽, 하필이면 애써 예습한 부분을 건너뛰다니... 77쪽에는 새로운 단어들이 있다. 모르는 단어, 애매하게 알고 있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 

temporarily 임시의, 일시적인 

to jaywalk 무단횡단 

여기 밴쿠버는 무단횡단하면 벌금이 크단다. 

78쪽은 들려주는 내용을 듣고 문제 문장을 받아적으란다. 그러나 말들이 너무 빠르고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 내용이 들리지 않으니 답도 찾을 수 없다. 망했다. 주눅들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움추러든다. 

다음 문제에서는 어떤 대화를 들려주고 이름을 쓰라고 한다. 왜 이름을 쓰라고 하는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까 이름들이 재미있는 의미를 가진 경우들이다. 교사가 설명하면서 웃고 학생들도 웃는데 뭔 말인지 모르니까 나는 웃지를 못한다. 다시 절망이다. 예를 들어 'Rob Bank'라는 이름은 은행강도다. 그게 뭔지 모르니까 나는 웃을 수가 없다.



다시금 어깨가 추욱 쳐저서 다음 수업 교실로 가는데 'U'와 마주쳤다. 친절한 'U'는 왜 이렇게 쳐져 있냐며 아직 일주일도 안되었으므로 잘 안들리는게 당연하다고 위로해준다. 그래, 아직 일주일도 안되었다. 힘내보자. R&W 시간이다. 어제 시험을 보았는데 오늘은 어떻게 수업을 하려나 궁금하다. 교사는 어제 나눠주었던 writing 문제지를 다시 준다. 이번에도 문제지에는 아무것도 표시하지 말란다. 그리고 빈 종이를 주더니 practice하란다. 즉 쓰기 연습하고 있으란 얘기다. 그리고 자기는 학생들 한명씩 불러서 어제의 쓰기에 대해 feedback 을 해준다. 즉, 교사가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feedback하는 동안 혼자서 쓰기 연습하라는 얘기다. 음, 학생 한 명씩 개별적으로 짚어주는 것은 좋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점수는 75%라면서 좋은 점수라고 한다. 그래, 뭐 내 생각보다 좋은 점수다. 사용된 단어의 수가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문단의 구조는 맞게 썼다." 그렇겠지. "그런데 문장이 좀더 길어야 하고 좀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알지. 그런데 단어를 알아야 설명하지. "단어는 많이 틀단다." 그게 내 문제야. 교사가 빨간 펜으로 틀린 단어를 고쳐주었다. 문법은 그런대로 했나보다. 문법 레벨을 묻는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단어 공부가 정말 필요하구나. 그런데 모든 학생들의 feedback가 끝나고 나서 이 교사는 뭔가 자기 할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수업이 끝났다. 연습한 글은 각자 스스로 점검해 보란다. 음, 이 교사가 원래 수업 교사가 아니라 보강 교사라서 참 다행이다.


점심시간이다. 정말 오랜만의 외식이다. 어떤 한국분과 만나서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분들은 먼저 가서 식사하고 있단다. 3교시 수업을 끝까지 듣고 가는 우리는 모범생들이란다. 식당에 갔는데 한식이다. 돼지불고기, 잡채, 수육, 나물무침 등등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갑자기 한식을 보니까 눈이 막 돌아간다. 아니, 한식이 그립지 않았는데 이게 어인 반응이란 말인가? 정신없이 맛있게 먹었다. 어쩌면 간도 이렇게 잘 맞냐. 그런데 음식이 너무 많이 남는다. 싸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자리 분들이 일어나는데 togo백에 싸가지고 간다. 우리 테이블도 남은게 아까우니까 싸가야할텐데 누가 가져가겠냐고 한다. 눈치를 보니까 다들 안 가져가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냥 내 짐작이다. 나는 얼른 '자취생인 제가 가져가겠습니다.'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정도면 이틀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숙소에 있는 한국 학생들도 생각났다. 얼마 전에 내가 집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사주면서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 학생들이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이 머나먼 곳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있단다. 너무 기특하고 안쓰럽다. 자기 미래를 위해 용감하게 타지까지 와서 공부하는게 기특하고, 어떻게든 아껴서 생활하려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날 사준 저녁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모습이 참 예뻐보였다. 그런데 먹고 남은거 싸가서 먹자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약간 걱정도 되었다. 그건 상황 봐서 판단하자.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Communications 수업을 들었다. 교사는 그동안 나눠주었던 것들 중 travel, job, shopping 등의 주제 종이를 꺼내란다. 나는 supermarket뿐이다. 2명씩 짝을 지어서 작은 종이를 10장 정도 주고 거기에 단어를 선택해서 쓰란다. 작은 종이에 단어를 하나씩 쓰니까 그것을 걷어간다. 그리고 막 섞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3명씩 그룹을 짓는다. 가급적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이도록 신중하게 그룹을 만든다. 그리고 종이 뭉터기를 한 그룹씩 준다. 종이를 엎어 놓고 하나씩 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란다. 아까 우리가 쓴 종이가 일종의 단어카드가 되는 것이다. 

우리 그룹은 나, 일본 친구 2명이다. 단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설명하는게 너무 어렵다. 한정된 단어로 설명하려니까 자꾸 '몸으로 말해요'가 된다. 그리고 내 발음을 일본 친구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자꾸 설명하려고 하다보니까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들도 있다. 나름 재미있다. 그리고 재밌는 일 또 한가지. antarctica가 남극대륙인데 일본친구가 설명이 어려우니까 사전을 찾아서 다른 일본친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나에게 설명하려고 애쓰는데 내가 그 사전을 보여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한자어를 보니까 뭔지 알겠다. 다같이 south 어쩌고, 손짓으로 아래쪽 어쩌고, bear 어쩌고 설명했다. 아니, 그런데 곰은 북극에 있지 않나? 그러나 그것까지는 표현을 못하겠다. 이렇게 간단한 한자어는 한국, 일본, 중국 사람들이 소통할 때 도움이 된다. 교사가 중간에 종이 뭉터기를 바꾼다. 그렇게 세 번 정도 하고 나니까 한 시간이 지났다. 


다음은 extra 수업이다. 수요일은 gammar이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english lounge라고 해서 회화나 상식을 배우는 것 같다. 나는 당연히 level 1-2 교실로 갔다. gammar 수업과 같은 교실이다. 교사도 같다. 익숙한 교사가 낫다. 그리고 들어오는 학생들이 어제와 비슷하다. 그것도 좋다. 함께 하는 활동이 많으니까 좀 친숙한 학생들이 낫다. 그 중에는 다른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들도 있다. 

오늘은 캐나다의 유명한 것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어카드를 보여준다. 사진이나 그림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고 스펠링을 쓰도록 시킨다. 그래, 나는 스펠링 연습이 필요하다. 캐나다의 유명한 새는 goose이다. 캐나다 구스는 옷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너무 비싸다. 그리고 캐나다 동전에는 loonie라는게 있는데 거기 그려진 새가 loon이란다. 교사는 그 새의 소리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려준다. 사전을 찾아보니까 '아비새'라는데 북미산 큰 새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람 웃음소리같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근데 아무리 들어도 사람 웃음소리 같지는 않다. 그밖에도 grizzly bear, polar bear, niagara falls, hockey, maple syrup 등에 대해 설명도 듣고 사진도 보면서 단어를 적어 보았다. 중간에 Tim Holtons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나도 익히 들었던 내용이라 교사의 설명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Tim holton은 캐나다의 전설적인 하키선수였는데 은퇴 후 도넛과 커피를 파는 가게인 Tim Holtons를 창업했단다. 지금은 세계적인 프랜차이즈가 되었단다.

이번에는 종이를 나눠주는데 캐나다의 국가 같은 것인가 보다. 빈칸이 있어서 노래를 듣고 메꾸란다. 단어 수준이라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었다. 단어를 확인하고 수업이 끝났다. 이 보충수업이 참 마음에 든다. 교사 M은 아주 침착하게 천천히 설명해주어서 좋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교사의 말을 다 알아들은 건 아니다. 여전히 단어 몇 개가 들리면 추리해서 이해한다. 그래도 차분하게 진행되는 수업이 마음에 든다. 




이렇게 보충수업까지 알차게 듣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 가지고 집으로 갔다. 매일 무언가가 필요하다. 오늘은 세탁세재를 사 왔다. 장바구니에 담아서 손에 들고 와야 하니까 무엇을 사든지 한꺼번에 많이 못 산다. 매일 조금씩 꼭 필요한 것만 메모해서 사온다. 

사온 것들을 정리하고 나서 숙제를 했다. grammar 숙제의 양이 좀 많다. 눈빠지게 숙제를 하고 나서 내일 출발할 밴프 여행 짐을 챙겼다. 내일 금요일 오후는 수업이 없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도 휴일이다. 토요일이 canada day라는 국경일인데 월요일이 대체공휴일이다. 이 사실을 한국에서 확인한 나는 첫번째 연휴를 집에서 보내지 않으리라, 흥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밴프 여행을 세팅해 두었다. 그 얘기는 다음번 일기에 쓰기로 하고, 일단 짐을 싸고 나니 밤이 늦었다. 일단 자자.




매거진의 이전글 주눅들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