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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08. 2023

회자정리 거자필반

2023.07.21.금요일

Grammar Class

오늘은 아침부터 무척 바쁘다. 한국 친구 K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써주려고 어제 카드를 샀다. 문법 수업 친구들이 유독 친해져서 다들 한 마디씩 썼다. 오늘 문법 수업 친구들은 대부분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K가 어제 예약한 식당에서 메뉴를 받아와서 종이에 각자 시킬 음식을 쓰도록 했다. 짧은 점심시간에 먹으려면 주문을 미리 받아서 갔다주는게 좋을 듯하고 누가 뭐 시켰는지 알려면 기록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부터 작별카드 쓰고, 메뉴 정해서 쓰느라 엄청 분주했다. 아, 그런데 작별인사를 쓰는 또다른 방식이 있는 것을 몰랐다. 어린 학생들이 캐나다 국기에다가 작별인사를 쓰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누군가 캐나다 국기를 가져 와서 K를 위한 인사를 거기에다가도 썼다. 결국 두 번 쓴 사람도 있다. 음! 나의 스타일은 역시 올드하다.


센스 있는 K는 문법 교사 S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한국에서는 존경하는 스승에게 이 꽃을 선물한다고 설명했다. S가 너무 좋아하면서 즉시 꽃병을 가져다가 꽂았다.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어제 S에게 함께 점심 먹자고 했는데 어린 학생들이 참여하는 여름학교의 책임자라서 점심시간도 못쉰다고 했다. 


오늘도 숙제 부분 확인하고 새로운 unit 진도를 나갔다. unit8은 present perfect(현재완료):since and for. 또 시제다.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미래에도 진행될 수 있는 것이란다. 이러니까 내가 계속 헛갈리지. 이게 왜 명칭이 현재완료냐고요. 

S는 다음 주 월요일은 test를 볼 거고 화요일에는 test에 대해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거라고 했다. 내가 처음 왔을 때가 바로 이 test 기간이었다. 그래서 다음 주 수요일부터 진도를 이어서 나갈 거라면서 아주 친절하게 다음 주 수요일 숙제를 미리 내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다같이 작별 사진을 찍었다. 


Listening Class

오늘은 노래를 들으면서 빈칸 메꾸기를 했다. 저번에도 금요일에 이런 활동을 했었다. listening 시간이니까 나름 이해가 된다. 이런 활동을 하다보면 은근히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 근데 너무 안들려 안타깝다. 오늘 들은 노래는 'Hand in my pocket-Alanis Morissette'이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 뭔가 가사가 방황하는 10대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 서로 반대되는 단어를 연달아 표현해서 단어 공부하기에 좋은 노래인 것 같다. 

I`m broke but I`m happy(난 가난하지만 행복해).

I`m poor but I`m kind(난 별볼일 없지만 친절해).

I`m short but I`m healthy(난 키가 작지만 건강해).

이런 식이다. 내용도 재미있고 운율감도 느껴지는 노래다. 


Reading and Writing Class

며칠 전부터 예고한대로 오늘은 퀴즈(작은시험)의 날. 단어의 의미와 품사에 맞는 사용, 본문 내용 확인 등의 시험이다. 나는 내용 확인이나 단어 의미는 알겠는데 품사가 너무 어렵다. 본문 내용을 확인하는 작문문제는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대충 아는 단어로 돌려서 표현했다. 그렇게 그럭저럭 문제를 다 풀었더니 교사가 바로 가져가서 채점을 한다. 놀랍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한 시간 내에 학생들에게 채점을 해서 돌려준다. 덕분에 5분정도 약간 늦게 끝났지만 모든 학생이 바로 채점된 시험지를 돌려받았다. 이따가 복습해야겠다. 


드디어 점심시간. 학원의 바로 옆건물 1층에 쌀국수집이 있다. 가운데 긴 테이블을 예약해서 다같이 우루루 몰려갔다. 미리 주문을 해서 음식은 바로바로 나왔다. 그런데 정신이 너무 없다. 영어, 한국말, 일본어, 멕시코어, 브라질어가 동시에 오간다. 아까 쓴 작별 카드와 캐나다 국기를 주었다. K의 행복하고 활기찬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그녀의 반짝이는 얼굴을 보면서 나의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살짝 울컥한 마음도 들었다. 헤어짐이 너무 아쉽다. 멕시코 친구인 R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우리 셋이 가장 정이 많이 들었다. 


너무 많이 나온 쌀국수의 양에 좀 놀랐지만 오랜만에 국수를 먹으니까 좋다. 다들 한참 떠들면서 먹기도 하고 그 와중에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식사가 끝나갈 때쯤 주인 아주머니가 계산을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계산을 각자 하기로 하고 아까 메모한 순서대로 각자 카드를 꺼내서 긁었다. 사실 10명이 넘어서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능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혼줄이 났다. 내가 보기에 이 가게가 생긴 이래로 가장 분주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와중에 친구들은 인스타그램을 서로 팔로우하느라고 또 정신이 없었다.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두기를 잘했다. 이번 주말은 꼭 인스타그램에 대해 공부해야겠다.

다들 계산이 끝나가도록 서로 아쉬워 하면서 안고 인사하느라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래도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라 하나둘 학원으로 올라가고 마지막까지 아쉬워하던 R과 일본 친구 M도 각자 갈길을 갔다. K가 마지막 남은 communication 교사에게 줄 꽃을 사러 가는데 나도 따라갔다. 꽃가게가 우리 학원 바로 옆 건물 1층이다. 나도 마지막 날에 정든 사람들에게 꽃을 선물해야겠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Communication Class

오늘도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축구에 대해 배웠다. 아무래도 스포츠 상식이 많이 늘 것 같다. 다른 수업 시간의 본문 내용들 중에도 상식적인 내용이 많다. 음.. 이러다가는 박학다식해지겠다. 그런데 내가 축구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언제가 어디선가 들었는데 축구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막 싸우면서 공놀이를 했고 하루 종일 하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규칙을 만들면서 지금의 축구 경기가 생겼다고 들었다. 오늘 배운 내용이 바로 그 내용이었다. 근데 내가 그걸 어디서 들었지? 

그런데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당황했다. bladder-a bag of skin in which urine collects in the body. 이게 뭔가? 바로 방광이다. 아니 내가 방광을 영어로 어떻게 알겠냐고요. stuff-to fill with something는 쑤셔넣다, settlers-people who come to live in a new country는 정착민이다. 새로운 단어도 배우고 본문 내용을 확인하는 토론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오늘 보강 교사가 마지막 날이란다. 월요일에는 원래 교사인 C가 돌아온단다. 이 사람은 보강 전담이 맞는 것 같다. 어떤 학생이 언제 다시 만나게 되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지금은 알 수 없단다. 누군가 휴가를 가거나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단다. 보강 전담 맞구나. 그런데 내 친구 R이 이 보강교사와 정이 들었는지, 오늘 마지막 날이라면 같이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 K와의 작별을 보면서 사진을 찍어둘 필요를 느낀 듯했다. 그래서 다같이 찰칵!!


수업이 다 끝나고 나서 도서관에 잠깐 들려서 비번 잊어버린 것을 확인하고 월마트에 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길거리에서 K와 우연히 마주쳤다. 시내에서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서 그때까지 딸과 함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왔단다. 우리는 길가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K는 학원을 끝냈지만 딸이 한동안 근처의 다른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예정이라 캐나다에 머물 것이란다. 멕시코 친구 R과 함께 놀러가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지난번에 갔던 월마트가 아니라 메트로폴리스라는 대형 쇼핑몰에 있는 월마트에 갔다. 메트로폴리스는 어마무시하게 큰 쇼핑몰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코엑스 정도 된다. 우리 학원 근처에서 전철을 한번만 타면 갈 수 있다. 갈아타지도 않아서 아주 좋다. 전철역에서 내려 메트로폴리스 쇼핑몰에 발을 들인 순간, 나는 입구의 옷가게로 빨려들어갔다. 3달러부터 8달러, 10달러 등의 옷이 즐비하다.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옷을 고르고 있었다. 안돼. 정신차려. 잠시 진정을 하고 천천히 살펴보고 지금 꼭 필요한 것만 골랐다. 그런데 사이즈가 나에게 맞을까 고민이 되었다. 이때 눈에 띈 줄이 있다. 피팅룸의 대기줄이다. 사실 티셔츠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미리 입어보지 못하게 하는데 여기서는 모든 옷을 다 입어볼 수 있다. 안전하게 확인하고 사자. 대기줄에 서서 구경하니까 재미있다. 죄다 여성들이다. 드레스부터 청바지, 탱크탑 등을 입어보고 거울 보고, 친구랑 비교하고 아주 난리들이다. 나도 심사숙고해서 고른 옷을 입어보고 사이즈가 맞아서 샀다. 역시 쇼핑은 즐겁다.


그러나 오늘 내가 월마트에 온 이유는 지난번에 코스트코에서 사려고 했던 바퀴달린 가방 때문이다. 배낭 때문에 어깨가 너무 아프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무게가 제법 나가는 보조배터리와 필통을 집에 두고 나왔다. 그랬더니 휴대폰 배터리가 너무 간당간당하다. 물통의 물도 너무 많이 담지 못하고 조금씩만 채우고 다녔다. 바퀴달린 가방이 너무 필요하다. 월마트에 들어서자 또 다른 물건들에 현혹되어서 자꾸 발길이 멈춘다. 내가 이렇게 물질적인 사람이었던가? 나는 쇼핑 중독자였던가?


바퀴달린 가방을 찾아 삼만리를 했건만 결국 배낭 중에는 바퀴 달린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는 있는데 여긴 없다. 대신 여행용 캐리어가 있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여행용 캐리어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것의 가격을 보니까 70달러부터 시작한다. 약 7만원 정도 된다. 너무 비싸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띄는 가격 29달러. 너무나 촌스러운 빨간색 꽃무늬 캐리어가 단돈 29달러다. 물론 세금까지 하면 30달러가 넘겠지만.. 그래도 이 얼마나 은혜로운 가격인가? 너무나 파격적인 색깔과 무늬 때문에 한참 망설였지만 너무나 가볍고 착한 가격에 덥썩 집어 들었다. 너는 오늘부터 나와 함께 다니자. 서둘러 계산하고 나와서 매고 있던 배낭을 통째로 넣어버렸다. 아, 어깨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바퀴달린 가방을 끄느라 발걸음은 느려졌다. 아니다. 원래 걸음 자체가 느려서 그다지 차이는 없을 수도 있다. 


메트로폴리스 자체가 블랙홀 같아서 또다시 무언가에 홀리면 영원히 못 빠져나올 것 같다. 바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참으로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간 하루를 보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 우리의 인생사가 그렇다. 어느 것도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떠나고 돌아온다. 세상의 이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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