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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14. 2023

시험은 시험이다

2023.07.24.월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그러고 보니까 밴쿠버에 와서 처음 내리는 비다. 비가 오니까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드디어 한국에서 챙겨간 예쁜 내 우산을 활용할 때가 되었다. 


문법 수업

레벨 테스트를 보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 새로온 학생들이 있다. 보통은 이 시간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오늘은 오후에 오리엔테이션을 한단다. 그래서 새로온 학생들이 곧바로 문법 수업에 들어와 있다. 아마도 새로온 학생들은 시험을 보지 않겠지라고 짐작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하긴 한시간동안 시험보는 학생과 보지 않은 학생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무얼 어찌하겠는가? 교사는 모두에게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부한다. 그리고 시험지에는 아무 것도 표시하지 말고 답안지에만 답을 표시하라고 알려준다. 객관식 50문제를 50분동안 푼다. 역시 내가 알고 풀 수 있는 문제는 10개도 안된다. 모르는 것은 그냥 과감하게 찍었다. 아는 문제만 제대로 풀자. 어차피 모르는 문제는 낑낑대면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점수는 일찌감치 포기다. 내가 푼 문제만 맞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이다.



듣기 수업

그동안 배웠던 숫자에 대한 단원이 지나가고 직업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 시작되었다. 새로 배운 단어는 bumpy(울퉁불퉁한), janitor(관리인, 청소부), nail(못, 손톱), saw(톱, 톱질하다), leak(액체가 새다) 등이다. nail은 손톱만 알고 있었는데 못이라는 의미도 있단다. janitor은 스코틀랜드어란다. 전에도 스코틀랜드어가 명사로 굳어진 것을 보았는데 아마도 유럽에서도 스코틀랜드사람들이 많이 왔나보다.



읽기와 쓰기 수업

오늘은 그동안 배운 내용을 가지고 게임을 한단다. 우선 전체를 3그룹(각 4명씩)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팀에 1번선수, 2번선수, 3번선수, 4번선수를 정해주었다. 칠판에 8가지의 문제 유형을 제시한다. 본문 내용 확인, 단어 빈칸 메꾸기, 품사 유형, 그림으로 표현하기, 몸으로 표현하기 등 다양한 문제가 있다. 그리고 각 문제 유형에 1점부터 5점까지 선택할 수 있단다. 

각 팀의 1번 선수들부터 나갔다. 앞에 공이 하나 있는데 문제를 듣고 그걸 먼저 집는 선수에게 답을 맞출 기회가 있단다. 먼저 1그룹의 1번 선수가 품사 유형의 3점짜리를 선택했다. 그룹 1번 선수가 맞추었다. 1그룹이 3점을 획득했다. 천천히 룰을 이해한 학생들의 열기가 서서히 달구어졌다.

나는 1그룹의 2번 선수였다. 나에게 문제 선택권을 주길래 내가 자신있는 본문 내용 확인 3점짜리를 선택해서 맞추었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돌면서 게임이 진행되었다. 은근히 재미있다. 학생들은 영어가 자신이 없어서 주로 그림으로 표현하기와 몸으로 표현하기를 선택하는 바람에 그 문제들이 모두 솔드아웃되었다. 다들 비슷한 심정이다. 한바탕 재밌는 게임이 끝났다. 우리 그룹이 선두를 달리다가 역전 당했다. 하지만 승부보다는 재미있게 즐겨서 좋다. 내일은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들로 레벨 테스트를 본다.



점심시간

점심을 먹으면서 다들 불꽃놀이을 본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번 주 수요일에는 나도 잉베에 가서 봐야겠다. 거기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입장료를 받는 곳을 제외한 해변 공간은 무료란다. 일찍 가서 자리를 맡아야 하지만 나는 혼자 몸이니까 그냥 슬쩍 가서 아무데나 끼어 앉아도 될 것 같다. 

이런저런 불꽃 놀이 보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멕시코 학생이 멕시코 친구 R에게 불꽃놀이를 멕시코로 돌아가기 전에 꼭 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친구들이랑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데 혹시 나에게 혼자 갈거면 R과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묻는다. 물론 R은 나의 베프니까 그녀가 불꽃놀이를 보고 싶으면 같이 가자고 했다. R이 보고 싶다고 하길래 그러면 수요일에 학원이 끝나고 나서 저녁 8시에 학원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학원의 한국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학생 휴가에 대해 문의하였다. 휴가를 신청하면 그 기간만큼 학원 기간이 연장된다. 총 2주를 낼 수 있고 일주일 단위로 받는단다. 즉, 1주일씩 2번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최소한 2주 전에는 신청해달란다. 심사숙고해서 여행 스케쥴을 짜야겠다. 

또 하나의 질문. 도서관에서 본 영어회화 서클에 대해 물어보았다. 시민회관에서 주관하는 것 같은데 혹시 사전에 신청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물론 학원 선생님이 시민회관 프로그램까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 포스터 사진을 보여달라고 한다. 보여주니까 거기 적힌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어서 물어봐 주신다. 어머나 고마워라. 그 프로그램은 사전에 신청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해당 시간에 가면 된단다. 너무 친절하고 고마운 선생님이다.



회화 수업

오늘의 주제는 body and health다. 오늘 새로 배운 단어는 calf(종아리), thigh(넓적다리), abdomen(복부) 등이다. 재밌는 문장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선택하는 활동도 했다. We don`t need hair on our heads. 우리는 머리카락이 필요하지 않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러 나라 사람들이 대화하니까 재밌다. 대부분 머리카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업이 끝나고 장을 보러 집 근처의 프레시 마켓에 갔다. 마침 돼지고기가 세일하길래 왕창 샀다. 그리고 오면서 우리집 근처에 사는 한국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난 금요일에 몹시 아파서 조퇴를 한 친구다.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갔는데 금요일 저녁에 걱정이 되어서 카톡을 보내니까 좀 나아졌단다. 아들 둘과 함께 와서 매일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공부도 하다가 병이 난 거다. 나는 내 한몸 챙기기도 버거운데 아들들까지 챙기면서 공부하니까 병이 날 만하다.

그런데 오늘 그 친구가 수업에 오지 않아서 혹시 주말에 끙끙 앓지나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카톡을 보냈더니 다행히 아프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우산을 하나만 가져와서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오늘 수업을 제꼈단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서 아이들 병이 날까봐 걱정도 된단다. 오늘 비가 왔으므로 그렇다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을 테니까 답답했겠다 싶었다. 혹시 반찬이 하나도 없이 구운 돼지고기에 비빔면만 곁들여 먹는 것이 괜찮다면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녀의 집은 우리집 바로 옆에 있는 콘도형 호텔이다. 그리고 우리 기숙사는 10시 전까지는 친구를 초대해도 된다. 다행히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오라고 했다. 갑자기 분주해졌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돼지고기를 굽고 비빔면을 만들었다. 

마침 우리 식구들도 있어서 다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 친구가 초대해주어 고맙다고 와인과 케이크를 사왔다. 와인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다. 역시 고기와 술은 진리다.



아들 둘을 데리고 용감하게 이곳에 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감탄했다. 그런데 그녀는 도시락을 싸야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서 결국 오전 수업을 포기했단다. 아들 둘이 간단한 샌드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굳이 김밥이나 김치볶음밥같은 요리를 해달라고 한단다. 에고, 철없는 아이들이라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영어공부와 아들 둘 돌보기를 다 할 수는 없단다. 백프로 공감이다. 이번에 온 것은 아이들을 이곳으로 보낼지 말지 간을 보러 짧게 온 거란다. 이번에 아주 제대로 간을 보았단다. 역시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와보는 것은 많이 다르다. 이번에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을 했단다. 그들을 보내고 나서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여기에 올 수 있는 나의 삶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더 보람차게, 더 즐겁게 이곳 생활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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