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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15. 2023

나는 왜 고생을 사서 하는가?

2023.07.25.화요일

비는 그쳤으나 날씨는 매우 쌀쌀하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학원가는 길에 스쳐지나가는 한국사람들의 말이 들렸다. 

'왜 이렇게 추운거야.' 

맞다. 여기는 지금 여름인데 너무나 쌀쌀하다. 다만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오후에는 덥다. 아침 기온과 오후 기온은 너무나 다르다.


Grammar Class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함께 공부해온 친구들에게 이번 주 금요일에 R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마지막 날이니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다들 좋다고 했다. 지난 주에 먹었던 그 쌀국수집에서 먹기로 했다. 

어제 본 레벨 테스트를 학생들이 채점한다. 내가 온 첫날 본 풍경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제 처음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은 느닷없이 시험을 보고 또 다음날 채점을 해서 아마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학생의 이름을 가린 답안지를 교사가 나눠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사가 불러주는 답에 따라 채점을 했다. 이어서 교사는 답안지를 모두 거두어서 학생들에게 학생 본인의 답안지를 나눠 주었다. 그리고 문제지도 함께 주면서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확인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질문하라고 했다. 

나는 대체로 이번에 배운 것들은 내 힘으로 풀어서 그럭저럭 잘 보았다. 하지만 역시 찍은 문제들은 많이 틀렸다. 어차피 나는 찍기를 해도 잘 맞는 편이 아니라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겨우 반타작을 넘긴 수준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틀린 문제 중에 정답을 확인한 순간, 갑자기 이해되는 것은 또 뭘까? 

아무리 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를 몇 개 선택해서 질문했다. 다른 학생들도 여러 문제를 질문했다. 교사는 교재에서 관련된 페이지를 짚어 주기도 하고, 배웠던 내용에서는 단어나 문맥의 차이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질문이 많아서 시간이 오버되어 서둘러서 설명을 끝내야 했다. 역시 우리반 학생들은 참 열심히 한다.



Listening Class

어제 파트너가 되어 좀 친숙해진 일본 친구 N이 어제 배웠던 단어 중에 몇 가지를 질문한다. 다행히 아는 것들이라 아는 단어 몇가지와 손짓발짓으로 설명했다. 자꾸 몸으로 말하기 실력이 늘고 있다. 

어제 배운 직업들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나서 듣기활동을 했다. 단어를 3~4개 들려주고 직업을 추리하는 문제인데 쉽다. 예를 들어 wood, saw, nail의 직업은 carpenter 목수다. nail은 우리가 흔히 손톱으로 알고 있는데 또다른 뜻으로 '못'을 의미한다. 이러니까 우리가 헛갈리는 것이다. 예상밖의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많다. 

다음 페이지에서도 직업이나 그에 관련된 여러 단어를 배웠다. plumber은 배관공, janitor은 관리인 혹은 청소하는 사람이란다. 그런데 janitor은 검색해보니까 스코틀랜드어로 흔치 않은 단어다. 저번에도 몇 가지 스코틀랜드어가 나와서 낯설었는데 아무래도 캐나다에 정착한 유럽인 중에 영국의 스코틀랜드 출신이 많았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문제를 파트너와 확인하고 시간이 남아서 N에게 이것저것 신상을 물어보았다. 고등학생인데 대학 가기 전에 경험삼아 여기 와본거란다. 훌륭하다. 정말 요즘 젊은이들은 참 대단하다. 



Reading and Writing Class

드디어 레벨 테스트. 그동안 배운 2가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단어, 내용, 품사 등의 문제가 4지선다형으로 출제되었다. 이미 문법 시간에 정신이 털린 상태라 이제는 그냥 무념무상이다. 적당히 풀자라고 생각했지만 성격상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또다시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었다. 어렵다. 딴건 몰라도 내용확인 문제는 자신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것도 헛갈린다. 게다가 새로운 지문이 제시되고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묻는 문제에서는 지문을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겨우겨우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답을 채우고 제출했다. 정말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풀었다. 나는 왜 뭐든지 열심히 하는걸까? 



Lunch Time

오늘도 익숙한 친구들과 도시락을 까먹는다. 그런데 R이 이번주 수요일의 불꽃놀이에 자기는 아무래도 못올 것 같다고 말한다. 어제부터 추워져서 R이 많이 힘든 것 같다. 그녀의 나라에 비해 여기는 많이 춥다. 게다가 불꽃놀이는 너무 늦은 시간에 끝나고 그녀의 집은 시내에서 너무 멀다. 그동안의 피곤도 누적되었을테니까 65세인 R에게는 너무 무리다. 미안해하길래 전혀 걱정말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아주 잘 이해한다면서 고마워한다. 우리는 나이든 사람들이라 서로 잘 이해하고 의지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베프다. 가는 그녀에게 이번 주가 마지막인데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숙제를 하는데 너무 졸리다. 나도 많이 피곤하다. 정말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 것은 많이 힘들다. 에휴. 나는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것일까?



Communiction Class

오늘도 명랑한 교사 C와 함께 재밌는 수업활동을 했다. 어제에 이어서 body에 대한 것. 신체의 여러 부위 명칭도 배우고 문장도 만들어보고 의견도 나누었다. 'How often do you play sport or do exercise?'(얼마나 자주 운동하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more than twice a week라고 답했다. 그런데 'How many glasses of water do you drink a day?'(얼마나 자주 물을 마시는가)에 대해서는 나이별로 조금씩 달랐다. 국적을 불문하고 나이든 사람들이 물을 좀더 많이 마신다. 왜 그러지? 신기하다. 




extra class

오늘은 새로운 학생들이 많이 왔다. 주로 멕시코사람들이 많았다. 오늘의 주제는 음식. 독특한 음식부터 보편적인 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양한 음식 명칭이 적힌 쪽지를 돌려서 먹어본 사람들은 채크하는 활동을 했는데 다 모아서 하나씩 확인했다. 그 중에는 hamburger, pizza, patato와 같이 익숙한 것부터 snake(뱀), ostrich(타조), dog(개) 등의 독특한 것들도 있었다. 

교사 M은 낯선 문화의 낯선 음식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라고 했다. 우리에게 처음보는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문화라면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보신탕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식용 개와 애완용 개는 다르다. 나는 보신탕이 그다지 땡기지 않아서 먹지 않는다. 하지만 보신탕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도 그냥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멕시코 사람들이 많아서 그에 관련된 여러 음식 이야기가 나왔다. 타코, 부리또, 퀘사디아 등등 어디선가 한두번씩 들어보고 먹어본 것들이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배가 고프다. 여기 와서부터는 너무 자주 배가 고프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보다.


수업이 끝나고 금요일에 친구들과 함께 식사할 식당에 예약을 했다. 그리고 신나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까 점심 먹고 나서 숙제를 하면서 너무 졸아서 엉망진창이다. 도서관에 가서 숙제를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도 좀 하고 책도 한페이지 읽고 나왔다. 나 스스로에게 마음의 칭찬도장을 하나 꾸욱 찍어주었다. 


집으로 향하면서 한인 마트에 들렀다. 오늘은 쌀과 김밥 재료를 사려고 마음 먹었다. 아직까지 밥이 그립지는 않는데 오랜만에 김밥은 먹고 싶다. 나의 특제 김밥. 그런데 여기서는 나의 김밥을 싸기는 어렵다. 나의 김밥은 보통 속재료가 12가지 이상 들어가는데 지금 확보된 것은 단무지, 우엉, 맛살, 어묵, 치즈 뿐이다. 과연 맛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뭐를 만들고 싶으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므로 일단 해보자. 

그런데 또 다른 난관. 여기는 전기밥솥이 없다. 그냥 냄비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아주 많이 망설였다. 햇반을 살 것인가, 쌀을 살 것인가. 그래도 역시 쌀을 사는게 낫겠다. 주먹밥도 해먹고 김밥도 해먹고 내 성격에 1인분만 할리는 없고 여기저기 사람들과 같이 먹을 요량으로 많이 준비할테니까 쌀이 나을 것 같다.

집에 와서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난생 처음으로 냄비밥을 했다.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그리고 김밥 속재료도 준비했다. 내일은 한시간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쌀 것이다. 사실 샌드위치가 더 편하다. 전날 만들어 두었다가 아침에 가져가면 된다. 하지만 김밥은 아침에 싸야하니까 더 번거롭다. 벌써부터 후회하고 있다. 나는 왜 모든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내일 김밥을 만들기 위해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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