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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21. 2023

아미고, 친구

2023.07.28.금요일


Grammar Class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함께 숙제의 답을 맞추어 보았다. 한쪽에서는 작별 깃발에 글을 쓰느라 바쁘고 한쪽에서는 답을 맞추느라 바쁘다. 이래저래 심란하고 분주하다. 브라질 친구가 자기는 울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이다. 학원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레벨업을 해서 헤어지게 되는 일본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섭섭해한다.

수업이 시작되어 현재완료에 대해 교사가 설명하는데 어떤 것은 귀에 들어오고 어떤 것은 뭔말인지 모르겠다. 이해가 되는 것의 비율은 20% 정도다. 연습문제에서 특별한 여행으로 상어 옆에서 수영하기(안전장치 안에서), 활화산 옆에서 밥먹기, 얼음호텔에서 잠자기가 제시되었다. 이 중에서 무엇을 선호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비교적 안전한 얼음호텔을 선택한다. 나와 브라질 친구 L은 활화산 옆에서 밥먹기를 선택했다. 우리는 캠핑음식을 가져가면 좋을 거라고 낄낄거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얼음호텔 영상도 보았다. 그런데 브라질 학생이 자신의 나라에는 얼음바가 있다고 했다. 아직 10대인 브라질 학생은 아주 신나서 얼음바에 대해 설명했다. 근데 네가 어떻게 얼음바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니? 후후.

그런데 이야기 중에 교사 S가 이번 주 토요일에 밴쿠버의 마지막 불꽃놀이가 있다면서 혹시 앞의 불꽃놀이를 모두 본 사람 있냐고 묻는다. 내가 다 봤다니까 마지막 것도 볼거냐고 묻는다. 당연히 볼 거라고 그랬더니 3개를 비교해서 월요일에 발표하란다. 뭐라고? 3개를 다 본 사람은 너뿐이니까.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좀 고민하고 있다. 발표 준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업이 끝나고 나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다들 아쉬움이 가득한 마음이다.



Listening Class

처음으로 수업을 빼먹었다. 대학 때 많이 했던 일이지만 여기서는 처음이다. 한국 친구 T가 감사하게도 나를 위해 집에서 담근 김치를 가져와서 아침에 주고 갔다. 너무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데 어쩌지? 이따가 밥 먹고 월마트도 가야하는데 이것을 들고 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 과감하게 2교시 수업을 빼먹고 집으로 달려가서 냉장고에 넣고 왔다. 갑자기 냉장고가 꽉찬 느낌이다. 그리고 오는 길에 예약한 식당에 들러서 우리 주문을 전달했다. 종이에 이름과 메뉴를 받는 것은 아주 잘 한 것 같다. 



Reading and Writing Class

어제에 이어서 잠과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그리고 본문을 읽고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만 친구와 이야기가 통하는 것이 있다. 어렸을 때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흔히 어른들이 키가 크려고 한다는 얘기를 했단다. 우리나라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시아에서는 서로 비슷한 미신이나 관습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는 흔히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는 얘기를 했더니 교사가 구글에 검색하면 꿈사전이 있다고 알려준다. 거기서는 알파벳 A부터 Z까지 꿈에 대해 검색할 수 있단다. 

수업이 끝날 무렵 교사는 다음 주부터 새로운 클래스가 시작된다고 하고는 학생들에게 각각 한달의 성적표를 배부해주었다. 이 학원은 매달 학생들에게 종합 성적과 각 과목별 기록이 담긴 레포트를 나눠 준다. 거기에는 교사의 간단한 평가 기록과 시험 성적이 나와 있다. 이번에 레벨이 오른 친구들은 새로운 학급을 배정받는다. 나는 당연히 모두 현재 레벨이 유지된다. 문법을 빼고는 대부분 성적은 잘 나왔다. 




오늘은 학원 앞이 엄청 분주하다. 마지막 날이라고 이별하는 친구들과 인사나누느라 여기저기서 포옹하고 난리다. 예약한 식당에 먼저 달려가보니 한국 친구 K가 와 있다. K는 인근의 다른 도시로 이사갔는데 마침 남편이 캐나다에 여행 와서 지금은 밴쿠버 다운타운의 어느 호텔에 머문다고 했다. 그래서 점심에 서프라이즈로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학원 앞으로 가서 나오는 친구들에게 먼저 식당으로 가라고 하면서 누군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서프라이즈라고 하니까 다들 궁금해하면서 갔다. 

모두 모이니 역시 예상대로 밥 먹으랴, 이야기 나누랴, 인스타그램 계정 연결하랴, 정신이 없다. 2일동안 쓴 캐나다 국기를 나눠주었다.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도 있고 사진부터 찍은 친구도 있다. 한국 친구 K는 요즘 유행하는 거라면서 예쁜 노트를 이별 선물로 준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전통인형 열쇠고리를 주었다. R에게는 따로 카드도 주었다. 서로 선물 주고 받고 포옹을 하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계산을 다 하고 나서도, 다들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눈치다. 간다고 일어나서도 안가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도 끝내 가봐야 하는 일정들이 있어서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나의 배프 멕시코 친구 R, 한국 친구 K, 일본 친구 A, 브라질 친구 L이다. 우리는 차마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결국 근처 카페에 가서 잠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카페에서 K가 제안해서 친구라는 말을 각자 자기 나라 말로 하는 영상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의 그룹방에 올렸다. 잠깐 사이에 K는 그 영상을 하나로 합쳐서 다시 올렸다. 재주가 정말 많은 친구다. 수업 시간에 한동안 멕시코 친구 R의 옆자리에 앉아 파트너를 했던 일본 친구 A가 그동안 수업에서 있던 일들을 떠올리며 다같이 한참을 웃었다. 아까 이 일본 친구는 기어이 눈물을 흘렸는데 지금은 활짝 웃어서 다행이다.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이 되어서 친구들과 작별을 했다. 그리고 나는 학원 앞에서 일본 친구 H와 만났다. 드디어 월마트로 출발. H에게 점심을 먹었냐고 물었더니 먹었단다. 그런데 월마트 전철역에 내리면 카페가 있냐고 묻는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배가 고프단다. 홈스테이에서 싸준 점심이 뭐였냐고 물었더니 케이크 한조각과 메론 한봉지란다. 메론은 그대로 남아있고 케이크 한조각만 먹었단다. 케이크를 담았던 통을 보여주는데 손바닥 반만한 통이다. 이러니까 애가 배가 고프지. 월마트가 있는 대형몰에 푸트코트가 있으니까 거기 가자고 했다. 

전철에서 내려서 우선 푸드코트부터 찾아갔다. 우리나라 푸트코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버거킹, KFC, 피자, 일본음식, 베트남음식, 인도음식 등의 코너가 즐비하다. H는 한참 망설이더니 KFC를 선택했다. 원래 피자를 먹고 싶어 했는데 하필이면 피자가게가 공사 중이다. 치킨 2조각과 감자튀김, 콜라 콤보를 시킨다. 나는 콜라 한잔을 시켰다. H는 치킨, 감자튀김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저런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H가 먹는 동안 나는 일본말을 배우고 H는 한국말을 배웠다. 내가 친구를 여러나라 말로 한 인스타그램 영상을 보여주니까 한국말로 친구가 뭐냐고 물어서 가르쳐주었다. H는 몇 년 전에 한국친구에게 배웠다면서 '나는 H입니다.'를 또박또박 말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월마트로 가서 H가 사고 싶어하던 견과류를 골랐다. 나는 피스타치오와 참치캔을 선택했다. 외국 참치캔이라 일단 하나만 사 보았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나서 다시 전철역으로 향했다. 뭐를 더 구경하고 싶냐고 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보니까 책가방도 무겁고 도시락 가방도 무겁다. 그래. 집으로 가는게 낫겠다. H에게 여기에 온 이후로 집과 학원 외에 가본 곳이 있냐니까 없단다. 혹시 어디 가고 싶거나 여기 월마트에 또 오고 싶으면 나에게 인스타그램으로 연락하라고 했다. H는 다음 달부터 다른 반으로 배정받아서 우리는 수업이 겹치지 않는다. 이럴 때 인스타그램이 있어서 다행이다. 

H는 중간에 전철을 갈아타야 해서 내렸다. 10월에 이곳 밴쿠버의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데 과연 그녀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 전에 저 홈스테이에서 계속 살다가 영양실조에 걸리는게 아닐까? 물론 H가 케이크만 먹고 메론은 그대로 남긴 것을 보면 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심으로 케이크 한조각과 과일만 싸준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싶다. 한참 자랄 나이인데... 자기 의사표현을 잘 못하는 H가 걱정이 된다. 국제적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집에 오는 길에 냉동시킬 수 있는 그릇을 좀 샀다. 이제 쌀을 샀기 때문에 밥을 해서 냉동시켰다가 녹여먹을 그릇이 필요하다. 한국의 집에는 이런 냉동식기가 잔뜩 있는데... 내 집이 그립다. 내 냉장고도 그립다. 내 컴퓨터와 높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도 그립다.

집에 와서 씻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서 썰어서 봉지에 담고 저장용기에 담고 다시 비닐에 담았다. 벌써 냉장고에 김치 냄새가 가득하다. 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좀 조심스럽다.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밥재료를 몽땅 꺼내서 다 싸버렸다. 그래봤자 2줄이지만...내친 김에 한바탕 냉장고 정리를 했다. 딱 한 칸만 사용하다보니까 수시로 정리하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나니까 방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넓지 않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잔머리를 잘 굴려야 한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나니까 헉헉 힘들다. 아무래도 나 자신에게 상을 주어야겠다. 시원한 맥주! 불금을 시원한 맥주로 마무리했다. 이번 주는 이별의 주간이었다. 잘가라. 친구들아. 언젠가 또 인연이 닿으면 만나겠지. 외국 친구들은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안녕.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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