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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를 끊을 수 없는 이유

취미로운 생활 : 오늘의 운세

by 미닝리
만약 병에 걸린 사람이 죽을 운명이라면 의사를 부를 필요가 없다.
반대로 병에 걸린 사람이 살 운명이라도 의사를 부를 필요는 없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에서 스토아 학파의 운명론에 반박하기 위해 했던 논증의 하나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그러니까 무려 기원전이었다. 이 얼마나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쉽고 명쾌한 논증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인간의 운명이라는 게 정말로 정해져 있다면, 그걸 알아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다고 믿지도 말고, 실제로 있건 없건 운명을 알려고 애쓰지도 말지어다.




그렇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세를 보는 게 취미다. 실제로 점쟁이를 만나고 사주를 본 적도 있지만 더 정확히는 운세 앱으로 신년운세나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게 취미다.


그러니까 왜 보느냐고?

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어떨 때 운세를 보느냐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나의 경우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삶이 고달플 때, 혹은 어려운 갈림길에 직면했을 때 운세를 보는 것 같다. 가끔 오늘 로또를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횡재운이 있나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마음이 힘들 때 본다. 삶이 안정되고 현재에 만족하고 있을 때는 운세를 보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실제로 운세 상담 광고도 노골적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오늘의 운세가 각각 행운과 불운을 점칠 때 어느 쪽이 기억에 더 오래 남을까?


내 경우로 말하자면 99% 불운이다. 오늘은 일이 잘 풀릴 거라는 행운의 메시지는 그 순간 기분이 좋을 뿐 기억에 잘 안 남지만, 오늘 하루는 무척 힘들 거니까 조심하라는 경고를 날리는 불운의 메시지는 보는 순간부터 뇌가 활성화되면서 정밀분석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떤 작은 사건이라도 맞닥뜨리게 되면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갔을 사건이라도 '아, 그 운세가 이 사건을 말하는 건가' 하며 작은 정합성만 발견해도 소름이 돋는 것이다. 하루의 사건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입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간과한 채 운세가 잘 맞았다고 감탄한다. 마치 무의식이 운세가 맞는 쪽으로 나를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다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리고 있을 때 변화를 갈망하면서 운세를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세를 봄으로써 위로를 받는다.

아, 오늘은 내 운세가 안 좋아서 그랬던 거구나. 내 잘못이 아니었어. 운세 탓을 한다. 그리고 언제 잘 풀리지? 하며 미래의 희망이 있음을 확인한다.


들어서 나쁠 게 없는 조언도 받는다.

대개 오늘의 운세는 플랫폼을 불문하고 생활에 대한 조언 기능이 발달해 있다. 그날 이것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 경고와 함께 평소 방심하기 쉬운 삶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게 해준다.


긴 설명 필요없이 나의 운세를 캡처한 이미지를 몇 개만 살펴보자.

객관적으로 보면 거의 대부분 언제 듣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조언들이다. 다만 내 마음이 힘든 순간에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 나은 마음가짐과 태도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그날 그날의 조언만 따라도 특별히 손해볼 말들은 아닌 얘기들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운세는 심리학적 자기객관화에 도움을 준다.

플랫폼에서 보는 운세는 보통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 보편적 문장을 읽으며 그날에 일어난 불운에 대해 나에게 맞는 부분과 아닌 부분들을 발견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뇌가 활성화되면서 내가 뭘 고민하고 있었는지 내 마음이 무얼 불안해하고 있었는지 실체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막연했던 불안감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일종의 심리 상담 기능을 대신해 주는 셈이다.


그래서 운세란 결국 "오늘은 안 좋고 내일은 좋다"고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힘들 때 이겨내는 조언을 주고 내일은 좋을 거라고 희망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의 사주에서는 늘 50대가 내 인생의 전성기가 될 거라고 해주었다. 지금은 비록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엉망진창의 인생이지만 50대에는 전성기가 온다니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 것도 없는데 마음이 든든해지는 사주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60대가 되어 이 글을 다시 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정말 나의 50대는 전성기로 평가될 만한 것이었을까? 만약 그때도 이 브런치란 플랫폼이 세상에 남아있고 내가 아직 브런치를 하고 있다면 꼭 사주가 맞는 것이었는지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니까 아주 만약에 어쩌면.. 사주라는 것이 아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평행우주나 4차원 세계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살짝 몰래 예측할 수 있는 도구일 수도 있지 않은가. 운명의 흐름을 읽어내는 방법을 선지자들의 직관적 지혜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해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가 그 평행우주의 우리와 확률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조언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라는 믿음도 1% 정도는 남겨두자. 그래야 운세를 보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점을 보는 이들에게, 결정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고 점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점은 강조해둔다. 점에 잡아먹힐 것 같은 순간에는 언제나 플라톤을 생각하자. 운명이 결정되어 있고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취미로운 생활> 시리즈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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