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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Sep 10. 2021

오늘의 운세를 끊을 수 없는 이유

취미로운 생활 : 오늘의 운세

만약 병에 걸린 사람이 죽을 운명이라면 의사를 부를 필요가 없다.
반대로 병에 걸린 사람이 살 운명이라도 의사를 부를 필요는 없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에서 스토아 학파의 운명론에 반박하기 위해 했던 논증의 하나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그러니까 무려 기원전이었다. 이 얼마나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쉽고 명쾌한 논증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인간의 운명이라는 게 정말로 정해져 있다면, 그걸 알아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다고 믿지도 말고, 실제로 있건 없건 운명을 알려고 애쓰지도 말지어다.




그렇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세를 보는 게 취미다. 실제로 점쟁이를 만나고 사주를 본 적도 있지만 더 정확히는 운세 앱으로 신년운세나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게 취미다.


그러니까 왜 보느냐고?

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어떨 때 운세를 보느냐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나의 경우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삶이 고달플 때, 혹은 어려운 갈림길에 직면했을 때 운세를 보는 것 같다. 가끔 오늘 로또를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횡재운이 있나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마음이 힘들 때 본다. 삶이 안정되고 현재에 만족하고 있을 때는 운세를 보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실제로 운세 상담 광고도 노골적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오늘의 운세가 각각 행운과 불운을 점칠  어느 쪽이 기억에  오래 남을까?


 경우로 말하자면 99% 불운이다. 오늘은 일이  풀릴 거라는 행운의 메시지는  순간 기분이 좋을  기억에   남지만, 오늘 하루는 무척 힘들 거니까 조심하라는 경고를 날리는 불운의 메시지는 보는 순간부터 뇌가 활성화되면서 정밀분석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떤 작은 사건이라도 맞닥뜨리게 되면 평소에는  생각 없이 넘어갔을 사건이라도 ',  운세가  사건을 말하는 건가' 하며 작은 정합성만 발견해도 소름이 돋는 것이다. 하루의 사건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입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간과한  운세가  맞았다고 감탄한다. 마치 무의식이 운세가 맞는 쪽으로 나를 유도하고 있는  같다.


그건 다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리고 있을 때 변화를 갈망하면서 운세를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세를 봄으로써 위로를 받는다.

아, 오늘은 내 운세가 안 좋아서 그랬던 거구나. 내 잘못이 아니었어. 운세 탓을 한다. 그리고 언제 잘 풀리지? 하며 미래의 희망이 있음을 확인한다.


들어서 나쁠 게 없는 조언도 받는다.

대개 오늘의 운세는 플랫폼을 불문하고 생활에 대한 조언 기능이 발달해 있다. 그날 이것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 경고와 함께 평소 방심하기 쉬운 삶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게 해준다.


긴 설명 필요없이 나의 운세를 캡처한 이미지를 몇 개만 살펴보자.

객관적으로 보면 거의 대부분 언제 듣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조언들이다. 다만 내 마음이 힘든 순간에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 나은 마음가짐과 태도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그날 그날의 조언만 따라도 특별히 손해볼 말들은 아닌 얘기들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운세는 심리학적 자기객관화에 도움을 준다.

플랫폼에서 보는 운세는 보통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 보편적 문장을 읽으며 그날에 일어난 불운에 대해 나에게 맞는 부분과 아닌 부분들을 발견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뇌가 활성화되면서 내가 뭘 고민하고 있었는지 내 마음이 무얼 불안해하고 있었는지 실체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막연했던 불안감의 실체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일종의 심리 상담 기능을 대신해 주는 셈이다.


그래서 운세란 결국 "오늘은 안 좋고 내일은 좋다"고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힘들 때 이겨내는 조언을 주고 내일은 좋을 거라고 희망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의 사주에서는 늘 50대가 내 인생의 전성기가 될 거라고 해주었다. 지금은 비록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엉망진창의 인생이지만 50대에는 전성기가 온다니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 것도 없는데 마음이 든든해지는 사주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60대가 되어 이 글을 다시 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정말 나의 50대는 전성기로 평가될 만한 것이었을까? 만약 그때도 이 브런치란 플랫폼이 세상에 남아있고 내가 아직 브런치를 하고 있다면 꼭 사주가 맞는 것이었는지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니까 아주 만약에 어쩌면.. 사주라는 것이 아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평행우주나 4차원 세계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살짝 몰래 예측할 수 있는 도구일 수도 있지 않은가. 운명의 흐름을 읽어내는 방법을 선지자들의 직관적 지혜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해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가 그 평행우주의 우리와 확률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조언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라는 믿음도 1% 정도는 남겨두자. 그래야 운세를 보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점을 보는 이들에게, 결정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고 점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점은 강조해둔다. 점에 잡아먹힐 것 같은 순간에는 언제나 플라톤을 생각하자. 운명이 결정되어 있고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취미로운 생활> 시리즈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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