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운 생활 : 오디션
오디션 프로그램을 취미처럼 덕질하기 시작한 시기 말이다. 특히 장범준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을 알게 해준 버스커버스커의 탄생 과정을 밤늦도록 지켜보며 난생처음 문자 투표도 하고 열광했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후로도 우후죽순 쏟아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수많은 참가자들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기억하고 때로는 잊곤 했다. 안타깝게도 기억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어 모든 참가자들을 영원히 기억할 수는 없었다.
바야흐로 '오디션의 홍수'라는 말이 새삼스럽지도 않을 만큼 비슷한 듯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이 양산되고 있는 시대다. 최근에는 싱어게인에 이어 슈퍼밴드 2가 나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방송국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전히 대중들에게 잘 팔리니까 계속해서 오디션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고, 참가자들은 여전히 그것이 기회의 장이 되기에 참가하는 것이고, 나 또한 그게 상술이든 뭐든 내 심장을 뛰게 하기에 매번 몰입하고 열광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늘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무대에 선 그 단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그 모습이, 그 치열함이 나를 감동시킨다.
언제나 오늘을 마지막으로 탈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드라마틱한 상황 자체가 나를 몰입하고 응원하게 만든다.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열려 있는 시간. 아주 작은 선택이나 실수 하나로도 크게 성공하거나 크게 무너질 수 있는 시간. 개인의 역량 못지않게 운이라는 것도 무척 중요하게 작동하는 시간.
그런 한순간에 인생의 모든 걸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고3 때? 그때 비슷한 걸 흉내내기는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성인이 된 이후 모든 걸 걸어본 적이 있긴 했던가.
유재석과 이적의 <말하는 대로>라는 곡의 가사 한 소절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던 적이 있다.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모든 걸 걸고 달려든 적이 없었던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동경하는 것이다.
왜 그땐 그 용기가 없었을까. 결국 내가 잃을 것이라고는 지금의 나를 회사원이라는 틀에 속박하는 족쇄뿐이었을진대.
그리고 얼마 전 요즘 애정하는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마음을 울리는 다섯 글자를 발견했다. (사실 제목만 보고 소설인 줄 알았는데 에세이였다. 속았다! 하지만 즐겁게 잘 읽었다!)
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불안정한 경로를 굳이 선택한 걸까, 선택하면서도 명확하지 않았던 동기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최대 가능성을 원해."
내 인생의 최대 가능성은 무엇이었을까? 당장의 월급과 안정된 삶을 택하며 스스로 닫아버린 나의 최대 가능성. 30대의 끝자락에 도달한 지금에조차 그런 걸 바라도 되는 걸까? 아직 나에게 열려 있는 문이 있을까? 내 인생의 오디션은 아직 기회가 있는 걸까? 나에게 불안정을 택할 용기가 남아있을까?
<메인 이미지 출처 : Pixabay, Pexels>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