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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보라 Apr 07. 2020

why가 한 편의 글이 되기까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내가 읽어오는 책들에는 why에 대한 메모가 기록되어 있다. why를 기록해오는 순간들의 나는 책에 질문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감탄하기 일쑤다. why 900일을 발표하는 날, 900일의 why를 읽으면서 어떤 제목으로 PPT를 만들까를 고민한 날의 why다.


20170721 금 why 905/ how 525(PPT 제목_why의 재발견)

왜 나는 출력한 why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900일을 정리하려고 하는가?

왜 나는 출력한 why를 읽다가 PPT제목을 정하게 되었을까?

왜 why는 900일을 어떻게 아이와 성장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인가?

왜 why 속에 책을 읽을 때마다 책에 대한 why를 남기지 않은 것이 아쉬운가?

왜 인상 깊게 읽었던 책에 대한 why는 그때의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가?

왜 지난 why를 읽으면서 많이 긍정적으로 변한 나를 발견했을까?

왜 172일 차 why의 부정으로 표현된 why가 흥미로웠을까?

왜 why 900일 나의 변화를 정리하려니 적고 싶은 에피 소드가 많이 떠오를까?


매주 책을 읽었지만 모든 책에 why를 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내가 보인다. 나는 늘 내가 궁금했고, 내 성장이 궁금했나 보다. 꾸준한 기록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한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을 소개해 주시는 카페 허밍의 조성민 대표님의 본깨적을 듣던 날,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허밍웨이의 모든 선배님들이 책을 내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책을 아무나 쓰는 건가? 대단한 사람들이나 쓰는 거지. 애를 키우는 아줌마 주제에... 말도 안 되지!’하고 말이다. 내가 나를 하찮게 보고 있었다. 육아를 하는 전업 맘 주제에. 사실 주제라는 표현이 싫어서 쓰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나 스스로에게 ‘주제에’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육아는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내 마음 노트에는 그때의 마음들이 why로 표현되어 있다. 아주 천천히 변화해 가는 과정들이 why로 보인다.


자신을 믿어라

“이것은 푸른 말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p.146


또 하나, 스스로 경계할 부분은 바로 질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p.147


내가 나를 믿어야 명확한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why가 글  한 편이 되기까지!!’라고 책에 기록했다. 내가 만들어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면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쓰고 있던 그 당시의 나, 그 순간의 나를 아무런 평가 없이 그대로 봐주기로 마음을 먹자 블로그에도 편하게 글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여름, 캠핑을 갔을 때 메모해 둔 글이 있다.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를 읽고 난 후 ‘본다’는 것에 마음을 둘 때의 일이다. 시간을 들여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다. 우리는 하늘 놀이터에 가기 위해 산책을 하게 됐다. 하늘 놀이터에 가는 길에는 토끼 체험장 옆, 노란 꽃창포가 피어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가까이 보려고 다가갔더니 까맣게 햇빛이 닿는 물가에 올챙이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과 가지고 있던 종이컵으로 올챙이를 잡아서 구경을 했다. 뒷다리가 나온 올챙이, 앞다리까지 나온 올챙이, 그리고 꼬리가 짧아지고 있는 올챙이들을 봤다.


 다음 날, 아이들은 하늘놀이터에 또 놀러 가자고 했다. 조금만 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아이들과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났다. 신랑에게 사진을 찍고 싶으니 올챙이를 잡아 달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개구리의 한 살이가 떠올랐다. 알, 올챙이, 뒷다리, 앞다리, 꼬리가 짧아지고 개구리가 된다. 외웠던 기억이 났다. “올챙이 꼬리만 있는 것, 뒷다리 나온 것, 앞다리 나온 것, 꼬리가 짧아지는 것, 다 잡아줘!”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었다. 신랑이 뒷다리만 나온 올챙이를 잡았다. 폴짝폴짝. 신랑의 손 위에서 도망치기 위에 점프를 하는 올챙이다.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뒷다리가 나온 올챙이가 뒷다리가 없는 올챙이보다 훨씬 빨랐다. 신기하다 하면서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데 갑자기 ‘왜 올챙이는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먼저 나올까?’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갑자기 사람과 연결이 되면서 혼자 감탄을 했다. ‘올챙이 뒷다리는 생존을 위한 것이구나!’ 생존을 위해서는 뒷다리가 먼저 나와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은 ‘왜 올챙이가 더 통통하고 뒷다리나 앞다리가 나온 올챙이들은 더 작아지고 홀쭉할까?’였다. 나름의 답을 찾았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통통하게 살이 오르다 걷기 시작하면서 젖살이 쪽 빠지는 것처럼 올챙이도 다리를 만들고 성체인 개구리가 되기 위해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이다. 모두 생존을 위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최적화된 발달 단계다. 사람도 자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구나! 자연을 느끼면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순간을 즐기는 것이 행복이구나!


why는 글이 된다. 질문에 스스로의 답을 하는 과정이 배움의 과정이다. 스스로 내린 답이 틀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 답을 정정하면서 성장하는 것. 엄마로서 내가 먼저 why 하고 답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why 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더디더라도 한 걸음, 어제보다는 나아진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why 하고, 한 편의 글을 쓴다.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한 구절처럼,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내면의 소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1. 많이 읽고,

2. 열심히 들어주고,

3. 많이 써 보는 것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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