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기쁘게 하려면
왜 나는 늘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했을까?
어느 날,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내가 나를 골랐어>라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노부미 작가의 책이었다.
그림책을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서 멈춰졌다.
한참을 마지막 페이지에 머물렀다.
왜 나는 '기뻐해 주세요!'라는 표현에 멈췄을까?
왜 기뻐해 달라는 표현에 깊은 슬픔이 느껴졌을까?
왜 이해받지 못한 내 아픈 마음이 느껴졌을까?
왜 나는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살았을까?
왜 나를 위한 기쁨에는 죄책감을 느꼈나?
"내가 태어나면 엄마가 가장 먼저......
기뻐해 주세요!"
엄마! 저를 존재로 환영해 주세요!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 주세요!
엄마의 기쁨을 간절히 바란 아가의 마음이 내 안에도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힘들다고 하면,
그 일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내 마음 따윈 버려두고 애를 썼다.
엄마한테 힘들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내가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
나는 내 아이가 어떻게 살길 원하는가?
나와 다르게 사는 것을 원했다.
엄마가 원하는 삶에 'NO!'라고 거절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에 'YES!'라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한 시간,
그걸로 좋았다.
내가 원해서 전업맘이 되었고,
내가 원해서 아이와 함께 한 시간들을 선택했다.
내가 내 삶을 부정한다면 어떨까?
아이와 함께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딸이 쓴 짧은 글엔 엄마를 잃고 스즈메를 키운 이모와의 에피소드에서 슬펐다고 쓰여 있었다.
'엄마도 나를 키우지 않았다면'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아팠다. 마냥 좋기만 한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픈 만큼, 힘이 들었던 만큼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사랑'이라는 마음, 세상의 이치대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절대로 몰랐을 테니까!
나는 여전히 엄마가 내 존재로 기뻐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들이 있어서 기쁘다. 이 기쁨을 모르는 엄마의 마음이 슬프다. 켜켜이 함께 한 시간이 모두 사랑이었음을 엄마는 언제 알게 될까?
엄마도 존재로 기쁨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아프다.
사랑은 아프다.
'기뻐해 주세요!' 제발.
오로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 바친 어린 내가 애달펐다.
그게 사랑이었구나!
아픈 마음까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엄마가 되기를.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때,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위해 울어줄 때,
나는 기쁨을 느낀다.
내가 어떤 마음이라도 수용해 줄 때,
나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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