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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영 Aug 13. 2021

열정적인 게으름뱅이

쉽게 불타오르고 쉽게 지치는 사람에 대한 변명


온갖 해야 하는 일들과 또 하고 싶은 것들을 노트에 적으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나 걸치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자소서 등에서 자주 인용해왔던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정약용으로,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그들은 그 다방면에 대부분 통달하였으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발만 걸치고 있는 분야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돈도 소소하게 썼지만 늘 무언가를 마무리 짓기 전에 다른 것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은 나의 본성이라 할 정도이다. 


나는 이런 본성을 즐기고 조금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긴 했다. 넘치는 호기심과 열정의 표현으로 여겼다. 하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 그 펼쳐진 열정과 호기심을 한데 모았다면 그 빛으로 검은 종이를 불태울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나는 그 햇빛으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그 빛을 즐기는 사람에 가까웠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책상 주위를 보면서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얕은 다양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한 가지를 깊이 있게 파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집중하는 듯하면서도 매우 산만하고, 열정이 있는 듯하면서도 금세 식어버리는 유형이라는 것을 안다. 마치 열정적인 게으름뱅이처럼.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쉬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본성의 장점을 몇 가지 끌어내 보려고 한다. 우리 열정적인 게으름뱅이들은 앞서 말했듯이 호기심이 많다. 이 호기심의 가장 큰 장점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사그라지지 않는 탐구욕은 우리를 위험으로 몰고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긍정적인 경우에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인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자신의 경험들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분야에 대해서 어차피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어느 정도로 그것에 대해 아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알고 있고, 경험을 조금이라도 해보았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위험을 쉽게 감수한다. 등산을 시작할 때 기본적인 등산화는 구매해야 하고 어쨌든 산을 올라가기는 해야 한다. 내가 등산을 얼마나 자주 하게 될지, 등산화의 구매 비용을 초과하는 성과를 이루게 될지를 계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등산화를 산다. 그리고 즉시 산을 오른다. 그것이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잘 맞지 않겠지만, 어쨌든 일단 등산화가 있으면 좀 더 쉽게 산을 오르게 되지 않는가? 시작하기 전에 이것저것 생각하는 과정은 이성적인 행동이지만 때로는 시작을 늦춘다. 


나는 최대한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지하기 위해, 열정적인 게으름뱅이들의 장점을 찾아보았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실 한 우물만 파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 궁금하고 또 계속하고 싶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멈췄던 것을 다시 시작할 때, 가슴에서 조그맣게 두근거리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평생 걸어가야만 한다. 시원한 음료도 마시고, 잠시 멈춰서 풍경도 보고 하면 그 여행길이 더 즐겁지 않으려나. 






                                                                                                                 Photo by Kyre S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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