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걸까
중학교 때 아마 도덕 수업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뻔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교과서를 봤을 때 귀퉁이에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교과서에는 페이지의 왼쪽 또는 오른쪽 가장자리 부분에 여백을 두고 부가 설명이나 그림을 덧붙이고는 했었는데, 그 문구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사춘기의 학생들은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인데, 그게 당시의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아직까지 그 재미없는 수업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랬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교과서에 실릴 만큼의 보편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사춘기에 들어서는 수많은 친구들이 세상을 오로지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말하자면 태양계를 알아낸 사실에 감탄하고 있는데 평행우주나 다중우주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하나의 커다란 건포도빵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빵에 박힌 수많은 건포도 알갱이 중 하나일 뿐이라는 느낌이었다. 나만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앉은 서른 명의 친구들 모두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세계의 대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교실 밖의 드넓은 세계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의 세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심하게 좌절해야 마땅한 때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부터 내부가 아닌 외부의 것들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자아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수많은 타인의 자아로부터 나의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만드는 독특함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데, 그게 다 개성이 있어서 그 세계 모두가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외부의 세계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내 안의 것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세계 역시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중대한 의식의 변화가 있고 나서부터도 실제 내 인생에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그들이 조용히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가듯이 나도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뿐. 다만 이렇게 잔잔해 보이는 세상의 수면 아래에는 수많은 작은 우주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 그것만은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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