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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영 Aug 29. 2021

그 낡은 붉은 벽돌집

지금은 사라졌을까


그 낡은 붉은 벽돌집에는 어린 내가 세 들어 살았고

지금은 떠나고 없는 한때 대단했던 남자의 아내가 살았고

담배를 피우거나 누드화를 그리는 예술가들이 지나다녔다

재개발 예정지인 그곳은 낭만은 없었지만

누구나 잠깐 머무려 들어와 낮은 집세에 좀 더 머물고야 마는 그런 매력은 있었다

그래도 어느 겨울밤 아니 새벽, 눈이 나릴 때면

주황빛 가로등이 아직 지나간 이 없는 눈 덮인 골목을

비출 때면 꽤 운치가 있어지곤 했다.

찬 바람에 담배를 태우러 나와서는

그 불빛에 이끌려 하염없이 눈발을 구경하곤 했다

서울 사는 가난한 할머니들과

슬픈 과거에 짓눌려 살아가는 나의 이웃들과

서로 맞닿아있는 그들의 방에 대해 생각하면서.

등불이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기 전 담뱃불을 꺼트리고

취객이 소리치는 것을 들으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Photo by Christian Lu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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