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잘 못 살았나 싶을 때 썼던 일기
나는 글을 믿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쓸 때면 머릿속에 표류하는 단어들을 무작정 바라본다. 파도가 지나도 그것들은 모래 위에 내려앉지 않는다. 파도에 밀려 떠내려갔거나, 그럴 가치도 없어 증발했겠지. 나는 해파리를 싫어한다. 해피라가 떠다니는 휴양지의 사진을 보고 징그럽다고 생각하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단어들은 꼭 그 해파리들 같다.
그래서 글을 믿지 않는다. 특히 나와 같은 사람이 써 내려간 글은 더더욱 그렇다. 나는 어느샌가부터 소설 같은 것들이 모래로 쌓은 성처럼 느껴졌다. 인셉션의 꿈속에 설계된 도시같이 느껴졌다.
어느샌가부터 수학이나 과학이 더 흥미가 있다. 인간이 쓴 것이 아니라 자연이 보여주는 것이다. 글을 쓰는 별 것도 아닌 인간들은 조물주처럼 다른 모든 장소, 사건, 인물을 통제한다. 심지어 그것을 보는 다른 이들의 감정과 생각, 심지어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반면 자연이 보여주는 것을 읽는 인간은 결코, 무엇도 통제할 수 없다. 다만 찾아낼 뿐이다.
그렇게 내 과거의 수많은 모래성들과 꿈속의 도시들이 내 뒤에 서있다. 나는 과거를 혐오해야 할까?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