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계>를 읽고
이 책의 원제는 'The Demon-Haunted World: Science as a Candle in the Dark'이다. 여기서 demon, 또는 '악령'이란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에 반하는 미신이나 사이비, 반과학적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UFO와 같이 지금은 공감하기 어려운 사례를 들고 있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악령'은 아직도 출몰하고 있다. 가위에 눌렸을 때 귀신을 본 이야기에서부터 사이비종교에 인생을 매몰당하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재미로도 볼 수 있지만 심한 경우 범죄행위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과학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 하나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면서도, 손만 몇 번 흔들면 금세 꺼져버리는 미약함도 있기에, 악령을 쫓을 힘이면서도 언제든지 그것에 삼켜질 수도 있는 위태로움을 같이 담고 있는 은유인 듯하다. 말하자면 과학적 사고와 회의주의, 이성은 악령에 대항할 무기이면서도, 우리가 질문하고 의심하는 것을 멈추는 순간에서부터 우리는 반대로 잠식당할 수도 있다.
내 인생을 반추해 보면 악령과 촛불의 세계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서 살아왔던 것 같다. 어렸을 때 한창 유체 이탈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사례를 엄청나게 찾아보기도 했었지만, 귀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았다. 기숙사 생활을 할 때 귀신 보는 친구가 해준 실감 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면서도, 타로카드를 다루는 친구에게 타로점을 봐달라고 한 적은 없다. 신점이든 사주든 본 적은 없지만, 신통하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는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게 듣는다. 아마 수많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흥미는 있으나 취하지 않는(또는 가볍게 취하는) 상태인 것 같다.
이는 얼핏 중립적인 위치라 생각되는데, 사실 이 중립적인 위치가 정확한 가운데에 위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그 반대 사이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원초적이고 쉬운 사고방식을 취하게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비과학 또는 반과학적인 내용에 쉽고 재밌게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는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성을 멀리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편하다. 내 삶이 왜 이렇게 힘들고 하는 일마다 안 되는지에 대해 백 가지 이유를 짚어가면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내 팔자가 그렇다거나 지금 어떤 귀신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거나 하는 것이 더 편한 생각일 수 있다. 게다가 잘 안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백 번 노력하는 것보다는 기도하거나 정신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해버리는 상황이 훨씬 편하다. 사이비 종교에 정신과 몸을 의탁하는 사람 중 일부가 엘리트 교육을 받았거나 잘사는 집안이라는 사실을 들으며 우리는 놀라고는 하지만, 사실 삶의 벼랑 끝에서 내민 유일한 손을 잡아버린 사람들이 더 많다.
정통 종교관에서 등장하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종교에 매우 관심이 많고,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라는 질문은 정답을 명확하게 정할 수 없다. 누구도 확실한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 얘기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후세계 경험담 역시 위태로운 순간 뇌에서 폭발하는 각종 호르몬 작용 때문이 아닐는지?) 누구도 명확하게 죽음에 관해서 얘기할 수 없다. 그런데 평생 알 수 없는 것을 기다리며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죽음 뒤에 다른 세계가 있고 현재를 잘 살면 천국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훨씬 매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경계하고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 칼 세이건의 생각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그레셤의 법칙처럼 과학과 유사 과학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의심과 비판을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쉽고 편한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이 주장과 관련된 인상적인 문구가 몇 개 있었다.
- 지혜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데에서 나오는 법.
- 불쾌한 증거를 받아들이는 힘.
- 무엇을 '안다'라고 했을 때 그것을 진짜로 아는지 따져 묻는 태도.
- 과학과 민주주의는 모두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통해서 발달한다.
- 우리는 '의심의 정신',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칼 세이건은 과학자이고, 이성과 과학적인 사고에 대해 무게를 더 많이 두는 게 분명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을 때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오히려 중립적인 사고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갑자기?ㅋㅋ) 앞서 언급했듯이 흑백논리로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쉬운 길을 갈 수 있기에 이는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평소에는 적절한 선을 지키며 살겠지만, 여의치 못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급선회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1960년대가 말해주듯이 인간에게는 상흔을 치료해줄 영적인 힘과 몽롱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사람들은 신점을 "재미로" 본다고 말한다. 무신론자라도 때로는 누군가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책이 처음 쓰여진 때와는 또 다르게 지금 우리는 오로지 현실만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믿는 사람이지만, 천국이 정말 존재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이타적이고 희망적으로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세상을 버린' 돌아가신 분들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