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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영 Jul 30. 2021

여름, 해 지기 전, 맑은 날

자전거 타고 달리는 길의 즐거움


여름, 

뭉게구름 있는 맑은 날, 

해가 지기 한두 시간 전.


 이 때는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기 가장 좋은 때이다. 날씨는 좋지만 많이 덥지는 않고, 바람이 불면서 하늘도 예쁘다. 시골길이라 하더라도 요즘은 포장 안 된 길이 없어서 자전거로 달리기 쾌적한 데다가 주변 풍경까지 볼만하다. 여름의 중간쯤은 대부분 벼가 초록색으로 물든 시기라 산천이 온통 푸르기에 더욱 좋다. 서울에서 자전거도로와 인도를 오가며 남들 눈치 보며 달리기 바빴었는데, 그 심적 부담을 해소받는 것만 같다. 특히 자전거도로에서도 다른 라이더들을 신경 쓰면서 달려야 했는데, 여기는 길 중간에 갑자기 놓여있는 돌멩이나 놀라서 달아나는 새나 조심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야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것이고, 즐거운 장애물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이 길에도 무조건 피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에게 시골길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잠자리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때에는 잠자리가 많이 날아다녀서 그들과 부딪히지 않는 것이 큰 과제다. 특히 어렸을 때 배드민턴을 치다가 실수로 잠자리를 내려쳐 죽게 만든 적이 있는 나에게는, 곤충 중에서 영 꺼려지는 것이 잠자리이다. 날개가 꺾인 채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내가 살인이라도 한 것처럼 큰 충격이 빠졌던 것이다. 어린아이니까 그런 죄책감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나는 잠자리나 나비(이 또한 얽힌 이야기가 있다)가 곤충 중에서 가장 두렵다. 


 하지만 잠자리 입장에서는 참 억울할 수도 있는 게, 본인들이 터를 잡고 여유롭게 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쌩 지나가면서 그들의 여유와 평화를 깨트리는 것이다. 이는 잠자리 생각에는 참 이기적으로 보일 것이다. 자기의 여유와 평화를 위해, 남의 여유와 평화를 깨트리는 것은 얼마나 불쾌한가! 내가 지나가면 그들도 깜짝 놀라면서 자리를 옮긴다. 그래서 내리막길을 달리는 그 가벼운 속도감이 좋으면서도 잠자리 떼를 만나면 나는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천천히 지나가고는 한다. 이것은 나의 두려움과 그들의 평화를 위한 타협인 셈이다. 


 그 한적한 길의 한쪽에는 논과 밭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소하천이 흐르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부터 하천을 따라 내려오는 모험을 떠나곤 했다. 각종 이름 모를 풀들이 우거진, 큰 바위가 있고, 깊은 물이 있던 그곳을 우리는 모험가처럼 탐방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어떤 보물을 찾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부모님이 알았으면 등짝 몇 대는 맞았을 것이다만, 더우면 깊은 물에 다이빙도 하고, 우거진 풀을 헤쳐가며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그 길을 마냥 따라간 것이다. 물에 이끼도 있고 벌레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은 모험가에게는 필수적인 장애물로 여겼다. 지금 이렇게 깔끔 떠는 내가 그런 물에 발을 담그고, 풀을 헤쳐가며 다녔던 것은 참 신기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런 소하천들은 지금은 각종 정비 사업으로 꽤 넓어져 있다. 물리적으로 넓혀진 것도 있겠지만, 각종 풀이나 바위 등을 정리해 놓은 구간들이 많다. 하천에서는 풀과 바위로 얽혀있는 것이 모험의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큰 요소인데, 그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고, 그 뒤로 어떤 길이 나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정비 사업으로 인해 그런 미스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고, 지금은 정갈한 하천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것에든 정답은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 한대로 주변 환경들을 바꿔나가기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인간에게 편리한 것들 중 어떤 하나의 장점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것의 장점을 포기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소하천에는 아직도 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종류든 새는 꼭 한 번씩 보기 때문이다. 학인지 왜가리인지 다리가 길고 하얀 새는 한 두 마리씩 있고, 오리는 꼭 무리를 지어서 돌아다닌다. 오리 가족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신기해서 멈춰서 몇 마리인지 세어 보니 총 10마리였다. 완전 아기는 아니고 제법 큰 어린이 같은 아이들도 있었는데 참 귀엽다. 내 느낌인 건지는 몰라도 멈춰서 보고 있으니 그네들도 슬슬 멈춰서 이 쪽을 건너다보는 것만 같다. 아, 이거 잠자리한테 하는 거랑 같이 내가 그들의 평화에 훼방 놓는 중인 건가? 나는 귀엽고 좋아서 보는데 영 나를 의식하는 느낌. 나 신경 쓰지 말고 그저 둥둥 다니며 노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방해가 될 수는 없으니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간다.

 
 길을 가다 만나는 것들도 즐겁지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바람이다. 바람이 있으면 천국이고 없으면 그 반대다. 다시 돌아올 때 힘들 것을 알지만, 저 멀리 석양이 하늘을 울그락 불그락 물들이고 나는 살짝 경사진 내리막길을 달리고 바람이 귓가에서 소용돌이치는 소리를 들려주면, 세상만사가 다 무슨 소용이냐 지금을 즐기자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질문들은 필요가 없어지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철학 시간이 여기 있다. 지금의 나는 시원하고 하늘은 예쁘고 기분은 좋다.


 바람이 나의 땀과 온갖 상념들을 가지고 날아가 버렸다. 행복이란 이런 순간들이고, 사람은 이런 순간들을 모아가며 살아간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단지 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바람 때문인 지는 몰라도 나는 눈물까지 고인다. 공원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은 대부분 살짝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나는 뭔가 무거운 것을 해소한 느낌에 발과 달리 마음만큼은 무척이나 가볍게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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