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영 Jul 30. 2021

기차의 무덤

그 시끄럽던 기차는 다- 어디로 갔을까

초등학교 시절 기찻길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

기차가 지날 때마다 하늘을 향하던 기센 봉이 공손히 몸을 접고, 그와 나 사이를 막아주던 것을 기억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경고등이 격렬하게 깜박거리는 것을 보며 기차가 얼마나 위험하게 느껴졌던지.


내가 걸을 때는 돌이 자갈자갈 거리던 정다운 그 길 위로, 기차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어린 나는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발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단 한발 만으로도 이 기차는 나를 다른 세상으로 보낼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기운찬 힘으로 국토를 가로지르고, 이 작은 마을을 한 순간 떠들썩하게 만들어준다.


경고등이 울릴 때 겁이 많은 친구가 차마 건너지 못한 채 건널목을 두고 멈춰 있으면, 기차는 친구와 나 사이를 거침없이 갈라놓는다. 친구와 사이좋게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게 되어도 우리는 서로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알기에 아무 말도 않는다. 그러면 철마는 그 공백을 우렁찬 소리로 거뜬히 채워낸다.


나는 얼마 전 잊고 있던 기억을 하나 상기해냈다. 그 당시 기찻길 근처에 살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특별히 친한 것도 아니고, 나와 성性이 달랐기에 딱 한번 집에 놀러 갔었던 것 같다. 집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차가 지날 때의 소음을 매번 어떻게 견뎌낼까 하고 생각한 적은 있다. 아마도 그 아이의 집은 가난했을 것이다. 가난하지 않으면, 그런 시끄러운 곳에서 살아갈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줄곧 비싼 간식을 사 오곤 했다.

 

지금은 더 이상 그 길로 기차는 다니지 않고 아스팔트가 기찻길을 덮어주어 그 위로 차만 다닌다. 그 길을 지나던 기차는 이제 땅 속으로 다닌다고 한다. 몇 해전 모든 공사가 끝났다. 내가 그 장소를 다시 간다고 해도 기찻길도, 그 친구의 집도 이젠 없다. 낡은 음식점 몇 채가 서있을 뿐이다. 그곳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스러질 것이다. 내 기억 속에는 기찻길이 있지만, 그곳을 상징하는 다른 모든 것들이 변한다면 그 기찻길마저도 사라질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모두 사라지면, 그때 그 기차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기차가 지나는 장면의 소란스러움과 두려움은 아직까지는 선명하다.


이상한 것은 그 기차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향하는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항상 내 눈앞을 지나가는 그 순간에만 집중했다. 시끄럽다, 두렵다 로 집약되는 감각은 매우 강렬하다.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나는 내가 '예전에 이 도로를 따라 기차가 다녔단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것들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확실히 그 어린 나이에는 무언가 변하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것에 대한 자각은 별로 없었다. 그저 놀고 먹는 본능에만 충실했던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 지금 느낄 수 있는 감각에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기차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어느새 경고등이 잠잠해지고 앞을 가로막던 봉이 다시 하늘로 치솟으면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길을 건넌다.

다음, 또 다음 기차를 만날 것을 알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해 지기 전, 맑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