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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May 21. 2024

뉴욕, 뉴욕

뉴욕과의 만남은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2019년 겨울,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친구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바로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일주일간 뉴욕에 있으면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그다음 달에도 다시 뉴욕에 돌아올 계획이었다. 


20대 초반 영국에서 만났던 친구는 당시 하루도 쉬지 않고 전화통화를 할 만큼 친했던 단짝이었지만 친구가 미국으로 이사를 가고 우리 사이는 꽤 소원해진 상태였다. 수년이 지난 후 뉴욕 병실에서 만난 친구는 오랜 암 투병에 얼굴이 마르고 까무잡잡해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친구라 서먹서먹했다. 


너무나 바보 같게도, 그땐 친구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걸 기대했었고, 너무나도 당연히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죽음이란 소설에서나 접할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었다. 다음 달에 다시 보러 올 친구란 생각에 대면대면한 우리 사이의 간격을 좁힐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천천히 친해지면 되니까. 


하지만 살 날이 몇 달 남았다는 친구는, 내가 뉴욕에 온 지 6일 만에 의식을 잃었고 그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친구의 뉴욕 친구들을 난 그렇게 병실에서 만났고,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우린 서로를 끌어 안고 통곡을 했다. 우린 함께 손을 잡고 친구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안치실로 운송되는 순간까지 함께했다. 


친구의 장례식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치러졌는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고 뭐고 정신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저녁, 친구의 뉴욕 친구들은 내게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우린 그렇게, 사랑하는 친구를 같이 떠나보내고 서로 친구가 되었다. 세상을 떠난 친구가 내려준 선물 같았다. 


그 이후로 난 뉴욕을 자주 찾는다. 여러 번 와본 뉴욕이지만 아직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도 보러 간 적이 없다. 친구들 만나고 다니느라 바쁘다. 아픔과 그리움, 따듯함과 편안함이 녹아있는 도시가 내겐 바로 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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