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이 매번 특별한 이유는 뉴욕만이 가진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역동적인 에너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더욱더 찬란하게 만들어 주는 건 그 도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격도, 직업도, 사는 방식도 너무나도 다양한 친구들 덕분에 하나하나 만나 수다 떠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를 둔 R는 글래머 한 몸매를 가진 모델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이 친구와 붙어 있으면 뉴욕에서 뜬다 하는 힙한 곳들은 웬만하면 섭렵할 수 있다. 패션계에 일하는 R 덕분에 뉴욕 패션 위크와 멧 갈라 애프터파티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매번 다른 사정으로 참석하진 못했지만.
나이 70대 중반을 접어든 J는 198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 시트콤 '더 골든 걸스'와 '더 제퍼슨스'를 탄생시킨 극작가다. 내가 뉴욕에 갈 때마다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다니며 할리우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주야장천 늘어놓는다. J가 직접 보고 겪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문란하고 부패한 이야기들은 듣고 또 들어도 매번 귀를 쫑긋하게 한다. 다음번에 미국 오면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과 내쉬빌에서 같이 밥 먹자고 한다.
중국계 유대인인 S는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친구다. 북한에서 몰래 찍은 영상으로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탄 적이 있는데, 관심사가 워낙 다양해 직종도 아주 극적으로 바뀌는 친구다. 사진작가로 활동했다가, 브로커도 했다가, 애플에서도 일했다가 지금은 게놈시퀀싱을 하고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나눈다.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들인 만큼 나누는 이야기도 묵직하다. 구조 조정, 승진, 폴리아모리 관계, 오픈릴레이션쉽, 낙태, 가스라이팅 하던 전 남친, 유언장, 결혼 등등. 이 시간을 살아오는 우리의 삶을 몇 시간 내에 풀어내자니 우리의 대화는 빛과 어두움 사이를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