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1998년 2월, 분당 미금동.
하루 종일 내린 함박눈에 온 동네가 하얬다.
신도시 재정 후 주민들의 첫 입주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미금동엔 고층 아파트 보단 작은 규모의 주택단지들이 대부분이었다. 분당선은 수서에서 오리까지가 전부였고, 마지막 역에서 두번째였던 미금역 주변은 건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곳이 내가 살던 분당이었다.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 속에서 단짝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며 엉엉 껴안고 울던 2월의 기억은, 나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의 기억이기도 하다. 서럽게도, 하필 그날은 내 생일을 며칠 앞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통신(지금은 KT로 불리는) 연구원이셨던 아빠가 영국 통신회사와 임시계약을 따내시면서 우리 가족은 영국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딱 2년만 있을 계획이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난 영국행이 인생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놓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어떻게 새 언어와 문화에 적응할지 걱정 따윈 없었다. 그냥 단짝 친구랑 헤어지는 게 서러웠을 뿐.
'딱 2년'이란 계획은, 변화무쌍한 인생답게 지켜지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난 영국 교포 1.5세가 되어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영국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한국 방송사의 런던 지국 뉴스 피디로, 홍콩으로 건너가 프랑스계 뉴스통신사에서 아시아 지역 담당 촬영기자로,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선 방송사 편집장의 자리에서 최초로 한국인 팀을 구성해 운영했다
한국과 영국을 양다리 걸친 내 문화적 정체성처럼, 방송언론에서의 커리어 대부분도 한국과 영국을 오갔다.
한국 방송사에서 근무할 땐 서울 본사에서 매일같이 내려오는 취재·섭외 업무와 타 기업 협조 요청 등 영어가 필요한 모든 업무는 모두 도맡아서 했는데, 한국의 업무처리 방식과 영국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뭐든 '빨리빨리'를 바라는 한국과 뭐든 기본 1주일이 걸리는 영국 사이에서 일을 진행하는 건 절대 쉽지 않았다.
영국 방송사에선 상황이 역으로 바뀌었다. 직장 보스들은 모두 영국 스타일로 일하는데, 내가 이끄는 팀원들은 한국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소통하는 방식도,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너무 다르다 보니 사소한 일도 쉽게 오해로 번졌고, 중간에서 이런 문화 차이를 '통역'해주는 일은 내 몫이었다.
미팅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배려심에 아무 말 없이 경청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영국인들은 왜 이리 소극적이냐며 답답해했다.
해외 기업에서 정말 '일잘러'가 되려면 언어구사를 뛰어넘어 미묘한 뉘앙스도 캐치할 줄 알아야 하며, 국민성과 현지문화를 깊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 회사와 해외 기업 간의 소통이 잦은 업무라면, 양쪽에서 서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중간에서 지혜롭게 잘 조율해 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이번에 연재할 브런치 북에선, 10년 이상 한국, 홍콩, 영국 등을 넘나들며 겪었던 실제 경험과 함께 '한국인'으로서 해외기업과 일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여기에 담겨질 이야기들이, 유럽에서 새로운 시작을 도전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직장생활 #영국 #워킹홀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