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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Nov 22. 2023

결국 난 한국인이었다

오늘은 작정하고 한국 음식을 연달아 만들어댔다. 2주간 유럽 출장으로 호텔 생활을 하다 돌아오니 집밥이 미친 듯이 그리웠다. 


점심엔 엄마가 자주 해주던 산라탕을 만들었다. 한국 음식은 아니지만 우리 엄마 단골 메뉴니 내겐 한식이나 마찬가진 메뉴다. 하필 식초가 조금밖에 남지 않아 성에 찰 정도의 새콤한 맛은 아니었지만 2주 동안 빵과 치즈에 니글니글 해진 속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반찬으론 오이 겉절이. 간단한 재료로 금방 뚝딱뚝딱 만들 수 있어 김치 없는 우리집에서 해 먹기 딱이다. 


저녁으론 닭도리탕을 만들었다. 레시피를 제대로 읽고 조리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급한 성질 덕분에 2% 부족해져 버렸다. 닭고기엔 비린내가 남아있고 물은 너무 많이 넣어버려 자박자박한 닭도리탕 대신 닭수프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충분히 먹을만하다.


평소엔 한국 음식을 잘 찾지 않고 집에서도 외국 요리를 훨씬 자주 해 먹는데 출장 가선 한국 음식이 그렇게 간절히 생각났다. 집을 떠나 몸이 불편하니 어렸을 때부터 먹어오던 푸근한 집밥이 필요했다. 


출장은 이란 출신 영국인 두 명과 함께 했는데 업무가 끝나면 각자 호텔방으로 들어가 혼자 저녁을 해결하는 모습이 참 적응이 안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국에서 자랐는데도 이렇게 가끔 서양 개인주의 문화가 생소할 때가 있다. 


난 이 회사와 함께 일을 시작한 지 며칠도 안된 신입 멤버인데, 출장 첫날 회사 디렉터가 다 함께 저녁 하자니까 다른 동료는 피곤하다며 단칼에 거절하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10년 전 한국 회사에서 출장 다닐 땐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팀원들과 꼭 같이 먹으면서 친해졌었는데.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내가 한국인이라서일까. 



#영국생활 #교포 #닭볶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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