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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Mar 05. 2024

첫사랑의 추억, 똠얌꿍

런던, 오늘의 식탁 - 3월 4일

새콤하면서도 화끈한 맛이 매력적인 똠얌꿍. 레몬그라스, 갈랑갈, 고수 등 한식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재료가 사용돼 15여 년 전 처음 식당에서 먹어봤을 땐 코를 쿡 찌르는 강한 향신료 향에 헉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맛에 매료되 잊을만하면 자꾸 떠올라 태국 음식점에서 자주 시켜 먹는 수프 요리다. 몇 달 전 네덜란드와 덴마크 출장을 갔을 때도 서양식에 질려 느끼한 속을 달래려 근처 태국 식당으로 쪼르르 달려가 똠얌꿍을 시켜 먹은 적이 있다. 


식당에서만 접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똠얌꿍을 집에서 10분 만에 만들어내게 해 준 게 바로 이 똠얌꿍 인스턴트 믹스다. 운영하는 에어비엔비 손님 중 태국 여성이 선물로 준 작은 봉지는 부엌 찬장 구석에 꽤나 오랫동안 박혀있었다. 봉지 뒷면에 영어로 조리법이 적혀있지만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 쉽게 손이 가지 않다가 오늘에서야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덕분에 2021년에 호기심에 사둔 카피르 라임 잎도 처음 사용해 본다. 

똠얌꿍 믹스에 적힌 조리법엔 믹스를 물에 넣고 끓인 후 새우를 넣어 먹으라고 돼있지만 왠지 인스턴트 가루로 국물을 내는 게 께름칙하다. 왠지 라면수프 맛이 날 것 같아 온라인으로 똠얌꿍 레시피를 검색해 국물을 우릴 때 들어가는 재료들을 믹스와 함께 끓였다. 향이 더 잘 우러나오도록 칼등으로 살짝 짓이긴 레몬그라스와 마늘 한쪽, 그리고 유통기한이 1년 이상 지난 카피르 라임 잎. 


5분 정도 국물이 끓으면 건더기 재료를 넣어준다. 해물, 양파, 토마토, 버섯, 고수를 툭툭 썰어 국물에 넣어주면 끝이다. 


인스턴트 가루 요리가 무색할 정도로 맛은 식당에서 사 먹는 똠얌꿍과 맞먹는다. 이렇게 쉬운 요리를 여태 돈 주고 사 먹었다니.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 첫사랑이 참으로 좋아했던 똠얌꿍. 데이트할 때마다 똠얌꿍을 시켜 먹어 헤어지고 1년 정도는 질려서 근처에 가지도 않았던 똠얌꿍이다. 아련한 추억이 담긴 똠얌꿍의 새콤한 향내가 오늘 밤 우리 집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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