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오늘의 식탁 - 3월 10일
"우리한테 밥좀 해 줘 봐."
저번 주 짝꿍 어머니가 짝꿍에게 툭 던진 말이다. 짝꿍 부모님은 은퇴하신 후 몇 달간씩 돌아가며 일 년의 절반은 런던 짝꿍집에, 절반은 키프로스 고향 마을에서 지내신다. 키프로스 집엔 난방이 되지 않아 겨울이 되면 런던으로 오시는데 덕분에 매 주말 짝꿍 집에 가면 풍성한 '엄마표' 키프로스 가정식이 기다리고 있다.
밥 좀 얻어먹어보자는 짝꿍 어머니의 말에 이번 주는 내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편하게 중국식 볶음면인 차오몐 만들어 먹자는 짝꿍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메뉴는 제육볶음과 잡채로 정했다.
사실 난 잡채를 만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맵고 강한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잡채는 그리 매력적인 메뉴는 아니지만 영국에 반평생 살면서 잡채와 불고기를 싫어하는 외국인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기에 잡채는
한국 요리 입문 요리로 적격인 메뉴다. 제육볶음은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정했다.
간단한 요리인데도 비 아시아계 부엌에서 조리를 하자니 이것저것 불편한 점이 많다. 깐마늘도, 마늘다지기도 없으니 한 톨 한 톨을 직접 까서 칼로 얇게 썰어 주었고 고추장과 고춧가루는 집에서 덜어온 걸 사용했다. 맛술은 구할 수 없으니 패스하고 올리고당은 꿀로, 목이버섯은 양송이버섯으로 대체했다. 채 썬 고기를 구하지 못해 썰어 넣은 스테이크용 소고기는 내 검지 손가락만 하다. 젓가락이 아닌 포크로 잡채 간을 보자니 포크 사이로 잡채가 자꾸 미끄러져 내린다.
옆에서 시키는 대로 야채를 다듬어 준 짝꿍 덕분에 그럴싸한 모습의 제육볶음과 잡채가 금세 탄생했다. 한국 요리는 간이 세니 꼭 밥과 함께 먹어야 한다는,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해드리면서 다시 한번 문화 차이를 느낀다. 말씀을 드려도 제육볶음만 한 접시 떠다가 드시려는 어머니를 다시 한번 말리고 밥을 데워드렸다.
토마토로 양념을 한 불구르 밀 요리 '뿌꾸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키프로스 음식이다. 마음 같아선 제육볶음과 어울리는 새하얀 쌀밥을 새로 짓고 싶었지만 어제 뿌꾸리를 만들어 두셨다길래 그냥 그걸로 먹기로 했다.
무꾸리와 함께 냉장고에서 딸려(?) 나온 요리는 한국의 오징어 덮밥을 연상케 하는 요리였다. 토마토를 베이스로 해 화이트와인을 넣은 문어 요리는 요리사셨던 짝꿍 아버지가 만드신 요리다.
런던, 오늘의 식탁은 한식과 키프로스식 요리가 한데 어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