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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도미노의 발견

by Windsbird

건강하고 균형 잡힌 영·혼·육을 위해 매일 하려고 작정한 일과가 몇 가지 있다. 바로 새벽 기상, 기도, 운동, 중국어 공부, 독서, 글쓰기다. 글쓰기를 제외한 다른 다섯 가지 루틴은 지난 10여 년 넘게 지키려고 애쓴 목표인데, 노력한 세월이 무색하게 지켜지는 날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지키려고 아등바등되던 루틴을 몇 개월 만에 잡아준 게 매일 글쓰기였는데 지난 한 달 글쓰기를 멈추면서 다시 무너져 내렸고 지금 다시 잡아가는 중이다.


고작 몇 개월이란 짧은 시간 안에 10년 동안 지키지 못했던 루틴이 자연스럽게 잡히는 신기한 경험은 루틴과 습관 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효과적인 시간 관리와 생산성을 강박적일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난, 관련 자기 계발 서적도 꽤나 보았다. 많은 이들이 조언하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매일의 결과를 기록하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시스템까지 갖추어 놨지만 항상 따라와 주지 못하는 건 실천에서였다. 동기부여와 프로세스 둘 다 더 이상 개선할 게 없을 정도로 비까 번쩍했지만 이놈의 미련한 몸뚱이는 왜 이리도 게으른지.


매일 글쓰기를 하던 4개월이 어떻게 내 일상 루틴을 잡아 주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은 참 단순하다.


글쓰기는 하루의 구심점이자 원동력이 되어 글쓰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이끌어주었다. 뇌를 깨우기 위해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오랜 시간 산책을 하게 됐고 몸을 움직이는데서 오는 상쾌함을 알게 되면서 운동도 더 자주 하게 됐다. 이렇게 몸이 가벼워지고 활력이 생기니 입맛도 변해 과자, 초콜릿 보단 야채와 과일이 당겼다.

하루가 상쾌하니 잠도 푹 잘 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고작 도미노 블록 하나를 넘어뜨렸을 뿐인데 근처 블록들이 하나하나 움직여 큰 그림이 완성되듯 단순한 일과 하나가 나의 하루를 바꾸었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다른 일과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감정과 느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는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고 더 자주 운동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글쓰기에서 오는 성취감이 좋았고, 이 성취감을 더 풍요롭게 누리고 싶은 마음은 오랜 시간 동안 굳혀진 습관까지 바꿔가며 글쓰기에 최적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단순한 루틴하나 지켜내지 못했던 이유는 나의 의지와 힘으로만 하려고 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장기적인 목표'란 동기는 어떤 루틴을 갖출 것이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있어도 매일 하루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기엔 너무 미약하다. 루틴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선 난 내 의지가 아닌 감정을 공략해야 했다.


어제 새벽 기상에 이어, 오늘도 일찍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답은 새벽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계획하는 데 있었다. 난 예쁜 카페에 앉아 작업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과는 카페 가는 걸로 정했다. 기대되는 하루 일정을 눈앞에 두니 일어나는 것도 가뿐하다. 물론 하루의 모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다 채울 수는 없겠지만, '카페가기'는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하루 일과인 '침대에서 일어나기'를 훨씬 쉽게 만들어주었다. 나란 존재는 생각보다 참으로 단순하단걸 새삼 느낀다. 난 역시 감정의 동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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