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창을 닫고 조용히 쉬고 싶었다. 창으로 비치는 겨울나무를 보며 쓸쓸함을 느꼈다. 노랗고 붉은색으로 물든 나뭇잎은 며칠 머물지도 않고 저 멀리 소리 없이 사라진다. 냉장고는 텅텅 비어가 사과 반쪽도 안 보였다. 간식으로 먹을 게 없으니 허기가 돌았다. 보스턴에 여행 간 지도 십일이 지나 세탁물이 쌓여갔다. 집에 세탁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세탁을 하러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고 미리 동전을 교환해야 하고 항상 내가 원하는 시각에 세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세탁기는 아무거나 넣을 수도 없어서 오래된 책가방은 손으로 씻어 건조기에 함께 넣어 돌리고 이래저래 불편하니 세탁을 마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빨래 가방에 외출복과 수건 등을 담아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세탁을 무사히 마쳤다.
오후 세상의 창은 닫혀 있었다. 메트 뮤지엄에 가서 전시회를 볼 수도 있고 링컨 센터에 가면 재즈 공연을 볼 수 있고 맨해튼 음대에서 체임버 마스터 클래스가 열리는데 내 마음은 저 멀리 여행을 떠나 맨해튼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듯 멀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가까워도 하늘과 땅처럼 멀다. 아파트 뜰에 서 있는 고목나무는 예년과 다르게 빨리 고운 색 옷을 입었다. 네모난 뜰에 아주 거대한 고목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아주 늦게 단풍이 들고 더 오래 머문다. 늦게 핀 꽃이 늦게 지듯이. 그런데 올해 조금 더 빨리 고운 갈색 옷을 입었다. 집에서 지내며 몇 차례 고목나무를 쳐다봤다.
그러다 늦은 오후 장미 꽃잎이 서서히 열리 듯 내 마음이 열렸다. 얼른 샤워를 하고 가볍게 식사를 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겨울비가 마중 나왔다. 검은색 우산을 꺼내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비에 젖은 도로를 걸었다. 이 계절은 잠시 머물다 가고 난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다. 겨울비 소리는 점점 더 굵어졌다. 비는 지상에 고요히 뿌리고 천만 개의 동그라미가 생기다 다시 사라지고 반복했다. 지하철역에 도착 7호선을 타고 달렸다. 지하철 안에서 누군 마스카라를 하고 누군 책을 읽고 누군 음악을 듣고 난 눈을 감고 휴식을 청했다.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정리를 하면서 새해 계획을 세울 시점인데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7호선이 5번가 역을 지나칠 때 브라이언트 파크에 가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머물다 타임 스퀘어 역에 내려 1호선을 기다렸다. 저녁 무렵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 옷은 비에 젖어 있고 저마다 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 마음도 비에 젖었을지 궁금했다. 얼마 후 1호선에 탑승해 링컨 센터 역에 내려 비에 젖은 도로를 걸었다. ABC 방송국을 지나 와인숍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작은 레스토랑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거렸다. 링컨 센터 주위 가로수는 황금 옷을 입고 반짝반짝 빛났다. 1년 전 알게 된 공연을 보러 시나고그에 갔다.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 공연을 본 것도 드문 일이다. 소프라노가 노래를 부르고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귀에 익은 멜로디도 연주하고.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젓가락 행진곡도 들려주었다.
처음 방문한 시나고그 규모는 꽤 컸다. 존 레넌과 로버트 플랙과 레너드 번스타인이 살던 다코타 아파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대부분 연세 지긋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공연을 보고 짐작에 주위에 사는 주민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의상을 입고 공연을 보러 가는 뉴요커 노인들. 무대에 오른 남자 합창부도 나이 든 분들이 많았고 마치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보였다. 합창을 부르려면 연습을 할 텐데 그 나이에 함께 모여 노래 연습을 하는 뉴요커들. 언제 봐도 참 대단해. 나이는 들어가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처럼 보인다.
밤늦게 막을 내리나 난 1부 공연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맨해튼에 산다면 더 오래 볼 텐데 늘 아쉽기만 하다. 맨해튼 음대 체임버 마스터 클래스와 재즈 축제도 보고 싶었으나 같은 시각 열려 한 번도 보지 않은 시나고그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남자 합창부는 1866년에 창립. 역사가 정말 깊어서 놀라고. 피곤이 밀려와 어제 기록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거 같아.
대학 시절 자주 들은 로버트 플랙 노래도 듣고
정말 오랜만에 조동진 '겨울비'를 들어봐. 조동진 목소리를 들으니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강물처럼 세월은 흐르고 많이도 흘러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12월 5일 화요일 겨울비는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