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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향연- 콜럼비아 대학 & 줄리어드 대학

가을에 듣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by 김지수

가을 햇살이 창가로 비춘다. 고적한 아파트 뜰에 나뭇잎만 뒹굴고 커다란 고목나무 한그루 파란 하늘과 대화를 할까. 배롱나무 꽃 저 멀리 사라지고 청설모 한 마리 안 보여. 새들의 합창도 안 들려오고 모두 어디로 숨어버렸지.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곳에서 매일매일 전화가 쏟아져. 한 달 전에 보낸 우편물이 며칠 전 도착했다는 레터를 받았지. 세상에 믿을 수 없어. 뉴욕시에서 뉴욕시로 보낸 우편물이 왜 한 달이 걸려 도착했는지. 중요한 서류인데 애를 먹여. 알 수 없는 수많은 일이 날 에워싸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는 거 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있는 게 분명해.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 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은 어느 날 고아가 되어버린 셈이지. 어린 두 자녀를 낯선 땅 뉴욕에 데리고 온 고아 상상이 돼.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세상 천재들과 부자들이 모여사는 뉴욕에서 아무것도 갖지 않은 고아가 거대한 사하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기분이 이민의 삶이지. 수 천리 수만리를 힘들게 걸어가면 한 방울 물로 목을 적시고 눈물로 걸어가면 장미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매일매일 맨해튼에 가서 눈물을 뿌린 만큼 보물섬은 점점 커져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보물을 캐고 있지. 눈물을 뿌려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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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얼음처럼 투명한 가을 햇살을 보며 지하철을 타고 달렸지. 작은 얼음조각이 나뭇잎에서 반짝 거려. 수차례 환승하고 아이 리그 콜롬비아 대학 입구에 도착 멋진 버틀러 도서관을 지나고 로스쿨을 지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 퍀컬티 하우스에서 열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보러 갔는데 옆 건물에서는 유엔 특별 이벤트가 열리고. 줄리아드 학교와 콜롬비아 대학 익스체인지에 재학 중인 두 명의 학생 연주가 열렸다. 잠시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에 가슴을 적시고. 여기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를 올려봐.



줄리아드 학교와 콜롬비아 대학 입학이 정말 어렵지. 그런데 두 학교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은 얼마나 더 어려울지. 공부도 하고 악기도 최고 수준으로 연주하는 천재 학생들. 상상을 해보자. 천재 학생들 스케줄은 매일 얼마나 바쁠지. 오래전 방문했던 폴란드 쇼팽 공원도 생각나고 장미꽃이 피었더라. 수천 송이 장미꽃이 핀 쇼팽 공원에서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도 생각해 보았지.

뉴욕에 와서 고독하게 지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러시아에서 탄생한 그는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를 떠나고 슬픈 우화가 있다. 1873 년 4 월 1 일 러시아 북서부 Semyonovo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교사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재능이 많았고 18 살 때 첫 피아노 협주곡으로 폭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교향악은 완전한 재앙이었다. 1897년 3월 술에 취한 글라주노프가 지휘한 것이 원인으로 나타났고 비평가들은 혹평을 아끼지 않았고 라흐마니노프가 살아있는 동안 다시 연주되지 않았다. 심포니의 실패로 그는 우울증에 빠져들어갔고 몇 년 동안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은 후 1901년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은 위대한 작품으로 간주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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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홀 우화도 있어. 라흐마니노프 (Rachmaninov)는 한때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 (Fritz Kreisler)와 함께 뉴욕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연주 도중 Kreisler는 악보를 잊어버려 Rachmaninov에게 '우리 어디'라고 속삭였는데 라흐마니노프의 답변이 '우리 카네기홀'이라고 했다. 크라이슬러가 얼마나 당황스러워했을지. 악보를 잊어버려 도움을 요청했는데 카네기홀이라 답변하니. 그의 미국 생활이 아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 읽은 적이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1926년부터 1943년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뉴욕 어퍼 웨스트사이드 505 웨스트엔드 애비뉴((505 West End Avenue)에 거주했고 그동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 피아노 협주곡 4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심포니 3번> <교향적 무곡(Symponic Dances)> 등을 작곡했다.

어느 해 가을 아들이 맨해튼 예비 음악학교에 재학 중일 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게 되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공연이었고 그 후 라흐마니노프와 사랑에 빠져버렸지. 피아노 음색이 점점 가을이 깊어가는 느낌이랄까.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아름다운 가을밤이었다. 예프게니 키신의 파리 공연을 유튜브에서 들어봐.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첼로 연주를 하고 검은색 정장을 입고 피아노 연주를 하고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공연을 보고 콜롬비아 대학을 떠나 지하철을 타고 달렸지. 잠시 쉬어가는 곳 반스 앤 노블 북 카페. 링컨 센터에서 가까운 브로드웨이에 있는 서점에 갔지. 두 개의 창문이 무척 예뻐. 창가로 초록 나무와 빌딩이 비쳐. 로컬은 북 카페에서 책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 초상화가 벽에 걸려 버지니아 울프 고독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언제 다시 런던에 가면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곳을 찾아봐야지.

북 카페를 나와 근처에 있는 Westsider Rare & Used Books에도 들러보았다. 밖에 있는 중고책은 1불짜리도 있어. 어찌 서점을 운영하는지 궁금도 하지. 렌트비 비싼 맨해튼에서. 오후 4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피아노 포럼이 열려서 지하철을 타고 링컨 센터에 갔지. 입구에서 수위에게 가방 검사를 하고 폴 홀에 들어가 객석에 앉아 피아노 공연을 봤지. 어제는 라흐마니노프 곡을 수차례 들었으니 운이 좋은가.

무대에 단 한대의 슈타인웨이 앤 손스 그랜드 피아노는 누가 어느 작곡가 연주를 하는지에 따라 달라. 마치 우리네 인생 같아. 우리 모두 하루라는 선물을 받지. 그 하루가 어떻게 채워가는지 각각 다르고 모두 운명과 맞싸우며 힘들게 지낸 자가 더 많겠지. 그래도 아름다운 삶을 만들려 투쟁을 하고 지낸 자도 있을 테고 매일매일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 순례 한 자도 있을 테고 요즘 현대인의 삶은 과거와 다르게 갈수록 차이가 커.

어제 피아노 포럼 두 번째 학생은 라흐마니노프가 맨해튼에서 지낼 때 작곡한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연주해. 마지막 학생은 자주 보는 학생은 바흐 파르티타를 연주했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연주를 하고 오래전 아들과 함께 그 학생 경력 보고 화려해하니 아들이 그렇게 편견 갖고 연주 보면 안 된다고 했으나 그날 연주도 좋았고 지난주 마스터 클래스 연주도 좋았고 어제 연주도 좋았지.



피아노 연주가 막을 내리고 저녁 6시 같은 홀에서 내가 사랑하는 공연이 열리나 난 잠시 줄리아드 학교를 빠져나왔다. 배가 고파 노란 바나나 사 먹으로 단테 파크 근처에 갔어. 딸기가 1팩에 1불 세일 중이라 딸기도 2팩을 구입하고 노란 바나나 1불어치 구입하니 가방이 무거워. 노란 바나나 먹으려 다시 줄리아드 학교로 돌아오고 링컨 센터 화이트 라이트 축제(White Light Festival) 포스터가 보여. 어제 축제가 개막했고 일부 공연은 이미 매진. 링컨 센터에서 내게도 축제 보러 오라고 자주 이메일을 보내오고 조슈아 벨도 이번 축제에서 공연할 예정. 재정 문제가 없다면 링컨 센터 축제 다 보고 싶어. 잠시 후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해 다시 가방 검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지.

저녁 6시 폴 홀 공연. 자주 만나는 70대 할머니가 안 보여. 분명 표가 있다고 했는데. 미리 박스 오피스에서 표를 구해야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프로그램 보니 라흐마니노프 곡이 또 있어. 어제는 라흐마니노프 곡만 세 번씩이나 라이브로 듣고 행복이 밀려와. 홀에 아름다운 천상의 목소리가 울려. 첫 번째 소프라노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마치 천상에서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다. 난 처음 보는 학생인데 잠시 후 70대 할머니가 도착했다. 왜 지각했냐 물으니 지하철이 말썽을 피웠다고. 맨해튼 할렘에 거주해도 지하철로 고생이 많은가 봐. 그 할머니는 10대 미국에 와서 지금 70세가 넘었으니 나랑 차이가 크지. 영어권 나라에서 살다 미국에 왔으니 더더욱 크고. 집안이 음악을 아주 사랑한다고 해.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매일 맨해튼에 가서 공연 보는 거 보고 정말 놀랍다고 해. 암튼 프로그램 보더니 첫 번째 소프라노 학생을 알고 있어. 훌륭한 목소리라 칭찬이 자자해. 나도 동감이지. 멀리 비엔나에서 유학 온 바리톤 목소리도 듣고 아름다운 비엔나도 기억이 나지.

줄리아드 학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수차례 환승해 플러싱에 도착 다시 버스를 기다리고 집에 도착해 늦은 식사를 하고 밤늦은 시각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을 갔다. 낙엽 냄새가 가득한 호수. 가로등 빛도 아름답고 나무는 서서히 노랗게 물들어 가고 기러기 울음소리 들으며 집에 돌아왔다.


2017년 10월 19일 가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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