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러 가는 날
싱그러운 초록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파란 하늘이 눈부셔 뉴요커가 사랑하는 휴양지 거버너스 아일랜드로 마음은 달려간다. 하얀 갈매기 나는 곳 푸른 허드슨강을 보면 우울한 마음이 위로를 받곤 한다. 소음 가득한 맨해튼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섬. 점점 방문자가 많아져 과거의 아름다움을 상실할 듯 보이기도 하지만 방문자 많은 시간을 피한다면 아직도 꿈같은 섬이다. 페리를 타고 10분 정도면 다른 세상에 도착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은 일. 한국이라면 섬에 가려면 오래오래 달려가야 하니 불편한데.
아파트 초록 뜰에는 고목나무 그림자만 비치고 청설모와 새들의 놀이터. 노란 민들레 꽃이 파티를 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일터에 간 모양이다.
열 살이 넘은 하얀 냉장고는 대포 소리가 울리고 안에는 음식물이 없어서 어제는 아들과 함께 장을 보러 칼리지 포인트에 다녀왔다. 장 보러 가기 전 샤워를 하는데 아 글쎄 찬물이 쏟아져. 욕탕에서 비누거품으로 범벅된 몸으로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찬물 세례를 흠뻑 맞았어. 아... 슬프지만 참아야지 어떡해. 샤워 후 아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 우린 이웃집 뜰에 핀 벚꽃, 수선화 꽃, 민들레 꽃, 자목련 꽃과 이름 모를 꽃의 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걸었다. 화사한 분홍 빚에 가슴이 녹았다. 마약이 이런 거 아닐까 생각도 든다. 한 번도 마약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미국 사람들은 믿지도 않지만 영화 속에서나 봤지 마약이 뭔지 모른다. 아들이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펜싱 수업을 받던 날 그날이 "마약의 날"이었다. 7호선 지하철을 타니 마약을 한 세 사람의 눈빛은 이 세상이 아니고 저세상에 머문 듯. 정상인의 눈에 그들은 비정상으로 보이고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정상인이 비정상으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아이폰으로 담고 싶었지만 무서워 담을 수도 없었다. 마약의 날이란 게 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다. 가끔 타임 스퀘어에 가면 "난 마약이 필요해요"라고 하며 돈을 달라고 구걸하는 홈리스도 있으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언젠가 시티 아일랜드에 갈 적 주택가에서 본 세상에서 가장 큰 앵무새가 있는 근처도 지나며 그 새를 떠올렸다. 정확한 주소는 잊어버렸지만 주유소 근처 주택 주차장에 커다란 앵무새 새장이 보였다. 가끔 그립기도 하는 앵무새. 집에서 키운다는 것은 많은 애정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라서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좋은지 모른다. 어릴 적 아버지가 애완용 새도 길러서 얼마나 힘든지 얼른 깨달아버렸다. 영화와 소설에 예쁜 새가 있는 집이 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제로 키우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맨해튼 부자들은 상당수 애완용 강아지를 키우지만 애완용 강아지 산책하는 직업이 있을 정도. 모두 바빠 강아지 데리고 산책할 수 없으니 돈을 주고 산책을 시킨다. 사실 맨해튼에 이리 많은 강아지가 산 줄도 몰랐다. 얼마나 많은 종이 사는지 헤어스타일도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 생각도 든다.
평소보다 장 보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천천히 이웃집 정원을 바라보며 걸어가서 그런 것. 우린 봄빛의 사랑을 받으며 걸었다. 거리에서 수박을 파는 상인도 보고 벌써 수박을 파는 계절이 왔나. 칼리지 포인트 BJ's에 도착해 필요한 물건을 수레에 담았다. 생수, 육고기, 커피, 아보카도, 스파게티 국수와 소스, 달걀 등을 구입했는데 왜 그리 식품비도 많은지 심장이 철렁철렁거린다. 물가는 천천히 올라가고 정말 새해가 반갑지 않다. 10년 전보다 물가는 너무나 많이 올라버렸다.
집에 돌아올 때 한인 택시를 불렀다. 90년대 초 이민을 오셨다는 한인 기사분. 얼마나 친절하던지. 우리 집은 도로가와 떨어져 있고 계단을 올라가야 하니 택시를 불러도 상당히 힘들다. 그 기사분은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려 하셨으나 난 거절을 했다. 처음이었다. 더 많은 팁을 주고 싶었으나 형편이 안 되니 평소처럼 주었다. 부인이 미국 시민권이 있어서 미국에 오게 되었다는 기사분.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보고 반공 교육도 받고 엑스레이 서류도 필요했다고. 부인이 미국에서 살자고 했지만 그분은 미국에 가야 할지 아닐지 망설이다 오게 되었고 처음 뉴욕에서 살다가 플로리다 주로 옮겨갔는데 미국에서 이사하기 정말 쉽지 않으니 그분은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플로리다 탬파에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곳에서 살았는데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곳이 더 좋았다고. 가끔 골프도 하고 낚시도 하는 여유가 있었는데 부인이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뉴욕에 오게 되었다고. 부인의 의사대로 살아야만 했던 기사분. 플로리다 주에서 2000불 수입이나 뉴욕에서 5000불 수입이나 비슷하고 뉴욕 물가가 더 비싸니 어쩌면 플로리다 주에 살았다면 지금쯤 안정되었을 텐데 뉴욕에 오니 아직도 삶이 안정이 안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민 이야기는 너무너무 다르고 가정마다 다른 사연이 있고 능력 많고 돈 많고 신분 문제가 해결되면 미국 문화가 더 맞는다면 미국 생활이 더 좋지만 보통 사람의 경우는 눈물바다가 이민 생활이다.
기다리는 소식은 안 오고 광고 전화만 매일 쏟아지고 복잡한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은 5월이 되면 좋은 전시회가 열려서 가곤 했는데 예약제로 변해 이제 귀족 아니면 부잣집 잔치 구경도 못하겠다. 멀리서 구경도 할 수 없는 귀족 사회로 변하고 있나. 아, 슬퍼, 슬픈 게 어디 그뿐이랴. 정말로 슬픈 것은 말로 할 수도 없어 침묵을 지킨다. 삶은 너무너무 슬프기만 하지.
2018. 5. 2 수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