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씨가 왜 이럴까. 태양의 열기에 지상이 불타오를 거 같아. 하얀 눈밭이 그리워지는 날씨야. 시원한 바람과 맥주와 와인과 과일과 바다가 그리워져. 바람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는 계절이야. 아파트 지붕 열기는 그대로 거실 안으로 들어오니 몸에 화산이 사는 듯 덥다 더워. 푸른 바다로 퐁당 빠져 수영하는 거라도 상상을 해볼까. 바다가 정말 그리워. 동해안 앞바다도 제주도도 서해 앞바다도 남해안 바다도 통영 앞바다도 모두 그립네. 언제나 가 볼까.
어제처럼 경찰이 두 번이나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숨 막히는 더위로 정신을 잃게 하는 금요일. 브런치를 먹고 늦은 오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더운 열기에 어디로 갈지 망설여지고 사랑하는 축제가 열리는데 마음은 그리로 가나 도저히 가기 두려워 모마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백만 년 만에 모마에 갔나. 금요일 오후 무료입장이고 그림 보러 갔는데 그림보다 방문자 숫자가 더 많은 듯. 어린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보이고 젊은 아빠가 아이를 안고 전시회를 보고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지. 나어릴 적 미술관이 어디 있어. 미술관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있나. 중학교 수학여행 때 경주에 가면 도자기를 보곤 했는데 이제 미술관이 일상화되어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무료나 기부 입장 시간을 이용해 미술관을 가는 뉴욕.
금요일 방문자 가운데 어느 정도가 관광객인지 궁금도 했다. 거리를 걷기 너무 힘드니 에어컨 가동되는 실내가 좋을 거 같아 갑자기 모마에 갔다. 언제 마지막으로 갔는지 기억조차 없고 전시회는 새롭기만 했다. 고흐, 잭슨 폴락, 마티스, 고갱, 르네 마그리트 등 상설 전시회를 빼고 나머지 전시회는 너무나 새롭고 방문객은 너무너무 많아서 시원한 공간이라 좋기도 했지만 피곤이 밀려와 모마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까만 바탕에 1990. 4. 24 숫자가 적어진 그림을 보니 과거 추억도 떠오르고 그때도 정말 힘든 시절을 보낼 무렵. 매일 버스를 타고 왕복 4-5시간 통근했던 시절. 고등학교에서 종일 수업을 하고 오후 5시가 지나면 퇴근을 하는 게 아니라 보충 수업도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보충 수업까지 마치고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1주일에 한 번 바이올린 레슨을 받던 무렵. 그 시절로 돌아가도 너무너무 힘들었다. 매일 쉬는 시간 없이 학교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새벽 2시가 지나 귀가하는 파트너를 기다리며 외로움과 고독에 떨던 시절. 지독한 훈련이었나 보다. 그때 훈련이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을까. 지금 매일 아무렇지 않게 맨해튼에 지하철과 버스를 몇 차례 환승하고 다닌 것도 그 시절 혹독한 훈련이 없었다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고독하고 힘들었던 추억도 떠올랐고 앤디 워홀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저세상에 계신 아버지도 생각이 나고 한국 방문 시 메기탕을 먹으러 간 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 빨리 저세상으로 떠날지.
브라질 작가 그림을 보니 카네기 홀에서 만났던 브라질에서 온 여행객도 떠오르고 뉴욕에 자주자주 여행 오는 노부부는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을 보고 뮤지컬과 발레 공연 등을 자주 본다고 하고 내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자 나도 노부부에게 아이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자 깜짝 놀라셨다. 내 아이폰에도 카네기 홀과 메트 오페라 사진 등과 센트럴파크에서 담은 벚꽃 사진과 레스토랑 사진이 담겨 있으니 놀란 눈치. 나도 다른 거 못해도 노는 재주가 있는지 노는 것 천재 아닌가. 브라질에 오면 연락하라고 이메일을 주셨지만 브라질이 아름다운 곳이나 위험한 도시라 하니 아직 여행 계획은 없고. 또 브라질에서 여행 온 부자. 아버지는 변호사라고 아들은 회사에서 일하는데 뉴욕에서 살고 싶은데 트럼프 시절 이민이 너무너무 어려우니 어찌 뉴욕에 온단 말인가 하면서 고민 고민하던데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모마에서 그림을 보며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렸다.
저녁 7시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셰익스피어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이 공연될 예정. 천천히 공원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고 라커 펠러 센터 거리 화단은 제라늄 꽃이 피어 있고 채널 가든은 어느새 장미가 시들어 버렸고 5번가는 늘 그러하듯 관광객이 많이 지나치고 명품 핸드백 파는 보따리 장수도 많이 보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르지만 장사가 잘 되는지 꽤 많은 장사꾼이 보였다.
5번가 거리에 <거버너스 볼> 음악 축제 포스터가 보이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라고 하고 6월 초 열린다고. 태권도 포스터도 보이고 뉴욕에 태권도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도 하지.
숨 막히는 더위랑 싸우며 공원에 도착했고 공원은 사람들로 꽉 메워졌으나 난 계획과 달리 연극을 볼 힘을 잃고 말았다. 열정이 부족한지 도저히 냉방이 안 된 공원에서 연극이 끝날 때까지 머물 수 없었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도 아쉽고 다른 뮤지엄에 갈 에너지도 없고 그래서 5번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가서 잠시 휴식을 하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공원을 나올 시각은 퇴근할 무렵이라 지옥철 탈 에너지도 없어서 차라리 카페에서 쉬는 게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북 카페는 냉방이 되니 시원하고 좋아. 6월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참석할 이벤트 배너도 보이고 뉴욕 서점이 얼마나 다른지. 정치인, 작가, 음악가, 요리사 등 명성 높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오는 중 옆자리에 앉은 아시아 여자는 족집게로 눈썹 정리를 하니 웃음이 나왔다. 뉴욕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광경. 어떤 분은 배가 고픈지 식사를 하고 게임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뉴요커들이 많고 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플러싱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밤 10시가 지났다. 지하철에 파킨슨 워크 광고가 보여 롱아일랜드 살던 무렵 양로원에서 발런티어 했는데 그때 환자분이 파킨슨병을 앓고 계셔 그분도 생각이 났다. 지금도 잘 계실까. 월가에서 근무한 중년 남자. 책과 음악을 사랑했던 유대인 남자였다.
내일을 위해 휴식을 하자꾸나.
너무 더워 잠이 들지 모르겠어.
2018. 5. 25 금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