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토요일 아침

지난 5월을 정리하며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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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합창 들려오는 토요일 아침 아들은 테니스 라켓을 들고 일찍 떠났다. 무더운 날이라 친구네 집에 가서 일찍 테니스를 치고 돌아온다고. 친구는 테니스 코트가 있는 멋진 집으로 이사를 했어. 토요일 최고 기온은 32도라고. 아, 종일 덥겠어. 내일은 비가 내리고 기온이 내려갈 예정이라고. 어제오늘 왜 이리 더운 거야.

아들이 떠나고 청소를 하는데 카네기 홀에서 가져온 목캔디와 6/7월 카네기 홀 달력과 지난달 공연 티켓과 모마 입장권이 보인다. 공연보다 기침이 나올 때 먹으면 좋은 캔디. 카네기 홀에서 무료로 주고 가방에 담아둔다. 쓰레기통은 또 얼마나 부자인지. 아파트 지하에 가서 버려야 할 거 같아. 통장이 부자라면 좋을 텐데 거꾸로구나.

메모리얼 데이 아침저녁 뉴욕 필하모닉 무료 공연이 열리는데 그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보스턴에 갈 예정. 어젯밤 보스턴에서 무얼 할지 스케줄 만드느라 새벽에 잠이 들어 불과 몇 시간 자고 일어났다. 계획대로 움직일지 모르지만 계획은 필요하고 좋은 계획이 있으면 더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버스로 최소 4-5시간 정도 걸리고 정체되면 더 오래 걸리니 버스에서 편히 쉬어야 할 듯. 월요일 아침은 부산하겠어. 버스를 타고 달리며 창가 풍경 보는 재미도 좋고 인적 드문 시골 풍경이 펼쳐지고 호수에서 하얀 백조가 산책하는 것도 보고 여행은 늘 그러하듯 미리 가슴 설렌다. 날씨가 좋아야 찰스 강빛과 보스턴 항구 바다 빛이 아름다울 텐데. 강과 바다를 사랑하는 난 보스턴 하면 가장 먼저 두 곳이 떠올라.

이제 서서히 5월도 보내야 할 시점. 지난 5월 무엇을 했지. 경찰팀이 3번이나 집에 찾아와 문을 쾅쾅 쾅 노크를 했지. 얼마나 놀랐겠어. 누가 그런 장난을 하는지 지옥에나 떨어져라 하면 내가 나쁜 사람 되나. 가끔씩 경찰이 찾아오는 소동을 피우면 짜증이 나지.

플라시도 도밍고가 언제 저 하늘로 떠날지 모르니 메트에 가서 도밍고가 부른 아리아도 들으며 행복한 밤도 보냈고 70대 노인이 아리아를 부르니 얼마나 놀라운지.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나는 수잔 할머니도 나랑 같은 생각이더라. 할머니도 도밍고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도밍고가 아리아를 부른 오페라 봤다고 하니 웃었지. 메트 오페라 시즌 마지막 날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를 입석으로 3시간 동안 서서 보고 나도 이제 뉴요커들만큼 조금씩 정열이 쑥쑥 자라고 있어. 오페라를 입석으로 보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내 앞에 앉은 젊은 뉴요커 청년은 날 보고 웃으며 "안녕?"했는데 잊히지 않아. 연인과 함께 오페라 보러 와서 낯선 내게 말을 걸었지.

튤립 꽃과 벚꽃을 보러 브루클린 식물원에 가느라 카네기 홀 공연을 보지 않았는데 중국인 시니어는 내게 왜 보러 오지 않았니 하면서 공연이 너무 좋았다고 하니 아쉽기도 하고, 한국에서 보내온 소포 찾기 소동도 벌이고 내 신분증에 적힌 이름이 아니라 소포를 줄 수 없다고 하니 많이 힘들었지. 한국과 뉴욕은 문화가 달라.

아이 폰 찾기 탐정 놀이도 하고 5월을 보내면서 가장 잊히지 않은 사건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서 아이폰을 분실해 너무나 슬펐지만 다음날 찾아서 다행이야. 딸은 분실했으니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연락처와 사진 등 얼마나 많은 게 담아 있는 소중한 물건인가. 이탈리아 시실리 섬에서 열린 세계 음악 콩쿠르 수상자들 공연이 매년 5월에 열리는데 그 공연 보러 가서 분실해 속이 상했지. 너무 사랑한 공연인데 사진 한 장 없네.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월투월 축제도 보고 번스타인 특집 공연이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미국 명성 높은 음악감독과 음악가들이 참여했다고 하고 매년 보고 있는데 올해 공연이 너무 좋았지. 맨해튼에 가면 자주 만나는 70대 할머니도 만나 이야기하고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 남자가 수년 전 링컨 센터에서 내게 함께 춤을 출래요? 라 했는데 너무 놀라 부드러운 거절을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는데 그날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 것을 봤다. 주름살 가득하고 멋진 스타일도 아닌 내게 춤을 추자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어.

사랑하는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가서 아주 슬픈 플라멩코 기타 선율과 클래식 기타의 전설이 연주하는 곡도 듣고 황홀했지. 대학 시절 들은 곡을 전설적인 기타리스트가 내 앞에서 연주하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꿈에도 생각을 못한 일이지. 어쩌다 난 뉴욕에 와서 살고 있을까.

졸업 시즌이라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댄스 공연도 보고 너무너무 행복했지. 미리 박스 오피스에서 표를 구해야 했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공연. 졸업 무도회 작품은 잊을 수 없지. 파란색 가운과 학사모를 쓰고 멋진 포즈로 사진 촬영하고 관객들에게 아주 섹시한 모습을 보여줘 모두 황홀했겠지. 노인들은 얼마나 좋았을지 상상이 된다. 아름다운 몸매로 아름다운 댄스를 하니 황홀했어. 프로 음악가 되기 위한 최고 학위 아티스트 디플로마 공연 보러 가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라리넷 소리를 듣고 황홀했는데 신이 날 질투했는지 그날 지하철이 멈춰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나와 미드타운을 걷다 감기에 걸려 오래오래 고생을 했지. 그날 뉴욕에 천둥이 치던 날. 무시무시한 천둥소리를 들으며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지. 내 가슴은 우주보다 더 크나. 카네기 홀에서 만난 여인이 내가 그날 공연 보러 맨해튼에 갔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라. 그 할머니는 남자 친구 70세 생일이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고. 뉴요커 70세 생일도 알아가니 난 뉴욕 탐정이 되고 있어. 참 소호 하우징 웍스 북 카페에 가서 햄튼 지트니 버스표를 봤어. 내가 구입한 헌책에 버스 예약표가 담겨 있어 재미있었지. 2006년 7월 1일 버스표. 사랑하는 햄튼에 언제 가 보나.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바닷가를 걸으며 행복이 밀려올 텐데. 이름, 주소,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 뉴요커의 신상도 알아버렸지.

사랑하는 쇼팽 곡을 마우리찌오 폴리니 연주로 카네기 홀에서 들어서 좋았으나 그날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서 바람을 맞아 슬펐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고 했고. 일반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특별 전시품. 누가 그 비싼 경매품을 구입했을까. 아들에게 데이비드 록펠러 자서전 읽으라고 하니 아직도 읽지 않은 눈치. 오래전 읽었는데 참 좋았지. 카네기 자서전, 데이비드 록펠러, 스티브 잡스,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이 아들 책상에 놓여 있어. 숙제를 줬어. 꼭 읽으라고. 책 한 권 분량이 거의 1000페이지 될 거야.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지.

지옥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고 오느라 튼튼한 다리가 고생도 많이 하고 납작한 핫케이크로 변신해야 지옥철을 탈 수 있어. 숨도 쉬기도 힘든데 지옥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는 나도 좀 대단하다. 맨해튼에 가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참고 견디나 보다. 5월 카네기 홀에서 메트 오케스트라 공연을 봤는데 젊은 여자 지휘자 공연이 너무 좋았어. 2년 전 링컨 센터에서 그녀가 지휘한 것을 봤는데 유럽에서도 인기 많은 지휘자라고 하고 재능도 많고 운도 좋은가. 여자가 지휘자가 될 수 있으니 세상 많이 변했다. 내가 대학 시절 여자 지휘자 거의 없다고 들은 거 같은데. 난 여자니 차도 운전하면 안 된다고 하는 남자와 살았으니. 요즘 세상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구나. 너무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지. 여자니 안돼 하면.

메트로 카드도 말썽을 부리고 날 속상하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니. 그래서 소호 갤러리에 가서 전시회도 보고 세인 폴 교회에 도착하니 지각을 했어. 뉴욕 교회에서 열린 멋진 공연도 보고, 첼시 갤러리에도 가고 일본 모자 디자이너가 소개해줘 럭셔리 디자인 쇼도 보고, 센트럴파크와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도 가고 청설모가 나뭇잎을 먹는 것도 보고 홈리스 보다 천만 배 낫겠어. 맨해튼 거리에 홈리스가 얼마나 많아. 배고프다고 도와 달라고 하고. 어제는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에서 딸 생일이 곧 온다고 도와 달라고 하는 젊은 여자도 봤다. 공원 벤치에는 "My first, My last, My everything"이라 적힌 문구도 보고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뉴욕대에 가서 컨템퍼러리 공연도 보고 트럼프 생각이 나서 웃고 나왔어.

소더비 경매장 갤러리도 가고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부촌 거리 화단에 핀 튤립과 수선화와 팬지꽃도 봤지. 딸이 뉴욕에 와서 소호에 가서 놀고 스타벅스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 마시며 수다도 떨도 마약 하는 것처럼 보인 젊은 뉴요커도 보고 세포라에 가니 한국 화장품 라네즈도 보고 티숍에 가서 별별 거 다 보니 재미있는 놀이터로 변신했고.

카네기 홀에서 일본 무료 공연도 봤구나. 무료 공연이니 더 좋은 자리에서 보고 웃음이 나왔어. 평소라면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해서 보니 좌석이 하늘 높은 곳에 있는데. 역시 무료가 좋아.

플러싱 한마음 선원 초파일 연등도 보고 집 근처 벚꽃과 백목련 꽃과 등나무 꽃과 아카시아꽃과 제비꽃과 장미꽃과 아이리스 꽃을 가슴에 담고 밤하늘에 떠 있는 노란 달도 보고 별도 보고 바람을 맞으며 뉴욕 거리를 걸었어. 가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조명도 보고 빨간색으로 비칠 때도 보고. 터벅터벅 걸어서 칼리지 포인트 BJ's에 장도 보러 가고.

모마에 가서 피카소 90세 그린 작품도 봤어. 예술가 삶은 다를까. 죽기 1년 전에도 그림을 그렸어. 하긴 오래전 롱아일랜드 뮤지엄에서 샤갈 특별전을 봤는데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렸다나.

5월 내내 내 가슴은 뛰었어. 쉬지 않고 뛰었지. 이리저리 많은 곳을 쉬지도 않고 찾아다녔어. 삶은 얼마나 복잡하니. 그런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지옥철 타고 맨해튼에 가서 세상 구경을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 별별 이야기를 듣고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에 기록하려고 애를 썼구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비밀이나 침묵을 지키자.

아, 그러고 보니 5월 사랑하는 거버너스 아일랜드가 오픈했는데 난 아직 가지 않았어. 지난번 특별 이벤트가 열리나 비가 주룩주룩 내려 나의 마음이 변했지. 내 마음도 슬픈데 슬픈 비 맞으며 섬에 갈 생각이 없었지. 우울 우울한 강 보기도 싫고. 다음 달에는 섬에도 가봐야 할 텐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들의 합창도 듣고 매일 아침 하늘도 바라보고 아파트 뜰 고목나무도 보고 내 가슴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어.

이제 6월 계획도 세워야 할 시점.
장미의 계절 6월은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차가운 생수를 마시며 메모를 하는 동안 새들의 합창은 커져만 가고 좋은 일 있나 봐. 너무 더운 날이니 나도 일찍 집을 떠나볼까.
2층에 사니 태양열이 내 가슴으로 들어오는 거 같아. 내 정열이 태양처럼 뜨거우면 좋을 텐데 난 아직 멀었어. 어제 셰익스피어 연극 다 보고 집에 오려고 했는데 포기하고 일찍 집에 왔어.

영국에 여행 간 벤저민은 뉴욕에 돌아왔을까. 어제 모마에 가서 런던 하늘 그림도 봤어. 무지갯빛으로 그려진 런던 하늘. 내가 런던에 여행 가니 종일 비가 내리던데. 여행사에서 자꾸 메일을 보내오고 여행의 계절인가.

딸이 1주일 전에 산 하얀색 작약꽃 5송이 가운데 이제 1송이 빼고 다 피었어. 거실은 꽃향기 가득해.

머릿속에 정리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메모를 하니 글이 미로 찾기처럼 뒤죽박죽이야. 한 시간 정도에 지난 5월을 정리했어. 즉석 메모니 즉흥적인 기록이니 재즈와 비슷하나.

2018. 5. 26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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