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맨해튼 한인타운 나들이

뉴욕 한인 이민 박물관 & 링컨 센터 Mostly Mozart 축제

by 김지수


초록빛 아파트 뜰에 새들이 날고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날마다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여명의 빛과 석양의 빛이 아름다울 텐데 이 여름 아직 바다에 가서 석양을 보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어제는 우리 가족이 이민 가방 몇 개 짐을 담고 뉴욕에 도착한 기념일. 40대 중반 뉴욕에 어린 두 자녀 데리고 간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 거의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했지만 어렵게 눈물겹게 유학 준비를 하고 기적처럼 뉴욕에 도착했다. 그날이 우리 가족이 미국에 처음으로 도착했으니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고 봐야 할지. 어렵게 구한 롱아일랜드 집주인이 JFK 공항에 픽업을 하러 나와 주었고 봉고차에 이민 가방 싣고 함께 출발해 딕스 힐 집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의 첫 식사는 한국 신라면. 아무것도 없는데 라면도 감사함으로 먹었지. 이민 가방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당장 덮고 잘 이불과 베개도 없고 하루하루가 눈물로 시작한 정착 시절. 맨해튼과 뉴욕 시 플러싱에 도착해 새 둥지를 열기 시작했다면 그토록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테고 또한 돈 많은 경우라면 역시 돈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니 고생을 덜 했을지도. 무에서 시작한 삶은 눈물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고 가진 거 없는 우리 가족에게 험난한 시련이 주어졌고 10년도 더 지난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한국에서 이사만 해도 힘들다고 하나 국경과 국경을 넘는 이민은 가진 거 없는 보통 사람에게는 이사와 차원이 다른 고통이 주어진다. 정착 초기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경우라면 그래도 더 낫고,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날마다 두 자녀는 레고 조각 맞추듯 침대와 책상과 의자를 조립하기 시작했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려 완성이 되었다.

특별한 기념일이라 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자 아들과 함께 시내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도착했으나 오래 기다려야 할 거 같아 우린 땡볕 아래를 걸으며 이야기를 했다. 이웃집 정원에 핀 무궁화 꽃과 채송화꽃을 보니 어릴 적 한국에서 살던 시절도 떠오르고 초록 나무 그늘 아래가 너무너무 좋아 나무 그늘과 바람에 감사함을 느끼며 터벅터벅 걸었다. "그늘" 참 고마운 단어다. 나무 그늘도 좋고 좋은 부모 환경 그늘도 좋고 그늘이 참 좋지.

몇 정거장을 걸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으로 향해 달리는 버스에 승차하고 버스는 달리고 플러싱 노던 블러버드와 메인 스트리트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승용차를 봤다. 그곳은 원래 버스만 좌회전할 수 있는 곳인데 아마 잘 모르고 신호를 기다리는 거처럼 보였다. 경찰이 봤다면 딱지를 받지. 오래전 연구소에 출근할 적 나도 그곳에 도착했는데 순간 버스만 통행한다는 표지판이 보여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딱지를 받고 싶지 않아 다른 도로로 달릴 수밖에. 다름 아닌 낯선 고속도로를 출근길에 달렸다. 그때 GPS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낯선 도로 운전하기 아주 싫어하는 난 아침부터 지옥을 맞는 듯 정신없었지만 무사히 연구소에 도착했던 악몽 같은 기억도 생각이 났다.

플러싱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화산이 폭발한 듯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공짜로 화산을 구경했어. 너무너무 더워 더워 더워. 맨해튼에 가는 7호선에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으나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아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지하철은 달리고 몇 정거장 가니 절름발이가 든 작은 녹음기에서 노래가 흐르고 그도 노래를 부르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스페인어 노래가 좋으나 슬픔 가득했다. 음악이 흐르는 지하철은 정말이지 좋아. 잠시 감사함으로 음악을 듣고 창밖 풍경을 보다 퀸즈 보록 플라자 역에 내려 다른 지하철에 환승해 맨해튼 헤럴드 스퀘어 역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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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불꽃놀이와 땡스기빙 데이 퍼레이드를 주최하는 메이시스 백화점이 있는 헤럴드 스퀘어. 주위 빅토리아 시크릿 등 쇼핑 매장도 많고 펜 스테이션도 가깝다. 한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맨해튼 코리아 타운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헤럴드 스퀘어에서 가깝다. 아들과 난 코리아 타운에 있는 일식 레스토랑 이치우미에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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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코리아타운



K 타운(한인 타운)은 맨해튼 미드타운 32번가의 5·6번 애비뉴 사이 한국 점포들이 밀집된 곳을 말하고 한글 간판이 보이고 한국 식당, 노래방, 미용실, 여행사, 카페베네, 고려 서적, 한인 H 마트 등이 있으니 마치 한국에 온 거 같은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그곳에 가면 "우리 아메리카 은행"이 예전 보였는데 아쉽게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고공 행진하는 렌트비로 은행을 이전했다고 하고. K Pop 한류 열풍에 한국도 잘 알려져 한국 식당을 찾는 외국인도 많고 과거 허름한 골목길이었는데 이젠 여행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한인타운. 그러나 아주 깔끔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고 한국 정취가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빌딩도 없고 낡고 오래된 빌딩에 한인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뉴욕에 도착한 첫해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 맨해튼은 너무나 먼 곳이고 두 자녀와 나 모두 공부를 하는 상황이니 맨해튼에 자주 갈 형편이 안되고 그러다 시간이 흘러갔는데 뉴욕에 왔는데 맨해튼이 뭔지도 모른 게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한인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맨해튼 투어를 한다고 예약을 했다. 기억에 1인 80불 정도+ 팁 10불. 크리스마스 무렵 플러싱 고려당 제과점 앞에서 버스가 도착하기로 했지만 버스는 안 오고 나중 한인 택시가 도착했다. 여행객이 너무 많아서 투어 버스는 바로 맨해튼에 갔다고 대신 한인 택시를 보내주어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맨해튼에 갔다. 운전기사는 70년대 이민을 오셔 델리 가게에서 힘든 생활을 하며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재산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재산을 탕진하고 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맨해튼 코리아 타운 우리 은행 앞에 도착했다. 지금은 한인 타운 입구에 우리 은행이 보이지 않아 섭섭하지. 그날 한인 타운 "강서회관"에서 비빔밥을 먹고 (1인 7불) 팁을 1불을 줬던 기억도 나고. 맨해튼을 버스를 타고 구경을 했다.

수년 전 지인 아들이 콜롬비아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되니 한인 타운 한식당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했고 뉴욕에서 공부를 마치고 뉴욕에 남고 싶었으나 서울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대학교수로 지낼 적 미국에 와서 2년 동안 지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나중 뉴욕에 와서 공부한 지인 아들. 부잣집 아들은 먹고 싶은 거 주문하라고 하니 감자탕을 주문해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법조계에서 일하는데 감자탕을 아주 맛있게 먹더라.

나도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인 회사에 취직해 회사 본사가 있는 맨해튼에서 오리엔테이션 받으며 맨해튼 코리아 타운 한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영화 같은 주인공처럼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삶은 늘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회사를 그만두고 드라마 같은 삶이 펼쳐지는 나날들. 그때 추억도 생각이 나고. 지난번 보스턴에서 딸이 뉴욕에 와서 함께 찾아가 전통적인 한국 맛을 느끼는 음식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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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이치우미 레스토랑



아들과 내가 어제 찾아간 곳은 '이치우미' 일식 레스토랑. 몇 차례 방문해 식사를 하곤 했고 가격 대비 음식 맛이 나쁘지 않은 곳이라 어제도 방문했지만 어제 난 실망을 하고 말았다. 무더운 날 냉방도 잘 안되고, 직원이 우릴 안내한 자리는 너무 더워 숨이 막힐 거 같아 다른 자리에 앉고 싶다고 하자 다른 테이블로 안내했고, 어제 음식은 신선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간도 제대로 안 맞는 음식도 있고, 관광객이 아주 많이 들어오니 마치 스낵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인이 운영하는 일식집 요리사는 전부 외국인. 무더운 날이라 샤부샤부 요리도 안 먹었다.


우동을 먹으며 오래전 일본 공항에서 먹은 우동도 생각하고 일본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이 되었는데 식사하라고 쿠폰을 줘서 공항에서 우동을 먹었는데 얼마나 좋던지. 일본 항공사 서비스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제 디저트로 평소 잘 안 먹는 한국산 참외도 먹었다. 한국산 참외가 뉴욕에 없지 않으나 가격이 저렴하지 않으니 그림의 떡이 되고 늘 눈으로 보는 과일. 정말 오랜만에 노란색 참외를 먹고 무더운 날이라 역시 아이스크림이 최고더라.


어제 같은 식사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치우미 레스토랑. 올해 뉴욕 레스토랑 위크 1인 26불을 받는데 차라리 뉴욕 명성 높은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100번이나 들었다. 귀한 손님 데리고 그곳에 가면 난리가 날 거 같아.


마음에 드는 식사는 아니지만 감사함으로 식사를 하고 나와 아들과 난 뉴욕 한인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치우미 레스토랑에서 약 15분 정도 걸리고 무더운 날이라 1분도 땡볕 아래 걷기도 힘들지만 참고 방문했다. 지난 3월 1일 처음으로 뉴욕 한인사 박물관 ‘목화’(MOKAH.Museum of Korean American Heritage)가 개관했다고 들었으나 언제 가 봐야지 하다 자꾸 미루다 어제 방문했다. 너무 더운 날이라 아들 표정은 꼭 가야 해하는 눈치가 보였으나 엄마가 함께 가자고 하니 그냥 따라갔지. 이리저리 걷다 마침내 도착했는데 빌딩 문이 안 열려서 기겁을 하고. 그리 더운 날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으면 어떻게 하니. 다시 생각하니 빌딩 입구 한인회 벨을 누르면 된다는 것이 떠올랐다.

백 년 전 느낌이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도착. 젊은 남자 직원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박물관 입구에 전 반기문 유엔 총장이 기증한 '직지'가 높여 있었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0년 앞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불교 서적. 당시 불교 파워도 생각하고 맨해튼에 가면 땡중도 자주 만나는데. 황금빛 조각을 내게 주면서 돈을 달라고 하는 중. 별별 사람 다 만나는 맨해튼. 위안부 소녀상도 전시관에 보이고 미국 한인 이민사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리된 자료가 벽에 붙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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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엔 총장 반기문이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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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




서재필 박사가 처음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은 사람이고 지상의 낙원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 이민 간 사람들. 땡볕 아래서 하루 10시간 허리도 펴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하고 힘드니 술과 도박으로 힘들게 번 돈을 탕진한 사람도 있다고. 하루 10시간 노동으로 남자는 67센트, 여자와 미성년자는 50센트를 받았다고.


우리나라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고 하니 놀랐고 그 옛날 옛적에 어찌 그 명성 높은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서 공부를 했는지 궁금도 했다. 콜롬비아 대학에 한국어 서적 2000권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난 콜롬비아 대학 버틀러 도서관에 전시회와 이벤트 보러 간 적이 있지만 한국 서적을 그리 많이 보유한 줄 모르고 있었다.

힘든 이민 생활하니 한국 교회가 발달되었고 1921년 첫 교회가 설립되었다고 하니 역사가 정말 깊다. 지금 뉴욕과 뉴저지에 약 550개 이상 교회가 있다고 하고 뉴욕과 뉴저지 한인 인구는 약 25만(2010년 미국 인구 조사). 인구 대비 교회 숫자가 정말 많은 미국. 이민 초기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교회에 가서 얻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고. 매일 눈물바다 같은 이민 생활에 교회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고.

뉴욕에서 활동한 예술가 김환기와 백남준과 정 트리오(정경화, 정명훈, 정경화), 메트 오페라에서 활동한 홍혜경과 뉴욕 총영사관 설립, 청과물 협회 주최 코리아 퍼레이드, 태권도 역사, 한국어 학교 효시 등이 정리. 거시적인 관점이라 이민에 대해 잘 모른 사람이 방문하면 힘든 이민 생활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9.11 테러로 한인 18명이 숨졌다고 하니 남은 가족은 얼마나 슬플지.

이민에 대해 조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두 가지는 하와이 이민과 맨손으로 개척한 70년대 80년대 이민. 그시대 맨손으로 개척한 이민사에 대해 간략히 정리되어 있고 타민족이 기피하는 청과, 수산, 봉제, 세탁 업종에 종사하며 힘든 이민 생활했다고. 청과와 수산 업종은 새벽에 물건을 사러 가서 종일 많은 시간을 일하고 지내야 하니 부지런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업종. 타민족이 한국인의 근면함을 인정하게 된 직종에 속하고 세탁 업종은 청과와 수산처럼 새벽에 물건을 사러 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덜 힘들고 한국인이 뉴저지와 뉴욕 전체 일대 60% 이상을 정유해 1978년 뉴욕 한인 드라이 클리너 협회를 결성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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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가운데 지상의 낙원 하와이에 이민 가서 노예처럼 일하고 지낸 이민 초기 사람과 무에서 시작해 개척한 보통 사람들 이민생활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민 1세들은 온갖 수모와 역경을 참고 견디며 오늘날 미국 땅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하와이 호놀룰루에 한국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도착(1903년 1월 13일). 1월 13일을 2004년 미국 연방 정부에서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했다.

박물관 개관 시간 월요일~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149 W 24th Street , 6th Fl
New York., NY 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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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사랑방을 재현한 민속관



이민 전시회 코너에 마련한 조선 시대 사랑방을 재현한 민속관은 이재록 부부가 모은 특별 한국 고미술품과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이민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맨해튼에 오면 한 번쯤 방문해도 좋을 거 같다.


아들과 함께 이민사 박물관 전시회를 보고 아들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고 링컨 센터에서 저녁 6시 반과 7시 반에 공연을 보기 위해서 난 맨해튼에 남았다.


지난 일요일 링컨 센터 아웃 오브 도어스 축제에 가서 서베이 해주고 받은 무료 공연 티켓. 여름철에 열리는 모차르트 축제를 한 번도 보지 않았는데 무료 티켓을 받아 처음으로 축제를 보러 갔다.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은 뉴욕 필하모닉이 상주하는 곳이고 대개 뉴욕 필하모닉은 리허설 공연도 유료 티켓을 구입해야 볼 수 있는데 저녁 6시 반에 열리는 공연은 무료라 약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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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폰서 받아 공연을 준비하고 청중에게 무료라는 의미. 냉방이 잘 된 링컨 센터에서 브람스와 리스트 피아노 곡을 들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저녁 7시 반 공연은 스톡홀름에서 탄생한 10대 바이올리니스트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도 감상했는데 두 자녀 어릴 적도 생각이 나고 자주자주 들은 곡이라 더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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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 Mostly Mozart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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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 휴식 시간



매일매일 두 자녀 바이올린 연습 도와주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고, 특별 레슨이라 두 자녀 역시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고, 보통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 학교 방과 후에서 시작해 몇몇 선생님을 거쳐 한국 예종에서 강의하신 분에게도 레슨을 받으러 가고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다. 지방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서 다시 지하철 타고 레슨 받고 터미널에서 짜장면으로 식사하고 밤늦게 집에 도착했던 시절. 결국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오게 된 것은 줄리아드 학교가 뉴욕에 있기 때문이었지만 프로 음악가의 길을 두 자녀가 지금 걷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바이올린과 함께 지냈다. 어제 링컨 센터에서 본 10대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린 음색이 아주 좋았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는 쉬우나 연주하기는 쉽지 않다고 음악가들이 말하고 프로 음악가들도 가끔씩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대학 시절 안네 소피 무터 바이올린 연주를 음악 시디로 자주 들었는데 카네기 홀에서 해마다 그녀 연주를 감상할 수 있으니 그런 점은 좋은 거 같다. 어제 공연 도중 옆자리 핸드폰이 울리니 내 뒤편에 앉은 할머니가 "오 하느님"이라고 하니 지난번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간 날 지하철역에서 만난 홈리스도 생각이 났다. 홈리스가 백인 여자와 내 곁에서 이상한 냄새나는 스프레이를 뿌리니 그녀 얼굴빛이 변하며 "오 하느님"이라 했지.



링컨 센터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 가서 환승하고 플러싱으로 달리는 동안 7호선은 달리다 멈추고 다시 달리고 다시 멈추고 반복하니 옆에 있던 흑인 남자 눈빛이 무섭게 변하고 너무너무 느리게 달리는 지하철 타고 플러싱에 도착. 밤중 버스가 자주 운행하지 않으니 오래오래 기다리다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기사에게 술 냄새가 풍겨 얼마나 무서웠는지.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온 기념일 링컨 센터에서 공연 보고 밤늦게 집에 도착해 수박 파티를 했다. 이틀 전 한인 마트에서 세일 중인 수박을 구입했는데 냉장고에 넣지도 않았는데 맛이 좋았다. 올해 두 번째로 먹은 수박. 작년에는 수박 먹지도 않고 지나갔다. 어제 아파트 슈퍼는 밀짚모자를 쓰고 잔디를 깎아서 메트 뮤지엄에 전시된 고흐 밀짚모자 쓴 자화상도 떠올랐다. 아파트 뜰 코너에 핀 연보랏빛 배롱나무꽃은 점점 시들어 가며 빛을 잃어가고 있다. 서서히 여름이 지고 있을까. 배롱나무 꽃 핀 링컨 센터 댐 로슈 파크에서 오늘 밤 아웃 오브 도어스 축제가 열리는데 갈 수 있을지.



무더운 여름날 브런치를 만들어 먹고 작은 선풍기 날개 부지런히 돌아가나 너무너무 더워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와 먹으니 천국이네. 여름에 역시 수박이 좋다.



2018. 8. 8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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