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추억

센트럴파크와 링컨 센터에서 바람맞다

by 김지수


폭염으로 새벽에 잠도 제대로 못 들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걸으며 장을 보러 다녀와 몹시도 피곤했지만 힘을 내어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나의 첫 번째 목적은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브라질 공연 보기 두 번째 목적은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 공연 보기. 그런데 두 공연 모두 허탕을 치고 말았으니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맨해튼에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집에서 나와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 가는 길 늘 '1달러' 외치는 홈리스 할머니를 만났지. 오늘도 1달러 달라고 외치고 햇볕은 쨍쨍 거리는 날이라 홈리스도 그늘 아래 앉아서 구걸을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 무더운 여름날 그늘 안 좋아한 사람 어디 있을까. 에어컨 바람과 다른 초록 나무의 그늘 너무도 좋지.

로컬 7호선을 타고 맨해튼에 달리는 중 보스턴에서 사는 딸로부터 전화를 받고 내일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라 엄마 무얼 하는지 묻자 공연 보러 센트럴파크에 간다고 하고 말했지. 하필 전화벨이 울리는 퀸즈보로 플라자 역은 소음이 너무 심하니 고막이 터질 거 같고 아무래도 귀마개를 하고 다녀야 하나. 중국 상하이에서 영문학 교수하다 뉴욕에 와서 장애인 학교에서 일하다 퇴직한 베냐민은 음악을 아주 사랑하는 분이고 카네기 홀에 가면 자주 만나는데 귀가 손상이 되면 다시 회복 불가능하다고 늘 귀마개를 하고 다니지.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니 카네기 홀 꼭대기 층에 앉아서 공연을 보곤 하는데 부부 함께 망원경을 준비해 오셔 공연을 보는 것을 본다. 문득 그분이 생각이 났다.

딸과 전화를 끊고 난 5번가 플라자 호텔 근 처역에 내려 센트럴파크로 향해 걸었다. 지난번 아들과 함께 콜럼버스 서클 장 조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날 만난 센트럴파크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른 할아버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그 할아버지 옆에 짐이 아주 많은 것으로 보아 분명 홈리스 같아 보였지만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른 지 놀라고 말았지. 그분이야말로 보헤미안이 아닐까. 아무 걱정 없는 눈빛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가슴이 울렸지. 평범한 옷을 입은 백발의 할아버지 세상을 초월한 눈빛이더라. 맘대로 안 되는 것을 이미 깨달아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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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노장 화가 자넷 루텐버그 Janet Ruttenberg 센트럴파크 쉽 메도우에서 그림 그리고 있는 모습




센트럴파크 럼지 필드 플레이에서 열린 서머 스테이지 축제가 목요일 저녁 7시 열리고 브라질 가수 공연이라 꼭 보고 싶은 마음에 공원에 가는 길 혹시나 쉽 메도우에 그림을 그리는 노장의 화가가 있을까 궁금해 나팔꽃 담장 근처 쉽 메도우에 갔는데 역시나 하얀색 옷을 입은 할머니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계셔 놀랐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날 센트럴파크에서 그림을 그리니 얼마나 대단한 열정인지. 수년 전 88세 할머니 화가 전시회를 우연히 뉴욕 시립 미술관에 가서 봤다. 그날 그분이 명성 높은 화가란 것도 알게 되고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분이 그림을 그리고 계시나 궁금해지면서 동시 이미 하늘나라로 여행 떠난 것 아닐까 걱정도 되는데 무더운 여름날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니 정신력이 얼마나 특별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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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070.jpg?type=w966 센트럴파크 베데스다 테라스, 베데스다 분수대 & 호수





쉽 메도우를 나와 베토벤 동상이 세워진 나움버그 밴드 셀 근처를 지나 베데스다 테라스에 도착하니 낯선 흑인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너무 잘 불러 피곤이 사르르 사라지는 듯한 느낌. 베데스다 분수대에 핀 연보랏빛 연꽃도 보여 더 기분이 좋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보고 거북이가 사는 호수. 노를 저으며 거북이를 보면서 놀라는 눈치. 호수 근처에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너무 많고 바이올린 연주하는 음악가도 보고. 언제나처럼 방문객이 많은 센트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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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니 방문객이 더 많고 아이스크림 먹으며 걷는 사람도 많고 마차는 달리고 마부는 관광객에게 "저기 아파트가 산레모예요"라고 하고. 뉴욕의 부자들이 사는 럭셔리 아파트 산레모가 센트럴파크에 가면 아름답게 비춘다. 타이거 우즈, 스티브 스필버그, 더스틴 호프만, 데미 무어 등이 살았던 아파트. 공원에 조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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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브라질 가수 공연 보러 가는데 멀리서 보니 줄이 너무너무 길어 놀라서 그만 돌아서버렸다. 오래 기다리면 공연을 볼 수는 있을 거 같으나 난 브라질 공연 잠깐 보고 링컨 센터 공연을 볼 생각이었지만 줄이 길고 그제야 저녁 7시 공연이 열린다는 것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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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저녁 6시라 착각하고 있어서 두 개 공연 모두 보기 힘들 거 같아 냉방이 잘 되는 링컨 센터에서 공연 보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서서히 공원을 빠져나오는 길 우연히 쉽 메도우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너무 잘 불러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음악가들이 공원에서 연습하는가 생각도 들고 그 팀들이 데리고 온 애완견이 날 따라오니 웃었다. 그러자 그 팀 가운데 한 분이 내게 '안녕'하고 인사를 하며 웃었다. 또 그분들 가까이서 뉴요커들이 묘기를 하는 것도 보고.

잠시 후 링컨 스퀘어 단테 파크 근처 거리에서 노란 바나나와 딸기를 구입했다. 날씨가 무더워 곧 썩을지 모르니 세일을 하고 3불어치 구입해서 기분이 좋았어. 나랑 반대로 주인은 기분이 안 좋았겠지. 바나나 먹으며 링컨 센터 Mostly Mozart 축제가 열리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일찍 도착했는데 줄이 너무너무 길어서 만리장성 같아 놀라고 나도 맨 뒤에 서서 기다렸다.


내 뒤 흑인 할머니와 손자가 도착했고 흑인 소년이 내게 일본인이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하니 그럼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웃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흑인 할머니가 오페라를 사랑한다고 하니 얼마나 자주 오페라 공연 보냐 물으니 일을 하니 자주 오페라를 볼 수 없지만 오페라 공연을 아주 사랑한다고. 오케스트라 음악 들으며 무대에서 부른 아리아 들으며 무대 장식도 아름답고 조명 빛도 아름다워 너무너무 좋지. 곧 오페라 HD SUMMER FESTIVAL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그분은 몰랐다고 하고. 소년이 브루클린 식물원을 사랑한다고 해 나도 아주 사랑한 곳이라 하니 서로 웃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과 매그놀리아 꽃, 튤립 꽃과 수선화 꽃을 보러 가는 곳. 6월에는 장미꽃을 보러 가고 정말 사랑스러운 식물원이다. 한국에서 아주 오래전 제주도 식물원에 방문했지만 그때는 식물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몰랐다.

잠시 후 내 앞에서 기다리는 백인 할머니도 함께 이야기를 했는데 놀랍게 그분 나이가 81.5세라고 하니 웃었다. 나이를 표현할 때 소수점을 사용한 분은 처음 봤지. 더 놀란 것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하다 은퇴했다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고 하니 더 놀라고. 그분 손녀가 3000마일 떨어진 곳에 사니 몹시 그립다고 하며 어디냐 물으니 캘리포니아에 산다고 하셨다. 버클리 대학 근처에 사니 가끔 찾아가곤 하나 미국 동부 뉴욕과 서부가 너무 다르고 그 백인 할머니는 뉴욕을 사랑한다고. 강의, 공연, 전시 등 너무너무 할 게 많아서 좋다고 하니 나랑 취향이 비슷해 놀랐다. 브루클린에서 탄생해 그곳에서 오래 살다 지금은 맨해튼 줄리아드 학교 근처 작은 스튜디오에 거주한다고. 공간이 작아 손녀딸이 오면 놀란다고 하나 그래도 문화 행사가 많이 열리는 뉴욕이 더 좋다고 하고. 백인 할머니는 흑인 할머니에게 몇 살이냐 묻자 75세라고 하며 집안이 장수한다고 덧붙이며 할머니는 91세 돌아가시고, 고조할머니는 114세 돌아가시고, 엄마는 생존하신다 하니 백인 할머니가 놀라며 세상에 하면서 그 나이까지 지낼 돈이 없다고. 그래서 내가 흑인 할머니에게 어디에서 살다 하늘로 가셨나 하니 푸에르토리코에 사셨다고. 두 분 할머니는 내게 "넌 아주 젊어"라고 하니 다시 웃고.




그런데 이상하게 평소와 달리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 문을 열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하며 오래오래 기다렸는데 나중 이미 정원이 차서 공연을 볼 수 없다고 하니 너무 슬펐다. 만약 그런 사태라면 일찍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무더운 날 오래 서서 기다렸는데 적어도 1시간 반 정도 기다렸는데 그런 말을 하니 속이 많이 상했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왔지. 아, 긴 하루가 지나가네. 내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센트럴파크에서 노장 화가 그림 그리는 것도 보고, 베데스다 분수대에 핀 연꽃도 보고, 호수에서 노를 젓는 낭만적인 보트도 보고 새들의 합창도 듣고 매미들의 합창도 오래오래 들으며 공원을 산책했다.



미리 공연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모마에 가서 공연을 보든지, 소호에 가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을 보던지 다른 일을 했을 텐데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이제 지난 일은 잊고 내일 일을 생각하자.



2018. 8. 9 자정이 되어가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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