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같은 가을날 너무 더워

by 김지수


며칠 전 겨울처럼 춥다가 다시 여름처럼 무더운 가을날. 날씨가 왜 이래. 습도도 너무 높아 습도에 잡혀 먹히겠어. 나무 바닥이 끈적끈적 걷기도 힘들고. 하늘도 양극성 장애에 걸렸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아들과 함께 머라이어 캐리와 라이오넬 리치 공연 볼 적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리치 노래는 수 십 년 세월이 흘러도 너무 좋았는데 캐리의 노래가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인형이 노래 부른 거 같았는데 나중 알고 보니 양극성 장애 진단받고 오랫동안 숨겨왔다고. 대학 시절 <Endless Love> 노래 자주 들었지. 다시 들어도 좋고 음악가는 늙어가지 않을까. 나이 들어 그리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게 신기해. 아들은 엄마 따라가서 전혀 모른 라이오넬 리치 공연 보고 좋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어. 노래 잘 부르더라.




수요일 오전 빨래를 해서 기분이 좋아.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서 세탁을 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덜덜덜. 곧 멈출 거 같아 걱정스러운데 다행이다. 새로운 세탁기로 교환하면 좋겠어.

10년 만일까. 지난번 추석이라고 한인 마트에 가서 조기 2마리 구입해 오븐에 구워 브런치 먹었다. 아들은 한국에서 매일 굴비가 밥상에 올랐다고 하는데 얼마나 미안하던지. 한국에서 지내던 시절과 극으로 다르니 우리 집도 양극성 장애에 걸렸나. 이민과 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끝없이 복잡한 삶의 문제를 끌어안고 어둠 속을 헤쳐가며 사는구나.

한국에서 지낼 적 유럽에서 박사 학위 받은 분과 가끔 이야기하곤 했으나 유학의 현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 유학은 꿈의 궁전처럼 느껴졌지만 유학의 현실은 그리 멋지지 않고 개인차가 아주 크다. 언어적인 장애 없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경우라면 다른 나라에서 적응하기 쉬울 수 있으나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니 한마디로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 없지.

만약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유학 초기 알았다면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지. 무조건 맨해튼에 가서 살려고 하니 아들 친구 엄마가 맨해튼 보다 롱아일랜드를 추천해 롱아일랜드에서 살기 시작했고 우리 가족의 첫 정착지 딕스 힐은 부촌이고 백인 인구가 많지만 맨해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집 난방 등 어려운 점이 많아 6개월 만에 롱아일랜드 제리코로 이사를 했지. 딸 선생님이 프린스턴 대학 출신이고 그분에게 롱아일랜드에 대해 물으니 아무것도 모른단 말을 듣고 뉴욕에 왔지. 그 선생님은 지금은 미국에 돌아와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수험생 두 자녀와 함께 공부하던 무렵 맨해튼 문화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지. 아주 많은 세월이 흘러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대학 시절 꿈꾸던 나의 꿈을 만나니 행복하기도 하지만 맨해튼이 완벽한 도시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문화 예술 면이야 세계 최고가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무에서 시작하는 가난한 이민자 가정이 보듬고 안고 살기는 현실이 너무너무 무겁다. 혼자의 힘으로 어린 두 자녀 뉴욕에서 공부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하면 알리라.

태어난 나라에서도 삶이 무겁고 힘들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에 가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의 무게가 어디 고국과 같을까. 모든 게 다른 나라에서 제로에서 시작하는 삶은 정말 가볍지 않아. 고통의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 들지.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는 완전히 달라. 무에서 시작한 삶이 어려운 세상이다. 갖는 자는 갖지 않은 자의 고통을 알기 어렵지. 관심도 없고. 삶에 만족한 사람이 드물어 아주 조그만 것에도 피곤하고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사람도 많은 세상. 갖지 않은 자의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울 거다. 갖는 자의 불평과 불만도 들으면 웃어야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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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라카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서 두 개의 십자가 아트를 보며 내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두 개의 십자가가 아니라 그 이상같이 무거운 현실이지. 한국에서 누리던 그 모든 것은 마법처럼 다 사라져 버린 뉴욕. 한국에서도 무에서 시작한 우리 삶이 밀레니엄을 맞이해 세계 여행을 하기 시작했고 런던, 파리, 베를린, 프라하, 드레스덴, 하이델베르크, 쾰른, 프랑크푸르트, 로마, 밀라노, 동경, 베이징, 방콕, 홍콩 등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행복했던 시절도 잠깐. 아, 그 후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어느 날 사랑하는 첼로가 바삭바삭. 그 후 난 뉴욕에 왔다. 역경과 역경과 역경 속에서 달렸던 내 삶. 어쩌면 역경이 날 뉴욕으로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역경 속에서 삶은 춤추지.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티고 지낸다. 어딘가에서 새로운 꿈이 피어나길 소망을 하면서 매일매일 기도를 하지.

단 하나의 정보도 없이 뉴욕 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내가 뿌린 열정과 고통만큼 뉴욕을 알고 있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만난 실직자 변호사도 맨해튼 문화에 대해 하나도 몰라 몇몇 장소를 알려주니 감사하다고 했고,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연보다 만난 뉴요커 할아버지.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비니지스 전공했다고 했는데 성당 합창 오디션에 낙방되어 줄리아드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레슨 받으러 왔다 우연히 무료 공연에 대해 알았다고 하니 웃음이 나왔어.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90가 정도에 사시는 분인데. 그뿐만이 아니다.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난 중국인 시니어 벤저민 역시 음악을 아주 사랑한 분이지만 카네기 홀에서 공연만 보고 줄리아드 학교와 뉴욕 도서관에서 열리는 공연은 잘 몰라 알려주었고 갤러리 역시 몰라 알려주었다. 브루클린 식물원과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방문한 적도 없다고 물론 첼시 갤러리도 모르셨다.

내가 뿌린 눈물과 고통으로 발견한 문화 정보가 도움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하고 지내는 나날.

수요일 오후 1시가 지난 시각 기온 26도 습도 89%.

수요일 오후 열리는 특별 이벤트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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