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날 잔잔하게 부는 바람맞으며 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수요일 오후 2시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을 보기 위해서(Senior Concert Orchestra of New York). 오케스트라 단원은 과거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과 뮤지컬 등에 종사했던 음악 전문인으로 구성된 백발의 노인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고 백발이 된 노인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거 본 적이 없다. 나이 들면 건강이 안 좋아 걷기도 힘들다고 불평을 하는데 그 어려운 현악기를 어찌 연주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뉴욕의 향기를 진하게 느낀 날이었다.
프로그램에 아들이 사랑하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보여 아들에게 함께 보러 가자고 말했다. 놀랍게 오케스트라 단원들 연주도 너무 좋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던 알렉산드라 리(Alexandra Lee) 연주가 너무나 훌륭했다.
러시아에서 탄생한 그녀는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세계적인 바이올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장래가 촉망되는 연주가로 보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공부했다고 하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세상에 그녀가 알려진 것은 2003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국제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분 1위, 2004년 한디만시스크에서 열린 러시아 신인 콩쿠르에서 그랑푸리를 받은 것이라고. 심사위원장으로 참가한 다비노비치 교수(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로부터 그 음악원에 무시험으로 입학하는 특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가 없고 비행기 티켓 값도 동네 고려인들이 모아서 만들어 줬다고. 참 눈물겹게 공부를 했네.
오늘 무대는 "뉴욕 시니어 콘서트 오케스트라 갈라 콘서트"였고 Waldo Mayo Memorial Violin Competion 우승자가 바이올린 곡을 협연했다. 카네기 홀에서 준 프로그램을 보니 그 대회 우승자 가운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알렉산더 마르코브 보여 깜짝 놀랐다. 알렉산더 마르코브(Alexander Markov)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대회 우승자이고 아들이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에서 공부할 적 만난 지도 교수님 알버트 마르코브 아드님이다. 교수님 아드님 아파트가 카네기 홀 옆에 위치한 Metropolitan Tower에 오래전 그곳에 레슨을 받으러 갔다.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즐겨 찾는 Russian Tea Room이 메트로폴리탄 타워 옆에 있고 직원 서비스는 얼마나 좋던지. 마치 우리가 대통령이나 된 거처럼 서비스가 특별해 놀랐다. 레스토랑 위크에 찾아갔는데 우리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버렸어. 영원히 기억에 남은 특별한 웨이터였다.
오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리 바이올리니스트는 현존 가장 매력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산더 마르코브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받은 적이 있다니 더 놀랍고 세상이 좁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버트 마르코브 교수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코네티컷 주에 있는 교수님 댁을 방문했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교수님 뒤 뜰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고 교수님 제자 가운데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도 있다. 오래전 알렉산더 마르코브가 카네기 홀에서 연주할 때 우리 가족은 롱아일랜드에서 사니 맨해튼이 너무나 먼 도시였고 당시는 석사 과정 공부 중이라 맨해튼 문화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가끔씩 공연 보러 카네기 홀에 가지만. 3년 전인가 카네기 홀에서 힐러리 한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듣다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들과 난 일찍 카네기 홀을 떠났다. 세상에 하면서. 카네기 홀에서 공연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찍 떠날 거라 한 번도 생각도 못 했지. 명성 높은 힐러리 한에게 얼마나 실망했던지.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할 기교를 갖추지 못했다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딱 1곡을 완성했지만 오늘날 가장 사랑받은 바이올린 곡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1주일 전 맨해튼 음대에서 만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18세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1991년 발매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을 수상했다고. 그의 마스터 클래스 본지 벌써 1주일이 흘러갔다. 카바코스 바이올린 마스터 클래스 보며 행복했는데 오늘은 카네기 홀에서 무료로 특별공연 봐서 행복해. 더구나 오늘 공연은 무료인데 오케스트라 좌석에 앉아 공연 보니 더 좋고 우리가 늘 앉은 발코니 석을 오케스트라 좌석에 앉아서 보니 하늘처럼 높아. 오케스트라 좌석 음향도 좋고. 돈 많이 벌어서 자주 오케스트라 좌석에 앉아 공연 보면 좋겠어.
카네기 홀에 가기 전 플러싱 삼원각에 가서 런치 스페셜을 먹었다. 주택가에 코스모스 꽃 피어 가을 분위기 물씬했지. 파란 가을 하늘 보고 코스모스 꽃을 보며 아들과 걸으니 가을 속으로 여행 떠난 느낌이었다. 주중 런치 스페셜은 1인분에 약 10불 + 세금+ 팁을 주고 뉴욕 물가에 비하면 비싸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가끔씩 찾아가곤 한다. 오늘 저녁 8시 카네기 홀 웨일 리사이틀 홀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 표 역시 받았는데 고민하다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와 세탁을 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어제 화요일 아침 특별한 일이 있었다. 누가 쾅쾅 쾅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렸다. 혹시 경찰인가 하고 놀라서 부리나케 나무 계단을 내려가 현관문을 열자 낯선 사람이 내게 꽃향기 가득한 화분을 내밀었다. 이 주소 맞지요? 하면서. 배달원이 말한 주소는 분명 맞다. 그런데 내게 화분을 배달할 사람은 뉴욕에 없다. 그래서 배달원에게 물으니 내 이름이 낸시인지 물었다. 낸시가 아닌데요, 하니 그는 떠났다. 가끔씩 경찰이 찾아와 소동을 피우니 피곤한데 경찰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화분이 내게서 멀리 달아나버렸다.
브런치 먹고 지하철 타고 첼시에 갔다. 그곳에 가니 날 반기는 노란 국화꽃. 아침에 일어났던 화분 소동이 생각났다. 가을이라 국화꽃이 정말 예쁘다.
마음먹고 첼시에 갔으니 천천히 갤러리를 둘러보았다. 낯선 일본 작가 작품이 마음에 들어 가격을 물어보니 25000-30000불이라고 하고
PETAH COYNE(Having Gone I Will Return
우연히 며칠 전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감동받은 작가 작품도 다시 봤다. 지난번 첼시에 가서 본 작가 작품이라 인터뷰 글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탄생한 미국 현대 조각가 이자 사진가 PETAH COYNE(Having Gone I Will Return: 9월 13-10월 27일/Galerie Lelong)는 뉴욕에 와서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12년 동안 난방이 안 되고, 수돗물이 없고, 춥고, 목욕탕이 없는 곳에서 지냈다고 하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 어렵고 힘든 세월 보내고 지금은 메트 뮤지엄, 모마, 구겐하임 뮤지엄, 브루클린 뮤지엄 등에서 그녀 작품을 소장하고, 첼시 갤러리에서 전시할 정도로 명성 높아지고
가난한 루마니아 집안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한 오늘날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콘스탄틴 브랑쿠시와 마르셀 뒤샹 전도 보고,
첼시 아고라 갤러리 우영희 전
한국 작가 우영희 작품도 보았다. 내게는 낯선 한국 출신 화가. 고인이 된 천경자 작품 인상이 감돌았고 살바도르 달리 작품 느낌도 들었다. 아고라 갤러리에서 그녀 작품 보니 반가웠다.
또 현대 미술의 거장이라 알려진 이우환 전시회를 보러 다시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에 갔지만 난 철학이 부족한지 그의 작품이 이해되지 않았다. 서울대 미대에서 공부하다 일본에 건너가 철학을 공부했던 이우환.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려 작품값이 하늘로 치솟았겠지. 페이스 갤러리도 워낙 거물급 아티스트 작품 전시를 한 곳이고 현대 미술 감상 능력이 낙제에 가까운지 한 번 봐도, 두 번 봐도, 세 번 봐도 모르겠더라. 다음에 이우환 작품을 보러 갈 때는 철학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할까 봐.
가고시안 갤러리
가고시안 갤러리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가고시안 갤러리 두 곳 전시회 역시 나의 취향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바퀴 달린 의자가 전시 공간에서 혼자 굴러가고 그게 현대 미술전이라 하고. 메리 웨더포드 작품도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그녀 작품도 2번 봤다. 3번 보면 더 나아질지 모르겠다.
어제 첼시 폴라 쿠퍼 갤러리 50주년 특별 리셉션이 열렸는데 콜롬비아 대학 밀러 극장에 공연 보러 갔는데 약간 늦게 도착하니 무료로 주는 와인과 맥주도 못 마시고 그냥 음악만 감상했는데 약간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폴라 쿠퍼 50주년 리셉션에 갈 텐데 하고. 미술계에 종사하는 화가, 딜러, 아트 컬렉터와 기자 등이 찾아왔을 텐데. 같은 시각에 다른 행사가 열리면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가기 전에는 어느 게 더 좋은지 알 수 없고 가끔 후회도 하게 된다.
풀벌레 쉬지 않고 우는 가을밤은 점점 깊어만 간다.
10.10 수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