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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 싫어요"라고 말한 한인 택시 기사

뉴욕영화제, 줄리아드 학교, 카네기 홀에서

by 김지수


청명한 가을날 파란 하늘 보며 아들과 함께 걸으며 장을 보러 갔다. 채송화꽃과 무궁화 꽃과 배롱나무꽃은 어느새 안녕하고 저 멀리 떠나가고 말았다. 눈부시게 투명한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을 보며 가을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도로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 열매 덕분에 발 지압도 받았어. 청설모는 좋겠다. 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 도토리 열매도 가지가지. 귀족처럼 예쁜 도토리 열매도 보이더라.

서서히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도 보고 걷다 BJ's에 가서 식품을 구입했다. BJ's에서 보내온 할인 쿠폰도 담았는데 잠시 딴생각하는 순간 이미 계산이 끝나버리고 직원에게 말하니 고객 서비스 직원에게 말하라 하고 결국 필요 없는 시간도 쓰며 장을 보았다. 생수, 육고기, 우유, 생수, 달걀, 치약, 파스타 소스, 채소, 아보카도 등을 구입해 한인 택시를 불렀다. 기사님에게 추석 잘 보냈냐고 물으니 뉴욕에서 추석을 그냥 보낸다고. 우리 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뉴욕에서 사는 한인들이 대명절 추석도 그냥 보낸 사람들이 많은가 짐작을 했다.

그러다 집에 오는 동안 잠깐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5세가 될 때 뉴욕으로 가족이 건너왔는데 뉴욕에 온 게 너무 후회된다고. 뉴욕 생활이 정말 싫은 눈치였다. 결혼을 하니 아들을 출산하게 되고 그러자 부인이 미국에 있는 기사 여동생과 전화 통화를 수시로 했고 한국은 사교육비가 아주 많이 들고, 글로벌 세상이니 영어 교육도 중요하고, 나중 유학도 시키는 세상으로 변했으니 차라리 이민 가서 자녀 교육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뉴욕에 왔지만 아들이 잘 한 것은 영어 하나라고. 미국 학생들 공부도 정말 많이 시키니 이 정도 공부하면 한국 스카이 대학 왜 못 가겠냐고 하셨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다. 수 십 년 전 외국 유학은 보통 사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외국 유학 가볼까, 라는 생각도 많이 하고 이민 가서 사는 사람도 많지만 힘든 이민과 유학 생활에 모두 적응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뉴욕이 너무나 싫다고 하는 기사님. 지난번 만난 기사님과 대조적이다. 지난번 만난 기사님은 롱아일랜드에 집이 있고 부인은 자주 수영과 골프 하러 간다고. 형편이 좋으신가 봐요, 하니 "아, 그거 쉬워요. 그냥 하면 되지요"라고 했다. 가정마다 형편이 다르고 삶이 다르다.

오늘 만난 기사는 아들이 대학에 재학 중이고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부부는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라고. 외국에서 이민자로서 삶이 가볍지 않고 개인차가 크지만 언어 장벽이 높고 직장 구하기 힘드니 육체노동하며 지낸 이민자가 많고 그런 경우 종일 일만 하고 지내니 더 슬프고 그래서 고국에서 지낸 생활이 그리운 듯 보인다.

이민 생활이 힘드니 미국에서 오랜 생활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가지만 막상 돌아가면 한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도 있다고 하니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 중간에서 떠돌이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 아닌가 싶다. 아주 오래전 연구소에서 지낼 적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 출신 고아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미국 교육을 받고 지내지만 고아 자신이 느끼는 정체성은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 무엇이라고 들었다. 이민자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집에 도착해 식사를 하고 장 본 식품을 정리하고 맨해튼에 가려고 샤워하려는 순간 누가 노크를 했다. 쾅쾅 쾅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내려가니 경찰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우리가 경찰을 부른 게 아닌데 가끔씩 집에 찾아와 놀라게 하는 경찰들. 누가 장난질을 하는 걸까. 심심하면 경찰이 찾아와 노크를 한다. 경찰 부른 적 없다고 하면 그냥 돌아가는 경찰. 경찰을 보내고 외출 준비를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에 갔다. 요즘 시내버스도 항상 만 원. 빈자리커녕 손님이 너무 많아 비좁아 몹시 불편한 대중교통. 차가 없으니 참고 견뎌야지 어떡하겠어. 지하철을 타도 마찬가지. 지옥철 일 때가 더 많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몇 차례 환승하고 오랜만에 플라자 호텔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해 센트럴파크를 경유해 링컨 센터로 걸어갔다. 아직 노랗게 물들지 않은 공원. 음악 소리 들려오고, 수많은 종의 애완견도 보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고, 자전거 타고 달리고 초록 나무숲을 통과해 링컨 센터에 갔다.

지난 9월 28일부터 뉴욕 영화제가 열리는 링컨 센터. 한국 영화감독 이창동과 홍상수 영화도 올해 뉴욕 영화제에 올랐다고. 뉴욕 영화제 티켓이 17-25불 사이니 너무 비싸서 영화를 볼 수 있나. 25불이라면 차리라 오페라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들고. 이번 시즌 아직 오페라 한 편도 보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결국 영화는 안 보고 눈 감고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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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815.jpg?type=w966 사진 왼쪽 아르헨티나 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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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아르헨티나에서 온 영화감독 토크쇼를 잠깐 보았다. 그 감독 영화를 보고 토크쇼에 가면 좋을 텐데 형편이 안되니 안 보고 갔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고 토크쇼에 온 사람들 가운데 소수만 영화를 봤다고 하니 놀랐다. 감독은 그럼 영화도 안 보고 토크쇼에 왔다고 약간 흥분하고. 그럼 토크쇼 보고 영화 볼지 말지 결정할래, 라는 뉘앙스로 말했다. 영화감독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하면서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으로 영화 보는 거 안 좋아한다고 하고. 링컨 센터 근처에서 딸기와 노란 바나나 사서 가방에 담고 지옥철을 타고 플러싱에 돌아와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어제 가을비 오고 가을비 맞으며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바이올린 대회가 열렸고 4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레너드 번스타인 <세레나데> 곡을 연주했는데 평소 자주 안 듣는 곡이었고 3명의 학생들 연주까지 보고 홀을 떠났다. 학생들 수준이 매년 높아만 감을 느낀다. 그러니 갈수록 경쟁은 치열하고. 어제 누가 우승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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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카네기 홀에서 Sphinx Virtuosi 공연 볼 예정이라 마지막 1명 연주를 보지 못하고 줄리아드 학교를 떠나 지하철을 타고 콜럼버스 서클 역에 내려 카네기 홀로 걸어가는 동안 우연히 댄스를 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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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콜럼버스 서클 지나다 본 댄스



아주 오래전 같은 장소에서 댄스 하는 것을 보았고 그곳을 지날 때 내 머릿속에 댄스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 순간 전에 봤던 두 명의 댄서가 춤을 추니 눈앞에서 마법이 펼쳐졌다. 아주 잠깐 댄스를 하다 떠나버리니 찰나를 잡는다고 해야 할까. 콜럼버스 서클 메종 카이저에 들려 바게트 하나 구입해 가방에 담고 카네기 홀에 갔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공연 보러 갔는데 보컬 부분이 아주 좋아 천상에서 산책하는 느낌이 들었다. 황홀한 순간이었다. 평소와 달리 발코니 석에서 안 보고 다른 공연보다 티켓이 더 저렴해 무대랑 가까운 좌석에서 공연을 봤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벌써 추위 걱정할 시기가 찾아온 거나. 아름다운 시월 너무나 빨리 달려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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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여행 가면 좋을 텐데 말이다. 아름다운 트롬본 소리 들으며 메모를 마친다.
한없이 피곤이 밀려오는 가을밤 이제 휴식을 하자꾸나.



10월 12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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