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은 날 사랑하고

바흐 샤콘느와 오페라 아리아 듣는 가을밤

by 김지수


브런치 <뉴욕 산책>에 유령이 사나. 1주일 전인가부터 접속이 원활하지 않고 아주 어렵게 포스팅을 올렸는데 짜증 도수가 하늘로 올라갈 만큼 힘들게 했다. 어제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을 브런치에 올리려고 시도 시도 시도하다 포기하고 맨해튼에 외출해 늦은 밤 돌아와 다시 시도를 했다. 카카오톡 고객 서비스 센터를 찾아 브런치 문제에 대해 연락을 하고 다시 시도했는데 어렵게 포스팅이 올려졌으나 그 후로 다시 접속이 안된다. 유령 파티하는 거 같아. 불과 몇 분이면 포스팅할 것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그냥 흘러갔는지 화가 치밀려고 해.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기나.

곧 시월 말에 열리는 핼러윈 축제도 다가오고 시월 하면 2012년 10월 22일 뉴욕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샌디가 생각난다. 뉴욕은 지옥으로 변했고 수많은 집들이 허리케인에 의해 무너지고, 가로수 고목나무는 무너지고, 전기는 끊기고, 주유소에서 가스 채우는데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고 한동안 전기 공급이 안되니 집에서 식사도 못하고 마치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 죽도록 고생을 했고 그뿐 만이 아니다. 우리 가족이 살던 롱아일랜드 제리코 아파트 지붕이 날아가 버려 부엌과 거실 천정이 무너져 하늘에서 물이 쏟아졌다. 하늘에서 별빛 같은 은총이 쏟아져야 할 텐데.

아, 지옥 같은 한 달을 보냈다. 아파트 관리실에 연락을 하니 천재지변이니 보상도 안된다고. 정말 슬프고 답답하고. 세상에 태어나 아파트 지붕이 무너져 물이 쏟아진 것은 책에서도 읽은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 왜 내게 그 많은 시련을 주었을까. 방송에서 뉴욕에 샌디가 찾아올 거라고 했지만 한국에서 허리케인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기에 그때 난 아름다운 단풍을 보러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 사가모어 힐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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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이 지나면 단풍을 다시는 못 볼 거 같아서 차를 타고 혼자 달려가 노란빛으로 물든 단풍을 보고 돌아왔는데 그 후로 지옥의 바다에서 한 달 동안 지냈다. 국립 유적지 사가모어 힐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살던 곳. 아름다운 단풍은 보았지만 그때 난 주유소에서 가스를 채워야 했어. 아파트 관리실에서 보낸 직원들이 한 달 동안 아파트 천정 수리하느라 뚝딱뚝딱하니 어린 시절 읽은 "아기돼지 3형제" 동화도 생각이 났다.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어제 늦은 오후 지하철을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지하철도 유령인가.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고 마음은 급한데 자주자주 지하철이 멈췄다. 신호 작동 문제라고 방송이 울리고 택시를 타고 맨해튼에 갈 형편도 아니고 지하철이 최고의 교통수단이지만 가끔 지하철이 말썽을 피우고 홈리스는 도와 달라고 구걸을 하고 악취가 나고. 아, 뉴욕 지하철. 고맙기도 하지만 유령 같아. 여행객들 뉴욕에 방문하면 얼마나 피곤할까. 신호 문제로 느리게 느리게 운행하면 정말 힘들어. 어제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바이올린 공연이 열리고 미리 도착해 핫 커피 한 잔 마시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공연 보려는데 지하철이 자주 멈췄다. 어제는 거리 음악가도 안 보이고 음악이라도 들으면 그나마 위안이 될 텐데 시간만 흘렀다.

맨해튼에 살지 않으면서 매일 맨해튼에서 공연과 특별 이벤트 보는 것은 정열 없이 불가능하지. 가끔 유령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가끔은 지하철에 탑승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지옥철이고 승객이 너무 많아 너무너무 힘든 지하철.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 여러 차례 환승하고 왕복 몇 시간을 소비하며 맨해튼에 간다. 레스토랑에서 매일 식사하는 것도 아니고. 어제도 글 쓰고 식사 준비해 먹고 설거지하고 샤워하고 맨해튼 가니 정말 바빴다. 맨해튼이 날 부르지 않으면 안 갈 텐데 매일매일 날 불러낸다. 집에서 지내면 마치 산속 시골 같다. 아파트 고목나무 보고 가끔 하늘도 보고 하지만 오늘처럼 우울한 멜로디 들리는 흐린 하늘 보면 마음도 멜랑꼴리 하고. 이상하게 책도 집에서 읽으면 집중이 안 되고 북 카페에 가야 더 집중이 되니 이상해.

정말 어렵게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고 가방에 든 티켓 꺼내 직원에게 보여주고 천사 역할도 했다. 아들과 함께 보려고 미리 2장 티켓 받아두었는데 아들은 몸이 안 좋아 공연 보지 않는다고 하니 수위 앞에서 공연 보려고 기다리는 백인 할아버지에게 티켓을 건네주니 얼굴에 환한 미소가 보였다. 인기 많은 공연 표 받기 너무 어려워지고 한 달 전인가 미리 받아둔 티켓. 사랑하는 바흐 샤콘느 곡을 감상했다. 명성 높은 줄리아드 학교 교수님 연주로. 두 자녀도 나도 모두 사랑하는 바흐 샤콘느. 너무너무 슬프고 너무너무 아름답고 극과 극의 감정 모두 느껴지는 곡. 내 기분에 따라 샤콘느 곡 느낌이 더 많이 변하고. 바이올린 기교가 무척 어려워 연주가 힘들다고 하고. 줄리아드 학교 교수님 공연 보러 많은 사람들이 왔고 자주 만나는 분도 보고 줄리 학교 교수님과 학생들도 많이 왔다. 바흐와 바르톡 두 곡 연주할 예정이고 난 샤콘느 곡이 끝나자 가장 먼저 홀을 떠났다.






바흐 음악으로 명성 높은 K 교수님 평에 대해 생략하련다. 요요마와 정경화와 함께 체임버 뮤직도 공연하셨던 분. 오래전 같은 홀에서 그 교수님 제자들이 바흐 음악 연주하는 것도 보아서 얼굴이 익은 교수님. 음악 라이브 공연은 정말 어렵기도 하다. 아들은 샤콘느 연주가 아주 좋으면 녹음해 오라고 했지만 물론 학생이든 교수든 학교 공연 녹음은 할 수 없고 어제 공연은 녹음할 기분은 들지 않아 아들에게 공연 보러 안 오길 잘 했다고 연락을 하니 아들은 "샤콘느 연주가 어려워요"라고 하고. 역시 음악을 듣는 아마추어 입장과 연주하는 음악가 입장은 다르다. 오래전 운전할 때 자동차에서 자주 듣던 음악이 바흐 파르티타와 첼로를 위한 무반주 곡이었는데 차도 없으니 자주 안 듣게 되고 사실 한국에서는 녹음 음반을 자주 들었지만 뉴욕에서는 라이브 공연 보니 집에서 차분히 녹음 음반 들을 시간조차 없다.

저녁 7시 반 맨해튼 음대에서도 공연이 열려 난 커피를 마시고 약간 여유를 갖고 싶었다. 줄리아드 학교 스타벅스 카페에 가서 커피 주문했는데 식은 커피를 주었다. 아, 이럴 수가. 식은 커피와 내가 원하는 적당한 온도 커피 맛과 너무나 다른데 직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마셨다. 한마디로 돈만 내고 맛없는 커피 마셨다.

힘을 내어 반쯤 마신 커피를 들고 지하철역에 가서 1호선을 타고 콜롬비아 대학 역에 내려 맨해튼 음대로 향해 걸었다. 저녁 7시 말할 것도 없이 지옥철. 1호선 안에 들어가면 감사할 마음이 들 정도. 뉴욕 인구도 100년 전에 비해 많아질 테고 여행객도 많으니 당연 지하철은 더 복잡하고 하루아침에 지하철 노선 새로 완공할 수도 없을 테고 참고 견뎌야 하지만 정말 힘든 지옥철. 어렵게 탑승해 콜롬비아 대학 역에 내려걸었다. 오랜만에 밤 기운을 느꼈다.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고 빌딩 계단에는 홈리스가 누워 잠을 자고 참담한 기분이 들지. 저녁 7시 반에 시작하는 공연에 지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들이 오래전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에 재학할 때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바로 그 그린필드 홀.

사실 맨해튼에서 열리는 행사는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지금은 유료로 맨해튼 음대 필하모닉 공연이 변했지만 과거 무료였고 누구나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놀라웠다. 한국과 다른 뉴욕 문화를 처음 느꼈던 곳이 바로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을 보고 나서. 뉴욕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어찌 뉴욕 문화를 알 수 있겠어. 누가 내게 알려준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뉴욕에서 하나하나 새로운 정보 찾으며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게 되며 뉴욕 문화는 정말 아름답구나 하며 감탄을 하고 지낸다. 아들이 맨해튼 음대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지낼 수도 있었겠다. 맨해튼 음대가 무료 공연 여니 줄리아드 학교도 무료 공연 열겠지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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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음악을 사랑하는 70대 할머니 친구도 만났다. 성악을 정말 사랑하는 분 지난번 메트에 가서 오페라를 봤던 분. 어제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한 음악가들 공연이고 매년 시월에 단 한 번 열린다. 잊지 않고 방문해 아름다운 아리아를 감상했다.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약 700개 공연 가운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연 10위 안에 속하는 공연. 놀랍게 전날 가먼트 디스트릭트 아트 축제에서 봤던 백발 할머니도 오셨다. 어제 두 명의 테너와 세 명의 소프라노 공연 아주 좋았다. 가을밤에 듣는 아리아 너무 아름다워. 소아마비를 앓는 테너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웠고 어제 70대 할머니는 공연이 막을 내리고 바로 이러쿵저러쿵하면서 평가를 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감동을 주웠고 지난번 카네기 홀에서 들은 공연보다 훨씬 더 좋았다. 마침 할머니가 내게 카네기 홀 공연 어떠했냐고 물어서 일찍 홀 떠났다고 하니 웃으셨다. 아름다운 테너와 소프라노 목소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세상의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거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 안으로 들어가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타고난 재능과 끼가 없이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없겠지만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할지도 생각했다. 가을밤에 듣는 아리아 황홀해. 아, 메트에 가서 오페라 보고 싶어.

어제 본 두 공연 모두 무료였다. 뉴욕 무료 공연도 정말 좋다. 가끔은 카네기 홀 공연보다 더 좋다.
흐린 가을날 아침에 메모를 마친다.


10. 20 토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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