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떡해 :슬픈 뉴요커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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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그린 마켓 풍경




집에 홍수가 난 줄 알았어. 나이아가라 폭포수가 떨어진 소리가 종일 울렸어. 아직 그 폭포 보러 구경도 안 가서 신이 선물을 준 거나. 세상에 온수가 쉬지 않고 쏟아져 욕조가 넘치려고 해 아파트 슈퍼에게 전화하니 슈퍼 부인이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 수도꼭지가 잠기지 않은 사태가 발생.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한 것을 눈치채고 남편(아파트 슈퍼)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밤 우선순위라고 하면서 다른 집 화장실 변기도 고장이라고 하며 전화를 끊고 집을 떠났다.

가슴이 쿵쿵 쿵. 욕조가 넘치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어. 온수가 집에 넘칠 거 상상을 해 봐. 아, 숨이 헉헉 막혔어. 21세기에 살면서 별일이 다 생겨. 복 많은 사람은 아무 일 없이 잘도 지내던데 왜 내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자주자주 찾아오는지 알 수가 없어. 수년 전 샌디가 찾아와 하늘에서 비가 뚝뚝 떨어져 놀라서 쓰러질 뻔했는데.

저녁 7시 슈퍼가 오기로 되어 있는데 40분이 지나 연장 도구를 들고 집에 도착했다. 욕조가 곧 넘칠 거 같은데 슈퍼는 40분이나 지각을 하고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하지 않고 기다렸다. 몇 달 전인가 부엌 싱크대 아래 배관 파이프가 고장이 나서 몇 시간 동안 수선을 해서 욕조 수도꼭지도 몇 시간 동안 수선할 줄 알았는데 40분 정도 걸려 마무리되었다. 갑자기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원래 늘 집은 조용한데 욕조 수도꼭지가 잠기지 않아 머리가 멍했다.

지난번 오래된 가구를 거리에 버렸는데 아파트 지하에서 우연히 슈퍼 부인을 만났는데 경찰에게 딱지를 받아 벌금을 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고민하다 100불을 건네주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였어. 롱아일랜드 힉스 빌 이케아에서 산 조립 가구 가격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미리 알았으면 거리에 버리지 않았을 텐데 혹시 누구 필요한 사람 있으면 가져가 사용하란 의미로 두다 사고를 쳤다. 가끔 동네를 산책하면 집 앞에 버려진 가구도 보고 책도 보고 했는데 운이 없었던 걸까.

운이 없는 사람은 늘 운이 없다. 롱아일랜드에서 뉴욕 시 플러싱으로 이사 온 후로 주차 위반 티켓도 받아 속이 상했다. 롱아일랜드는 주차 문제가 없지만 뉴욕 시는 주차 문제가 심각하고 집 앞 도로에 요일별 주차 금지법이 있다는 것도 몰라 일어난 사고였다. 수 십 불이 금방 날아가니 속이 많이 상했다. 가끔은 깜박 잊어버려서 사고가 났다. 놀라서 달려가면 어느새 경찰이 노란 티켓을 두고 떠난다. 만약 지난번 아파트 슈퍼에게 100불을 주지 않았다면 오늘 집에 찾아와 고쳐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때도 아파트에 수리할 게 있으면 관리실에 연락했고 수리공이 바로 달려오지 않아 오래오래 기다렸다. 어느 날 팁을 듬뿍 주니 그 후로 연락을 하면 빨리 집에 오곤 했다. 역시 돈이 좋은 세상이구나. 돈, 돈, 돈한 자본주의 세상. 돈이면 미쳐 날뛰는 세상에 살고 있어.


이상한 일이야. 아무래도 유명 인사가 되려나. 자꾸 여기저기서 갈라와 펀드레이징 이벤트에 오라고 연락이 온다. 내 이메일 주소를 어찌 알고 보낼까. 답답하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달려가 볼까. 메가 밀리언 로또가 당첨되면 갈라 행사도 가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텐데 누가 도움 달라고 하면 도움도 주고. 오래전 서부 여행 가서 만난 한인 여행사 가이드도 생각이 난다. 1년 동안 힘든 일 하며 모은 돈 전부를 들고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하루아침에 탕진했다고. 그 후로 절대로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 미국 서부 여행 버스 타고 돌면 끔찍한 공포다. 무더운 여름날 서부 여행 갔는데 타이어가 터져 도로에서 새 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숨이 헉헉 막힌 순간 한인 가이드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왜 갑자기 이리 추워진 거야. 하얀 겨울이야. 창밖에 수 십억 개의 하얀 눈사람이 있다고 상상할 정도로 추운 날이 지속된다. 어제는 마음도 복잡해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을 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느낌이 드는 곳에 세탁물을 들고 찾아갔는데 다행스럽게 빈 세탁기가 보여 세탁을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복잡한 내 마음도 빨래처럼 하얗게 깨끗하게 되면 좋을 텐데. 매일 잠 못 드는 밤. 눈이 감기지 않아. 삶은 왜 뜻대로 되지 않은 걸까. 신은 어디서 잠들고 있는 것인지. 아... 일요일 세탁이라도 해서 다행이고 집에서 머물다 정말 슬픈 글을 읽었다. 그리 슬픈 글을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반복해 읽었어. 연인이 보낸 레터도 아닌데. 세상에 슬픈 일이 왜 이리 많은 거야. 알 수 없는 일이 참 많아.

정말 이상하지. <브런치>는 왜 열리지 않은 거야. 랩톱도 휴대폰도 열리지 않아. 알 수가 없어. 카카오톡 고객 서비스 센터에 연락한 지 며칠 지났는데 답변도 없어. 유령이 찾아온 거니.

일요일 오후 맨해튼에 오라고 70대 할머니 친구가 말했는데 난 에너지가 없어서 가지도 않았어. 할머니가 바흐 음악도 듣고 다른 이벤트도 함께 보자고 했는데 집에서 지냈다. 지난 토요일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할머니를 만났다. 예비학교 플루트 교수님 연주를 보러 갔는데 할머니가 꼭 보라고 해서 갔다. 예비학교 학생들과 함께 연주를 했는데 모던한 곡이라 연주가 어려운지 날카로운 음도 들려 귀도 막고 들었고 마지막 곡은 플루트와 바이올린, 베이스, 기타 등과 함께 공연했고 듣기 좋았다. 명성 높은 교수님 연주라 꽤 많은 방문자가 왔다. 아주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더 멋졌다. 물론 교수님 플루트 소리도 아름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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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지난 토요일 오후 북 카페에 가서 책과 커피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을 햇살 드는 창가도 바라보고, 백발 할아버지 한숨도 듣고, 자주 만나는 중년 뉴요커 아저씨도 보고, 뉴욕 타임지와 이코노미스트지를 읽고 있더라. 나도 몇몇 잡지 읽다 서점을 나왔다. 1873년에 오픈한 반스 앤 노블 서점. 정말 놀랍지. 한국에서 어릴 적 서점에 가면 참고 서적을 많이 봤는데 한국은 언제 서점이 생겼을까. 19세기 서점이 오픈했다는 게 내게 놀랍기만 하다.



토요일 유니언 스퀘어 파크에서 그린 마켓이 열리고 노란 해바라기 꽃과 국화꽃과 맨드라미 꽃을 보았다. 오랜만에 스트랜드 서점에도 찾아가 헌책도 구경했어. 그 후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공연 보고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주말 지하철이 정상으로 작동하지 않아 플러싱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기사님이 함흥차사. 날씨는 추운 날 1시간 가까이 버스를 기다렸다. 그럴 줄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걸어갔을 텐데 버스가 올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그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하얀 눈사람으로 변할 줄 알았어. 버스가 사고를 부리면 맨해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최소 3-4차례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고 맨해튼에 가는데 날 골탕 먹이면 너무 힘들어. 주말 정상으로 운행하지 않으면 교통 시간도 훨씬 더 오래 걸리고.



콩알만큼 작아진 심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음속 폭풍도 지나가면 좋겠다. 아, 하늘이시여... 당신의 뜻은 어디에 있나이까.



10. 21 일요일 밤


며칠 <뉴욕 산책 브런치>가 열리지 않아 늦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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