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토스카

맨해튼은 복잡해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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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또 늦잠을 자고 말았다. 자정이 지난 새벽에 집에 돌아와 바로 잠도 못 들고 몇 시에 눈이 감겼는지 의식조차 못하고 늦게 잠들다 늦게 깨어난 아침 마음만 부산하다. 하늘은 흐리고 멀리서 새들의 합창 들려오고 오늘 하루로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도 해야 하고 곧 브런치 먹을 시간 곧 식사 준비도 해야 하고.

오늘처럼 흐린 가을날 아침에는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내 오자. 하얀 백조가 사는 황금 호수가 있는 곳에 아들과 함께 자주 산책을 하러 간지 언제인가. 집에서 왕복 7마일 걷고 달리고 하면서 그곳에 가서 백조랑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며 달리아 꽃, 장미꽃, 노란 탱자, 멍멍 짖는 강아지와 넓은 운동장과 고목나무와 주택가를 보며 집에 오곤 했는데 요즘 점점 더 게을러지는 게 분명해. 가을바람도 느끼며 호수가 벤치에 앉아 책 읽으며 길 건너 푸른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하얀 요트도 보면서 마음의 우울을 달래면 좋을 텐데. 거기도 서서히 노랗게 단풍이 들겠다. 돌계단 위로 수북이 떨어진 나뭇잎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어. 아름다운 노란 단풍을 아무도 보지 않아 나 혼자 실컷 감상했어. 왜 이 아름다운 단풍을 보지 않은 거야, 하면서.

어제도 늦은 오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어느 종착역에 내릴지 고민을 했다. 고민 고민하다 영화처럼 아름다운 그랜드 센트럴 역에 내렸다. 얼마 만에 방문했을까. 그랜드 센트럴 역이 세계 전쟁터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 가끔씩 방문하곤 했는데 어제 늦은 오후 그곳 느낌은 한가로운 기차역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온 손님 만날 약속 장소로 좋기도 하지만 첫 방문자에게 넓은 그랜드 센트럴 역 어디서 만날지가 중요하다. 잘못하단 길을 잃고 헤맬 수 있으니. 별자리로 장식된 아름다운 천정이 보인 시계탑이 세워진 중앙홀에서 만나자고 하면 더 쉬울지.

딸이 뉴욕에 와서 1년이 지나 맞은 첫여름 방학 예일대 여름 캠프에 참가했고 그때 우리 가족은 딸 짐을 들고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뉴 헤이븐에 갔다. 그때 추억도 떠오른다.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던 때고 낯선 도로 운전하기 싫어하는 난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지하철과 시내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제리코에서 뉴 헤이븐에 다녀왔으니 예일대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두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니 딸이 많이 섭섭했지만 대중교통 이용하니 내 편한 대로 버스와 기차 스케줄이 운행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예일대에 방문했으니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며 이야기도 나누다 천천히 기차를 타고 뉴욕에 돌아오면 더 좋았을 테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이 누나 트렁크를 기숙사에 내려 두자 낯선 학생이 아들에게 "예일대 로스쿨에 다녀요?"하니 우리 가족이 웃었다. 뉴욕에 와서 1년 공부하고 첫해 예일대에서 여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캠프에 참가한 것도 상당한 도전이었고 뉴욕에 오기 전 한국에서 알 수 없는 미국 교육 환경이었다.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역에 내려서 5번가 북 카페에 가서 잠깐 책도 읽고 은행에 가서 세탁할 때 필요한 25센트 동전도 교환하고 링컨 센터에 갈 계획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랜드 센트럴 역이 너무 복잡해 어지러웠고, 그랜드 센트럴 역 빠져나오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고, 5번가 은행에 도착했는데 방문객이 너무나 많아 오래오래 기다려야 하니 시간이 하늘로 날아가고, 은행 직원에게 동전을 달라고 하니 은행에 동전이 조금밖에 없다고 조금 주니 더 허탈하고, 근처에 있는 북 카페에 가니 손님이 너무 많아 빈 테이블이 없고, 5번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걷기도 힘들었다. 할러데이 시즌 라커 펠러 크리스마스트리 구경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복잡하니 피곤하기만 했다. 맨해튼에서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어디에 있을까. 맨해튼 분위기는 특별하다. 여행객 너무 많고, 거리에 홈리스 가득하고 악취가 나는 곳도 많고 뉴욕에 첫 방문한 여행객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도시인 줄 몰라.

허탈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링컨 센터에 가려고 라커 펠러 센터 근처에서 지하철을 탑승했는데 나의 실수였고 지하철은 나의 목적지가 아닌 어퍼 이스트사이드 렉싱턴 애비뉴에 도착. 말할 것도 없이 퇴근시간이라 지옥철이라 고된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 들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 역으로 가서 1호선을 타고 링컨 센터 역에 도착했다. 미리 알았다면 대소동을 피우지 않았을 텐데 얼른 은행에 가서 동전 교환하고 북 카페에서 한가로운 시간 보내다 링컨 센터에 가려고 했지. 모든 게 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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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링컨 센터 분수를 보며 메트 박스 오피스에 갔다. 저녁 7시 반 토스카 오페라 공연. 메트에 사람들이 아주 많고 복잡했다. 원래 일찍 링컨 센터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모든 게 다 틀어져 사람들이 아주 많은 복잡한 시간에 도착해 줄을 서서 오래오래 기다리고 내 순서가 오자 직원에게 라스트 네임을 말하고 토스카 티켓을 달라고 요구했다. 저녁 7시 반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고 일부 사람들은 오페라 보러 공연 홀에 들어가지만 난 메트를 떠나 근처 단테 파크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 카페에 갔다. 딸이 준 스타벅스 쿠폰으로 모카 프라푸치노를 주문하고 다시 기다렸다. 가는 곳마다 손님이 많고 복잡하니 기다린 시간이 아주 많았다. 커피 마시고 오페라 볼 수 있는지 염려도 되었으나 다행히 커피를 마실 시간이 있어 좋았다. 3시간 동안 오페라 보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피곤한 상태로 가면 오페라도 재미도 없고 일찍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얼마나 어렵게 구한 러시 티켓인데.

이번 시즌 처음으로 러시 티켓 구입했다. 얼마나 힘든지 몰라. 지난 화요일도 러시 티켓 사려고 온라인에 접속했는데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소동을 피우고 다시 다시 다시 스무 번도 더 시도를 했으나 인기 많은 오페라였는지 내게 러시 티켓은 돌아오지 않았다. 티켓 사는 버튼을 눌렀으나 빙글빙글 돌아만 가고 시간이 흐른 후 이미 매진 상태라고 뜨고.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했다. 안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리고 어제 러시 티켓 구하려고 시도를 했다. 운 좋게 티켓이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신용 카드가 문제가 있다고 메시지가 떴다. 얼마나 오랫동안 오페라를 보지 않은 거야. 오래전 신용 카드 새로 받았는데 메트 내 정보에 오래된 신용 카드 기록이 있어서 사용 불가. 아, 한숨이 나올 뻔. 아들도 러시 티켓 도전해 한 장 구입했고 바로 그 티켓으로 어제 오페라를 보았다.

오랜만에 메트에 들어가 붉은색 카펫 위를 밟고 걸으며 아름다운 샹들리에 불빛도 보고 오케스트라 좌석에 앉아서 푸치니 토스카 오페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어제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 Sondra Radvanovsky 소프라노와 낯선 테너 Joseph Calleja가 주연으로 나와 슬픈 아리아를 불렀고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테너 목소리가 황금빛. 가슴이 녹더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별이 빛나건만> 등이 있다.











오래전 마리아 칼라스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메트에서 공연할 적 봤다면 더 좋았을까.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아리아가 너무 유명하고 그녀가 맨해튼에서 탄생한 것도 뉴욕에 와서 알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그녀 이름을 보고 호기심 가득했는데 나중 알고 보니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였다. 사형 선고를 받은 카바라도시가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뭐냐 물으니 사랑하는 연인 토스카에게 전할 편지를 쓰고 싶다고. 그녀와 아름다운 사랑을 회고하며 부른 슬픈 아리아. 가슴 아픈 아리아를 부르며 두 명의 주인공이 죽으며 오페라는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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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오페라 막 내리면 서두를 수밖에 없고 막이 끝나고 오페라 가수들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하지만 난 먼저 메트를 나와 아름다운 분수를 보며 무사히 오페라를 봤구나 하며 밤하늘을 보니 둥근 보름달이 비쳤다. 얼른 링컨 센터 지하철역에 갔지만 1호선이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니 한숨이 나올 뻔. 익스프레스 운행하는 72가에 가려고 반대편 지하철역으로 가서 1호선 탑승. 승객이 너무 많아 가까스로 탑승. 72가에 도착 다시 지하철 기다리고. 10분 후 인가 지하철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 도착. 다시 7호선 기다려 탑승. 플러싱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가 오지 않아 한밤중 추위에 덜덜 떨며 오래오래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미리 알았다면 메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서둘렀지만 지하철과 시내버스 소동으로 피곤만 하고 추위에 고문당했다.

아름다운 시월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한국에서 봤던 황금빛 들판도 그립고 감 익어가는 시골 풍경도 그립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가서 뛰놀며 뒤뜰에 떨어진 홍시를 먹으며 행복했던 추억도 떠오르고 할아버지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지 너무너무 오래되고 아버지도 저세상으로 떠난 지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친정아버지랑 비슷한 연령인데 세계적인 플루트 연주가 제임스 골웨이는 너무나 정정하고 플루트 연주도 멋지고. 축복받은 인생 같아 보였다. 사랑하는 플루트 연주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노년을 보내니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사람마다 다른 인생의 문이 열리고. 아, 알 수 없는 슬픈 인생. 알라딘 램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니에게 내 소원을 빌어볼까. 내 소원은 비밀이야. 내 소원이 무언지 아무도 모를 거야.

10. 26 금요일 오후 1:30
늦잠 자고 일어나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세탁을 하며 쓴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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