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에서 안나 네트렙코 공연 보고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가곡 '겨울 나그네'가 생각나는 추운 겨울날 지하철을 타고 카네기 홀에 갔다. 지하철은 정상 운행 안 하니 고생도 하고 지하철 안에서 절름발이가 들려주는 슬픈 노래도 듣고 창밖을 보았다. 세상에 슬픈 노래가 많은 거 보면 슬픈 사람들이 많은가 봐. 구걸하는 홈리스도 절름발이 될 거라 미처 몰랐을 거야.
지하철은 달리고 퀸즈보로플라자 역에서 내려 카네기 홀에 가는 지하철에 환승. 평소 같은 층 플랫폼을 이용하는데 어제는 위로 올라가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가서 내려 카네기 홀에 갔다.
현존 세계 최고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공연이라 오페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가끔 카네기 홀에서 만나는 오페라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리처드도 만나고, 퀸즈에 사는 작곡가도 만나고, 중국인 시니어 벤저민도 만나고 플로리다에서 온 할머니 등 꽤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오페라 지휘자 리처드는 전날 카네기 홀 웨일 리사이틀 홀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고 얼마 전 한국 소프라노 박진원 공연 시 피아노 반주를 했다고 하며 한국 출신 음악가들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는 내가 공연 많이 보는 줄 알기에 혹시 박진원 아냐고 물었지만 모르는 성악가였다.
그 피아니스트는 가끔 메트에 가서 피아노 반주도 한다고 말하니 "이번 시즌 오페라 얼마나 많이 봤어요?"라고 물으니 "거의 다 봤어요'라고 하면서 베르디 오페라 '오셀로'가 아주 좋은데 이번 시즌 메트에 두마멜 지휘자가 데뷔하는데 오페라 지휘는 처음이라서 어쩔지 모른다고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음악 전공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 무슨 길이든 어렵지만 음악가의 길은 너무너무 힘들고 경쟁이 치열하고 돈도 많이 든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 거의 다 안다. 음악가는 무엇보다 재능이 중요하지만 재능만으로 위대한 음악가 되는 것은 아니고 훌륭한 스승과 부모 뒷받침과 음악가의 정열과 헌신과 운 모두 필요하니 쉽지 않다. 한국 출신 뛰어난 음악가들도 너무나 많고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 소프라노 조수미, 메트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홍혜경과 이용훈 등. 전에 카네기 홀에서 만난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 과정 하는 여행객도 20년 이상 피아노 반주자로 활동하다 음악가의 길이 너무 험난하니 전공을 바꿨다고 하며 센트럴파크 웨스트 옆 YMCA 숙소가 저렴해 머물고 있는데 시설도 형편없고 너무 소란스러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또 오래오래 전 아들이 콜롬비아 대학에서 학교 투어 안내와 입학 안내 레터를 받고 찾아간 적이 있고 그때 만난 투어 가이드 역시 피아노 반주자로서 오래오래 활동을 하다 콜롬비아 대학에서 로스쿨을 다닌다고. 음악가로서 불안한 미래보다 변호사 미래가 더 낫다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그때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듀오 '사이먼과 가펑클 '그룹에 대해 듣게 되었고 가펑클이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아들은 나보다 늦게 카네기 홀에 도착했고 1층 로비에서 아들 기다리는 동안 낯선 여자가 내게 표를 팔라고 해서 웃었다. 기회는 항상 오지 않고 어렵게 구한 티켓을 팔 생각은 없는데 아무나 붙잡고 표를 팔라고 해. 암표상도 아닌데 표를 팔려면 왜 표를 사니?
블랙 드레스 입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어제 공연은 평소와 달리 오후 2시. 대개 카네기 홀 공연이 예정보다 몇 분 늦게 시작하고 어제도 2시가 지나 피아니스트와 안나 네트렙코 소프라노가 무대에 올랐다. 누가 날 만지면 얼음으로 변할 거처럼 추운 겨울날 얇은 드레스 입고 노래를 부르는 소프라노. 그녀는 예쁜 장미꽃 다발을 안고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잠시 세상의 고통을 잊어버렸다. 왕도 노예도 군인도 홈리스도 없는 아름다운 궁전. 돈과 건강과 인간 세상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없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장미꽃향기 가득한 곳에서 산책하는 느낌이 든 공연이었다. 휴식 시간 끝나고 2부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별 모양 풍선을 들고 무대에 오른 안나 네트렙코. "순간아 영원하거라"라, 마법을 걸고 싶을 정도로 최고의 공연이었다. 앙코르 곡으로 평소 귀에 익숙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푸치니 아리아도 불러 좋았다.
아들과 내 옆자리에 앉은 중국인 시니어 부부는 어제 안나와 함께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David Chan이 전 메트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뽑은 음악가라고 말하고 그 부부도 나처럼 소프라노 목소리에 행복하다고. 부부 함께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는 거 보면 아름답게 보인다. 그 부부 딸은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 마치고 영국 런던 근처 대학에서 교수를 한다고 하고 지난봄엔가 딸 초대로 런던에 다녀오셨다. 너무나 수수한 복장으로 공연을 보러 오는 벤저민. 뉴욕에 이민 온 지 30년이 지났고 상하이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다 뉴욕에 와서 특별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은퇴하고 문화생활하고 부인이 일하고 돈을 번다고. 우리는 카네기 홀 맨 꼭대기 발코니 석에 앉아서 공연을 보지만 감사함으로 본다.
플러싱 주택가 크리스마스 장식
어제는 카네기홀에서 공연 보고 바로 지하철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식사하고 고구마와 두부 사서 손에 들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오다 이웃집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았다. 할러데이 시즌 플러싱 주택가도 장식을 한다. 어제 일요일 오후 라커 펠러 센터에서 튜바 공연을 했지만 안나 네트렙코 공연을 보느라 볼 수 없었다.
생은 아무도 몰라. 난 어릴 적 뉴욕에 온다는 상상조차 안 했다. 어느 날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지내니 자본주의 꽃이 피는 뉴욕에서 존재감은 먼지만큼이나 되나 할 정도로 세상의 고통을 느끼는 뉴욕이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보면 행복하기만 하다. 다른 어느 즐거움에도 비교할 수 없다.
랩톱을 켜고 막 메모하려는 순간 보스턴에서 지내는 딸이 직장 동료가 약혼했다는 소식을 알려주면서 자신은 마치 '레미제라블' 주인공 같다는 슬픈 말을 하니 가슴 아팠다. 하버드대학 수석 졸업한 직장 동료는 미국 출신이고 대학 동료와 만 8년 만에 약혼했다고. 오래오래 연애하고 약혼하니 멋진 커플이다. 자녀를 많이 출산해서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하고 싶은 동료와 딸은 극과 극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것과 이민자 삶은 극과 극이다. 신분 문제와 언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공부하는데 언어 장애가 주는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 직장 구하는데 언어와 신분 문제로 받는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
딸은 엄마의 도움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개척하는 삶이니 오죽하면 레미제라블 주인공 같다고 표현했을까. 명성 높은 대학 연구소에서 직장 구했지만 이민국에서 비자 거절하니 서울에서 몸 하나 누울 곳 있는 작은 공간에서 1년 머물며 다시 비자 신청하고 이민국 허가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미국에 돌아왔지만 영주권이 없는 이민자의 삶은 슬프기만 하다. 가슴 아프지만 무거운 현실에서 엄마는 딸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다. 미국이 무언지 뉴욕이 무언지 아무것도 모르고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공부하다 머물고 있지만 이민자로서 겪는 아픔과 고통을 차마 글로 적을 수 없고 침묵의 노래를 한다.
이민자도 각각 달라. 이민 1세와 1.5세와 2세는 다르다. 국제화 세상 국제결혼한 부부도 있고 결혼으로 쉽게 신분 문제 해결하는 경우와 무에서 시작하는 이민자 삶은 너무나 달라. 최소 영주권 있고 언어 장애가 없다면 외국 생활은 극적인 고통의 문은 통과한 셈이다. 물론 극적인 고통의 문을 통과 후도 인간의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영주권과 풀타임 직장이 있다면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 셈이다. 유학생이라도 최소 석사 학위 있고 미국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는 취업 비자받기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나머지 경우는 상당히 힘든 미국의 현실이다. 취업 비자와 영주권은 다르고 점점 영주권 받기 어렵다고 한다. 지금 그렇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항상 예외는 있고 한국이든 외국이든 럭셔리한 삶을 누리는 소수와 경제적인 불안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12. 10 월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