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창가로 겨울 햇살 비추는 화요일 아침. 유튜브로 크리스 보티의 트럼펫 연주를 듣는다. 아름다운 트럼펫 소리. 뉴욕에 오기 전 트럼펫과 색소폰 등 금관악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뉴욕에 뛰어난 음악가가 많아서 트럼펫의 아름다움도 느끼고 있다. 가끔씩 지하철에서 듣는 색소폰 소리도 너무 아름답고 꼭 카네기 홀과 링컨 센터에서 듣는 공연만이 좋은 거는 아니다. 해마다 연말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블루노트에서 크리스 보티 연주가 열린다. 12월 10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공연료가 저렴하면 꼭 보고 싶은데 그곳은 저렴하지 않아 (바$55/테이블$85). 또 추가 비용이 든다.
뉴욕 공연 티켓은 서민에게 너무 부담되거나 아니면 무료 또는 저렴한 공연으로 나뉜다. 줄리아드 학교 댄스 공연도 정말 좋다. 티켓이 30불. 결코 저렴하지 않아서 볼 수 없어. 맨해튼에서 수많은 공연이 열리고 보고 싶은 공연은 무척 많으나 경제적인 형편과 시간적인 한계로 모든 공연 볼 수 없어서 주로 카네기 홀과 메트 오페라 티켓을 사서 보는 편이다. 그래서 메트 러시 오페라 티켓 25불은 뉴욕의 베스트에 속한다. 나의 입장과 달리 메트 오페라 경영이 상당히 어렵다는 소식도 들었다. 오페라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전에 카네기 홀에서 헨델 오라토리오 공연 볼 적 프로그램 보니 헨델이 런던에서 오페라 컴퍼니 운영하다 파산했다는 글을 읽었는데 웃으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헨델은 무척 힘들었을 텐데 웃고 말았어. 언제 형편이 좋아지면 크리스 보티 라이브 공연은 보고 싶어.
어제 석양이 비칠 무렵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뛴다. 늦은 오후 하늘에 예쁜 초승달도 보였다. 석양과 초승달 벗 삼아 맨해튼에 가니 기뻤다. 타임 스퀘어 역에서 환승 승객 많은 1호선에 탑승 링컨 센터 역에 내려 마라톤 선수처럼 달려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 어제저녁 6시 공연에 늦으면 안 될 거 같아 달렸는데 수위가 내 가방 검사를 했다. 파리와 런던 테러 후 수위가 매번 갈 때마다 낡고 오래된 가방 안을 샅샅이 검사한다. 가방 안에는 책 한 권과 카네기 홀에서 가져온 목캔디 사탕과 낡은 지갑과 메트로 카드와 아파트 열쇠와 카네기 홀 티켓과 줄리아드 학교 티켓이 전부. 전에는 노트와 펜도 가방에 담았으나 요즘은 귀찮아 담지 않는다.
미리 받은 공연 티켓 보여주고 폴 리사이틀 홀에 입장하니 이미 홀은 꽉 차서 평소 앉는 내 자리에 앉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무대 가까운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바로 앞에는 지난번 메트 오페라 볼 때 만난 대머리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라보엠 오페라 볼 때 콜롬비아 대학원생과 휴식 시간 이야기를 했고 그 학생 외에 줄리아드 학교에 가면 꼭 보는 할아버지를 봤다. 늘 혼자 줄리아드 학교에 오셔 공연을 보는 할아버지랑 이야기는 한 적이 없어서 무얼 하는 분인지 모른다. 아마도 은퇴한 분일 거라 추측을 한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슈베르트, 리스트 곡 등을 불렀다. 테너와 소프라노와 바리톤 목소리에 행복한 순간. 독일어를 귀로 들을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알아들을 수 없는 슬픈 독일어.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열심히 배울 걸 그랬어 후회가 되지만 이미 늦었어. 오래전 한국에서 고등학교 과정 제2외국어 선택하는데 대개 불어와 독일어 가운데 선택했고 우리 학년은 독일어 수업을 받았다. 요즘은 독일어와 불어는 인기 없다고 하고. 서울대 졸업한 선생님이 늘 같은 톤의 목소리로 독일어 교재를 읽으셔 잠이 쏟아졌고 한국어와 다른 독일어 수업 초기 단계 암기해야 할 것도 무척 많아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추억도 생각난다. 잠시 공연 보며 무거운 현실을 잊는 천상에서 산책하니 기분이 좋았어. 공연 보는 즐거움. 뉴욕의 최고는 공연 예술이라고 백만 번이라도 외칠 수 있어.
공연이 막이 내리고 화장실에 갔는데 날 부르는 할머니. 로비에서 기다린다고 하고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며칠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 난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줄리아드 학교 카페로 가자고 말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 주문하러 갔는데 하필 바리스타가 안 보여 다시 소파로 돌아와 할머니랑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만나지 않은 동안 할머니는 뉴욕대, 메네스 음대와 맨해튼 음대에서 공연을 봤고 난 메트 오페라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봤어. 할머니는 뉴욕대 합창 공연이 정말 좋다고 내게 자주 말했는데 올해도 합창 공연 안 봤다고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말했다.
70대 뉴요커 할머니 친구 수첩과 공연 프로그램. 뉴요커는 거의 매일 공연 볼 수 있어서 좋아.
할머니는 스마트폰도 없고 두툼한 수첩에 그날그날 공연 스케줄을 기록한다. 어제는 할머니 수첩을 아이폰에 담자고 하니 새로운 수첩 곧 산다고 해서 난 새로운 수첩 필요 없고 할머니 수첩이 좋다고 하며 뮤지엄에 들어갈 정도로 소중하다고 하니 할머니가 웃었다.
수년 전부터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자주 만나는 할머니. 할렘에 살다 브롱스로 이사했는데 전과 마찬가지로 마약 딜러가 할머니 집에서 마약을 배분하는 믿을 수 없는 슬픈 일이 일어나는 뉴욕. 한국에서 마약 하면 무서운 범죄로 생각했는데 뉴욕은 한국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 타임 스퀘어에서 홈리스가 Weed 산다고 구걸을 하니 놀랍기만 하고. 할렘 할머니 아파트도 마약 딜러가 있어서 고민하고 이사 갔는데 브롱스 아파트도 마찬가지로 마약 딜러가 할머니 집 문을 열고 들어와 거래를 한다니 너무 놀랍고 무섭다. 할머니는 수차례 열쇠를 바꿨지만 소용이 없다고. 뉴욕은 아직도 위험한 곳이 많은 듯. 오늘은 트리니티 교회와 맨해튼 음대에서 공연 볼 예정이라고.
요즘 학기 말 크리스마스 방학 전 매일 수많은 공연을 여는 맨해튼. 줄리아드 학교, 맨해튼 음대와 메네스 음대와 콜롬비아 대학 등에서 많은 공연이 열린다. 줄리아드 학교와 달리 메네스 음대는 스티븐 이설리스 첼로 마스터 클래스가 무료야. 화요일 오전에 열리는데 맨해튼에 살지 않아서 가지 못하고 집에서 글 쓰고 있어.
내가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간다고 하니 빈 대학교 바이올린 교수님이 깜짝 놀라며 빈으로 유학 오라고 했다. 그때 마침 빈 대학교수님이 한국에 방문하셔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이야기를 했다. 독일어 권 빈으로 유학 가기는 쉽지 않았어. 언어가 다른 점이 무엇보다 가장 문제. 마음 같아선 두 자녀 중고교 과정은 유럽에서 하고 대학 과정은 미국에서 하면 좋을 거 같으나 이상과 현실이 큰 차이가 있고 우리 가족에게 도움 줄 사람도 없는 입장에서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줄리아드 학교 크리스마스트리 컨템퍼러리 아트 같아
어제저녁 8시 피아노 공연. 할머니는 먼저 떠나고 난 피아노 공연을 봤다. 지하철이 지옥철 될 가능성이 높은 시간에 차라리 공연 보는 게 백만 배 더 낫다는 생각에 학교에 더 오래 머물렀다. 피아노 공연 보러 온 청중들은 소수. 6시 보컬 공연은 인기도 많고 미리 티켓 받아야 하지만 언제나 홀은 꽉 차고 어제 피아노 공연은 티켓이 필요 없고 소수만 찾아와 공연을 봤어.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사는 90세? 할머니도 와서 피아노 공연을 봤어. 어제 프로그램은 전부 베토벤. 아들이 무척 사랑하는 베토벤 월광 소나타도 들어서 행복했다. 월광 소나타는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곡이고 워낙 명성 높아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곡.
베토벤 곡 연주하니 교사로 재직할 때 처음으로 담임 맡을 때 실장이 사범대 음대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연주회에 날 초대해 갔는데 내가 사랑하는 베토벤 열정 소나타를 연주했다. 내가 사는 집에 찾아왔고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도 봤던 제자. 영화배우 데미 무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혼과 사랑> 영화였다. 제자는 카이스트 연구원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오래전 소식이 끊어졌다. 가끔씩 그리운 제자. 영화 음악도 인기 많았어.
어제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 신고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전부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니 더 좋았지만 피아니스트는 많은 연습을 했을 거 같아. 가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흐르며 연주하니 대학 시절 축제에서 본 송창식도 떠올라. 당시 한국에 라이브 공연이 흔하지 않았고 송창식이 온다는 말에 대강당 무대 앞쪽에 앉아 그의 노래를 들었다. 송창식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해서 놀랐어. 오래전 송창식과 윤형주 튄 폴리오 곡 자주 들었다.
12. 11 화요일 오전 글쓰기 하는 동안 전기밥솥 알람이 울려. 밥이 지어져 식탁 차릴 시간.